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신(神)의 기구한 운명(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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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신(神)의 기구한 운명(출 20:1-6)
절대 신(神)에게 운명은 있는가? ‘절대’란 의미는 무엇인가? ‘전지전능’하시다. ‘무소부재’하시다. ‘유일무이’하시다는 뜻이다. 이러한 어휘들의 뜻은 무엇인가? 절대 신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모든 곳에 계시고, 안 계시신 곳이 없으며, 온 우주에 이런 능력을 가진 신은 단 한분뿐이라는 뜻이다.
이런 큰 능력을 가진 절대 신에게 무슨 제한이 있는가, 아니면 전혀 제한이 없는가? 하나님에게 아무런 제한이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에게도 몇 가지 제한이 있다. 성서에 소개된 하나님의 속성들이나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고백들을 보면,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의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기할 만큼 절대 신이신 하나님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미쁘시다.’ 하나님은 ‘믿을 만하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다.’와 같은 말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정확하게 표현한 고백들이다. 그런데 이들 표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묶는 어떤 제한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절대 신에게는 아무런 제한도 속박도 없을 것 같은데, 절대 신이기 때문에 비켜갈 수 없는 어떤 속박과 제한이 있다. 그것은 마치 대통령이기 때문에 겪어야하는 제한과 속박, 연예인이기 때문에 겪어야하는 제한과 속박처럼 하나님께도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것을 ‘절대 신(神)의 기구한 운명’ 혹은 ‘하나님의 운명적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향하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을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의 사도로 부르신 분의 ‘노예’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노예’란 주인에게 속박된 자를 말한다. 노예에겐 자유가 없다. 바울 당대에 노예는 주인이 이유 없이 때리면 맞아야하고, 하지 못할 일도 시키면 순종해야하며, 다른 주인에게 팔면 팔려 가야하고,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동물로써 취급받았던 불쌍한 처지였다. 바울이 스스로 ‘그리스도의 노예’라 칭한 것을 두고 ‘바울의 운명적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기구한 운명, 비록 노예지만 주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 바울은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이 운명에 영웅적으로 충실했다. 그런 바울이 있었기에 오늘의 기독교가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게도 이런 기구한 운명이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운명에 충실하셨고, 지금도 충실하시고, 앞으로도 충실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구한 운명 또는 운명적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한번 아신 것을 번복하거나 다르게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은 한번 사랑하신 것을 미워하거나 싫어할 수가 없으시다. 만일 하나님이 한번 아셨던 것을 번복하거나 다르게 알게 된다면, 한번 사랑하셨던 것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시게 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게 된다.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면, 더 이상 절대 신(神)일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절대 신이신 하나님은 번복이란 것이 있을 수 없고, 잘못 알거나 실수할 수가 없는 완전성에 묶여 존재하시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번 아신 것을 끝까지 아시고, 한번 사랑하신 것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한번 택하신 것을 끝까지 택하셔야 하는 운명에 묶여 존재하신다.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고, 하나님의 불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기구한 운명적 사랑 때문이다. 이 점이 그리스 로마의 수많은 신들과 이방 종교인들이 만들어 섬기는 우상들과 다른 점이다. 그리스 로마의 신들이 피조물인 인간들처럼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삼만 개의 신들이 있다지만, 그들 가운데 믿고 의지할만한 신은 아무도 없다. 그들에게는 피조물을 끝까지 사랑해야하는 기구한 운명도 없고 혹은 운명적 사랑도 없다. 인간보다 능력이 많아서 인간들을 부리고 다스릴 수 있을 뿐이다. 이 점이 절대 신이신 하나님의 차별성이다. 하나님은 깎아 만든 우상과는 달리, 한번 아신 것을 번복하거나 다르게 알 수가 없고, 한번 사랑하신 것을 미워하거나 싫어할 수가 없으며, 잘못 알거나 실수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번 아신 것을 끝까지 아시고, 한번 사랑하신 것을 끝까지 사랑하시며, 한번 택하신 것을 끝까지 선택하신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제1,2계명을 주셨는데, 이 두 계명이 깎아 만든 우상들과 하나님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두 계명이 성서 66권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사상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이 두 계명은 한 마디로 말해서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것이다. 운명적으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우리 편에 서시고, 끝까지 책임지실 절대 신은 하나님 한분뿐이시기 때문이다. 