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인의 영성과 믿음(신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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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인의 영성과 믿음(신 6:4-9)
고대 유대인들은 타 민족들이 갖지 못한 심오한 영성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발견한 하나님은 타민족들의 우상 신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타민족의 신들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숨 쉬지 못하는 죽은 신들이었다면, 유대인들의 하나님은 살아서 활동하시는 천지를 지으신 유일신이었다. 따라서 유대교에는 타종교들에서 발견되는 신들의 형상도 신화도 여성 사제도 없었고, 신전도 예루살렘에 단 한 개만 있었으며, 성소에는 일반사람들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타민족들은 많은 신들을 갖고 있었고, 그 형상들을 돌에 새겼지만, 유대인들은 단 한분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형상을 어떤 형태로든 만들지 못하도록 제2계명에 명시했다. 사람의 손으로 새길 수 있는 것은 신이 아니다. 참신은 영이시고 신비에 쌓여있어서 그 형체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었고, 말씀으로만 인간과 관계하시는 하나님이셨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이 점을 인정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확실히 무상(無上)의 정신적 통찰력을 타고난 민족이었다.”고 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형체를 갖지 못한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를 갖고 있었다. 유대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유대교인들이 하나님의 보좌라 믿었던 법궤 속에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건네주신 토라가 있었다. 그들의 종교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귀로 듣고 온몸으로 행동에 옮기는 실천종교였다. 따라서 유대교에는 유대교인이 되기 위해서 알아야할 교리(dogma)도 신앙고백서도 없다. 유대교에 믿음의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교에서는 교리보다는 실천적 행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절대적이고 영속적인 진리와 유일하신 참신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유일신을 그들 민족의 신으로 독점해버렸다. 하나님이 타민족들의 신이 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한분밖에 없는 신을 독점해 버렸으니, 타민족들에게 참신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이 신(神)의 독점의식의 절정이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다른 민족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에는 단 한 개의 성전만 허락하였다. 그나마도 하나님을 지성소에 묶어뒀다.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하루 법궤 앞에서 두어 차례 독대할 수 있었다. 보통사람들은 성전내부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들의 유일신 하나님이 지성소에서 해방되신 것은 바빌로니아 군대의 침략에 의해서였다. 성전은 능욕되었고, 백성은 모두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에 끌려갔다. 이 치욕적인 사건이 있고난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은 성전 지성소에서 해방되셨다. 성전이 붕괴되고 바빌로니아에 끌려간 이후로는 더 이상 성전예배가 불가능하였다. 예루살렘에 단 한 개의 성전만을 허용한 도그마 때문에 바빌로니아에 불법성전을 지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비로소 유대인들은 유일신 하나님이 더 이상 성전에 갇혀 계시지 않고, 그들이 머문 곳이면 어디에든지 함께 하시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을 짓지 못하는 대신에 회당을 짓고 그곳에 모여서 성전에서 드렸던 제사예배의 횟수만큼 하루 세 번 이상 기도회를 가졌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예루살렘에만 계시지 않고, 먼 바빌로니아에도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교리의 종교가 아니라, 행동적인 실천종교이기 때문에 신앙고백서가 없다. 가장 널리 수용되고 있는 유대교 신앙은 중세의 유대교 랍비 람밤(Rambam, Maimonides)이 정리한 열 세 개의 믿음의 원리들이다.
1)하나님은 존재하신다. 2)하나님은 한분이시고 유일하시다. 3)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시다. 4)하나님은 영원하시다. 5)기도는 오직 하나님께 직통으로 연결되고 다른 누구에게도 연결되지 않는다. 이 5번은 기독교의 성자 그리스도님과 성령 하나님을 부인하는 내용이다. 여호와증인들의 주장이 바로 이 유대교인들의 주장과 같은 단독신론이다. 기독교가 초대교회 때로부터 지금까지 앓고 있는 병들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유대교적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여기에는 여호와증인들과 안식일교인들, 예수님을 장차 오실 자 메시아로 믿는 유대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성직을 사제직으로 착각하는 권위주의자들, 남성우월주의자들, 신약성서보다는 구약성서에 더 집착하고 가르치는 자들이 포함된다. 6)예언자들의 말씀은 진실하다. 7)모세의 예언들은 진실하다. 모세는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하였다. 8)성문 토라 즉 모세오경과 구전 토라 즉 탈무드와 기타 문서들에 포함된 율법들이 모세에게 주어졌다. 이 8번과 관련해서 개신교가 유대교나 가톨릭교와 다른 점은 구전과 외경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 있다. 참다운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구약성서에 기초한 유대교적 기독교를 버리고, 신약성서에 기초를 둬야 한다. 9)성문 토라와 구전 토라 이외에 다른 토라는 없다. 10)하나님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아신다. 11)하나님은 선한 사람들을 보상하시고, 악한 사람들을 벌하신다. 12)메시아는 오실 것이다. 이 12번과 관련해서 유대교인들은 2천 년 전에 이미 오신 메시아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13)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이다. 13번의 죽은 자의 부활은 12번의 메시아사상과 맞물려 있다. 메시아가 통치하는 때가 오면 신정국가가 예루살렘 시온에 세워질 것이고, 성전과 제사예배가 재건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 13개의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원리들을 모든 유대인들이 다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유대교에는 정통주의자들, 보수주의자들, 진보주의자들이 있어서 주장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 또 전 세계에 흩어진 1400만 유대인들 가운데 신앙을 가진 자는 40퍼센트를 밑돈다.
