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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38]로마서 기록의 동기(롬 1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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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826 2011.08.1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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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38]로마서 기록의 동기(롬 15:1-33)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장 16-18절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 선교를 위해 사도로 삼으신 것과 성령님의 능력과 표적으로 온 누리에 기독교복음이 전파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바울은 유대교의 엄격한 율법과 전통 속에 감춰져 있던 하나님의 그 오랜 열방선교의 뜻을 만천하에 폭로시킨 인물이었다. 소수 유대민족의 신(神)으로서 예루살렘성전의 지성소에 갇혀있던 하나님을, 온 인류를 그 어떤 차별도 없이 평등하게 사랑하시고, 값없이 믿음으로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친히 인간들의 죗값을 대신 치르신, 사랑의 하나님으로 만천하에 공포한 인물이었다.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국적불명의 불법체류자와 같던 이방인에게 예수님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자가 되게 하며, 고아와 같던 이방인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하는 기쁨의 소식을 만천하에 선포한 인물이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차별이 없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동일한 주님이 되시며, 믿는 자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신다는 천국복음을 전파한 인물이었다. 선민이라고 일컫는 유대인들이 받은 하나님의 약속과 복을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상속받는다는 기쁨의 소식을, 마치 마라톤평원에서 이뤄진 전쟁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렸던 전사처럼, 목숨 바쳐 알린 인물이었다. 무엇보다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택하시고 부르시어 이 위대한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삼으셨다는 강한 소명의식과 사명의식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기독교 복음은 자칫 편협한 배타적 선민의식과 독점적 영토주의 그리고 율법주의의 소유자들이었던 히브리파-유대인 기독교인들의 손에 잡혀서 팔레스타인의 울타리 속에 수십 년 갇혀 있다가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었다. 이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헬라파-유대인 기독교인들이었던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구출하여 세계로 수출하였고, 그 결과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 예루살렘교회의 수장이었던 야고보와 같은 히브리파-유대인들은 편협한 배타적 선민의식과 독점적 영토주의와 율법주의에 젖어 있었을 뿐 아니라, 당대의 헬레니즘 문명권에 동화되지 못한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헬라문화와 언어 및 지리에 익숙하지 못하였고, 해외에서 자랐거나 공부한 경험이 없었던 인물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세계 선교에 기여할 능력이 많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준비된 그릇들이었던 바울, 바나바, 스데반, 빌립과 같은 헬라파-유대인 기독교인들의 포용적이고 열린 복음적 사고와 익숙한 언어와 문화수준을 세계 선교를 위해서 쓰셨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었으면서도 열방민족들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한 뜻을 깨닫지 못하고 여기에 동참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약속을 문자적으로 믿으면서 제2출애굽사건을 이끌 그리스도가 세울 세계(Olam Ha-Ba)는 유대인들이 지배하게 될 유대인국가가 될 것이라고 믿어왔다. 지금도 유대교 전통주의자들은 그들의 생각을 고치지 않고 있다.

표적과 기사와 능력

바울은 로마서 15장 18-19절에서 이방인에게 전파된 복음의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증언하였다. 바울이 언급한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란 무엇일까?

하나님의 역사(役事)는 크게 둘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특별한 방법의 역사와 일반적이고 자연스런 방법의 역사가 있다.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란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초자연적인 통치, 기적, 계시를 말하고, 하나님의 일반적인 역사는 자연스런 조절, 섭리, 영감을 말한다. 통치, 기적, 계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인간사에 개입하시는 것으로써, 천지창조, 홍해바다의 갈라짐, 성육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사건을 말하며, 자연법칙 또는 인과법칙에 어긋난 사건의 발생을 말한다. 그러나 조절, 섭리, 영감은 하나님께서 자연스런 방법으로 인간사에 개입하시는 것으로써, 의사나 약의 도움에 의한 치유, 친지, 교우 또는 이웃을 통한 기도응답처럼 자연법칙에 어긋나지 않고, 시공(時空)을 초월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삶에 직간접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한다. 그런데 성경이 기적을 말할 때는 언제나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란 세 단어를 함께 쓰고 있어서(행 2:22, 고후 12:12, 살후 2:9, 히 2:4, 롬 15:18) 주의 깊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첫째, ‘큰 권능’(power)은 기적의 근원 즉 하나님의 큰 능력 행함을 말한다. 둘째, ‘기사’(wonders)는 표적과 함께 언제나 복수형으로 쓰인다. 기적의 결과 즉 하나님의 큰 능력 행함을 눈으로 본 사람들의 마음에 일어나는 결과들, 예를 들면, 놀람, 경악, 기이함 등을 말한다. 셋째, 표적(signs)은 확증, 입증을 의미하는데, 기적의 목적이다. 기적은 표적을 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행하여진다.

