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강3]운명의 결정권(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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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3]운명의 결정권(롬 1:1)
하나님의 비밀
유대인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조상들의 하나님, 즉 자기 민족의 하나님으로 생각하였다. 한분밖에 없는 그 하나님을 모신 성전도 예루살렘에 하나밖에 두지 않았다. 결국 유일신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계셨고, 그 한분을 독차지한 민족이 유대인 자신들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 그들에게 세상에는 오로지 두 민족이 있을 뿐이었다. 유일신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민족의 하나님으로 모신 선민 유대민족과 수많은 잡신들이 있지만, 생명이 없는 우상들을 신으로 착각하고 섬기는 하나님이 없는 이방민족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이방세계에 아무리 많은 신들의 이름이 있고, 또 그들을 섬기는 신전들이 아무리 많아도 유대인들의 눈에는 한낱 허구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이란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유대인들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인물이 바울이었다.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힌 배타적 유대인들에게 정신이 번쩍 들게 한 인물이었다. 그는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데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차별도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주장이 힘 있게 실린 글이 로마서이다. 바울 자신은 이 사실의 깨달음을 가장 신비한 은혜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 사실을 ‘하나님의 비밀’ 혹은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불렀고, 만세전부터 감춰졌다가 자기 시대에 비로소 성령님의 계시를 통해서 자기에게 알게 하신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이요 측량할 수 없는 은혜라고 하였다. 에베소서 3장 6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여”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나눠받게 되었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는 이 사실을 이방인들에게 알리는 사도로서 주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다고 확신하였고,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죽음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였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바울은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이방인의 하나님으로, 유대인들이 누릴 특별한 복들을 이방인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고 말하는 발칙한 배신자였다. 최근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협력업체들과 함께 나누자는 정운찬 전 총리의 이익공유제 주장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색깔론과 이념 잣대로 매도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몫의 이익을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이방인과 함께 나누도록 하셨다는 바울의 깨달음은 유대인들로부터 매(박해)를 버는 일이었다. 바울이 그토록 여러 번 유대인들로부터 고초를 겪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무튼 바울은 자신의 깨달음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기쁨의 소식으로 전하였다. 이방인들에게는 큰 기쁨의 소식이 되었다. 당시 로마사회는 자유민이든 노예든 삶 자체가 처참하였다. 가난했고,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언제 난리를 겪을지, 언제 노예로 팔릴지, 언제 겁탈을 당할지, 언제 죽임을 당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위기상황에서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던 때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만민을 평등하게 만드셨고, 자녀삼기 위해서 이 땅에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으며, 그분을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바울의 선포는 복음이 되었다.
기독교의 성공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강림하셨던 2천 년 전 근동세계의 상황은 온통 전쟁이었다. 당대는 로마제국이 천하를 통치하던 시기였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해도 헬라제국이 지배하던 땅이었고, 그 이전은 페르시아제국, 또 그 이전은 바벨론제국, 또 그 이전은 앗시리아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은 앗시리아제국이었고,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것은 바벨론제국이었다. 결국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제국에 이어 페르시아제국 그리고 헬라제국을 거쳐 예수님과 바울 당시에는 로마제국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이런 상황, 즉 불안과 절망 속에서 동물처럼 살던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희망을 불어넣은 메시지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라는 것이었다. 비록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은 주인은 주인대로, 노예는 노예대로, 유대인은 유대인대로, 이방인은 이방인대로 종전의 신분을 그대로 갖고 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주인도 노예도, 유대인도 이방인도, 남자도 여자도 아무런 차별이 없는 동일한 하나님의 형제요 자매였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 곳곳에서 조금씩 발전되어나갔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자기들의 시대를 교회시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경험하는 종말론적인 시대로 인식하였다. 