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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15]화목제물(롬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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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202 2011.05.2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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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15]화목제물(롬 3:25)

우리민족의 화목제물 개념

로마서 3장 25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로 화목제물을 삼으셨는데, 그 효력은 그것을 믿고 동의할 뿐만 아니라, 그분을 신뢰할 때 나타난다는 뜻이다.

‘화목’(καταλλαγ?)은 중재(仲裁)용어이다. 분단의 벽을 헐고 적대감정을 풀어 평화를 되찾는 것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적대감(=하나님의 진노), 인간끼리의 적대감, 자연을 착취하고 고갈시킨 데서 오는 적대감이 제거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세우셨다. 이때 하나님이 세우신 제물은 선물(膳物)이다. 하나님이 자신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주신 선물이다.

제물(祭物)이란 본래 죄와 허물이 큰 인간이 신(神)에게 바치는 뇌물(賂物)을 말한다. 신(神)이 인간에게 무엇이 아쉬워서, 무슨 잘못이 있어서 제물을 바치겠는가? 제물을 바쳐야할 쪽은 죄와 허물이 큰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서 3장 25절은 그 어떤 형태의 죄도 허물도 없는 완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인간에게 제물로 주셨다고 말한다. 이 제물이 인간에게는 더 없이 큰 구원의 선물이 되는 이유이다.

우리민족은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신(神)의 선물(膳物)로 여겼다. 비록 제사상의 음식이 인간이 차린 음식이고, 다분히 잘 보살펴달라는 뇌물의 성격을 띤 것이지만, 신(神)은 인간들의 지성(至誠)만 받고, 음식은 고스란히 예배공동체에 물리신다고 보았기 때문에 선물이었던 것이다. 준비한 정성이 지극할수록 잘 차려진 음식은 예배자의 것이 된다. 같은 원리로 정성껏 준비한 예배의 결과는 예배자의 몫이 된다. 이렇게 제사 음식은 신이 내린 선물이고, 예배공동체에 대한 신의 뜻(神意)이 담긴 음식이었기 때문에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반드시 이 제사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예전에 우리가 사용하던 ‘복덕방’이란 말이 바로 이 선물을 나누던 장소를 뜻했다. 이 말이 토지나 가옥 중개업소란 뜻으로 한동안 사용되기는 했지만, 먼 옛날의 복덕방은 각종 부락제 때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옮겨와 나눠 먹던 장소였다. 먹고 마심으로 복을 받고(飮福), 먹고 마심으로 덕담을 나누던(飮德) 신성한 장소가 복덕방이었던 것이다. 복덕방에서 선물을 나누는 행위는 신의 뜻을 나누는 행위였고, 한 공동체의 결속과 연대를 신의 명령(神命)으로 받아드렸던 엄숙한 행위였다. 제물은 이처럼 마을 공동체를 강하게 결속시키고 공동 운명체임을 자각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살코기만이 제물로 쓰인 것은 아니다. 떡(빵)과 술(포도주)이 가장 기본적인 제물이었다. 우리민족의 세시민속(歲時民俗) 가운데 대보름 민속으로 원한을 푸는 떡(解怨餠)이란 게 있었다. 한 해를 살다보면 이해(利害)에 얽히건 오해에 얽히건 간에 누군가와의 사이에 원망이 생기게 마련이다. 한 마을에 살면서 불편한 관계를 갖는다면 피차에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대보름 명절에 그 불편관계를 말끔히 씻기 위해서 해원 떡을 만들어 돌렸다. 이 선물은 이웃관계를 회복하기위한 화목제물이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요 6:48)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구원의 선물이란 뜻이요,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이다.

구약성경의 화목제물 개념

구약성경에서 화목제물은 자원해서 드리는 제물(祭物)이었다. 그래서 뇌물(賂物)보다는 선물(膳物)의 성격이 강했다.

구약시절에는 네 종류의 제사방법이 있었다. 화제(火祭), 요제(搖祭), 거제(擧祭), 전제(奠祭)가 그것들이다. 화제(火祭)는 제물을 불에 태우거나 구워서 바치는 제사였고, 요제(搖祭)는 제물을 흔들어서 봉헌하는 제사였다. 거제(擧祭)는 제물을 높이 들어서 바치는 제사였고, 전제(奠祭)는 피나 포도주, 또는 기름이나 물을 제물에 부어서 바치는 제사였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7절에서 자신을 ‘관제’(灌祭)로 드린다는 표현을 씀으로써 ‘전제’의 영적 의미가 헌신과 순교란 점을 밝혀주었다. 제물에 물을 붓는 것은 특별한 경우로써 초막절 마지막 날 새해풍년기원예배 때에 쓰였다.

구약시절에는 다섯 가지의 제사종류가 있었다. 자원해서 드리는 화목제(和睦祭)와 소제(素祭)가 있었고, 의무로 드리는 속죄제(贖罪祭)와 속건제(贖愆祭, 愆=허물)가 있었다. 그리고 번제(燔祭)가 있었는데, 번제는 단독으로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다른 네 가지와 함께 세트(set)로 자원해서 바치는 제사였다.

