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강20]원죄, 유전죄, 자연법칙(롬 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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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20]원죄, 유전죄, 자연법칙(롬 5:12-14)
기독교 구원의 정점(頂點)
바울은 5장 1-11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왜 이 땅에서는 여전히 환난을 겪어야하는지, 왜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해야하는지, 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기뻐해야 하는지, 왜 우리의 희망이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인지를 설명하였다.
구원은 하늘 가나안에 입성하는데서 완성된다. 그런데 성도들이 믿음으로 받은 구원은 세상에서 뽑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입성을 믿고 희망하는 교회공동체에 가입한 것을 말한다. 갈릴리 호수를 놓고 말하자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늘 그리했던 것처럼, 이편을 떠나 저편으로 가는 배를 탄 것과 같다. 저편 가나안에 데려다줄 배를 탔다고 해서 폭풍의 위협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저편 가나안에 데려다 줄 배는 교회공동체이다. 갈릴리 호수는 세상이다. 바울이 언급한 중생(重生)과 칭의(稱義)는 바로 이 구원의 배에 오른 것이고, 순례공동체에 합류한 것을 말한다.
가나안입성의 마지막 관문(關門)은 요단강이다. 요단강은 죽음의 상징이다. 육신이 죽어야 저편 하늘 가나안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가나안에 이르지 못했다는 뜻이다.
기독교가 부활을 구원의 정점에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어야 하늘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지만, 죽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고, 부활을 받아야 소용이 있기 때문이다. 신학에서는 하늘 가나안에 이르기 위한 부활을 영혼부활 혹은 영적구원, 주님 재림 시(時)에 새 하늘과 새 땅에 입성하기 위한 부활을 육체부활 혹은 육체구원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거듭남을 체험하고 의롭다함을 받는 구원을 영적구원 혹은 영혼부활이라고 부른다. 이 영적구원 혹은 영혼부활은 하늘 가나안입성과 장차올 세계(올람하바, Olam Ha-Ba)인 새 하늘과 새 땅의 입성을 보장하는 시민권일 뿐 아니라, 육체부활과 육체구원의 약정서와 같아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이 약정서에 기록된 보증금과 찍힌 인감이 되어 우리의 구원을 부끄럽지 않게 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부활이 예수님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성도들의 부활을 위한 첫 열매였기 때문이다. 멸망의 세계의 특징은 죄와 죽음이다. 그러나 하늘 가나안의 특징은 부활과 생명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죄와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부활과 생명의 세계로 나아갈 새롭고 살아있는 길을 논증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5장 12-21절에서 죽음과 생명의 근원문제를 다룬다. 죽음의 원인은 죄에 있고, 생명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인류 최초로 죄와 죽음을 세상에 끌어들인 아담과 그것들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부활과 생명을 세상에 끌어들인 예수님을 대조시켜 설명하였다.
여기서 생각해봐야할 문제는 죄와 죽음의 문제이다. 원죄와 유전죄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12절에서 바울이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원죄와 유전죄
아담의 원죄를 생각해 보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피조물이란 점이다. 인간이 죄와 허물을 완벽하게 피할 수 없는 문제와 인간이면 반드시 한번은 죽어야하는 문제의 해답이 인간이 피조물이란 데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오류와 실수가 없으시고, 죄를 범하지 않으시며, 영원하시기 때문에 죽지 않으신다. 죽지 않는 것은 완전하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고, 죽는 것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부정한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제든지 선악과는 먹게 되어 있다. 또 먹는 것이 정상이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고 모든 피조물의 운명이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도록 예정하셨기 때문에 운명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유한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운명이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 때문에 우리가 죽을 운명이 되었거나 죄인이 된 것은 아니다. 아담과 하와가 인류 최초의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 최초로 죄가 생겼고, 또 최초로 죽음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들이 죄를 범한 것처럼, 똑같이 그들의 후손들도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고, 그들이 죽은 것처럼 그들의 후손들도 죽게 되는 것이다. 아담의 죄가 후손들에게 유전되어서 죄인이 되거나 죽는 것이 아니라, 아담처럼 모든 인간들이 죄를 범하기 때문에 죄인이 되고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죄만 아니었다면, 아담과 하와가 영원히 살 수 있었을까? 그들이 죄를 짓기 이전에 살았던 에덴동산이었다면 모르겠으나 현 우주의 상태나 법칙상으로는 불가능하다. <주: 에덴동산이었더라도 피조물은 영원히 살지 못한다.> 자연법칙 또는 열역학2법칙(엔트로피)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소멸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피조세계에서 죽음은 자연스런 현상이고 법칙이다. 이런 죽음현상은 자연이 불완전하기 때문인데, 불완전한 것 자체가 죄가 된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류와 실수가 따르고, 오류와 실수는 죄를 만든다.
