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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이뤄진다(마 26:36-39, 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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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245 2009.05.2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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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이뤄진다(마 26:36-39, 합 3:16-19)

다음 주가 성령강림절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주후 30년 5월 28일 일요일에 성령님의 강림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님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구원사역을 시작하시고, 주의 종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심으로 시작되었다. 골방에서 조용히 시작된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이 모인 성전 뜰에서 요란하게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은 주전 6백여 년 전 나라를 빼앗기고 유배를 당한 이후부터 영광의 나라를 세우려는 꿈을 품고 기도하고 있었다. 6백년이 지나 그 꿈이 주후 30년 5월 28일 오순절 날 성전 뜰에 모인 제자들에게 위로부터 성령님이 강림하신 이후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이미 이뤄졌다고 확신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영광의 나라를 세우는 그 꿈이 반드시 유대인들을 위해서 예루살렘과 시온에서 성전예배와 함께 문자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믿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유대교인으로 남았다.
2천 년 전,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질 당시에는 세계에 흩여진 유대인들의 수가 기껏해야 450만 명에 지나지 않았고, 이미 6백 년 동안이나 대국들의 속주민으로 고달프게 살아온 소수민족에 지나지 않았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열흘 후에 이뤄진 성령강림 사건이후 유대교인들의 삶과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과거 2천년 동안 확연히 다른 색깔로 나타났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께서 그들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강한 믿음 속에서 역동적인 전도인의 삶을 살아왔고, 유대인들은 영광의 나라 재건이란 꿈과는 거리가 먼 떠돌이생활을 해왔다. 지난 2천년의 대부분의 세월을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에서 살지를 못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와 꿈을 ‘벌써’ 이뤄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점이다. 그들의 기도와 꿈을 벌써 이뤄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완료진행경험적인 삶이라 부른다. ‘완료’란 그 꿈이 ‘이미’ 이뤄진 것을 말하고, ‘진행’이란 그 꿈이 완성을 향해서 달려간다는 뜻이고, ‘경험’이란 그 꿈의 완성을 미리 앞당겨 맛보며 누린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선취적 경험이 없다. 그들은 ‘이미’ 이뤄진 것을 믿지 못하고,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1장 22절의 말씀처럼, 기도할 때 구한 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고 기도하는 완료진행경험적인 믿음과 구한 것이 확실한 결과를 드러낼 때까지 믿지 못하는 결과론적인 믿음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눈에 드러나는 결과에 치중하는 행동을 공리주의라고 한다. 공리주의자들은 원칙보다는 결과,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한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뤄주신 응답을 깨닫지 못한다. 기도응답이 예상치 못한 전혀 다른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받은 응답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2천 년 전 유대인들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을 인정하지 못한 이유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예상했던 방법이 아닌 전혀 다른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유대민족을 위한 영웅 메시아를 보내지 않고, 열방민족을 위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메시아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기도는 이뤄진다. 꿈은 이뤄진다는 말이 있듯이 기도는 확실히 이뤄진다. 꿈을 꾸는 자와 기도하는 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뭔가를 간절히 바란다는 점이 같다. 그런데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성을 들이면 이뤄진다. 인간의 뇌는 일단 일을 결정하면 계속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기도가 이뤄진다고 믿고 정성을 들이면, 뇌는 그대로 믿어버린다. 주님께서도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하셨다.
‘믿고 구한다’와 ‘구한 것을 믿는다’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믿고 구한다’ 혹은 ‘구한 것을 믿는다’에서 믿음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 생각이 확신이 되고, 신념이 되면, 뇌에 저장되는 기억이 된다. 믿음의 생각이 강해야 해마의 정보전달을 통제하는 편두체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편두체를 자극시킬만한 생각이 신념이고 확신이다. 그 정도의 신념과 확신이 서면 편두체가 그 정보를 시냅스에 보내서 기억으로 저장시킨다. 그 때부터는 ‘믿고 구한 것은 그대로 이뤄진다’가 된다. 뇌가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믿고 구한다’와 ‘구한 것을 믿는다’는 믿음의 생각은 ‘기도는 이뤄진다’는 긍정적인 경험들을 쌓게 한다. 크고 작은 기도응답의 경험들이 쌓이면 뇌는 그것을 그대로 믿게 된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는 습관을 통해서 기도응답의 경험들을 축적한 사람들이다. 기도응답의 경험들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난관을 극복하는 힘이 강하다.