초창기에만 해도 교회는 유대인뿐 아니라 헬라인들로부터도 이단시 취급될 뿐 아니라, 탄압을 받던 아주 작은 겨자씨 같은 공동체에 불과하였다. 그 와중에 교회는 10여 차례 큰 박해를 당하였지만, 설립된 지 283년 만인 주후 313년에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었고, 그로부터 80여년만인 주후 392년에 1,145년의 오랜 역사(주전 753년에 로마 건국)를 자랑하던 로마제국을 기독교왕국으로 바꿔버리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성과에 대해서 18세기 영국인 에드워드 깁본(Edward Gibbon)은 ?로마제국의 몰락사?(1776-88)란 책에서 다섯 가지를 지적하였다. 첫째, 일신교 신앙을 단호하게 지켜냈다는 점; 둘째, 신자들에게 사후의 세계를 보장했다는 점; 셋째, 수많은 기적들이 사도들의 손에 의해서 행해졌다는 점; 넷째, 신자들이 깨끗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 다섯째, 그리스도인공동체들이 일치단결해서 로마제국 내에 독립된 사회를 구성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1965년에 영국인 에릭 도즈(Eric R. Dodds)가 ?불안의 시대 안에서의 이교도와 기독교도?란 책을 냈고, 로마제국 안에서 기독교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을 네 가지로 지적하였다. 첫째,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절대적 배타성이 불안의 시대를 살던 당대의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되었다는 점; 둘째, 그리스도의 교회가 제시하는 구원에는 남녀노소빈부귀천의 어떤 차별도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 셋째, 사람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는데 성공했다는 점; 넷째, 일체감이 강한 그리스도인공동체에 가입하게 되면 의식주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남녀노소빈부귀천민족색깔의 차별을 두지 않았던 기독교의 위대한 평등주의, 즉 하나님 앞에서 만민이 동등하며,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스도의 노예
바울은 스스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불렀다. 로마서 1장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에서 종(doulos)이란 노예를 말한다. 바울이 살았던 로마제국 당시에 노예는 소 돼지와 같은 주인의 재산목록의 하나에 불과하였다. 로마제국은 해방노예들에게는 일반시민들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였지만, 노예들에게는 아무런 인권도 권리도 보장하지 않았다. 주인은 노예를 채찍질하거나 투옥시키거나 불구로 만들거나 죽일 수가 있었다. 또 노예는 동물처럼 노예시장에서 팔고 살 수 있었고, 몸에는 불 인두로 지진 노예표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로마인은 노예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 자로 정의하였다.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에는 투표권이 있는 시민권자가 4만 명이었는데, 노예는 그 배가 넘는 9만 명이었다. 노예가격은 의사, 교사, 기술자와 같은 숙련기술자의 경우 농장이나 광산에서 일하는 비숙련 노동자보다 40배가 더 많았다. 숙련노예의 가격은 최하층 시민권자가 버는 일 년 수입의 2-3배에 달했다고 한다. 아테네와는 달리 스파르타쿠스가 주도한 노예반란이 있었고,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 세기의 로마는 시민권자와 자유민이 7-8백만 명 정도였는데, 노예는 30퍼센트에 해당되는 2-3백만 명 정도였다. 하지만 속주민과 시칠리아 지역의 노예들을 합하면 그 수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 로마인들은 노예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 자로 정의하였기 때문에 이 정의에 따르면 속주민도 절반은 노예나 다름없다고 말하면서,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자유민의 30-50퍼센트가 노예였다고 보았다. 로마에서는 헬라인 가정교사가 가장 값이 비쌌는데, 가장 값싼 노예와의 가격차가 무려 100배나 되었다고 한다. 주전 73년에 있었던 노예반란 때, 8개 군단을 이끌고 노예반란을 진압하는데 성공했던 크라수스는 체포된 노예군 6,000여 명을 도로변에서 한꺼번에 십자가형에 처했는데, 줄지어 세워진 십자가는 수십 리에 달했다고 한다(<로마인 이야기>제3권, 210-221쪽).
바울의 노예개념은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 잘 이해된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신학자 케제만은 이를 “운명적 사랑”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바울의 이런 노예표현은 교직(敎職)을 의미하는 ‘종'(diakonos)의 개념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종’은 자원해서 주인을 섬기기로 작정한 자, 즉 일군 혹은 집사 등을 말할 때에 사용된다.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할 때, 일군이나 집사개념으로 쓰지 아니하고, 노예개념으로 쓴 것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또 바울은 도망노예(fugitivus)였던 오네시모를 사랑하는 형제와 동역자로 불렀다. 오네시모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 보낸 서신에서 더 이상 노예로 여기지 말고 사랑하는 형제로 영접할 것을 간청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녀노소빈부귀천민족색깔에 상관없이 형제요 자매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자신의 운명의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 자신인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신가? 섬기지 아니하고,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자신의 운명의 결정권을 하나님께 맡긴 바울은 무엇을 교훈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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