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숭배의 문제(마 6:24, 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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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숭배의 문제(마 6:24, 출 20:1-6)
가끔씩 신앙인의 삶에 대해서 자문해 볼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삶을 인도하셨고, 복을 주셨으며,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가끔씩 신앙이 흔들릴 때가 있다. 이 흔들림은 대개가 나를 남과 비교하는데서 발생된다. 왜 나는 가난한가, 왜 나의 자녀는 잘 풀리지 않는가, 왜 나는 건강하지 못한가, 왜 나는 좋은 직장이 없는가, 왜 나는 많은 돈을 벌지 못하는가? 등의 비교가, 마치 가끔씩 일어나는 지진처럼, 우리의 믿음의 기초를 흔들어 놓곤 한다. 지진의 강도에 따라 피해의 정도가 다르듯이, 비교나 의심의 정도에 따라서 우리들이 입는 정신적 영적인 피해도 각기 다르다. 또 때로는 내가 남보다 더 많이 물질과 건강의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나의 약한 믿음 때문은 아닌가라는 반성과 때로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복을 받아야 비로소 만족할 것인가라는 자책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식의 비교가 사악한 사탄의 유혹이란 점이고, 공리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공리주의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존재한다 해도 인간사의 개입을 부정하는 이신론적 실용주의 노선에 놓여있다. 그래서 그들은 성공과 부와 명예와 권세와 건강에 가치를 둔다. 그 반대의 것들, 곧 가난, 질병, 실패 등은 무가치한 것이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성공과 부와 명예와 권세와 건강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윤리와 도덕과 규범과 도리를 버린 지 오래이다. 결과만을 중시하기 때문에 규범과 규칙과 과정 등을 헌신짝 버리듯이 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계명을 쫓아 살아야할 신앙인들조차도 성공주의와 맘몬주의에 빠져있다. 원칙과 도리를 무시하고 비겁한 수단을 동원해서 성공하고 돈을 벌고서도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축복인 것처럼 착각하고 자랑하기도 하고, 또 자기는 하나님이 인정하고 축복하신 특별한 종이므로 자기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세속적인 가치판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재단(裁斷)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들은 자주 범하고 있다. 그렇지 못한 반대상황에서는 심히 낙심하여, 마치 큰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마음이 요동치고 신앙이 흔들린다. 그게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세속적인 가치관을 극복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가난하든, 부요하든, 건강하든, 병이 나든, 명예와 권세가 있든 없든 간에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 굳세게 살아가는 신앙인이 많지 않다.
우리는 분명 두 주인을 섬기고 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다른 편에서는 우상을 섬기고 있다.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얼마나 싫어 하시는가는 그것이 십계명 제1-2계명에서 가장 먼저 다뤄지고 있는 점을 보아서 알 수 있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은 한분뿐이시므로 예배와 섬김의 대상은 오직 야훼뿐이라는 뜻이다.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 이외의 것에 그 어떤 가치도 두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이외에 그 어떤 것에도 궁극적인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천하의 모든 것이 다 피조물이다. 그것들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돈을 사랑하고, 자식을 떠받드는 것도 우상숭배이다. 우리는 사악한 비교를 멈춰야 한다. 그 대신 받은 복들을 세어 봐야한다. 그러면 분명히 감사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미국의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 6월호에 “무엇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드는가?”라는 기사가 실렸다. “사랑과 일과 심리적인 적응에 바람직한 삶에 필요한 어떤 공식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얻기 위해서 1937년에 미국 하버드대학교 2학년에 재학했던 남학생 268명의 삶을 72년에 걸쳐서 추적한 내용이다.
특정한 개인의 삶을 이렇게 장기간 추적한 연구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1937년 당시 하버드 의대 교수였던 알리 복(Arlie Bock)이었다. 연구를 재정적으로 지원한 백화점 재벌 W. T. 그랜트(Grant)의 이름을 따서 ‘그랜트 연구’라고 지었다. 연구진에는 하버드대 생리학 약학 인류학 심리학 분야의 최고 두뇌들이 동원됐다. 이들은 정기적인 인터뷰와 설문을 통해 대상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체크하였다. 이 연구를 대를 이어 1967년부터 지속해온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지었다. 연구결과 47세 무렵까지 형성돼 있는 인간관계가 이후의 생애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65세에 잘 살고 있는 사람의 93퍼센트가 이전에 형제자매와 원만하게 지낸 사람들이었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장 안정적인 성공을 거뒀다. 연구 대상자의 약 3분의 1은 정신질환도 한때 겪었다. “하버드 엘리트라는 껍데기 아래엔 고통 받는 심장이 있었다.”는 표현도 썼다.
