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

손잡아주기의 기적(요 21:1-25)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11,867 2009.04.25 09:19

본문

손잡아주기의 기적(요 21:1-25)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했던 제자들이 새 힘을 얻고 180도 달라진 모습의 사람들이 된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좌절과 절망에 빠져 주저앉았던 제자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조차 의심했던 제자들을 여러 차례 찾아다니시며, 그들의 손을 붙잡아 주시고, 그들이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우시고, 사명을 부여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손을 붙잡아준 순간이 제자들에게 기적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예수님이 그들의 손을 붙잡아 주시지 않았으면, 삼년간의 교육도 허탕이 되고, 그들은 예전의 삶에로 되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을 끝까지 도우셨기 때문에 그들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 새 생명을 얻게 하였다.
부활이후에 예수님은 베드로, 열두 제자, 오백여 성도에게 보이셨고, 야고보와 바울에게도 보이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셨을 때, 바울의 생애에서 보듯이, 그들의 삶에서 확실한 변화가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일생을 바쳐 헌신할 사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바뀔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유는 그에게 목숨을 걸만한 목표가 생겼을 때이다. 이 점에 대해서 마태는 예수님께서 부활 후 그를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다고 적고 있다. 마가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셨다고 적고 있다. 누가는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사람과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증인의 사명을 주셨다는 점을 밝혔다. 특히 누가는 위로부터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과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이라며 증인의 사명을 주신 후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셨다고 적고 있다.
부활이후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 성서가 증언하는 내용의 특징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두려워하며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정녕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몹시 당황해 하며 어찌해야할지를 몰랐다. 그들은 심한 충격을 받았고, 절망에 지쳤으며, 패배감과 자학에 빠졌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지난 삼년을 물거품으로 돌린 채 그들의 옛 직업에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둘째는 예수님이 그런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부활 후 예수님은 수차례에 걸쳐 그들을 찾아 나섰다. 예수님은 그들이 낙심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아셨고, 그들을 찾아 갈릴리로 가셨다. 그리고 그들을 찾아 주저앉은 그들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 세우셨다. 그리고 새 출발할 수 있도록 사명을 부여하셨다. 성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9).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요한, 야고보, 다른 두 제자, 도합 7명의 제자들이 고기를 잡으려고 배에 올랐지만, 고깃배를 탄지가 삼년이 넘어서였을까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 보았지만 허탕만 쳤다. 제자들의 가슴은 텅 빈 배만큼이나 허전하고, 깊은 밤처럼 캄캄하였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은 법, 태양이 동쪽 산 위로 붉은 빛을 뿌리기 시작할 무렵에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오셨다. 해변에 모닥불을 피어놓고 제자들이 먹을 빵과 생선을 준비해 놓고 계셨다. 가장 절망하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그 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셨고, 그들의 손을 붙잡아주셨다. 지난날의 잘못을 꾸짖지도 책망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깊은 상처를 들춰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상한 마음을 감싸고 위로하는 말씀을 주셨다. 그들이 지난날의 배신과 비겁함을 떨쳐버리고 용기백배한 역군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셨다.
조반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앞장서야할 베드로에게 조용히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이 물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베드로는 ‘반석’이란 뜻이다. 이 이름을 부르기에는 베드로가 너무 여리고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적인 베드로의 본래 모습에 알맞게 “요한의 아들 시몬”이란 호칭을 쓰셨다. 부와 명예와 권세로 치장한 가식과 허식뿐인 그런 이름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나타내는 순수한 이름이었다. 베드로는 쓰리고 아픈 경험들을 겪었고, 이미 상하고 깨진 심령이었다. 더 이상 감출 것도 속일 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였다.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반석이라 하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 부르셨다. 시편 51편 17절에서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구하신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런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새롭게 소명을 부여하셨다.
