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강19]희망을 이루는 연단(롬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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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19]희망을 이루는 연단(롬 5:1-11)
가나안입성을 위한 행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두 가지 약속을 받았다. 첫째는 히브리 민족의 번성이고, 둘째는 그들의 영토가 될 가나안이었다. 아브라함은 이들 약속의 증표로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침례는 ‘그리스도인’의 번성과 하늘 가나안 약속의 증표가 된다.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은 430년(혹은 645년) 지난 모세의 때에 성취되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아들들은 이집트에 머문 215년(혹은 430년) 동안 큰 민족을 이루었고, 제1대구원사건의 메시아, 모세의 지도아래 첫 번 유월절 날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는데 성공하였으며, 50일째 되는 오순절 날 시내산기슭에서 하나님과 선민언약을 맺고 그 내용으로 율법(Torah)을 받았다. 그때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생활이 광야사막에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히브리 민족의 40년 광야사막노정은 굶주림과 목마름과 질병과 토착민의 배척과 싸우는 험난한 가시밭길이요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홍해를 건넌지 40년 만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하는데 성공하였다. ‘영광의 탈출’이었고, ‘승리의 입성’이었다.
히브리 민족이 겪었던 출애굽사건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언약의 내용)하고, 침례(홍해도하) 받고, 교인(선민)이 되고, 죽어서(요단강 건너서) 천국(하늘 가나안)에 입성하기까지 펼치는 천로역정(天路歷程)의 예표(豫表)요, 모형(模型)이며, 그림자이다.
히브리 민족이 겪었던 출애굽사건은 예수님 생애 마지막 한 주간과도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예수님 생애 마지막 한 주간의 대미를 장식했던 주요 사건들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종려주일사건이고, 둘째는 고난주간사건이며, 셋째는 부활주일사건이다. 이 세 가지 사건들은 출애굽사건들에서 그 모형들을 갖고 있다. 출애굽사건이 가나안입성에서 성취되었다면, 주님께서 입성하신 예루살렘은 그 가나안의 중심이요 수도였다.
예루살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이 땅의 일시적인 예루살렘과 저 하늘에 영원한 예루살렘이 있다. 주님께서 종려주일에 입성하신 예루살렘은 히브리 민족이 홍해를 건넌 후에 들어간 광야교회(옛 언약공동체)와 그리스도인들이 침례 후에 입교한 교회(새 언약공동체)에 연관성을 갖는다.
주님의 종려주일사건은 갈릴리를 떠나와 예루살렘에 입성한 사건이다. 이를 일컬어 ‘승리의 입성’(Triumphal Entry)이라고 부른다. 이 지상 예루살렘의 입성은 히브리 민족이 홍해를 건너 광야교회에 입성한 것과 같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한 후에 침례를 받아 거듭난(중생) 기쁨과 의롭다함(칭의)의 기쁨을 누리는 영적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지상나라인 교회에 입성한 것과 같다. 이런 맥락에서 정식으로 입교인이 되는 순간은 세상으로부터의 영광의 탈출이요, 승리의 입성이다. 이 기쁨을 묘사한 것이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홍해해변에서 히브리 민족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가 목 놓아 외쳐 부른 승리의 노래, 모세의 노래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종려나무가지를 꺾어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를 연호한 찬송이다.
