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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푼 해독제(창 1:1, 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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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973 2009.07.0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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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푼 해독제(창 1:1, 출 20:1-6)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볼 수 있다면, 먼 과거로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마법에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계곡과 수풀 속은 물론이고, 물속과 공기 중에 귀신들로 가득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무당과 심령술사들, 심지어 김기동 목사의 귀신론을 따르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기독교가 유럽과 지중해 세계의 국교가 되기 이전 로마제국의 속주민들은 3만개가 넘는 신들을 믿었고, 각종 신전들을 세워 제물을 바쳤다. 동양인들은 심지어 지금도 바위나 나무에 소원을 빌기도 하고, 강이나 바다에 혹은 나무에 제물을 바치기도 한다. 그로 인해서 정령들을 숭배하고 굿을 하는 무교가 생기고, 다신론과 범신론이 나왔다. 또 조상신을 섬기는 유교와 돌부처에 절하는 불교가 성행하였다. 유교와 불교의 본래 의도가 조상신을 섬기고 돌부처에 소원을 비는 데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교와의 혼합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기복종교인 무교는 마치 매캐한 연기처럼 틈만 있으면 어디든 비집고 스며들어 사람들의 영혼에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에는 무엇에든지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돕는 잡신들이 있다고 믿었다. 이 잡신들을 조종하고 이용하여 그들의 마력으로 병을 고치고 원한을 산 가문이나 부족의 원수를 갚는 데 쓰기를 원하였다. 동일한 사상과 주술적 행동들이 미주대륙의 인디언들과 아프리카대륙의 흑인들에게도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있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 주술적 마법에 걸려있었다.

이 마법을 풀어버린 해독제가 바로 창세기의 창조신앙이었다. 창조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연을 분리시키고 자연의 마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 창세기의 창조신앙이전에는 자연이 경외와 예배의 대상이었다. 창세기를 기록한 히브리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바벨론 사람들 만하더라도 해, 달, 별들을 신성시 하였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그것들이 야훼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것들이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았다. 해, 달, 별들은 신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고, 단지 인간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피조물에 지나지 않으며, 야훼 하나님 한분 이외에 그 어떤 것도 경배와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 오히려 자연은 야훼 하나님이 만들어 인간의 손에 맡긴 인간의 책임 하에 지배되고 돌봄을 받고 보존되어야할 존재라는 확신을 가졌다.

성서에는 신화도 없고, 여신도 없고, 마력적 인간의 전설과 신화에 나오는 동물의 우화가 없다. 인간은 창조된 직후 짐승들의 이름을 짓는 책임을 받았다. 인간은 짐승들의 주인이요 명령자이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다. 자연은 유한하고 일시적이며 만들어진 존재다.

그러므로 자연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고대인들이 자연에서 구원을 얻고자할 때, 히브리인들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로부터 구원을 얻고자 하였다. 자연세계의 마법에서 인간을 해방시킨 이 창조신앙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온갖 잡신과 우상의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 야훼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이 신앙이 마귀와 귀신을 내쫓고 과학기술을 위해 자연을 개방시켰다.

권력은 신성(神性)을 참칭(僭稱)한다. 권력이 황제의 것처럼 정치 군사적이든, 대제사장의 것처럼 종교적이든, 사장, 총장, 가부장의 것처럼 크고 작은 집단의 것이든 모든 권력은 신(神)의 위임으로 주어졌다고 믿어졌다.

