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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27]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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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239 2011.07.2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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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27]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10:1-21)

유대인들의 남은 자

바울은 로마서 9장 27-29절에서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을 것이다”(27-29절)고 주장하였다. 바울은 이사야의 ‘남은 자’(remnant) 사상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영적으로 풀었다. 본래 남은 자란 시리아와 군사동맹을 맺었던 북 왕국 이스라엘이 남 왕국 유다와 동맹을 맺었던 앗시리아로부터 군사적인 패배를 당하고 전쟁포로로 끌려간 후에 끝까지 살아남은 자들이다. 그들만이 본토(本土) 또는 고토(故土)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yesayahu, 야훼는 구원이시다)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당한 주전 722년을 전후로 절반씩 40년간 활동했던 선지자였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마헬살랄하스바스’(사 8:3)와 '스알야숩'(사 7:3)이다. 이 이름들은 이사야가 선포한 두 가지 예언활동의 내용들이었다. 첫째 이름, ‘마헬살랄하스바스,’ 즉 ‘노략이 신속함’ 혹은 ‘약탈이 빠름’은 회개운동으로써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타민족의 침략을 받게 하여 유배를 보내시겠다는 뜻이다. 둘째 이름, '스알야숩,' 즉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는 회복운동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벌 받게 하신 후에 유배생활로부터 돌아오게 하실 텐데, 그 기회가 남은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란 뜻이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당대의 패권국가인 앗시리아를,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에 등을 돌림으로써 패망하였다. 정치적으로 보면, 국가지도자들이 국제정세(國際情勢)를 잘못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과 맺은 시내산 언약, 특히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은 회개운동과 더불어 회복운동을 펼쳤다.>

바울은 여기서 이 ‘남은 자’를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 특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유대인들에게 적용하였다. 이사야의 ‘남은 자들’을 그리스도인들의 예표와 그림자와 모형으로 보았던 것이다. 바울이 믿었던 구원의 원리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던” 방법, 즉 “믿음에서 난 의(義)”였다(9:30). 한때 귀한 그릇이었고, 긍휼의 그릇이었던 유대인들이 구원공동체인 ‘남은 자들’에 속하지 못한 것은 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한 때문이었다(9:32). 따라서 바울은 로마서 10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하게 피력하였다.

바울은 로마서 9장 1-5절에서와 마찬가지로 10장 1-3절에서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구원받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피력하였다. 바울의 입장에서 볼 때,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향한 열심이 대단하지만, 잘못된 지식과 방법 때문에 헛수고를 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의를 세우기보다는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썼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자들이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의(義)는 죄인을 심판하시는 공의가 아니라, 죄인을 의인으로 간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의(義)는 그들이 소유한 모든 계명들과 울타리 법들을 다 지켰을 때의 결과였다. 그러나 인간은 피조물이고, 실수와 오류를 피할 수 없으므로, 아무도 율법들을 온전하게 지켜낼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율법으로는 의인이 될 수가 없고, 필연적으로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자기 의(義)는 윤리적인 삶에는 유용하나 구원에는 무용하며, 유대인들이 잘못된 지식과 방법으로 헛수고를 한 셈이 된다.

유대인들의 열심

유대인들은 타 민족들이 갖지 못한 심오한 영성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발견한 하나님은 타민족들의 우상 신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타민족의 신들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죽은 신들이었다면, 유대인들의 하나님은 살아서 활동하시는 천지를 지으신 유일신이었다. 따라서 유대교에는 타종교들에서 발견되는 신들의 형상도 신화도 여성사제도 교리도 신앙고백서도 없었고, 신전도 예루살렘에 단 한 개뿐이었으며, 성소에는 일반사람들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타민족들은 많은 신들을 갖고 있었고, 그 형상들과 이름들을 돌에 새겼지만, 유대인들은 단 한분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형상을 어떤 형태로든 만들지 못하도록 제2계명에 명시하였다. 사람의 손으로 새길 수 있는 것은 신이 아니다. 참신은 영이시고 신비에 쌓여있어서 그 형체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었고, 말씀으로만 인간과 관계하시는 분이셨다.

