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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의 세계(막 8: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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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6,985 2009.11.1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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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의 세계(막 8:22-26)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오늘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주는 교훈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한다. 원래 이 비유는 주전 400여 년 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가 글라우콘에게 들려준 우화로써 플라톤이 쓴 {공화국} 일명 {국가론} 7권에 나온다. 본래는 정치에 관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죄수들은 어린시절부터 지하 동굴에서 발과 목이 쇠사슬에 묶여 있어서 움직일 수 없고, 오직 앞만 볼 수 있으며, 머리를 돌릴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죄수들이 갇힌 곳은 출입구보다 경사가 낮은 곳에 있고, 높은 입구 쪽에는 불이 타고 있어서 죄수들이 바라보는 벽은 마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인형극의 무대와 같다. 죄수들보다 더 높은 뒤쪽에서는 온갖 종류의 그릇과 나무와 돌로 깎아 만든 조각상과 동물의 형상과 여러 형태의 물건들을 나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오고가며 대화를 나누곤 한다. 그들의 움직임을 입구 쪽의 불빛이 죄수들의 정면에 그림자들을 만들어낸다. 족쇄에 묶인 죄수들은 기억이 없는 어린시절부터 움직이지 못했고, 고개조차 돌려보지 못했기 때문에 뒤쪽의 불빛이 벽면에 만들어내는 그림자밖에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심지어 옆에 있는 다른 죄수도 볼 수가 없다. 죄수들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들도 벽면에 부딪쳐 울리는 메아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소리들이 벽면에 비친 그림자에서 나온 것으로 착각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진리는 문자적으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에게 묻는다. 만일 그들 중 누군가가 족쇄로부터 풀려나 돌연히 일어서 사방을 둘러본 후 불빛을 향해서 걷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처음에 그는 날카로운 고통을 맛볼 것이다. 불빛이 그를 괴롭힐 것이고, 그는 잠시 사물의 실체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전에 본 것들은 한낱 그림자에 불과했다고 누군가가 말해주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는 점차 실재에 접근하고 있고, 눈은 점차 실체를 향해서 열려지면서 결국 그것을 분명하게 보게 될 때 일어날 반응이 무엇이겠는가?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에게 또 말한다. 족쇄에서 풀린 자가 그가 보고 있는 물체들의 이름이 무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황해 하지 않겠는가? 그가 평생 보아온 그림자들이 처음 보는 물체들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지 않겠는가? 만일 그가 억지로 불빛을 보게 된다면, 어찌 눈에 통증이 없겠으며, 통증이 없는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지금 보는 것들보다 이전에 보았던 것들이 훨씬 더 명확한 실체라고 생각하면서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그가 만일 이 유혹을 이긴다면, 그는 결국 새로운 세계를 보는데 익숙해지게 된다. 사물의 실체는 물론이고, 밤하늘의 달과 별들과 한낮의 태양까지 볼 수 있게 되며, 이 태양이 연월일을 만든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참 세계의 것들, 즉 그가 과거에 보았던 그림자들의 실체들에 대해서 그의 동료들에게 밝히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난날 탈출을 주저했던 일, 동굴 속에서 가졌던 우물 안 개구리식의 지혜와 지식, 무지와 고통 속에 묶인 동료 죄수들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지 않겠으며, 지금의 놀라운 변화에 대해서 크게 기뻐하지 않겠는가?

어둠의 자녀들

지하 동굴과 동굴 속 그림자들은 실체나 본질이 아닌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를 말한다. 죄수는 인간이며, 족쇄는 자신을 묶는 무지이다. 태양은 참 세계의 모체이시고 주인이신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태양이 비치는 동굴의 입구를 향하여 오르는 족쇄 풀린 죄수의 여행은 인간의 영혼이 참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에 오름(aliyah)을 뜻한다.

죄수의 족쇄를 푼 열쇠는 진리이다. 이 진리가 족쇄에 묶인 죄수를 속박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다. 무명을 씻는 데는 약간의 고통이 따르지만, 그를 본질과 빛의 세계로 이끌어낸 것은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서 인간은 본질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교육은 성 삼위 하나님에 대한 것이요, 교사는 성령님이시며,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님이시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 14:6)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요, 하나님을 알게 하는 진리요,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도달하게 하는 능력이요 지혜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하였다. 이 분이 십자가에서 흘린 대속의 보혈이 인간을 어둠의 권세와 죄의 족쇄에서 풀려나게 하는 능력이요 지혜이다.