예수님은 세 번을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처음 두 번의 물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에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의 사랑 곧 희생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의 뜻으로 물으셨다. “네가 나를 조건 없이 희생적으로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했던 사람이다. 도저히 예수님의 물음에 합당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두 번 다 필레오의 사랑 곧 친구로써의 사랑으로 고백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헌신적으로 조건 없이 사랑하느냐”고 물었는데, 베드로는 “예, 당신을 정말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베드로는 한때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노라고 큰소리쳤던 사람이다.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노라고 장담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감히 어떻게 배신자였던 자기가 “예, 내가 주님을 다른 누구보다 더 사랑합니다.”고 대답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베드로의 심정을 충분히 아신 예수님은 세 번째 물음에서는 그러면 “네가 나를 좋아하느냐?”고 물으셨다. 그 때 베드로는 슬퍼하고 근심하면서 “예수님, 모든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말입니다.”고 대답하였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첫 번 대답 때에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하셨고, 두 번째 대답 때에 “내 양을 치라.” 그리고 세 번째 대답 때에 “내 양을 먹이라.”고 소명을 주셨다.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찢기고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셨다. 그 순간이 바로 제자들에게 기적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부친을 잃고, 할머니와 어머니, 두 누님과 동생 셋을 거느린 한 소년 가장이 씩씩하게 자라서 부산에 대교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하였고, 이어서 경남정보대학, 동서대학교, 부산디지털대학을 차례로 설립하였으며, 제11, 12대 국회의원과 국회 부의장직을 지냈다. 그가 바로 장성만 목사이다. 그가 이렇게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할머니의 기도 때문이었다. 가장을 잃고 한 가정을 책임지게 된 어린 성만이 “이제 어떻게 살아가나? 무얼 먹고 살아가나? 누굴 믿고 살아가나?”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근심에 쌓여 있을 때, 그를 붙잡아준 것은 할머니의 기도였다. 어느 날 밤, 소년 성만이는 할머니의 애끊는 기도소리를 들었다. “하나님, 우리 성만이가 절망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저 어린 것이 얼마나 상심이 크겠습니까? 성만이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집 가장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성만이의 아버지가 돼주세요.” 성만이는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때 할머니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 순간 참아왔던 슬픔의 둑이 붕괴되고 통곡의 바다를 이뤘다. 할머니의 품에서 서러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열다섯 살 소년은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그의 눈물을 닦아주며 한숨처럼 기도했다. "하나님, 성만이에게 용기를 주세요. 우리 성만이에게…." 그 밤에 그들은 찬송을 불렀다. “성령이여 강림하사/나를 감화하시고/애통하며 회개한 맘/충만하게 하소서/예수여 비오니/나의 기도 들으사/애통하며 회개한 맘/충만하게 하소서.”(190장)
둘째, 주변 인물들이 그의 손을 잡아준 때문이었다. 소년 성만이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공부를 하던 중에 6·25가 터졌고, 국군에 입대하여 복무를 마쳤다. 그 무렵에 신학생 장성만은 부산 대교동 미국문화원 강당에서 강연회를 열고 있던 동석기 목사를 만났다. 동석기 목사는 1904년 23세 때 미국 하와이에 농부로 이민 갔다가 본토로 건너가 신학공부를 마치고, 감리교회 목사로서 1913년에 귀국한 분이셨다. 귀국 후 14년간 목회하는 동안 구미 소식통의 역할 등의 일로 독립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복역한 바가 있고, 3.1운동이 일기 직전에 민족대표로 서명하였지만, 이후 33인에는 들지 못한 분이다. 동석기 목사는 이후 미국에 건너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접하고, 사도들의 가르침에로 돌아가자는 환원정신에 감동하여 신시내티에서 신학석사를 마치고 귀국하여 조선 땅에 최초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셨다. 신학생 장성만이 6.25동란 중에 이 분의 강연을 듣고 대교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한 것은 1953년 1월 1일이었다.
장성만 목사가 그의 일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운 일이었다. 그 일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일본주재 그리스도의 교회 선교사였던 마크 맥시가 그를 일본에 초청하여 오사카 성서 대학에서 학부과정을 마치게 하였고, 미국 신시내티 크리스천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모든 가능한 길을 열어 주었다. 그가 후원을 얻어 부산에 경남정보대학을 세우고, 제11, 12대 국회의원과 국회 부의장을 지내고, 동서대학교와 부산디지털대학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마크 맥시라는 일본주재 미국인 선교사의 헌신적인 손잡아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맥시 선교사가 장성만 목사의 손을 잡은 그 순간이 바로 장성만 목사에게 기적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적은 단순히 또 다른 수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기적을 낳게 한 첫 열매에 불과한 것이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마크 맥시 선교사처럼, 혹은 장성만 목사의 할머니처럼, 제1, 제2, 제3의 장성만의 손을 붙잡아 줄 수 있다. 손잡아 주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고, 현재적 부활의 체험이 일어난다. 필요한 이들의 손을 붙잡아줌으로써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손을 붙잡아주는 순간이 바로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이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전도는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아주 귀한 일이다. 그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손을 뻗어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순간이 그들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