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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21]보혈(寶血)의 소급적용(롬 5: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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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822 2011.07.1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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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21]보혈(寶血)의 소급적용(롬 5:15-21)

유전죄와 육체의 죽음

우리에게 유전죄가 있다면, 그것은 육체의 죽음에 영향을 미친다. 영혼의 죽음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죄지을 성질은 아담에게도 있었듯이, 아담의 원죄나 유전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대다수의 인간은 아담의 죄와는 상관없이 자범죄로 인해서 영혼과 육체가 모두 죽는다. 다만 죄가 전혀 없더라도 육체는 반드시 죽는다는 점에서 육체의 죽음의 원인을 자연법칙에서 찾을 수 있고, 그 자연법칙이 아담의 원죄에서 기인하였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점이다. 죗값으로 죽음이 시작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 때문이다. 좀 더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모든 피조물은 죄와 상관없이도 필연코 죽는다. 피조물은 만들어진 것이고, 만들어진 것은 불완전하며, 불완전한 것은 죄가 될 뿐만 아니라, 시작이 있었던 만큼 반드시 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성경은 아담이 죽게 된 원인이 그의 죄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고, 그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암시를 주기 때문에 부득이 우리는 원죄와 유전죄를 논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은 아담의 유전죄를 인정한 신학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원죄나 유전죄의 개념을 법적인 유죄개념에서 이해하지 않고, 본능의 죄지을 성질에서 이해하였다. 그러나 죄지을 성질은, 타락이전에 이미 아담과 하와에게 있었던 것처럼, 모든 육체가 가진 본질이다. 그것은 죄가 아니라, 죄의 씨앗이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은 이 씨앗을 즉 앞으로 죄를 짓게 될 성질을 죄 그 자체로 보았고, 따라서 모든 갓난아기들은 죄를 갖고 태어난다고 보았다. 갓난아기의 육체의 죽음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까지도 이 죄성(罪性)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갓난아기의 영혼과 육체 모두를 죽일 수 있는 죄를 갖고 태어난다고 보았던 것이다. 아직 결과가 나타나기 전인 갓난아기의 상태에서 보지 않고, 성장해서 죄를 짓게 될 미래의 결과에서 이해했던 것이다. 칼뱅은 갓난아기들이 유죄한 이유가 그들이 갖고 태어난 죄의 씨앗을 하나님이 증오하시고 가증하게 여기시며 죄로 간주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기독교강요>Ⅱ,1-8). 그러나 이런 주장이 옳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다고 말씀하셨고, 흡족해 하셨기 때문이다. 아담은 죄를 짓기 전부터 육체의 본능을 소유했으므로 죄의 씨앗을 갖고 만들어진 셈인데, 죄를 짓기도 전인 죄성을 하나님이 증오하시고 가증하게 여기시며 죄로 간주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죄를 짓지 않아서 자범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갓난아기들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갓난아기들이 갖고 태어나는 저주, 즉 원죄의 결과는 육체의 사망과 고통이지, 영적 죽음은 아직 아니다. 물론 모든 피조물은 필연적으로 또는 결과적으로 죄인이 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죄지을 성질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서 아직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아담도 흙으로 빚어진 순간 죄지을 성질을 갖고 만들어졌지만, 죄를 짓기까지는 죄인으로 취급되거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인간의 본질과 본능은 죄의 씨앗이 될 수 있지만,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씨앗 자체가 아직 죄로 간주될 수는 없다.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오류와 실수를 완벽하게 피할 수 없지만, 자의식이 없는 갓난아기에게는 죄가 될 만한 오류와 실수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구원과 육체의 죽음

