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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사건의 의의(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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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665 2009.05.2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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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사건의 의의(행 2:1-4)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강림사건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한다. 성령강림사건은 서기 30년 5월 28일 일요일 아침 9시경 기도시간에 성전 뜰에서 일어났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100개 정도의 베라코트를 암송한다. ‘베라코트’는 “복 받으시옵소서. 주 우리 하나님(실제로는 ‘그 이름’)이시여”로 시작되는 기도를 말한다. 이 가운데 57(이천년 전에는 54개)개는 하루 세 번 드리는 기도이고, 나머지는 식사전후에, 화장실 본 후에, 식사 전에 행하는 의식적 손 씻기 후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드려지는 기도들이다.

정기적인 기도는 하루 세 번 하는데, 19(이천년 전에는 18개)개의 기도문(‘쉐모네 에스레이’)을 아침 9시, 12시, 오후 3시경에 암송한다. 서기 30년 5월 28일 오순절 날 제자들은 아침 9시경 기도시간에 성전 뜰에 모여 18개의 기도문을 낭송하고 있었다. 성전에서의 모임은 뜰에서 이뤄졌다. 내실인 성소와 지성소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오순절은 유대인의 3대 명절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외국에 거주하는 교포 유대인들과 전국의 유대인들이 성지인 예루살렘을 찾는 대 명절이다. 이날 아침 9시경 기도시간에 드넓은 성전 뜰에는 전 세계와 전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바로 이들에 의해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제자들에게 임하는 것과 그로 인해서 제자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골방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이 아니라, 드넓은 성전 뜰에 모인 수만 명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일어난 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후 비로소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선포되었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또 그들의 모임을 ‘그리스도의 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진정한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날의 사건 때문이었다. 성령강림사건의 가장 큰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인간에게 근원적인 문제해결과 빛과 생명을 주기 시작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보다 더 큰 사건을 인류역사에서 찾을 수 없다.

성령님께서 서기 30년 5월 28일 오순절 날 큰 능력으로 임하셨고, 강력한 권능으로 역사하셨지만, 그분이 행하신 진정 놀랍고 큰 업적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 거듭나게 한 일이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배우지 아니한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등의 기적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가슴 치며 눈물 흘려 회개한 사람들의 변화된 삶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기적은 그것을 본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변화된 삶을 살게 하려는 목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이 변화를 받고, 새 삶을 살게 되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사람이 변화를 받아 새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며,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기적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소경이 눈을 뜨며, 문둥병자가 깨끗해지고, 혈류증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시급한 기적은 사람의 심령이 변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실 때, 고침 받는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죄 사함과 영혼건강이 육체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표명하신 것이다. 육체의 병을 한번 고침 받았더라도 반드시 다시 병들고, 결국은 죽게 되지만,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영생이란 큰 복을 보너스로 받게 된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사역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개개인에게 구원을 일으키는 내적 사역이고, 다른 한 가지는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권능 사역이다. 사람들은 현실적이기 때문에 내적으로 구원을 일으키는 사역보다는 외적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권능사역을 더 선호한다. 선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성령사역 그 자체로 오해까지 한다. 그러나 성령님의 권능사역은 복음이 전파되게 함으로써 그것을 보고 듣는 이들로 하여금 심령의 변화를 받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성령님 사역의 목적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침례를 받고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를 보호하고 지킴으로써 그가 점진적으로 성화를 이뤄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할 때까지 인도하는 것이다. 바울 서신들을 보면, 성령님 사역의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롬 5:5).
둘째,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롬 8:16).
셋째,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되(롬 8:26),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신다(롬 8:27).
넷째, 성령님은 우리 안에 소망이 넘치게 하신다(롬 15:13, 갈 5:5).
다섯째,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다(고전 2:10, 13).
여섯째, 우리 몸은 성령님이 내주하는 성전이다(고전 3:16, 6:19, 엡 2:22).
일곱째, 성령님 안에서 중생의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전 6:11, 살후 2:13, 딛 3:5).
여덟째, 성령님은 예수님을 주(主)로 고백하게 한다(고전 12:3).
아홉째, 성령님은 각 사람에게 각양 은사들을 나눠주신다(고전 12:11).
열째, 우리는 다 한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님을 마셨다(고전 12:13).
열한 번째, 성령님은 우리가 받은 구원약정에 대한 선수금과 인감이 되신다(고후 1:22, 엡 1:13-14, 4:30). 그것을 위해서 성령님을 선물로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고후 5:5).
열둘째, 복음을 듣고 믿고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님을 받는다(갈 3:2,5,14).
열셋째,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갈 5:22-23).
열넷째, 성령님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갈 6:8).
열다섯째, 성령님은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게 하신다(엡 4:3).
열여섯째,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에 이른다(빌 1:19).

