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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물질관(눅 12: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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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5,718 2011.02.2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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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물질관(눅 12:16-21)

물질관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물질관은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인을 기독교인답게 만드는 것은 방언을 말하는 것이나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성경적 물질관을 갖는데 있다. 오늘날 상당수 기독교인들이 세속적인 사람들과 전혀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은 음주나 끽연을 해서가 아니라, 물질관이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이 다 그들에게 속한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것, 우리에게 속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예를 들어서,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의하면, 우리의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성령의 전이요, 하나님께서 값을 주고 산 하나님의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몸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우리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태, 자살, 안락사 등을 함부로 할 수 없다. 내 몸도 함부로 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남의 몸을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반대로 세속인문주의자들은 내 몸의 결정권은 내가 가졌음으로 내가 자살을 하든, 낙태를 하든, 마약을 하든, 매춘을 하든, 동성애를 하든, 콩팥을 떼어 팔든, 대리모를 사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누가복음 12장 16-21절은 어리석은 자의 물질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곳이다. 오늘은 이 성구들을 해설한 미국의 데이비드 라이드(David R. Reid) 목사의 글을 소개하려고 한다.

비유를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부자에게 그가 소유한 재물 때문에 “어리석은 자여!”라고 꾸짖고 있다. 만약에 우리가 같은 이유, 즉 우리가 가진 재물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여!”라고 부르신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혹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가운데 누군가에게 “어리석은 자여!”라고 부르고 계시지는 않을까? 만약에 그것이 궁금하다면,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자와 우리 자신을 비교해보면 될 것이다. 부자는 잘못된 물질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어리석은 자여!”라고 부르셨다. 만약에 우리가 이처럼 잘못된 물질관을 갖는다면, 하나님께서 머리를 가로저으시며 탄식하기를, “어리석은 자여!”라고 부르실 것이다.

그러면 “물질”이란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소유한 재물들, 즉 집, 자동차, 가전제품들, 의류, 가구, 동산 혹은 부동산, 수집품들, 스포츠 장비 등을 의미한다. 명백히 말해서 이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그 자체로 악하지 않다. 또 이것들을 소유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물질관에 대한 잘못된 견해와 태도는 우리를 즉석에서 어리석은 자의 법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누가복음 12장의 부자는 창고가 부족할 만큼 풍성한 소출을 거뒀다. 그래서 그는 기존의 창고들을 헐고 더욱 큰 창고를 지을 계획을 세웠다. 곡식창고를 미리 계획하고 짓는다고 해서 무슨 문제라도 된단 말인가? 투자수익을 보존하려는 계획이 뭐가 그리 어리석은 일인가? 문제의 핵심은 부자가 거둔 풍성한 소출이나 소유한 재물 또는 재물을 쌓을 더 큰 창고를 짓는데 있지 않다. 성경은 오히려 그 같은 일을 장려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그 부자가 잘못된 소유개념 또는 잘못된 물질관을 갖고 있었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부자의 물질관이 잘못되었을까?

부자의 잘못된 물질관1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부자 농부가 그가 소유한 물질들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유대 땅에서 유대인들에게 들려주신 것이므로 부자는 당연히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소출의 축복과 재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마음을 전혀 갖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재물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가, 아니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가?

사람들 중에는 갖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부끄럽게 느껴질 만한 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나님께 기분 좋게 감사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들은 깨끗하게 정리되어야 한다. 우리는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들만을 소유해야 한다. 실제로 깨끗한 양심은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소유하지 말지를 안내하는 안내자이다. 무엇을 소유했느냐, 소유하지 않았느냐를 놓고 남의 영성을 저울질하기보다는 깨끗한 양심으로 자기 자신의 영성을 판단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소유에 관한 기독교 공동체의 신념은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이 또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지침서이다. 성경이 가장 훌륭한 지침서이긴 하지만, 모범적인 신앙인들과 단체들은 훌륭한 인생의 교재가 될 수 있다. 후원자들의 대부분이 목사들과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한국기아대책기구 한 단체만 보더라도, 2011년의 예산이 1432억 원에 달한다. 또 기업체와 개인기부자들이 내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경우 2010년 모금액수가 3395억 원에 달했다. 적지 아니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물을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는 증거이다. 갖지 않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것들을 굳이 소유하려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가난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게 살려는 태도가 아름다운 삶이다.