고대의 황제들은 대부분 신(神)이나 신의 아들들로 숭배되었다. 권력은 신성한 것이었고, 신의 권력을 위임받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권력에 순복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도리였다. 나이 20세에 세계정복에 나선 알렉산드로스는 올림퍼스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아들로 숭배받기를 원했고, 그의 모친도 어린시절 그에게 제우스의 아들임을 꾸준히 주입시켰다. 로제제국의 초대황제인 아우구스투스 재임 시에 예수님이 출생하셨고, 제국의 황제들이 신성을 주장하며 숭배를 강요함으로써 초대교회에 박해의 풍랑이 일었다. 계시록 13장 5절에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라고 쓴 것은 ‘주(主)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에게 분향하도록 강요한 뻔뻔스럽고 가증한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염두에 둔 말이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일본의 왕이 ‘가미사마’ 또는 ‘천황’이라 부르며 신성(神性)을 주장하면서 ‘황거요배’ 또는 ‘동방요배’(東方遙拜)를 강요한 사실이 있다. 정오 사이렌 소리가 나면 예배 중이라도 일제히 일어서서 동쪽을 향해 절을 해야 했다. 일제 강점기 말엽 신사참배가 심하던 때에는 예배당에 일본에서 가장 높은 신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을 벽에다 걸어놓고 절을 하게 했고,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게 하였다. 예배당 안에는 ‘천조대신’뿐 아니라, ‘가미사마’ 곧 신(神)으로 신격화된 일왕의 사진을 강단 뒤 벽에 걸게 하였고, '가미나다'라 불리는 이동식 신사(神社)를 예배당 안 동편에 놓게 하였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이들을 향해서 먼저 예의를 갖춘 다음에 하나님께 예배할 수가 있었다. 초대교회가 강요받았던 황제숭배와 유사한 강요를 일제 강점기 때에 조선인들도 받았던 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독재 권력에 불복종한 대가로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였으며, 목숨을 빼앗겼다. 이 의로운 항거와 순교가 권력의 마법을 푼 사건들이었다. 예배의 대상은 오로지 한분 야훼 하나님뿐임을 죽음으로써 천명하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히브리인들의 이집트탈출의 영광은 권력의 마법을 푼 해독제였다. 출애굽사건은 합법화된 군주, 곧 태양신의 아들로서 정치적 주권을 확립시킨 바로에 대항한 반란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사건은 베드로가 가진 음부의 권세뿐 아니라 황제의 검을 휘두르고 싶어 했던 가톨릭 교황들의 신성의 찬탈(簒奪), 곧 우상숭배에 대항한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반국가적이거나 반권력적인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는 정치권력을 조건부로 수락하였다. 기독교인들은 황제를 위해서 기도할 뜻을 분명히 갖고 있었고, 실제로 기도하였다. 그러나 황제를 위한 제단에 향을 피우지는 않았다. 제단에 향을 피우고 제사하기를 거절한 것은 황제숭배를 거부한 것이다. 이로 인해서 극심한 탄압을 받았지만, 기독교는 끝내 이겼다. 여기서부터 민주주의 꽃이 활짝 피게 된 것이다. 신성을 주장하는 권력의 마법에서 인간을 해방시킨 출애굽사건과 같은 우상숭배를 거부한 사건들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였고, 신성을 참칭(僭稱)하는 모든 거짓 신들의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

시내산 언약이란 히브리 민족이 출애굽직후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선민서약을 말한다. 이 서약의 내용이 십계명과 ‘토라’라 불리는 구약성서 맨 앞에 실린 다섯 권의 율법서들이다. 유대인들은 이 율법서들 속에 613개의 계명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들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인 계명이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제1,2계명이다.

이 계명에서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 한분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신(神)이 아니며,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나님 한분이외에는 그 가치가 중립적이란 뜻이다. 절대가치란 천지만물을 만드신 야훼 하나님 한분에게만 있는 것이고, 나머지 피조물에게는 절대가치란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거짓 가치의 마법에 걸려 있다. 출세와 성공과 명예와 돈에다가 절대가치를 부여한다. 사람들은 재산에, 권세에, 자식에, 건강 등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다 일시적이고 유한한 것들이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은 이 잘못된 가치의 마법에서 풀려나라는 것이다. 하나님 한분에게만 가치를 두고, 그 분만을 섬기고 인정하는 것이 가치의 마법에서 풀려나는 해독제요, 소유욕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는 길이다.

우상은 만들어진 것들이고 소유의 대상이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만들어진 것들을 소유하려는 욕심이다. 그러나 만들어진 것들에는 궁극적 가치가 없다. 소유숭배에 빠지면 욕심의 노예가 된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삶이냐??에서 “우상이란 우린 자신이 만들고 우리 자신의 힘을 투영시켜서 우리 자신을 메마르게 하는 하나의 ‘사물’이다.”고 했다. 또 “우상은 하나의 사물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소유’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내가 그것에 복종함으로써 그것은 나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상을 부정하는 하나님,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신(神)을 (그런 값싼 신을) 부정하는 하나님이시다.”고 하였다. 인간이 손에 넣어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상을 부정하는 하나님이시오,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짜 신을 부정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시내산 언약을 통해서 주신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은 인간사회에 과학기술문명을 가능케 하였고,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물질숭배의 마법에서 풀려나게 하였다. 하나님만이 절대가치이시고, 절대권력이시다. 나머지는 다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탄이든, 귀신이든, 천사든, 재물이든, 권세든 명예든 모두 다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가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외의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이 우주상에 예배를 받으실 분은 창조주 야훼 하나님 한분뿐이시다. 하나님이외의 것은 영이든 육이든 물질이든 다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물욕, 명예욕, 권세욕, 소유욕은 모두가 다 우상숭배이다. 모든 권세와 명예는 다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물질 또한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정신, 이것이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제1,2계명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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