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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빚(롬 15: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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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547 2011.11.16 07:59

본문

그리스도인의 빚(롬 15:22-29)

1. 우리 피조물들은 빚진 자들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1년 2분기 말 가계 부채가 우리나라 한 가구당 5,000만원, 일인당 1,8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국민이 금전적으로 빠듯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려는 빚은 금전적인 빚이 아니라, 도덕적 빚(의무)에 관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굉장한 친절을 베풀었다면, 그에게 감사의 빚을 졌다고 말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죄를 범한다면, 그는 사회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 감옥에 가야한다. 어떤 정치인이 시민에게 공약을 했다면, 그는 시민에게 약속을 지킬 도덕적 빚을 갖는다.

본문 로마서 15장 22-29절은 한 교회, 즉 그리스 교회가 다른 교회, 즉 예루살렘 교회에 진 섬김의 빚을 언급하고 있다.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신령한 복을 그리스 교회가 받았으니, 그리스 교회는 금전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신령한 것과 물질적인 것, 복음으로 섬기는 것과 물질로 섬기는 것, 말씀으로 섬기는 것과 봉사로 섬기는 것이 동등한 또는 평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바울은 여러 차례 빚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첫째,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고 하였는데, 이는 전도의 빚을 말한다.

둘째,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롬 8:12)고 하였는데, 이는 순종의 빚을 말한다.

셋째,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몬 1:18)고 하였는데, 이는 금전의 빚을 말한다.

넷째,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몬 1:19)고 하였는데, 이는 사랑의 빚을 말한다.

인간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신(神)과 부모와 이웃과 사회로부터 빚을 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가 자신이 빚진 자란 것을 알기까지에는 십 수 년이 걸린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하는 일에 성경이 한 몫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에게 “우리가 빚진 자들”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에 쓰인 빚(opheile)은 의무와 책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동사인 경우에는 “반드시 ~ 해야만 한다”(ought)로 번역되고 있다. 특히 신약성경은 우리가 세 가지 측면, 즉 피조물로서, 죄인들로서, 그리스도인들로서 빚진 자들임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진 빚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갖는 순종의 빚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켜야할 빚을 지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소유주이시기 때문이다. 시편 24편 1-2절은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고 노래한다. 이는 하나님이 모든 것의 소유자이시니, 우리는 그분에게 굴복해야할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장 10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하여야 할 일,” 즉 우리가 갚아야할 일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들로서 그분에게 순종의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2. 우리 죄인들은 빚진 자들이다.

만일 우리가 이 순종의 빚을 갚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빚을 갚지 않으면, 부채가 늘어나듯이, 순종의 빚을 갚지 않고 죄를 범하면, 징계의 빚이 생긴다. 범죄자가 “사회에 진 빚”을 갚아야하듯이, 죄인은 하나님께 진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 따라서 죄인들로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벌(永罰)의 빚을 지고 있다.

성경은 일종의 채무로서의 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사(赦)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빚들을 사(赦)하여 주옵소서”(마 6:12)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다. 우리말에 죄지은 자들은 문자적으로 빚진 자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죄지은 자들이 청산해야할 빚은 지옥의 영벌(永罰)이다.

금전적인 빚을 진 사람들, 특히 고리대금업자들에게 돈을 빌려 쓰고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겪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그로 인한 좌절감과 절망감에 대해서 아마 모두가 들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고통에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고통의 빚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벌(永罰)의 빚이다.

그러나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여기 기쁨의 소식이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우리의 빚을 다 갚으셨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징계를 받고 죽음으로써(고전 15:1-3) 우리가 받아야할 그 무서운 징계의 빚을 다 갚으셨다고 말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드리기만 하면 된다.

예수님은 우리가 진 빚의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기 위해서 친히 몸값을 지불하셨다. 그분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분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마 20:28)이다. 이점에 대해서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다”(딤전 2:5-6)고 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갈 3:13)고 증언하였다.