변덕이 없으시고 불변하신 하나님만이 참 신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 한분만이 가치 있고, 소중하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것들은 다 변덕스럽고, 일시적이다. 그러므로 다른 잡신을 섬긴다든지, 인간이 깎아 만든 우상들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상이란 잡신들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배우자가 될 수도 있고, 자녀가 될 수도 있고, 돈이 될 수도 있고, 권력과 명예가 될 수도 있고, 자기가 하고 있는 사업이나 일이 될 수도 있다. 대상이 무엇이든지간에 하나님보다 더 높은 가치를 두거나 더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것들은 다 우상숭배가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운명적 사랑을 받아드릴 수 없게 만드는 불행한 행위들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무엇을 그토록 많이 요구하시는 것은 아니다. 다른 잡다한 것들,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실상은 유한하고 일시적인 것들, 가치 있어보여서 얻기를 집착하지만, 실상은 찌꺼기에 불과한 것들에 마음과 정을 주지 말고,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 한분만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전 재산을 다 바치라는 것도 아니고, 24시간을 다 바치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100억짜리 청자가 있다고 치자. 백억을 호가하는 청자이니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그런 동일한 심정으로 하나님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당신의 목숨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한 자녀들로 여기시고 취급하신다. 하나님의 기구한 운명이 우리처럼 죄 많은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복된 운명은 그 사랑을 받아서 누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구한 운명이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받아야할 저주와 형벌을 받으시는 것이라면, 우리의 복된 운명은 하나님이 누리시는 영생의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과 신자들의 관계를 언약관계로 설명한다. 이 언약관계를 표현한 말이, ‘신부,’ ‘자녀,’ ‘선민’이다. 이들 표현들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부부관계, 가족관계 혹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임을 말하고 있다. 성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종속관계가 아니라, 부부관계, 가족관계, 특별사랑을 받는 선민이란 점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보시고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우상숭배란 능력 있고 자상하고 사랑 많은 남편을 버리고, 무식하고 무능한 다른 남자를 좇는 것이고, 능력 있고 자상하고 사랑 많은 어버이를 버리고, 무식하고 무능한 다른 어버이를 좇는 것이며, 천국의 시민권을 버리고, 지옥의 시민권을 좇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성서는 우리가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할 이유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놓을 만큼 우리를 사랑하는 남편이시고, 어버이이시며, 천국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한평생 죽을 때까지 배우자만 사랑하고 헌신하겠다고 결혼서약을 해놓고서도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고, 마음을 줄 수가 있다. 심지어 결혼서약을 파기하고 이혼도 불사한다. 인간은 피조물이고, 완전하지도 완벽하지도 전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가 알고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그가 원했던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잘못 알았을 수도 있다. 혹은 뭔가가 탐나서 거짓으로 서약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한번 서약한 것을 번복할 수도 없고, 안했어야할 서약을 하실 수도 없고, 한번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을 잘못 알았거나 실수로 알 수가 없으시다. 하나님이 한번 사랑을 준 사람, 하나님이 한번 마음을 준 사람은 하나님이 완벽하게 아신 것이고, 탁월하고 완전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후회하심이 없다. 하나님은 한번 사랑하셨으면, 한번 마음을 주셨으면, 한번 선택하셨으면, 한번 서약하셨으면, 결코 번복도 후회도 실수도 없는 운명에 묶여 존재하신다. 하나님에게는, 인간처럼 살다가 싫으면 헤어지고, 한 때 사랑했다가 미워지고 싫어지고 꼴도 보기 싫어지는 그런 변심과 이랬다저랬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없으시다. 하나님은 한번 선택하시면 끝까지 가셔야 한다. 그것이 절대 신의 운명이다. 하나님이 한번 사랑하셨으면 그 어떤 경우에도 후회나 실수나 번복이 없으시다. 끝까지 가는 사랑, 그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절대적이고 운명적인가를 표현해 준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목숨을 거신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고, 고통 속에 죽을지언정 한번 사랑한 것을 싫다고 번복하실 수 없다. 하나님이 한번 우리를 아셨으면, 끝까지 간다. 하나님이 한번 우리를 사랑하셨으면, 끝까지 간다. 하나님이 한번 우리를 배우자로 삼으셨으면, 끝까지 간다. 하나님이 한번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으면, 끝까지 간다. 하나님이 한번 우리를 구원하셨으면, 끝까지 간다. 그것이 하나님의 운명적 사랑이고, 그것이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밖에 없는 복된 운명이다. 우리는 구원받을 수밖에 없고, 영생을 누릴 수밖에 없으며, 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를 목숨 걸고 사랑하시는 절대 신의 신부가 되는 것이고, 자녀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후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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