로마서 5장 15-21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아담의 죄와 죄의 결과가 어떤 형태로든 유전되었다면, 그리스도의 순종과 순종의 결과는 유전될 수 없는가? 아담보다 월등하게 위대하신 분이 그리스도가 아닌가?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결과는 아담의 불순종의 결과와 비교될 수 없다. 죄와 은사(free gift)는 비교될 수 없다. 사망과 생명은 비교될 수 없다. 율법과 은혜는 비교될 수 없다. 인간 아담의 범죄로 유전죄가 적용되고 모든 사람이 죽는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더욱 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선물이 넘친다. 그러므로 은사는 범죄에 비교될 수 없다. 은사는 아담의 범죄의 결과보다 더욱 크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의 선물은 아담의 죄의 결과보다 더욱 넘치고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한다. 그러므로 아담의 원죄보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월등하게 크며, 그 미치는 범위도 넓다는 뜻으로 보아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는 원죄를 말살하여 그 범위가 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꾸어 말하면, 아담의 죄가 모든 인간에게 전가되어 유전죄가 인정된다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순종의 행위 또한 모든 인간에게 전가되어 유전죄를 말살할 뿐 아니라, 그 은혜는 아담의 범죄의 결과보다도 월등하게 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담 안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상실한 것을 제2의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또한 알게 모르게 찾았고 또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육체의 죽음이 계속되는가? 죄가 없는 갓난아기가 죽는 것과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었어도, 중생과 칭의로 구원을 받았고, 가나안을 약속받았다할지라도, 성령님의 보증과 인침으로 우리의 구원이 확고할지라도, 한번 약속하신 하나님은 오류와 실수가 없으므로 한번 약속받은 구원이 끝까지 지켜질지라도, 여전히 성도는 이 땅에서 죽는다. 예수님 믿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죽어야 한다. 로마서 5장 12-21절은 우리가 아담 안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 찾았고, 그 은혜가 월등하다고 말씀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여전히 죄의 삯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고 있는가? 해답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이 실제로 이뤄지는 시점을 주님의 재림의 때로 정해놓으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한다. 로마서 5장 12-21절의 말씀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26절에서 죽음을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라고 적고 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죽음과 죄가 없는 갓난아기들의 육체의 죽음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죽음에서 일어날 성도들의 부활의 때에 일시에 해결되도록 연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구원은 종말론적으로 이미 성취되었으며,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성령님께서 이것을 보증하시고 인감을 찍으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은 인간의 죄 문제로 인한 단절과 소외의 문제에서 영적인 부활을 가져왔고, 그리스도의 무덤에서의 부활은 성도들의 소망인 육체의 부활을 가져올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소급적용

바울은 율법이라는 특수계시를 받았고, 또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없는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었으니, 믿음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유대인들에게는 구원에 이를만한 믿음이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역시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입었다고 강조하면서 믿음의 예증으로 삼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 흘림이 없이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심을 입을 수 있는가? 바울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부활의 믿음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의 부활의 믿음을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연관 지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반드시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은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구원받은 것이 확실한 것처럼, 다른 많은 구약시대의 성도들도 구원을 받았음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 흘림이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무관하게 이루어진 것인가? 만일 대답이 “예”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를 않았을 뿐이지,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을 지극히 사랑하였던 유대인들에게 구원에 이를만한 믿음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상치된다. 그러나 만일 대답이 “아니요”라고 한다면, 그들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 흘림과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다면, 그의 믿음과 예수님은 어떤 관계가 있어야하지 않는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소급적용이 가능하다면, 예수님 이전의 사람들의 믿음이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판단은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소급적용이 가능하다면, 예수님 이전의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죽었거나 또 죽어가는 예수님 이후의 사람들이 반드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하는 근거와 선교의 필요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구약성경에서 예수님과 구원의 모형과 그림자를 찾고 예표를 말하는 것도 이 범주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진노와 “우리의 범죄 함을” 인함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사탄의 사망권세를 깨뜨리기 위함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전체적인 사역은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함”이다(롬 4:25). 따라서 인간의 죄 문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해결되었고, 인간의 죽음문제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해결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인간 구원의 시작이며, 약속이며, 보증이다. 이것을 상징하는 예식이 침례(세례)이다.

예수님의 보혈의 소급적용을 살펴본 이유는 로마서 5장 12-21절의 말씀이 아담의 원죄 또는 유전죄를 말하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가 원죄의 결과보다 훨씬 더 커서 아담의 죄까지 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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