유대인들은 이 하나님을 몹시 사랑하여 안식일과 절기들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39가지 범주의 ‘창조행위’(Melacha)를 설명한 수많은 안식일 법들을 만들어 지켰다. 적어도 매일 세 번씩 기도회를 가졌으며, 100여개의 기도문들(berakhot)을 암송하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형체를 갖지 못한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Torah, 율법)를 자랑으로 삼았다. 하나님의 보좌라 믿었던 법궤 속에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건네주신 토라(율법)가 있었다. 그들은 토라의 내용들을 심히 사랑하여 뽀뽀하였고, 문자적으로 읽고 온몸으로 실천하였다. 613개의 계명들(Mitzvot)뿐 아니라, 랍비들이 제정한 수많은 울타리 법들과 오랜 관습법들을 온몸으로 지켰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과 민족과 메시아도래를 철저하게 믿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믿었고, 하나님은 그들 자신의 신이라고 믿었으며, 조상대대로 섬겼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613개의 계명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안식일 및 절기법(Moed), 음식법(Kashrut), 손 씻기법, 그릇 씻기법, 농사법(Zeraim), 결혼 및 이혼법(Nashim), 일반 형법(Nezikin), 희생제물법(Kodashim), 레위인의 성결법(Tohovoth)등 셀 수 없이 많은 울타리 법들을 만들어 지켰는데, 이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의 참 뜻과 취지를 벗어나게 만들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그들 민족의 신으로 독점해버렸다. 하나님이 타민족들의 신이 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한분밖에 없는 신을 독점해 버렸으니, 타민족들에게 참신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이 신(神)의 독점의식의 절정이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다른 민족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에는 단 한 개의 성전만 허락되었다. 그나마도 하나님을 지성소에 묶어뒀다.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하루 법궤 앞에서 두어 차례 독대할 수 있었다. 보통사람들은 성전내부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들의 유일신 하나님이 지성소에서 해방되신 것은 바벨론의 침략에 의해서였다. 성전은 능욕되었고, 백성은 모두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갔다. 이 치욕적인 사건이 있고난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은 성전 지성소에서 해방되셨다.

구원에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셨다. 바울의 확신은 예수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기(8:4) 때문에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the end of the law)이 되시며”(4절), 유대인들처럼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율법의 요구를 100퍼센트 충족시켜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5절)는 것이었다. 또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서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다”고 적었고, 야고보도 서신서 2장 10절에서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고 하였다. 피조물인 인간으로서는 율법의 요구를 완벽하게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1:18; 3:20).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만 의(義)에 이를 수 있다(6-13절). 이런 점에서 기독교 복음은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에게도 큰 기쁨의 소식이 된다.

구원의 원리는 단순명료하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9절)고 하신 대로 믿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 받음으로써 받는 구원의 첫 걸음인 ‘구원하는 믿음’의 내용이다. 이 믿음은 신앙고백서나 교리보다 훨씬 단순간결하다. 예수님을 주(主)와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으면 구원받기 때문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10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 3:5)을 주시기 때문에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11절, 5:5). 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3절)고 하였다. 이 구원의 원리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는 것,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主)와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신다(12절)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 단순하고 간결한 구원의 원리를 유대인들이 거역했음으로 그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고 하였다(14-21절).

선교사를 보내지 않으면 복음이 전파될 수 없고,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듣는 자가 없으며, 믿지 않는 자를 어떻게 부르겠느냐며,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복되다(14-15절)고 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불행히도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16절). 바울과 동료들은 복음을 전하는 발이 되어 지중해연안의 여러 나라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잡아 때리고 가뒀으며 죽이려고 하였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17절). 그러나 유대인들은 온 땅에 퍼지고, 땅 끝까지 이른 복음을 믿지 않았다(18절).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핑계치 못할 것이며, 그들이 받을 복이 이방인들 중에 믿는 자들에게 넘어갔다(19-21절, 1:20, 2:1). 지나친 민족주의와 선민의식이 독약이 되어 유대인들을 깊은 동굴에 가두는 족쇄가 되었고, 그들을 소경과 귀머거리로 만들었다. 오늘날까지도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기독교복음을 외면하고 있어서 그들에게는 그것이 여전히 그리스도의 비밀로 남아 있다(엡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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