우리가 피조물들로서 갖는 순종의 빚과 죄인들로서 갖는 징계의 빚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순종의 빚을 갚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순종의 의무를 다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은 죄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선택의 문제로 남는다. 그러나 징계의 빚에 관해서는 경우가 다르다. 그것은 반드시 갚아야할 빚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그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복된 한 가지 선택을 마련해놓으셨다. 우리는 영원한 지옥에서 죄의 빚을 갚기로 선택할 수 있다. 그 반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그 빚을 갚도록 선택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갈보리 은행에 충분한 몸값을 미리 예치해놓으셨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그분을 마음에 영접하기만 하면, 우리의 빚을 갚고도 남을 충분한 몸값이 우리의 계좌로 자동이체 된다.

여기에서 감사의 빚이 생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징계의 빚을 다 갚으셨기 때문에 감사의 빚이 생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께 감사하자.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값을 지불하셨다. 이 사실을 믿고 확신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우리의 빚들을 사(赦)하여 주옵소서”(마 6:12)라고 기도하자.

3.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빚진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빚들을 사(赦)하여 주옵소서”(마 6:12)라고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사하여 준 것같이”라고 말해야 한다. 징계의 빚을 해결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예수님께 빚진 자들이다. 요한일서 2장 6절은 말한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걸으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걸어야할지니라).” 여기서 사용된 “할지니라”(opheilein)는 우리가 그분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할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로마서 8장 12절은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아야할 빚진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고 있는 빚은 죄인으로서 지고 있던 빚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그리스도인은 율법 때문이 아니라 은혜 때문에 하나님께 복종한다. 우리가 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기 때문에 복종한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되갚아야하기 때문이 아니라, “감사 합니다”라고 표현하는 유일하고 적절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은혜 아래서 순종의 빚은 감사의 빚이 된다. 은혜 아래서 감사의 빚은 사랑의 빚, 섬김의 빚, 용서의 빚, 전도의 빚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에게뿐 아니라, 우리의 가족친지, 교우, 친구, 이웃, 사회와 국가에 빚진 자들이다. 요한일서 4장 11절은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여기서 “마땅하도다”는 갚아야할 빚을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전도의 빚을 진 자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대사로서 활동하기를 원하신다(고후 5:14-20). 바울이 선교사로서 목숨을 걸었던 것은 바로 이 전도의 빚을 갚으려는 것이었다. 그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4-15)고 말했다. 만일 당신이 변호사로서 당신의 먼 친척의 한 사람이 죽었고, 당신과 당신의 형제자매들에게 각각 10억 원씩 유산으로 남겼다는 전갈을 받았다고 치자, 당신은 당신만 기뻐할 뿐 아니라, 당신의 형제자매들에게 그 좋은 소식을 알려야할 도덕적 의무감을 갖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서 죽으시고 구원의 복을 유산으로 남기신 사실을 전해야 할 빚진 자들이다.

우리는 아마 은행과 카드사에 진 빚에 대해서 민감하게 대처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진 빚에 대해서도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신세를 졌다. 많은 은혜를 입었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많은 자비를 입었다. 많은 복을 받았다. 우리는 다 빚진 자들이다. 순종의 빚을 졌다. 용서의 빚을 졌다. 사랑의 빚을 졌다. 봉사의 빚을 졌다. 전도의 빚을 졌다. 무엇보다도, 감사의 빚을 졌다. 이 거룩한 빚들을 힘써 갚으며 사는 수행의 삶을 살도록 하자.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우리가 받아야한다는 채권자의 심정으로 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대로 채무자 즉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산다면, 불평보다는 감사가, 욕심보다는 나눔이, 대접을 받기보다는 대접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오직 감사이다. 먼저는 하나님께 감사하자. 남편과 부인에게 감사하고, 부모와 자녀에게 감사하며, 교우와 친구와 동료와 이웃에게도 감사하자. 아미쉬들(Amish)의 JOY(기쁨), 즉 “Jesus First, Others Next, Yourself Last”의 자세로 산다면, 감사와 기쁨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옆 사람의 손을 잡고 “감사합니다. 많은 빚을 졌습니다.”라고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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