사람이 행복하게 늙어가는 데 필요한 것은 7가지로 밝혀졌다.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 교육, 안정적인 결혼, 금연, 금주, 운동, 적당한 체중이 그것들이다. 이들 7가지 행복의 요소들 가운데 5-6개를 갖춘 106명 중 절반, 곧 연구대상자들 가운데 20퍼센트인 53명이 80세에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 반대로 50세에 3개 이하를 갖춘 이들 중에는 80세에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3개 이하의 요소를 갖춘 사람은 그 이상을 갖춘 사람보다 80세 이전에 사망할 확률이 3배나 높았다.
행복의 요소 7가지를 가능케 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다. 베일런트 교수는 “어떠한 데이터로도 밝혀낼 수 없는 극적인 주파수를 발산하는 것이 삶”이라며 “과학으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숫자로 말하기엔 너무나 아름답고, 학술지에만 실리기에는 영원하다”고 말했다. 베일런트 교수는 심리학이 평범한 삶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외경, 사랑, 연민, 감사, 용서, 기쁨, 희망, 신뢰 혹은 믿음과 같은 적극적 감정들이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라고 믿고 있다. 베일런트 교수는 이들 268명의 삶을 추적한 결과 감사와 기쁨이 좋은 건강을 낳게 하고 깊은 관계들을 맺게 하였다고 말한다. 돈은, 일단 기본적인 욕구들이 채워지면, 사람들을 거의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베일런트 교수는 결혼생활과 믿음생활이 사람들을 행복에로 인도하고 있고, 또 행복한 사람들이 결혼생활과 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행복한 사람은 사회적 지위나 재산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고,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믿음과 사랑과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란 것을 말해 준다. 또 이들이 고통에 잘 적응하고, 안정적인 결혼과 운동과 체중조절과 금연과 금주를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환경이 10퍼센트, 개인의 컨트롤이 40퍼센트라고 손자 류보머스키(Sonja Lyubomirsky)는 말했다.
2009년 5월 16일자 조선일보에 의하면, 한센병 환자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팀은 국내 한센병 환자 15,000명의 기대 수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 남성 한센병 환자들은 일반인 남자보다 최대 7년 가까이 장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14일 수원 아주대에서 열린 ‘한국노화학회’에서 발표했다. 박상철 교수는 “가난 속에 차별받는 삶을 산 한센병 남자 환우들이 일반 남성보다 확연히 더 오래 사는 이유는 그들이 신앙의 힘을 바탕으로 절제된 생활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독실한 신앙이 우울증을 예방할 뿐 아니라, 타인과 사회에 한을 품는 대신에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베일런트 교수는 외경, 사랑, 연민, 감사, 용서, 기쁨, 희망, 신뢰 혹은 믿음과 같은 적극적 감정들이 긍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라고 믿었다. 행복이 기독교적 가치들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돈과 명예와 권세와 같은 우상들은 결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기독교적인 가치기준이 없는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고, 돈과 자식 숭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2009년 5월 15일자 국민일보 이강렬 대기자의 정치 외야석에 실린 “그 놈의 자식이 뭐길래...”를 보면, 노전대통령부부의 자식과잉보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검찰은 노전대통령부부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건네받은 640만 달러, 즉 80억 원 가량의 상당부분이 노전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의 사업자금, 학비, 주택구입비 등으로 사용됐다고 보고 있다. 아들 건호씨에 따르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는 집안이 가난해서 어머니 권양숙씨가 돈 1000원이 없어서 울었다고 했다. 노전대통령부부의 비리사건은 돈 1000원 때문에 아팠던 가난의 추억과 못 배운 서러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에 장성한 자식들에게 무리한 지원을 해주다가 빚어진 사건이라고 했다. 자식 앞에 장사가 없겠지만, 그래도 자식이 우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노무현 부부가 일깨워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독교적 가치를 지녔던 사람들은 두 주인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목숨을 내놓고 거부하였다. 주후 295년 세무공무원이었던 22살의 막시밀리아누스는 로마군에 입대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면서 자신은 이 세상군대의 병사가 아니라 하나님군대의 병사라고 말했다. 로마군 배지를 받으라는 명령을 거부하면서 자신은 이미 그리스도의 병사배지를 가진 몸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인 자신은 황제의 두상이 새겨진 구리조각을 목에 걸고 다닐 수 없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군사가 된 이상 황제의 군사가 될 수 없다는 기독교적 가치를 끝내 지켜냈다.