아담이 최초의 죄인이었다는 점에서 그가 지은 죄를 원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죄가 유전된다고 결정하려면 쾌 긴 해설이 필요하다. 아담에서 보았듯이, 유전죄가 없이도 인간은 죄를 짓게 되고 그 삯으로 죽는다. 죄지을 성질(罪性)은 아담의 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육체의 본능에 있다. 육체의 본능이 죄의 뿌리요 씨앗이기 때문이다. 이 본능이 아담의 범죄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담과 하와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보았을 때, 그 열매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까지”했다고 했는데, 그것은 본능이 작동한 때문이다. 본능은 피조물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면서 선과 악 모두를 택할 수 있는 양면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짐승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일 수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죄와 허물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죄인이 되는 것은 필연적이고 시간적인 문제이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운명일 수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본능을 초월하는 신령한 몸을 입는 부활이다. 부활한 자들의 세계에는 죄성(罪性)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세상과는 확연히 다르다.
유전죄와 자연법칙
바울은 로마서 5장 12-21절에서 아담의 의(義)와 그리스도의 의(義)를 대조시키고 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죄가 세상에 소개되었고, 죽음이 지배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해서 죄 사함의 은총이 세상에 소개되었고, 생명이 지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담으로 인해서 상실된 것은 무엇이든지간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더욱 넘치게 보상되고 회복될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본문에서 ‘더욱 넘치게’(much more)란 말을 세 번 사용하였다.
로마서 5장 12-14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범죄가 시작되었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시작되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정죄할만한 법이 없었다. 여기서 법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시내산에서 언약의 내용으로 주신 토라(Torah) 즉 성문율법을 말한다. 이 성문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있었고, 죄의 삯으로 죽음이 있었다는 말은 그 때에도 인간행위를 심판할 어떤 법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만일 법이 없었다면, 죄도 없었을 것이고, 죽음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망은 죄의 삯이므로 사망은 성문율법이 없던 때의 사람들에게도 죄의 실재를 입증하고, 어떤 법의 실재를 입증한다. 바울은 이미 로마서 1장 18절부터 3장 20절에서 하나님의 자연(일반)계시를 이해할 만한 이성의 법과 양심의 법이 있음을 언급하였다. 성문율법이 아니더라도 이성의 법과 양심의 법으로도 인간의 죄악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고 하였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선언하였다. 결국 인간은 율법의 정죄여부를 떠나서, 또 아담이 불순종하여 죄를 지은 것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누구도 죄의 삯인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아담이후 죽음의 법칙이 자연의 법칙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죄를 짓지 아니한 갓난아기는 왜 죽는가? 자연법칙 때문인가? 아담의 죄 때문인가? 자연법칙은 아담의 죄 때문에 생겼는가? 태초부터 있었는가? 만일 죽음의 법칙(엔트로피)인 자연법칙이 아담의 죄 때문에 시작되었다면, 피조물의 죽음이 아담의 죄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아담의 죄를 유전죄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담의 죄의 결과가 자연법칙이라면, 피조물의 죽음은 범죄여부와 상관없이 죽음을 맞게 된다. 죄를 모르는 갓난아기가 병으로 죽었다면, 그 죽음은 자연법칙 때문이고, 아담의 죄 때문이란 설명이 가능해진다. 아담의 죗값이 자연법칙에 남아 죄가 없는 갓난아기까지 죽게 하였으므로 아담의 죄가 유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법칙이 주는 영향은 육체의 죽음에 국한되므로, 유전죄가 갓난아기의 영혼까지 해치지는 못한다. 영혼의 죽음은 자범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갓난아기가 아담의 죄로 인하여 불행한 육체죽음을 맞는다할지라도, 자범죄가 없는 갓난아기의 영혼의 죽음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대신(對神), 대인(對人), 대물(對物)관계가 전혀 없는 갓난아기에게 하나님과의 원수 됨, 인간과의 원수 됨, 자연과의 원수 됨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계가 없으면 죄도 없다. 갓난아기는 자의식이 없으므로 자기 죄를 회개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회개할 죄가 없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선언은 육체의 죽음일 뿐, 영혼의 죽음이 포함되지 않는다. <주: 과연 자연법칙이 아담의 죄 때문인가? 신학적 설명일 뿐이지, 과학적 설명은 되지 못한다. 만들어진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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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만들어진 것은 에덴동산이든 그 안에 있는 것이든 유한한 것입니다. 또 피조물은 하나님처럼 완전하지 못하니 언젠가는 선악과를 먹게 될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영원히' 살 수 있었을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히'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처럼 영원한 존재이거나 신적 존재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의지 또는 그분과의 언약(계명) 속에서 누리는 영원을 말한다. 아담과 이브는 피조물이므로 유한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과의 언약(계명)에 따라 선악과를 먹지 않는한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피조물은 영원히 사는 신적 존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을 희망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을 영원히 유지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영원히 사는 것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피조물이 영원하거나 완전한 존재가 아님을 강조한 것이며, 피조물의 성격을 파악함으로써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고자 한 것 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결정하심이 없이도, 완전하지 않으므로, 잘못된 선택을 궁극적으로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