가나안입성을 바라보는 즐거움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 탈출에 성공하여 광야사막에 이른 것은 최종목적지인 가나안입성을 위한 것이었다. 가나안입성 전에 히브리 민족은 40년의 준비기간을 가졌는데, 하나님의 옛 언약백성으로서 연단을 받았던 기간이다. 이 연단은 굶주림과 목마름과 질병과 토착민의 배척과 싸우는 험난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 연단은 젖과 꿀이 흐르는 영광의 나라인 가나안입성을 위한 것이므로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기쁨으로 참아낼 수 있었다. 이 연단기간은 우리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겪었던 고난주간의 모형이요, 우리 성도들이 새 언약백성으로서 겪는 고난의 그림자였다. 우리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후에 부활하시어 영원한 하늘 가나안의 우편보좌에 앉으신 것과 같이 우리 성도들도 교회생활을 끝낸 후에는 영원한 하늘 가나안에 올라 거기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하늘 가나안입성을 위한 연단기간으로 설명한 것이 로마서 5장 1-11절이다.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는 히브리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홍해를 건너 구원의 해변에 도달한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교회라는 구원의 해변에 도달하였으니, 히브리 민족이 구원의 해변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과 화목하였으므로 화평을 누리자는 것이다. 홍해를 건넌 히브리 민족은 아직 가나안입성에 성공하지 못하고, 그것을 여전히 바라보는 입장이었지만, 구원의 기쁨을 미래에 누리지 않고, 홍해를 건넌 즉시 누렸듯이,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죄악세상에서 빼내어 방주로 비교되는 안전한 교회로 인도하셨으므로, 마치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에서 고통의 세월을 보내다가 탈출하여 아버지의 품에 안긴 후에는 즉시 아버지와 화평의 기쁨을 누렸듯이,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조차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고, 또 누려야 한다.
2절,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는 히브리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과감히 홍해에 뛰어들어 무사히 건넌 후에 광야교회에 들어간 것처럼, 또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과감히 물에 뛰어들어 침례를 받은 후에 교회에 입교한 것과 같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광야사막에 들어간 것으로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광야사막은 그들의 목적지가 아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었다. 그러므로 광야사막생활은 가나안입성을 위한 연단과정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사막에 이른 히브리 민족이 가나안을 바라고 즐거워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침례를 받고 교회에 입교한 성도들은 교회생활이 끝이 아니며, 하늘 가나안입성을 위한 연단과정이므로 성도들은 이 땅의 교회생활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 하늘 가나안을 바라고 즐거워해야한다.
가나안입성을 위한 연단
히브리 민족의 광야사막생활은 굶주림과 목마름과 질병과 토착민의 배척과 싸우는 험난한 가시밭길이요 고난의 행군이었다. 예수님의 마지막 한주간의 생애는 십자가 고난의 정점이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3-4절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다.”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 가나안이 우리 눈앞에 있기 때문에, 히브리 민족이 40년 광야사막생활의 환난을 견디고 가나안입성에 성공했던 것처럼,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의 환난을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난이 끝난 후에는 모두가 희망하는 하늘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우리의 희망을”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이듯이, 죽음의 강을 건너면 하늘 가나안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죽음조차도 희망에 이르는 마지막 단계로 보았다.
5절,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다”는 말씀은 우리의 희망이 인내와 연단만으로 이뤄지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광야사막에서 히브리 민족을 이끌었던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이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성령님의 임재의 예표였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었기 때문에 히브리 민족이 광야사막생활을 마침내 끝내고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의 보증과 인침으로써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여 하늘 가나안에 들이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의 희망이 결코 부끄럽게 되지 않을 것이다.
6-11절, 특히 11절,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한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우리 대신 죽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원수관계를 풀고 화목관계가 되었으므로 하늘 가나안입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비록 환난이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비록 험난하고 고달프며 여전히 죄와 허물 속에서 살지만, 기뻐하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큰 사랑과 성령님의 인도하심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힘입어, 기필코 우리는 하늘 가나안에 도달할 것이다. 성도의 기쁨의 근원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슬퍼하고 낙심하며 번민하고 괴로워하기보다는 하늘 가나안을 바라고 행복해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1장 6-8절도 성도들이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지만,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고 하였고, 환난으로 연단된 금 같은 믿음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다.”고 하였다. 또 우리가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믿지만,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고 하였다. 이 기쁨과 즐거움은 예수님의 보혈의 은총을 마음속 깊이 느끼지 않고는 가질 수 없는 은혜요, 하늘 가나안입성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고는 가질 수 없는 즐거움이며, 성령님의 보증과 인침과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는 누릴 수 없는 기쁨이다. 이 험난한 세상을 즐겁고 기쁘게 살 수 있는 힘은 이처럼 하늘 가나안입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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