이와 같은 성령님의 귀중한 사역들 때문에 바울은 “성령님을 소멸치 말라”(살전 5:19).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라”(엡 4:30).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갈 5:16). “성령님으로 봉사하라”(빌 3:3)고 말씀하셨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받을 상속자로 살면서도 너무 자주 삶의 활력을 잃고 목마름을 호소하게 된다. 거기에는 최소한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이신 성령님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기서 물은 성령님을 상징한다. 성령님을 받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는데, 왜 우리는 성령님을 선물로 받고서도 여전히 갈증과 답답증을 호소하게 되는가? 바울은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셨다”(고전 12:13)고 하셨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성령님을 마시고도 갈증과 답답증을 호소하게 되는가? 바울 사도는 권면하셨다. “성령님을 소멸치 말라”(살전 5:19).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라”(엡 4:30).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갈 5:16). 이들 말씀들은 우리가 겪는 답답증이 성령님이 우리의 정욕에 눌리어 근심케 되고, 불꽃이 사그라지듯이 소멸되어가고, 생수의 근원이 메말라가듯이 메말라 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둘째, 우리의 영혼에 침투하는 바이러스를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혼을 보호하는 방화벽이 약하기 때문이다. 세포에 침투하여 병을 일으키는 생물 바이러스가 있듯이, 컴퓨터에 침투하여 파일을 망가뜨리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있듯이, 영혼에 침투하여 파멸시키는 영적 바이러스가 있다. 우리의 영혼에 바이러스를 침투시키고 증식시키는 해커는 사단이다. 해커를 막는 강력한 방화벽은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이 영혼을 보호하실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영적 백신을 업그레이드 시켜줘야 한다.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의 몸과 영혼과 컴퓨터를 망가뜨린다. 한번 망가지면 복구하는데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더욱 충만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성령님을 근심시키고, 소멸시키는 역행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사단이 심어놓은 악성 바이러스들로 가득 차게 된다. 이것들을 치료하지 않고서 어떻게 영혼의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겠는가? 강력한 백신엔진을 돌려야 한다. 성령님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다. 백신을 의지하듯이 성령님을 의지해야한다.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튼튼한 방화벽을 쌓아야 한다.

세포에 침투하는 바이러스나 컴퓨터에 침투하는 바이러스의 성격이 다 같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라 불리는 세균과는 달리 개체증식을 위한 자체 공장 없이 틀만 가지고 남의 공장에 침입해 개체를 증식시킨다. 그러니까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다른 세포 속에 침투하여 자신과 동일한 바이러스들을 증식시키면서 숙주 세포들을 파괴시킨다. 따라서 바이러스는 감기, 홍역, 수두, 천연두, 광견병, 소아마비, AIDS, 심지어 일부 암까지 발병시킨다. 일부 바이러스는 백신접종과 청결유지를 통해서 예방될 수도 있지만, 항생제는 그 어떤 종류의 바이러스도 죽이지 못한다. 컴퓨터 바이러스에는 트로이 목마와 웜이 있다. 트로이 목마는 숙주인 컴퓨터에서만 증식하기 때문에 감염 파일을 건들지 않으면 괜찮지만, 웜은 네트워크를 타고 스스로 증식하기 때문에 접속만 해도 따라 들어오는 무서운 악성코드이다. 신체나 영혼이나 컴퓨터나 요즘은 근처에만 가도 전염이 된다. 대중교통수단의 발달이 전염병을 순식간에 퍼뜨리듯이, 네트워크의 발달이 웜 바이러스를 순식간에 퍼뜨리듯이, 사단은 대중매체와 네트워크를 통해서 우리의 영혼을 침식시킨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님의 생수의 강물이 샘솟게 해야 한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삶에 강력한 방화벽을 쌓아야 한다. 이것이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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