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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교회(고후 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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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838 2009.12.2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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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교회(고후 6:1-10)

천지의 총수이신 하나님의 일군으로서의 비서정신

고린도후서 6장 1-10절은 정체성과 역사의식에 관한 내용이다. 첫째, 우리가 누구냐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답을 1절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 4절은 ‘하나님의 일군’이라고 적고 있다.

대기업의 CEO들은 비서실 출신이 많다는 통계가 있다. 총수의 ‘가방모찌,’ ‘복심(腹心),’ ‘그림자’로 불리는 비서실장 출신 CEO가 부쩍 늘고 있다. 몇 년 전에 삼성사장단의 47%가 비서실 출신이라는 보도가 있은 후 ??비서처럼 하라??는 책도 나왔다. 비서실 출신들이 CEO로 승진하는 이유는 세 가지 정도 된다. 첫째는 오너인 총수의 의중을 가장 잘 헤아린다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힐난과 고통을 무릅쓰고 온몸으로 오너를 방어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그룹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업무능력이 뛰어난 일군이란 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회계 장부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자산’이라 불린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1-10절에서 이 세 가지 특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한 자신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말함으로써 자신들이 천하의 총수이신 하나님의 비서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깝고 친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고 또 온몸을 던져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3-5절은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을 언급함으로써 천지대군의 비서로서 겪었던 세상의 비난과 박해와 험난한 가시밭길을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6-7절에서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한 업무능력을 갖춘 신실한 일군들이었음을 확신하고 있다. 그런 그들을 보는 세상의 눈과 천하의 총수이신 하나님이 보시는 눈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8-10절에서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하였다.

충실한 비서들이 CEO로 승진하듯이, 하나님의 충실한 일군들이 고난을 겪은 후에 얻게 될 영광이 비교될 수 없음을 확신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선언하였다. 또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서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하였다.

굉장한 역설이다. 대기업의 총수와 함께 일하는 자는 고통이 없고, 오로지 명예와 권세와 부만 있을 것 같은데, 천지의 총수이신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는 능력과 지혜와 축복만 있을 것 같은데, 영광의 그날이 오기까지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일하는가에 성패가 걸려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천지대군이시기 때문에 결코 실패나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다. 이분과 함께 일하는 자들은 그 결국이 반드시 성공이요 승리이다.

천지의 총수이신 하나님의 일군으로서의 정체성

고린도후서 6장 1절,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천지의 총수이신 하나님의 동역자란 의식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협력자란 정체성이다. 이 두 가지 동역자의식과 협력자정체성은 하나님 혼자서 일하시거나 일군인 나 혼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의식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협력하고 순종하는 비서정신을 뜻한다. 시너지(synergy)란 말이 있다. 신인협력이란 말도 있다. 하나님만이 일하시는 것이 아니고, 일군인 우리만이 일하는 것도 아닌, 하나님과 일군인 우리가 함께 일하는 것을 말한다. 신입협력에 기적이 일어나고 역사가 만들어진다. 나 혼자 한다는 자만(自慢), 나만이 할 수 있다는 교만(驕慢)은 하나님의 일을 망치게 한다.

하나님과 인간관계는 부모와 자식관계와 같다. 자식은 어릴수록 부모에게 더 의지한다. 부모도 희생적으로 어린 자식을 돌본다. 자식은 성장할수록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걷고, 스스로 먹고, 스스로 일하면서 부모의 품에서 독립해 나간다. 독립이 지나치면 부모를 잊어버린다. 의존심이 강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만 의지한다. 부모의 은혜를 깨달은 자녀는 효도한다. 부모의 뜻을 따를 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용돈을 드리고 또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드린다. 무엇보다 부모의 지혜와 경험을 소중히 여겨 조언을 구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도하듯이, 부모님의 지혜와 경험을 소중히 여겨 조언을 구하듯이, 부모님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사는 것 같으면서도 부모님과 함께 동역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거두듯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님과 함께 일할 때,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고, 기적을 만들 수 있다.

부모님은 자식의 뿌리요, 근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무시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그가 부모 없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부모의 도움이나 이웃의 도움 없이 성장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절대로 혼자서 나서 혼자서 자라고 혼자서 일어설 수 없다.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도록 되어 있다. 부모를 부정한다고 자신의 근본인 부모가 없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을 부정한다고 인류의 근본인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니다. 성장한 자식이 자신의 근본인 부모를 무시하듯이,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잘 사는 것 같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의 삶에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류의 어버이이신 하나님께 대한 불효요, 무지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네메시스, 즉 보응이 있었다는 것이 역사의 증언이다.

자신의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것을 일컬어 신앙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도움을 무시한 채, 자신의 능력만을 의지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일컬어 능력이 많다고 말할 수 없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자기가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나님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을 진인사대천명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자신의 일에 함께 하시고 함께 동역하신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드리면서 하나님의 결정에 하나님의 판단에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하심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일컬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일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천지의 총수이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아는 역사의식

역사의식은 때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바울은 자기 때를 일컬어 ‘구원의 날,’ ‘은혜의 때’라고 불렀다. 이것은 본래 이사야서 49장 8절을 인용한 것이다. 자기 시대가 바로 이 때라는 인식, 즉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는 인식이 역사의식이다. 이런 역사관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지금’이란 역사의식 속에서 시급히 수행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그 일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하나님의 선교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백성에게 빛을 가져가는 것이다. 빛은 모든 살림의 일의 대표적 상징이다.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선교는 빛의 일이었다. 하나님의 선교는 어둠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에로 바꾸는 창조의 일, 즉 빛과 질서와 살림의 일이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들이 모두 빛의 일, 질서의 일, 살림의 일이었다. 예수님은 “큰 빛”(마 4:16, 요일 1:5) 하나님을 비취는 ‘세상의 빛’(요 8:12)이셨고, 우리에게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 5:14)고 하셨다. 이 빛은 생명의 빛, 살림의 빛을 말한다. 그러므로 선교는 살림의 일이다.

둘째, 하나님이 없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가는 것이다. 성탄의 의미 뿐 아니라, 기독교가 갖는 혹은 행하는 모든 것, 예배, 침례, 성찬, 안수, 십자가 등은 모두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선교는 하나님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없는 세상을 하나님이 계신 세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임마누엘,’ ‘파루시아,’ 혹은 ‘여호와 삼마’의 일이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다’는 뜻이고. 파루시아는 ‘임재,’ ‘도착’의 뜻이며, 여호와 삼마는 ‘주님이 그곳에 계시다’는 뜻이다. 선교는,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는 사람에게 임마누엘 혹은 하나님의 파루시아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 하나님이 함께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는 것이다.

셋째, 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하나님이 없는 백성,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 하나님의 선물, 소위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가는 것이다. 이 선물이 구원이고, 새로운 가치관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이고, 새로운 삶이다.

이렇게 선교란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빛을, 하나님이 없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는 살림의 일이다. 우리 모두는 이 일을 위해 부름 받고 보내심을 받은 선교사들이다. 그리스도의 일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 곧 신실함이다.

2009년의 일들은 다 잊고, 2010년 경인년에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교회’(A Christian Church Working Together with God)로 새롭게 출발하자.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사람의 능력과 지혜만으로 하는 일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아무리 능력이 없고, 지혜가 부족해도 하나님과 함께 일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하나님에게는 실패나 실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천지의 총수이신 하나님의 일군으로서의 비서정신으로, 천지의 총수이신 하나님의 일군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천지의 총수이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아는 역사의식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교회로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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