부자 농부가 만든 또 하나의 실수는 그가 가진 재물의 근원을 알지 못한데 있었다. 자기 재물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17-18절을 보면, 부자는 “나” 또는 “내가”를 크게 강조하고 있고, 자기가 가진 재물과 건강과 지력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놓으신 하나님의 것이라고 깨닫고 있는가? 고린도전서 4장 7절은 말하기를,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 하였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근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의 근원이 우리 자신과 우리가 힘써 일한 때문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높은 점수처럼 우리가 획득한 것들이거나, 일등 트로피처럼 우리가 싸워 이긴 것들이거나, 주택과 자동차처럼 우리가 구입한 것들이거나를 막론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우리에게 잠시 관리를 맡기신 것들이다. 따라서 관리자 정신, 청지기 정신, 집사 정신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하다.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처럼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 우리가 가진 재능들의 근원 혹은 소유권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것이다.

부자의 잘못된 물질관2

어리석은 부자의 관점에 세 번째 문제점은 그의 안전을 재물에 두었다는데 있다. 그는 그가 커다란 창고들에 비축해둔 것 때문에 여러 해 아무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19절).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 또한 그 같은 잘못된 물질관을 갖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정말 우리의 안전을 주님께 맡기고 있는가? 그물망에 걸려든 고기처럼 주님의 손에 제대로 잡혔는가? 너그럽고 사랑이 풍성하신 주님의 눈에 제대로 들었는가? 그렇게 우리가 주님의 소유가 되었는가? 빙벽을 타는 이들이 안전로프에 몸이 묶이듯이 제대로 묶였는가? 암벽을 타는 이들이 안전밧줄에 몸이 묶이듯이 제대로 묶였는가? 그렇게 우리는 주님의 생명줄에 제대로 묶였는가? 종종 우리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곤 한다. 그러나 바닥에 닿기 전에 우리의 몸은 허공에 매달린다. 우리가 줄을 붙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줄이 우리를 매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주님의 강한 손에 붙들렸다. 힘이 아무리 좋은들 얼마나 오랜 시간 줄을 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재주가 아무리 뛰어난들 어떻게 한 번도 실수가 없을 수 있겠는가? 만일에 우리가 생명줄에 묶여있지 않다면, 만일에 우리가 주님께 붙잡혀 있지 않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버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안전을 위해 주님을 신뢰하고 물질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재물에 전혀 관심을 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조심스런 사용자들이 되어야지, 부주의한 낭비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기적인 축재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 주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아무런 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명한 그리스도인과 어리석은 부자의 차이점은 이렇다. 어리석은 부자는 “내 인생은 내 손안에 있으므로 나는 ~을 하겠다.”고 말하고, 현명한 그리스도인은 “내 인생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므로, 주님의 뜻이면, 나는 ~을 하겠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가 만든 네 번째 실수는 그가 재물을 이기적인 향락에 쓰는데 우선순위를 뒀다는데 있다. 유복한 환경에서 먹고 마시고 흥겨워하는 것이 이 어리석은 자의 최우선순위였다(19절). 그의 실수는 그가 재물을 즐거움에 쓴데 있지 않고, 그 재물을 이기적인 향락에 쓴데 있다. 디모데전서 6장 17-18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신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소유한 재물의 이기적인 향락이 나쁘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포커스를 맞춰야하지 재물에 맞춰서는 안 되며, 우리가 즐기는 것들을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소유한 재물을 진정으로 즐기는 비밀이다. 우리의 재물, 우리의 재능, 우리의 능력, 이 모든 것을 우리가 단지 운이 좋아서 갖게 된 것이고,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그것들을 우리보다 운이 좋지 못한 이웃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고 말한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경고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누가복음 12장의 부자는 잉여곡식을 그것이 절박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하지 않고, 창고에 비축하여 저만을 위해 쓰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이기심에 찬 그를 어리석은 자라 불렸다. 21절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는” 어리석은 부자와 동일한 운명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어리석은 자”란 하나님의 평가를 듣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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