의사들도 기도의 힘을 믿고 있다. 건강치료 다이렉트 리서치(Health Care Direct Research)가 2008년 12월에 내과의사 11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를 보면, 70퍼센트의 미국 의사들이 기적을 믿고, 그 가운데 29퍼센트는 의술의 결과에 하나님의 개입과 같은 초능력의 힘이 미친다고 믿고 있다. 의사 랜돌프 비어드(Randolph Byrd)는 1988년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 관상동맥치료 병동에 입원한 393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는데, 환자들의 절반 정도가 중보기도를 받고 있었고, 중보기도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기도를 받지 않은 나머지 절반보다 현저한 차도를 보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의사가 치료의 한 수단으로 기도를 처방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있어왔고, 이 물음에 과학적인 답을 얻으려고 실험을 통한 통계자료를 만든 의사들도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인위적인 실험은 의외로 정반대의 결과를 낳곤 한다. 2009년 5월호 크리스티앤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지는 중보기도가 환자들에게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발표를 실었다. 약자로 STEP이라 부르는 중보기도의 임상효과연구가 하버드 의대의 후원아래 진행되었고, 10년간 240만 불, 우리 돈 30억 원이 들어갔다. 관상동맥우회이식수술 때문에 입원한 1802명의 환자들을 무작위로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눴다. 두 그룹들은 환자를 위해서 기도한 경험을 가진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기도를 받게 하였다. 그렇지만 한 그룹에게만 그들이 기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였다. 그 결과, 기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환자들이 기도 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환자들보다 수술 후 합병증에서 더 나쁘게 나타났다. 특별 중보기도팀에 의해서 기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건강에 부정적인 효과로 나타난 듯싶다고 했다. 기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두 그룹들 가운데 실제로 기도를 받았던 그룹에서 기도를 받지 않았던 그룹보다 합병증세가 더 심하게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기도가, 특히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기도가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듯싶다고 했다. 연구결과를 발표한 저자는 모르는 사람의 기도가 환자들의 불안을 더 키웠을 수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특별기도팀을 동원할 만큼 내가 심하게 아픈가라는 불안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편 복음주의 신앙인들은 96퍼센트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거나 기도해주는 사람들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과연 이들의 기도가 무용지물일까? 그렇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영국의 저술가 C. S. 루이스가 지적한 것처럼, 실험에 동원된 기도팀은 마치 잘 훈련된 앵무새들을 동원한 동물쇼나 요술방망이 또는 자동기계로 착각한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런 실험에서 역사하실 리가 만무하다. 기도는 결코 요술주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에 춤추는 요술방망이도 아니고,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것이 나오는 자판기도 아니시다. 그러므로 무당이 자기 신(神)에게 하듯이 하나님을 종처럼 부려서는 안 된다.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주인공 브루스는 자신이 하는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신을 원망했다가 신으로부터 전능한 능력을 받게 되었다. 하루는 계속적으로 올라오는 기도들을 일일이 체크하기가 귀찮아서 모든 기도에 YES를 입력하여, 자동적으로 모든 기도가 응답되게끔 만들었다. 그러자 다음날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났다. 복권1등에 당첨된 사람이 한꺼번에 40만 명이나 나오기도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복권1등 당첨을 놓고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읽은 본문 성구들은 이런 식의 기도를 하고 있지 않다. 선지자 하박국은 곧 들이닥칠 침략군을 두려워했다. 그는 군사들이 "회오리바람처럼" 들이닥친다는 소식을 듣고 뱃속이 뒤틀리고, 입술이 떨리며, 뼛속이 녹아내리고, 아랫도리가 후들거리는 공포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 어떤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변치 않을 것을 위해서 기도했던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둔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극심한 긴장과 번민 속에서 기도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자신의 바람을 이뤄달라고 때를 쓰는 간구를 드리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위해서 기도하셨다.
신구약을 대표하는 이 두 분의 모범기도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기를 기도했다는 점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모범적인 기도를 했다는 점이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에서 보듯이 올바른 믿음은 긍정적인 기도를 하게 만든다. 고난 가운데 있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게 만든다. 중증 뇌성마비의 장애인으로 태어난 송명희씨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던 어느 날 음성을 듣게 되었다. "받아 적으라." 그녀는 왼손에 토막 연필을 들고 바닥에 몸을 기댄 채 무작정 받아 적기 시작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여기까지 적어가던 그녀는 다음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송명희 시인은 하나님이 ‘이미’ 그녀에게 주신 것을 깨닫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이미’ 주어진 것을 가지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완료진행경험적인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기도는 반드시 이뤄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긍정적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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