이들 13개의 신앙의 원리들을 따르는 유대교인들은 메시아 왕국이 재건되면, 토라(모세오경)에 실린 613개의 모든 계명들을 다 지키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오늘날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성전과 성전제사들과 예배들에 관련된 계명들은 지키지 않는다. 범법 절차들에 관한 계명들도 지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직 메시아가 오시지 않았고, 그가 오셔서 세울 신정국가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에 건국된 이스라엘 나라는 세속국가이며, 신정국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신정국가가 되는 때는 메시아가 오시고, 예루살렘 성전과 성전제사와 성전예배가 재건되며, 세계가 유대교를 국교로 삼고 이스라엘 국가의 통제아래 놓이는 때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스라엘이 아직 회복되지 못했다고 믿는다. 이런 주장은 이미 메시아가 오셨고, 그 분이 세운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의 신정국가란 사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유대교인들이 하나님에 관해서 가르치는 내용은 열 가지 정도가 된다. 1)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것(출 20:2; 신 5:6). 2)하나님이외의 다른 신이 존재한다거나 그 신이 영원하다는 개념을 수용하지 말 것(출 20:3). 3)신성모독하지 말 것(출 22:28). 4)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것(레 22:32). 5)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말 것(레 22:32). 6)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과 완전한 일체이신 것을 알 것(신 6:4). 7)하나님을 사랑할 것(신 6:5). 8)하나님을 경외할 것(신 6:13, 10:20). 9)하나님을 시험하지 말 것(신 6:16). 10)하나님의 선하시고 올곧은 방법들을 본받을 것(신 28:9, 비교 엡 5:1). 유대인들에게는 열거한 몇 가지 개념들 말고는 어떤 공식적이고 결정적인 교리가 없다. 유대교인들은 믿음의 교리보다는 실천적 행동에 더 큰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유대교의 큰 업적은 하나님을 관계의 신으로 이해한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떠돌이 조상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고, 이삭과 야곱과 노동의 착취 속에서 고통당하던 조상들에게 찾아오셨다. 조상들을 독수리 날개에 업어 홍해를 건너게 하셨고, 약속의 땅을 안식처로 주셨다. 이처럼 초월적이고 인간의 영역밖에 계신 타자로서의 하나님을 인간세계에 끌어들여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자기 민족과 깊은 관계, 마치 남녀가 만나 사랑을 키운 후에 결혼서약을 통해서 부부가 되는 것처럼, 자기 민족을 택하여 선민을 삼으신 하나님으로 이해하였다.
이처럼 유대교인들은 관계들(relationships), 즉 하나님과 인류의 관계, 하나님과 유대민족의 관계, 유대민족과 이스라엘 땅의 관계, 인류와 인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성서는 이들 관계들의 발전, 즉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관계형성을 거쳐 하나님과 유대민족의 관계형성과 그 이후의 관계들에 대해서 전한다. 또한 성서는 이들 관계들에 의해서 형성된 상호의무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정통주의 유대교인들은 이들 실천적 행동들에는 랍비들에 의해서 제정된 게자이라 율법들 즉 울타리법과 오랜 관행들, 그리고 토라에 하나님께서 주신 613개의 계명들이 있다고 믿고 있다.
유대교인들에게 있는 심각한 문제점은 하나님께서 주신 613개의 계명들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그 계명들이 가진 본래의 뜻과 취지에 어긋난 요상한 울타리 법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만들어 오랜 관행으로 지키는 데 있다. 신약성서에서 문제를 삼았던 유대교의 율법주의의 문제점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들에 있지 않고 랍비들이 만든 이들 울타리율법들에 있었다. 유대인들의 신관을 한걸음 더 발전시킨 것은 기독교였다. 기독교는 이스라엘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어서 온 인류 가운데 계시고, 인류의 역사를 이끌고 가시면서 섭리하시고 경륜하실 뿐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아바 아버지 하나님을 선포하였다.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해서 성전이 능욕되고, 백성이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에 끌려가는 치욕적인 사건이 있고난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서 해방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민족신(神)으로 속박되었던 하나님이 기독교를 통해서 온 인류에게 사랑을 쏟아 부으신 은총의 하나님으로 또 한 번의 해방을 맞으셨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단순히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에서 그치지 않고, 아바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이시다.
마르틴 루터가 구약의 엄한 아버지 개념과 공포에서 벗어나 사랑의 아버지를 깨달았던 것처럼, (이것을 코페르니쿠스적 종교혁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체험하는 제2의 루터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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