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강22]성화의 원리1(6:1-14)
본문
[롬강22]성화의 원리1(6:1-14)
로마서 1-8장의 요약
바울은 로마서 1장부터 5장에서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몇 가지 단어들을 활용하였다. 첫째, ‘의롭다 하심’(4:24; 5:1, justification)이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이다. 이 용어는 법정용어이다. 법정에서의 무죄 선언에 비유될 수 있다. 인간의 죄성(罪性)은 그대로 둔 채로 하나님이 의인으로 간주해 주시고 불러주시는 것을 말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해서 이신칭의(以信稱義) 혹은 이신득의(以信得義)라고 부른다. 둘째, ‘구속(救贖, 3:24, redemption)이 있다. 이 용어는 노예시장의 통용어이다. 근본개념은 몸값(贖錢, ransom)을 내고 속박에서 풀려나는 것을 뜻한다.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자유인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죽음을 뜻하는 몸값(贖錢)은 피조물에 불과한 사단에게 지불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를 푸는데 지불되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죄의 3P 즉 죄의 형벌(punishment), 죄의 권세(power), 죄의 실재(presence)로부터 해방된 그리스도인은 자원함으로 순종의 종(16절), 의의 종(18절), 하나님의 종(22절)이 된다고 말했다. 셋째, ‘화목’(5:10-11, reconciliation)이 있다. 이 용어는 중재(仲裁)용어이다. 분단의 벽을 헐고 적대감정을 풀어 화평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화목은 하나님의 적대감과 진노하심이 제거되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께서 이를 위해서 화목제물(propitiation)이 되셨다. 넷째, ‘그 피를 인하여’(3:25; 5:9, sacrifice)가 있다. 이 용어는 피해보상의 개념이며, 희생제사 용어이다. 구약에서는 피 흘림만이 효력이 있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한 속죄제물(atonement)이 되셨다. 우리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었고, 그는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하나님께 끼친 피해를 보상하셨다.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이 순종의 행위가 그를 믿는 자의 행위로 간주되고 전가(轉嫁)된다.
바울은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에서 구원의 근원, 구원의 수단, 구원의 시간, 구원의 목적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로마서 1장 16-17절에서 복음의 능력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주제를 선포하였고, 1장 18절부터 3장 20절에서 모든 인간은 그들의 죄악성 때문에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단정하였으며, 3장 21절부터 5장 21절에서 구원의 근원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수단으로써 사람의 믿음을 강조하면서 값없이 차별 없이 은혜로 의롭다함을 얻는 교리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6장 1절부터 8장에서는 구원의 시간으로써 침례를 통한 중생의 출발과 구원의 목적으로써 거듭난 성도들의 성결과 거룩한 삶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로마서 3장 21절부터 5장까지에서 칭의(稱義)를 주제로 삼았고, 6장부터 8장까지에서 성화(聖化)를 주제로 삼았다.
로마서 6장부터 8장까지에서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라는 배를 타고 거친바다를 항해중이고, 홍해를 건넌 후에 가나안을 향하는 광야사막의 가시밭길을 걷는 순례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선물로 주신 성령님의 내주동거와 인도하심 때문에 성도는 ‘정복자들 이상의 정복자’(more than conquerors)가 될 것이요,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것을 강조하였다.
칭의(稱義)와 성화(聖化)의 관계
바울은 로마서 6장 1절부터 7장 14절까지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할 순종의 의무 또는 원칙에 대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정당성과 필연성을 설명하였다. 7장 15-25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은 것은 영적(영혼)구원뿐이고, 육체구원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뤄질 것이며, 구원받지 못한 육체와 본능을 그대로 지닌 채 여생을 살아가야하므로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피력하였다. 바울 자신도 순종의 어려움 때문에 깊이 탄식하였다.
인간의 죄성(罪性)은 육체의 본능에 있으며, 성도의 육체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새롭고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이 미래구원에 성도들의 참 소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 승리와 그 능력을 피력하였다. 성도는 여전히 죄지을 성질을 지닌 육체를 가지고 살지만 중생(regeneration)과 함께 은혜의 선물로 주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more than conquerors)고 강조하였다. 순종의 어려움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극복될 수 있고, 미래에 누리게 될 복들을 이 땅에서 성령님의 도움으로 앞당겨와 미리 맛보고 체험하며 누린다(anticipation)고 설명하였다.
성도들이 거듭나고 의롭다함을 받았는데도 육체의 본능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죄성(罪性)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지만, 성령님의 내주동거와 인도하심으로 성도들은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점진적인 성화(聖化)를 이뤄나간다.