번제는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을 태워 향기로운 냄새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화제였다. 제물은 예배자의 생활형편에 따라 수소, 숫염소, 숫양, 산비둘기 또는 집비둘기 가운데서 바칠 수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흠이 없고, 일 년이 된 수컷이어야 했다. 번제 때 제물이 불에 타면서 나는 향기로운 냄새는 하나님의 몫이었고, 가죽은 제사장의 몫이었다. 그러나 예배자는 번제를 통해서 온전한 헌신과 감사를 하나님께 바치기 때문에 자기 몫이 따로 없었다. 가죽만 취했던 제사장은 번제와 함께 세트로 바치는 소제나 화목제 등을 통해서 자기 몫을 추가로 취할 수가 있었다.

자원해서 바치는 화목제(和睦祭)는 불에 태우는 화제였지만, 다 태우지 않고, 내장과 기름만 상징적으로 태웠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친교를 상징하기위해서 무교병과 함께 드려졌다. 화목제의 특징은 예배자에게도 일정한 몫이 주어진데 있었다. 동물의 가슴은 요제로 흔들고, 오른쪽 뒤 넓적다리는 거제로 높이 쳐든 다음 가죽과 함께 제사장에게 주어지고, 나머지는 예배자가 가져다가 가족친지이웃들과 더불어 그날로 다 먹어야 했고, 먹다 남은 것은 불에 태워야했다. 제사장도 마찬가지였다. 화목제로 바친 고기는 예배자든, 제사장이든 그것을 결코 혼자서 독식할 수 없었다. 반드시 제사를 드린 바로 그 날에 모두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화목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와 자연관계에서까지 두루 이뤄져야 진정으로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크든 작든 동물이 화목제물로써 희생되면, 하나님은 그 제물의 향기만 받으시고, 살코기는 고스란히 예배공동체의 음식물로 하사(下賜)하시어 구성원들의 관계회복에 쓰이게 하셨다. 이런 맥락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는 말은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관계, 인간과 인간관계, 인간과 자연관계에서 속죄와 구원, 화목과 일치, 연대와 결속, 나눔과 친교를 위한 가장 크고 완전한 선물이 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의 화목제물 개념

신약성경에서 화목제물(?λαστ?ριον)은 구원의 근원과 구원의 수단을 밝히는 말로써 쓰였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는 말씀에서 “그의 피로써”는 구원의 근원을, “믿음으로 말미암아”는 구원의 수단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말이다. 예수님의 피가 구원의 뿌리이고,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이 구원의 통로라는 뜻이다. 이뿐 아니라, 로마서 3장 25절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의로움을 동시에 밝혀주고 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말씀이고,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다”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표현한 말씀이다.

바울 당대의 헬라세계에서 화목제물의 개념은 죄가 큰 인간들이 진노하는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쳐 신들의 노여움을 달램으로써 다가올 재앙과 형벌을 피하고자 한 노력을 뜻하였다. 제물에 대한 보편적 개념이 뇌물의 성격이었던 것이다. 인간들이 애써 마련한 화목제물로 과연 신들의 노여움을 달랠 수 있을까? 다신을 믿었던 그리스 로마시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유일신 하나님을 믿었던 유대인들까지도 그런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신의 노여움을 달랠 수 있을 것이란 생각과 신들이 인간이 준비한 제물을 먹거나 그 향기를 즐길 것이란 생각은 심지어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서조차 찾아볼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2천 년 전 사도 바울은 이 화목제물(?λαστ?ριον)의 개념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였다. 인간이 신(神)을 위해서 마련한 그 어떤 제물로도 인간의 속죄(贖罪)나 구원이 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신 하나님은 단 한번으로 궁극적으로 인류의 속죄와 구원을 완성시킬 화목제물이 필요하셨고, 또 그것을 친히 마련하셨다는 놀라운 이해를 갖게 되었다. 인간의 죄도 단 한번으로 처벌하고 구원도 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의 속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그런 어떤 화목제물이 필요하셨고, 또 그것을 친히 마련하셨다는 놀라운 지식을 계시로 알게 되었다. 그 제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요, 예수라는 인간의 몸을 입고 친히 제물이 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놀라운 희생이 바로 인간구원의 뿌리요 근간이란 것이다. 이것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는 말씀에 담긴 뜻이다.

하나님은 일상적으로 인간들로부터 배신과 모독을 당하시지만, 하나님은 인간들을 벌하시기보다는 오히려 그들과 화해할 길을 열어놓으셨다. 인간들이 마련하는 뇌물성격의 화목제물로는 하나님의 노여움이 달래질 수 없기 때문에 친히 인간들의 속죄를 위해서 화목제물을 마련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한 가지뿐이다. 우리가 여전히 우리가 마련한 화목제물에 의지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마련하신 화목제물에 의지할 것인지를 결정해야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다. 하나님이 친히 마련한 구원의 방식인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총을 값없이 받아드리고, 신뢰하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선물로써 받을지를 결심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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