교육의 역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도이다. 어둠과 무명을 벗고 깨우친 누군가가 어둠의 세계에 갇힌 자들을 강권하여 끌어내지 않는 한, 비유에서 보았듯이, 그들은 결코 빛의 세계로 탈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해야할 자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전도를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학에서는 지하 동굴 속에서 희미하게 보는 그림자를 일반계시라고 말하고, 태양이 작열하는 대지에서 분명하게 보는 실체를 특별계시라고 말한다. 인간은 모두 지하 동굴에 갇힌 죄수들과 같아서 자기가 처한 가장 근본적인 측면들조차 깨닫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무지의 동굴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인간은 눈으로 보는 주변의 것들을 우주 전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보다 더 높은 차원의 대지와 하늘과 태양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이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실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설명처럼, 동굴 속에서 인간이 보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동굴 안은 희미한 빛만 비치기 때문에 형상과 모양을 식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인간들은 항상 이 동굴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어둡고 흐리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기가 보는 그림자가 실체요,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들이 보는 세계에 체면이 걸려있어서 그것의 공허함을 모른다. 그들은 그것들이 모두 허상이란 것을 모른 채, 위로를 받고, 정보를 얻고, 안도감을 누린다.

인간의 배후에는 세 가지 물체들이 있다. 동굴 벽면에 빛을 비치는 불, 동굴 밖으로 나가는 길, 동굴벽면에 그림자를 만드는 움직이는 물체들이 그것들이다. 인간은 단지 자기 앞에 있는 그림자들만 본다. 그래서 무지의 족쇄에 묶인 인간들은 이 그림자들이 실체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 그림자들이 참과 진리라고 확신한다. 이런 어리석음이 지금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어둠의 자녀들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소개한 인간이란 흑암에 앉은 자들, 곧 어둠의 자녀들을 말한다.

빛의 자녀들

요한복음 1장 5절에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는 말씀이 있다. 사람이 빛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마치 족쇄에 묶인 동굴의 죄수들처럼 빛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의 자녀들은 족쇄를 풀고 어둠의 동굴을 탈출하여 빛의 세계로 나온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비유에서와 같이 어떤 긍정의 변화 혹은 믿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동굴의 비유에서 어떤 사람이 족쇄를 풀고 일어나 주변을 둘러본다. 전례가 없는 이들 움직임들은 그에게 강렬한 불편을 느끼게 한다. 생전 처음으로 일어서고, 돌아서고, 불을 바라보는 이 움직임들은 적어도 그에게는 부자연스런 것이기 때문에 익숙지 못한 근육과 눈을 긴장시키고 혼란에 빠지게 한다. 모든 것이 생소해 보이고,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럽고,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그 사람을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그 사람은 이 모든 새로운 것들로부터 돌아서기를 절망적으로 바란다. 그러나 만약 그가 이 강렬한 유혹을 이기고, 동굴의 길을 따라 땅위로 올라간다면 어떻겠는가? 태양빛이 항상 동굴에서만 살았던 그 사람을 완전히 압도해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고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상황은 변하기 시작한다. 눈은 곧 새로운 것에 적응하게 되고, 그 사람은 태양뿐 아니라 대지와 하늘과 세계를 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은 이제 지하 동굴을 넘어 우주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굴은 세계가 아니다. 족쇄에 묶여 사는 것은 자유로운 삶이 아니다. 벽면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는 것은 실재에 관한 지식이 아니다. 족쇄에서 풀린 사람은 이런 비밀을 깨닫게 된다.

빛의 세계로 나온 사람은 이 놀라운 지식을 동굴에 묶여있는 죄수들에게 가르칠 긴급성을 느낀다. 그래서 비유에서 그 사람은 왔던 길을 따라 동굴로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동굴밖에 진리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죄수들에게 전한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이 족쇄에 묶여 있으며,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보고 살아온 저 그림자들은 단지 그들이 결코 본 적이 없는 실체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영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 비유에서 죄수들은 그가 미쳤거나 위험하다고 단정한다. 그들은 그의 시력이 엉망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뒤를 보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죄수들은 뒤를 결코 볼 수 없으므로, 그는 참에서 멀어진 것이며, 허튼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만약 그가 지속적으로 죄수들을 해방시키려고 한다면, 소크라테스는 그가 죄수들에게 살해되고 말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빛의 증거자 세례요한과 참 빛 예수님도 어둠의 자녀들에게 살해된 것을 보아 그의 예상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의 앎은 마치 그림자가 실체가 아닌 것처럼 진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대한 세상의 편견은 자주 논쟁적이며, 반감으로 일관된다.

마가복음 8장 22-26절에서 맹인은 한 때 어둠의 세계에 갇힌 죄수였으나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을 만나 족쇄를 풀고 동굴 입구로 나와 빛의 세계에 들어간 그리스도인의 상징이다. 그가 눈을 뜨고 사물을 분별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으나 일단 눈을 뜬 후에는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처럼 족쇄에 묶여 그림자만 보고 살던 어둠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모든 것을 밝히 보는 빛의 세계로 들어가는 변화를 의미한다. 이런 변화가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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