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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32]교회의 기능과 역할(1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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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4,642 2011.08.0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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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32]교회의 기능과 역할(12:3-21)

교회의 지체들

로마서 12장 3-13절은 성도가 교우들에게 취할 태도를 권면한 말씀이다. 바울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권하였다. 여기서 “믿음의 분량”이란 각자가 받은 은사(재능)를 말한다. 여기서 은사란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 8-10절에서 언급한 아홉 가지 성령의 은사들이 아니라, 5절과 14절에서 언급한 교회의 직임과 지체들에 관한 것이다.

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의 내용은 모두 교회의 기능과 역할에 관한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들이 있듯이, 교회는 하나의 공동체이지만 많은 구성원들로 이뤄진다. 몸의 지체들의 기능과 역할이 각기 다르듯이, 교회구성원들의 기능과 역할도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이점을 바울이 로마서 12장 3-13절에서 재차 강조한 것이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3절)는 것은 몸의 지체들의 기능과 역할이 각기 다른데, 각자의 기능과 역할이상의 생각을 품는다면 몸이 어떻게 제대로 기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바울은 이미 고린도전서 12장 14-31절에서 매우 적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러므로 성도들은 각자가 받은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교회를 섬겨야 한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되, 자기 위치와 본분을 지켜야 한다.

교회의 직임과 기능

바울은 로마서 12장 6-8절에서 교회의 직임과 기능에 관해서 설명하였다. 첫째가 예언하는 자로서 선지자(엡 4:11)이다. 선지자는 장래 일을 말함은 물론이고, 교화, 권면, 위로, 교훈, 말씀선포 등의 일을 한다(고전 14:3, 31). 이 일을 믿음의 분량대로 해야 한다. 둘째는 섬기는 자로서 집사(부제)이다. 노예로서가 아닌 자원자로서 섬기는 봉사자이다(빌 1:1, 딤전 3:8-13). 셋째는 교사이다(엡 4:11, 갈 6:6). 장로(사제)도 가르치는 일을 한다. 가르치는 장로는 오늘날의 목사(사제)와 동일한 개념이다(딤전 3:2, 딤전 5:17). 넷째는 권사와 구제자이다. 보혜사 성령님이 하시는 변호사의 일처럼, 도움을 청한 자들에게 권면하고, 격려하며, 위로하고, 위안을 주는 일을 한다. 이런 일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 다섯째는 치리자이다. 교회의 치리자는 장로(사제)들이다. 이 일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행 20:28)고 당부하였고, 디모데에게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다“(딤전 5:17)고 당부하였다. 이들 구절에서 보듯이, 양 무리를 치고 감독하는 목회와 치리는 장로(목사)의 일인 것을 알 수 있다. 여섯째는 긍휼을 베푸는 자이다. 이 일을 즐거움으로 해야 한다.

이뿐 아니라, 건강한 교회공동체는 (1)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며, (2)형제우애와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한다. (3)열심히 주를 섬기며, (4)환난을 견뎌낸다. (5)기도에 항상 힘쓰며, (6)공궤와 손 대접에 힘쓴다(12:9-13). 이런 점에서 교회의 직임은 계급이 아니라, 봉사직이다. 교회의 직임은 명예직도 아니고, 권위직도 아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세워진 구별된 직책이다. 신명기 10장 8절은 “그 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이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고, 그 일은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고 하였다.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의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특권이며 영광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인간은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성도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또는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을 기뻐했으며, 그분을 섬기게 된 것을 크게 즐거워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종 혹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어떤 다른 사람의 종이 된다면, 이는 매우 수치스런 일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특권이며 영광이다.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고전 4:2)고 했다. 또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다. 물론 여기서 충성이란 말은 신실 하라, 하나님과의 약속을 굳게 지키라는 뜻이다.

교회의 역할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교회의 구성원들이 취할 두 가지 태도를 격려하였다. 3-13절에서는 교회안의 구성원들에게 취할 태도를, 14-21절에서는 교회바깥 사람들에게 취할 태도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2)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라. (3)자신을 낮추고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4)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한 일을 도모하라. (5)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 하라. (6)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 (7)원수를 사랑하라. (8)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사랑은 정의와 함께 병행될 때 완성도가 높아진다. 기독교는 정의와 사랑이 함께 충족되는 종교이다. 성도는 사적 보복이나 증오를 버리고 가해자에 대해 진정한 마음으로 용서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맹목적 용서와 사랑은 금물이다. 하나님의 정의의 속성 때문에 인간의 죄 값이 지불되어야 했듯이, 가해자는 정당한 법적 조처를 받아 처벌되어야 한다. 바울이 금한 것은 사적보복이나 증오심이지, 공적처벌과 징계를 금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적 처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통치기구를 허락하셨다. 사랑은 위대하지만, 정의 또한 바로 세워져야 한다. 교회는 사랑의 도구로, 정부는 정의의 도구로 그 존재목적을 갖는다.

로마제국 당시 기독교는 유대인들뿐 아니라 헬라인들로부터도 이단시 취급당했고, 탄압을 받았던 아주 작은 공동체에 불과했다. 그런 겨자씨와 같은 공동체가 10여 차례의 큰 박해를 당하고도 300여년 만에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대제국 로마를 기독교왕국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그 이유가 의외로 단순하다. 1965년 영국인 에릭 도즈(Eric R. Dodds) 교수는 그의 <불안시대 속에서의 이교도와 기독교도>에서 로마제국 안에서 기독교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을 네 가지로 꼽았다. 첫째,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배타적 신앙이 불안시대를 살던 당대의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되었다는 점; 둘째, 그리스도의 교회가 제시하는 구원에는 남녀노소빈부귀천의 어떠한 차별도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 셋째, 사람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는데 성공했다는 점; 넷째, 일체감이 강한 교회공동체에 가입하게 되면 의식주는 물론 여러 면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삶이 교회의 위상을 높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티븐 코비의 <원칙중심의 리더십>를 보면, 마하트마 간디가 “희생이 없는 종교”를 큰 죄로 지적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코비는 “적극적인 교회 활동은 희생 없이도 가능하지만, 교회의 가르침인 복음을 따르는 것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하였다. 또 “남을 돕기 위해서는 자만심과 편견을 버리고 봉사에 따르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교회가 위계질서를 갖춘 또 하나의 제도로 보이는 한, 그 구성원들이 진정한 봉사정신이나 신앙심을 갖기 힘들다”고 지적하였다. 이런 경우는 “하나님 중심도 원칙 중심도 아니다”고 꼬집었다.

교회의 기능과 역할은 사랑과 봉사와 관용이다. 교회의 모든 직임은 봉사의 직책이다. 성도들은 직임을 계급으로 보지 말고, 각자가 받은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교회를 섬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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