임진왜란 때 전쟁고아로 일본에 끌려갔던 오다 줄리아(1590?-1651)는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총애를 받았으나 “지금 땅의 왕을 즐겁게 하기 위해 하늘에 계신 주님을 슬프게 할 수 없다.”며 수청과 배교를 거부하였다.
16세 때 진사시에 장원급제하여 출세를 보장받았던 황사영은 정약용 선생의 조카사위로서 하나님을 배워 안 후, “내가 이제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심판하실 제일 높은 임금을 알았으니 그분의 신하가 되는 것이 군자의 마땅한 도리이다”며 땅의 임금 섬기기를 거부하였다.
정약용 선생의 조카인 정하상은 나라 임금의 명령을 듣고 천지대군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면 그 죄가 비할 데 없이 크다며 배교를 거부하였다.
일제 때 주기철 목사는 발톱이 모두 뭉개지는 고문을 당하고도 “육체의 재앙을 피하려고 우상 앞에 엎딜 수는 없다”며 버텼다.
앞서 열거한 신앙인들은 예수님이냐 황제냐를 놓고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죽음을 불사하며 예수님을 택하였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기독교적 가치를 지켜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자식, 하나님과 명예와 권세와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성경말씀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한다. 우리 신앙인들은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자리잡으려하는 우상들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상은 우리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진리를 왜곡시키며, 세속에 물들게 하고, 행복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승리는 우상을 물리치는데 있다.
가끔씩 신앙인의 삶에 대해서 자문해 볼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삶을 인도하셨고, 복을 주셨으며,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가끔씩 신앙이 흔들릴 때가 있다. 이 흔들림은 대개가 나를 남과 비교하는데서 발생된다. 왜 나는 가난한가, 왜 나의 자녀는 잘 풀리지 않는가, 왜 나는 건강하지 못한가, 왜 나는 좋은 직장이 없는가, 왜 나는 많은 돈을 벌지 못하는가? 등의 비교가, 마치 가끔씩 일어나는 지진처럼, 우리의 믿음의 기초를 흔들어 놓곤 한다. 지진의 강도에 따라 피해의 정도가 다르듯이, 비교나 의심의 정도에 따라서 우리들이 입는 정신적 영적인 피해도 각기 다르다. 또 때로는 내가 남보다 더 많이 물질과 건강의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나의 약한 믿음 때문은 아닌가라는 반성과 때로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복을 받아야 비로소 만족할 것인가라는 자책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식의 비교가 사악한 사탄의 유혹이란 점이고, 공리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공리주의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존재한다 해도 인간사의 개입을 부정하는 이신론적 실용주의 노선에 놓여있다. 그래서 그들은 성공과 부와 명예와 권세와 건강에 가치를 둔다. 그 반대의 것들, 곧 가난, 질병, 실패 등은 무가치한 것이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성공과 부와 명예와 권세와 건강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윤리와 도덕과 규범과 도리를 버린 지 오래이다. 결과만을 중시하기 때문에 규범과 규칙과 과정 등을 헌신짝 버리듯이 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계명을 쫓아 살아야할 신앙인들조차도 성공주의와 맘몬주의에 빠져있다. 원칙과 도리를 무시하고 비겁한 수단을 동원해서 성공하고 돈을 벌고서도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축복인 것처럼 착각하고 자랑하기도 하고, 또 자기는 하나님이 인정하고 축복하신 특별한 종이므로 자기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세속적인 가치판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재단(裁斷)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들은 자주 범하고 있다. 그렇지 못한 반대상황에서는 심히 낙심하여, 마치 큰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마음이 요동치고 신앙이 흔들린다. 그게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세속적인 가치관을 극복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가난하든, 부요하든, 건강하든, 병이 나든, 명예와 권세가 있든 없든 간에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 굳세게 살아가는 신앙인이 많지 않다.