기적은 주님의 종이 전한 계시의 진실성을 입증, 증거, 확증하는 표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의 능력 행함은 증거적인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주님의 종이나 전달되는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성경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면, 먼저 모세가 행한 수많은 기적들은 이스라엘 국가형성을 위한 것이었고, 엘리야가 행한 많은 기적들은 야훼가 참 하나님이심을 입증하는 것이었다(왕상 17:24). 둘째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능력들과 기적들과 병고치심들은 그분이 그리스도이심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키 위한 것이었다(행 2:22). 그리고 셋째로 사도들의 방언과 능력 행함은 교회창립과 신약성경의 완성을 위한 것이었다.

기적은 말씀을 전하는 자가 하나님의 종인 것과 그가 전한 말씀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그 오랜 자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인간의 고통과 질고를 친히 짊어지실 만큼 하나님의 자비는 무한하시다. 그 오랜 주님의 자비에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살길을 찾았다. 복음서에서 볼 수 있는 흑암에 앉은 백성들, 목자 없는 양떼처럼 방황하는 무리들, 바람에 흔들리는 상한 갈대 같은 민초들, 폭풍만난 제자들, 소경들, 앉은뱅이들, 문둥병자들, 다섯 남편가진 여인, 38년 된 병자, 혈류증을 앓던 여인 등, 앞 못 보고 걷지 못했던 상하고 찢긴 자들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영적인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의 자비를 입었던 자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다.

바울의 로마방문계획

바울은 로마서 15장 20-33절에서 자신의 정황과 로마서 기록에 대한 몇 가지 이유를 밝혔다. 첫째, 스페인 선교를 위한 로마방문의 계획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둘째, 예루살렘교회 방문을 앞두고 있던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열심 있는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싶었다. 이방인교회들의 선교헌금은 가난한 예루살렘교회로부터 받은 영적축복을 되돌려주는 감사표시로써 유대인교회와 이방인교회가 연합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셋째, 예루살렘교회에서 내려온 사람들 때문에 갈라디아교회에 변절자들이 생긴 점에 대해서 과격하게 대응했던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와 불편해진 관계 속에서 유대인들이 제기한 문제들, 즉 기독교복음에서의 이스라엘의 역할, 토라와 할례 등의 역할에 대한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로마교회에 미리 펼쳐 보임으로써 예루살렘교회에서의 변호를 준비하였다. 그것은 로마교회의 이방인들에게 시급한 문제였을 뿐 아니라,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에 대한 적대적 반응을 해소하는데도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넷째, 로마에서 발생된 믿음이 강한 자들과 연약한 자들 사이의 불일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유대인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이방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바울은 교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잘못된 우월감을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런 점들에서 로마서는 주후 58년 오순절 무렵에 예루살렘교회에서 행할 담화내용을 정교하게 다듬은 유대인들과의 대화였다고 볼 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구원의 일차적인 대상은 항상 유대인들이었다.

로마서 1-4장은 본질적으로 유대인과의 대화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복음은 그들 모두를 죄 아래 있는 사람들로 규정하고, 그들 모두를 예수님을 영접하는 믿음을 통하여 해방하고 연합시킨다. 그리고 로마서 5-8장은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는 하나다’는 모티브를 가지고 새롭고 영원한 다가올 세계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피력하였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은 물론이고, 민족, 성별, 빈부, 귀천의 차별은 없어졌다. 이것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폐기되어져버린 구시대의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율법의 기능이 완전히 끝나버린 것은 아니다. 율법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지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책임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 5-8장은 하나님의 임박한 구원과 승리를 표명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새로운 세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수개월내에 맞닥뜨려야할 예루살렘교회에서의 변호, 갈라디아교회에서의 위기, 로마방문계획의 설명과 중재기도의 요청, 로마교회가 당면한 문제 등이 바울로 하여금 그가 20여 년간 전파한 기독교복음에서 이스라엘의 역할, 토라와 할례 등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묻는 유대인들의 물음에 해답을 찾도록 강요하였다. 로마서가, 특히 9-11장이,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을 변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복음의 보편성을 위하여 적대자들과 싸우면서 유대인들이 이해하는 구원의 역사에 반대하여 논쟁을 펼친 반면에 로마서에서는 복음의 보편성과 이스라엘의 특수성을 통합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서 일정부분 이스라엘의 역할이 있었음을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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