이 성화(sanctification)가 칭의(justification)로 일컬어지는 의롭다함과 어떻게 다른가? 칭의는 ⑴법적 문제이고, ⑵위법문제를 해결하며, ⑶죄를 제거하는데, ⑷재판장이신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은 신자의 죄를 ⑸외적으로 객관적으로 ⑹의인(義人)으로 선포하시고 간주하신다. 그렇게 되면, ⑺일시적이고 순간적이며 영구적으로 죄 문제가 해결되는데, 이를 초기성화라고 부른다. ⑻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인데, ⑼불신자를 성도가 되게 하는 것이므로 불신자에게 필요수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성화는 ⑴인간의 본질문제, 즉 ⑵병든 상태를 치료해 가는 과정이며, ⑶썩은 곳을 도려내고 씻는 것인데, ⑷의사이신 성령님이 하신다. 이 과정의 초기성화를 중생(重生) 또는 거듭남으로 부르며, ⑸내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⑹의인으로 만들어진다. ⑺이후 점진적으로 거룩하여지고 성화되어지는데, 이를 점진성화라고 부른다. ⑻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로써 ⑼예수님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교인이 된 성도들의 삶에 필수적인 과정이다.
꽃이 피는 목적은 열매를 맺어 종족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꽃은 열매의 시작이다. 칭의와 성화도 마찬가지이다. 칭의는 성화의 시작이요, 성화는 칭의의 목적이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1:17; 3:28)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기 위한 것(6:16)이라고 하였다. 믿음만 있고 행위가 없으면, 값싼 은혜요. 행위만 있고 믿음이 없으면, 도덕(-1)이요. 믿음도 있고 행위도 있으면, 복음(+1)이 된다. 믿기만 하고 행함이 없으면, 옛사람의 본능이 조금도 성화되지 못한 것이다.
성화의 원리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바울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울이 율법의 행위를 무시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만일 율법의 행위가 그처럼 보좔 것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만일 은혜뿐이라면, 왜 은혜가 역사할 기회를 더 주기 위해서 흉악하게 육욕을 따라서 죄를 짓지 않겠는가?”라고 힐난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힐난을 냉혹하게 물리쳤다. 이신칭의 교리는 결코 죄를 정당화하거나 율법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들이 계속하여 죄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 점에서 알 수 있다(6:1-14). 이뿐 아니라, 바울은 “누가 너희를 주관하는 자냐?”고 묻고(6:15-23), 마땅히 성도들은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7:1-6). 또 바울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강변하였다(7:7-14).
은혜의 본질이 죄를 짓도록 권장하는 것이 아닐까(6:1)라고 생각하는 것은 은혜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다. 죄를 사함 받고, 새 본성과 새 삶을 얻은 자가 계속해서 죄에 머문다는 것은 도덕적 모순이다. 침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한 것이다. 우리는 침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우리의 옛사람을 죽이고, 그의 부활하심과 연합하여 새사람으로 부활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죄에 머무는 것은 새사람의 삶에 모순된다(6:2-5).
우리가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죄 많은 옛사람을 장사하고 새사람으로 부활한다면, 침례는 구원의 시간이 된다. 침례 가운데서 성령님에 의해서 중생의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기 때문이다(고전 6:11; 딛 3:5-7. 참고:막 16:16; 요 3:5; 행 2:38; 22:16; 갈 3:27; 벧전 3:21; 엡 4:5). 또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다”(6:6, 갈 5:24-26)는 말씀은 구원의 목적을 말한다(엡 2:10). 바울은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도록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6:12), 몸의 지체를 죄악의 도구로 쓰지 말며,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바치기를(6:13) 권하였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를 죄가 주관치 못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죄란 죄의 영향이 아니고, 죄의 형벌과 권세와 실재이다. 성도들은 이미 그와 같은 것들로부터 해방되었으나, 그 영향으로부터는 면제되지 않는다(6:14).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성도들은 죄로 인해 벌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단의 권세가 주관하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무죄를 선언하셨기 때문에 죄를 다 사함 받았으므로 죄가 없다고 간주된다. 그렇다고 죄의 영향까지 면제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직 부활의 몸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옛사람의 본능아래 있기 때문이다. 바울도 로마서 6장 6절, 8절, 11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침례의 물속에서 죽고 장사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여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비록 우리가 아직 육체의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였지만, 부활할 줄로 믿고, 부활한 자로 간주하여, 부활에 참여한 자같이 죄지을 성질을 아직 버리지 못한 우리의 육체를 하나님께 의(義)의 병기로 바칠 것을 권하였다.
- 이전글 [롬강23]성화의 원리2(6:15-7:25) 11.07.21
- 다음글 [롬강21]보혈(寶血)의 소급적용(롬 5:15-21) 11.07.1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