우리는 분명 두 주인을 섬기고 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다른 편에서는 우상을 섬기고 있다.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얼마나 싫어 하시는가는 그것이 십계명 제1-2계명에서 가장 먼저 다뤄지고 있는 점을 보아서 알 수 있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은 한분뿐이시므로 예배와 섬김의 대상은 오직 야훼뿐이라는 뜻이다.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 이외의 것에 그 어떤 가치도 두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이외에 그 어떤 것에도 궁극적인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천하의 모든 것이 다 피조물이다. 그것들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돈을 사랑하고, 자식을 떠받드는 것도 우상숭배이다. 우리는 사악한 비교를 멈춰야 한다. 그 대신 받은 복들을 세어 봐야한다. 그러면 분명히 감사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미국의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 6월호에 “무엇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드는가?”라는 기사가 실렸다. “사랑과 일과 심리적인 적응에 바람직한 삶에 필요한 어떤 공식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얻기 위해서 1937년에 미국 하버드대학교 2학년에 재학했던 남학생 268명의 삶을 72년에 걸쳐서 추적한 내용이다.
특정한 개인의 삶을 이렇게 장기간 추적한 연구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1937년 당시 하버드 의대 교수였던 알리 복(Arlie Bock)이었다. 연구를 재정적으로 지원한 백화점 재벌 W. T. 그랜트(Grant)의 이름을 따서 ‘그랜트 연구’라고 지었다. 연구진에는 하버드대 생리학 약학 인류학 심리학 분야의 최고 두뇌들이 동원됐다. 이들은 정기적인 인터뷰와 설문을 통해 대상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체크하였다. 이 연구를 대를 이어 1967년부터 지속해온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지었다. 연구결과 47세 무렵까지 형성돼 있는 인간관계가 이후의 생애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65세에 잘 살고 있는 사람의 93퍼센트가 이전에 형제자매와 원만하게 지낸 사람들이었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장 안정적인 성공을 거뒀다. 연구 대상자의 약 3분의 1은 정신질환도 한때 겪었다. “하버드 엘리트라는 껍데기 아래엔 고통 받는 심장이 있었다.”는 표현도 썼다.
사람이 행복하게 늙어가는 데 필요한 것은 7가지로 밝혀졌다.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 교육, 안정적인 결혼, 금연, 금주, 운동, 적당한 체중이 그것들이다. 이들 7가지 행복의 요소들 가운데 5-6개를 갖춘 106명 중 절반, 곧 연구대상자들 가운데 20퍼센트인 53명이 80세에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 반대로 50세에 3개 이하를 갖춘 이들 중에는 80세에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3개 이하의 요소를 갖춘 사람은 그 이상을 갖춘 사람보다 80세 이전에 사망할 확률이 3배나 높았다.
행복의 요소 7가지를 가능케 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다. 베일런트 교수는 “어떠한 데이터로도 밝혀낼 수 없는 극적인 주파수를 발산하는 것이 삶”이라며 “과학으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숫자로 말하기엔 너무나 아름답고, 학술지에만 실리기에는 영원하다”고 말했다. 베일런트 교수는 심리학이 평범한 삶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외경, 사랑, 연민, 감사, 용서, 기쁨, 희망, 신뢰 혹은 믿음과 같은 적극적 감정들이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라고 믿고 있다. 베일런트 교수는 이들 268명의 삶을 추적한 결과 감사와 기쁨이 좋은 건강을 낳게 하고 깊은 관계들을 맺게 하였다고 말한다. 돈은, 일단 기본적인 욕구들이 채워지면, 사람들을 거의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베일런트 교수는 결혼생활과 믿음생활이 사람들을 행복에로 인도하고 있고, 또 행복한 사람들이 결혼생활과 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행복한 사람은 사회적 지위나 재산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고,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믿음과 사랑과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란 것을 말해 준다. 또 이들이 고통에 잘 적응하고, 안정적인 결혼과 운동과 체중조절과 금연과 금주를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환경이 10퍼센트, 개인의 컨트롤이 40퍼센트라고 손자 류보머스키(Sonja Lyubomirsky)는 말했다.
2009년 5월 16일자 조선일보에 의하면, 한센병 환자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팀은 국내 한센병 환자 15,000명의 기대 수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 남성 한센병 환자들은 일반인 남자보다 최대 7년 가까이 장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14일 수원 아주대에서 열린 ‘한국노화학회’에서 발표했다. 박상철 교수는 “가난 속에 차별받는 삶을 산 한센병 남자 환우들이 일반 남성보다 확연히 더 오래 사는 이유는 그들이 신앙의 힘을 바탕으로 절제된 생활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독실한 신앙이 우울증을 예방할 뿐 아니라, 타인과 사회에 한을 품는 대신에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베일런트 교수는 외경, 사랑, 연민, 감사, 용서, 기쁨, 희망, 신뢰 혹은 믿음과 같은 적극적 감정들이 긍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라고 믿었다. 행복이 기독교적 가치들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돈과 명예와 권세와 같은 우상들은 결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기독교적인 가치기준이 없는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고, 돈과 자식 숭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2009년 5월 15일자 국민일보 이강렬 대기자의 정치 외야석에 실린 “그 놈의 자식이 뭐길래...”를 보면, 노전대통령부부의 자식과잉보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검찰은 노전대통령부부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건네받은 640만 달러, 즉 80억 원 가량의 상당부분이 노전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의 사업자금, 학비, 주택구입비 등으로 사용됐다고 보고 있다. 아들 건호씨에 따르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는 집안이 가난해서 어머니 권양숙씨가 돈 1000원이 없어서 울었다고 했다. 노전대통령부부의 비리사건은 돈 1000원 때문에 아팠던 가난의 추억과 못 배운 서러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에 장성한 자식들에게 무리한 지원을 해주다가 빚어진 사건이라고 했다. 자식 앞에 장사가 없겠지만, 그래도 자식이 우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노무현 부부가 일깨워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독교적 가치를 지녔던 사람들은 두 주인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목숨을 내놓고 거부하였다. 주후 295년 세무공무원이었던 22살의 막시밀리아누스는 로마군에 입대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면서 자신은 이 세상군대의 병사가 아니라 하나님군대의 병사라고 말했다. 로마군 배지를 받으라는 명령을 거부하면서 자신은 이미 그리스도의 병사배지를 가진 몸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인 자신은 황제의 두상이 새겨진 구리조각을 목에 걸고 다닐 수 없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군사가 된 이상 황제의 군사가 될 수 없다는 기독교적 가치를 끝내 지켜냈다.
임진왜란 때 전쟁고아로 일본에 끌려갔던 오다 줄리아(1590?-1651)는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총애를 받았으나 “지금 땅의 왕을 즐겁게 하기 위해 하늘에 계신 주님을 슬프게 할 수 없다.”며 수청과 배교를 거부하였다.
16세 때 진사시에 장원급제하여 출세를 보장받았던 황사영은 정약용 선생의 조카사위로서 하나님을 배워 안 후, “내가 이제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심판하실 제일 높은 임금을 알았으니 그분의 신하가 되는 것이 군자의 마땅한 도리이다”며 땅의 임금 섬기기를 거부하였다.
정약용 선생의 조카인 정하상은 나라 임금의 명령을 듣고 천지대군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면 그 죄가 비할 데 없이 크다며 배교를 거부하였다.
일제 때 주기철 목사는 발톱이 모두 뭉개지는 고문을 당하고도 “육체의 재앙을 피하려고 우상 앞에 엎딜 수는 없다”며 버텼다.
앞서 열거한 신앙인들은 예수님이냐 황제냐를 놓고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죽음을 불사하며 예수님을 택하였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기독교적 가치를 지켜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자식, 하나님과 명예와 권세와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성경말씀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한다. 우리 신앙인들은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자리잡으려하는 우상들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상은 우리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진리를 왜곡시키며, 세속에 물들게 하고, 행복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승리는 우상을 물리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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