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읽는 믿음의 백호들(눅 21: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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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읽는 믿음의 백호들(눅 21:29-31)
백호의 정체성
자기가 누군지,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자기의 때가 어느 때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서사적 인물이든, 세속사적 인물이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소위 우리가 말하는 크고 작은 영웅들은 모두가 이 세 가지의 답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2010년 새해 첫 주를 맞아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할 질문도 역시 이 세 가지이다. 내가 누구냐, 내 정체가 무엇이냐, 지금이 어느 때냐? 질문은 같아도 답은 다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답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10간과 자(쥐), 축(소), 인(호랑이), 묘(토끼), 진(용), 사(뱀), 오(말), 미(양), 신(원숭이), 유(닭), 술(개), 해(돼지), 12지를 묶어 60년마다 반복되게 함으로써 때와 시간을 구별하였다. 작년 2009년은 소처럼 우직하지만 근면하고 끈질기게 살라는 의미가 있었고, 금년 2010년은 백호처럼 용맹하지만 민첩하고 신중하게 살라는 의미가 있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신화, 설화,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 민족과 친숙한 동물이다. 특히 금년은 황금돼지도 안 부럽다는 백호 띠의 해다. 백호의 용맹함과 민첩함과 신중함이 2010년을 시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란다.
용맹만 해서도 안 되고, 민첩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 신중함이 있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호랑이는 용맹하고, 민첩하며, 신중하고, 약간의 위장술을 갖추고 있으며, 후각과 청각이 예민하고, 야행성이며, 수영을 잘한다. 이토록 다방면의 사냥능력을 갖춘 호랑이일지라도 사냥에 성공할 확률은 10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열 번 시도해서 한번 정도 성공한다고 한다.
동물세계의 제왕인 호랑이의 삶에도 외로움과 고단함이 깊숙이 배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랑이는 번식기를 제외하고는 단독생활을 한다. 또 야생호랑이는 자기가 잡은 짐승의 사체이외에 다른 동물의 사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만큼 사냥에 성공하기까지는 배를 곯아야 한다.
호랑이는 비록 외롭고 배고프고 고단하지만 품위만큼은 잃지 않는다. 호랑이가 용기가 필요할 때 용맹하고, 움직일 때 민첩하고 유연하며, 몸을 낮추고 숨기는 신중함을 보이지만, 결코 품위를 잃지 않는 것처럼,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다운 품위를 제대로 유지하는 2010년이 되기를 바란다.
선조들이 신성시한 동물들로 청룡과 봉황(주작)과 백호와 현무가 있다. 현무는 아마 처음 들어볼 것이다. 거북과 뱀이 모인 것을 이르는데 북방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검을 현(玄)자를 쓰고, 몸에 비늘과 두꺼운 껍질이 있다고 해서 굳셀 무(武)자를 써서 현무라고 부른다.
이들 네 가지 동물들 가운데 백호만이 실재하는 동물이고, 다른 세 동물들은 상상 속에 있는 것들이다. 색깔과 계절과 방위로 보면, 청룡이 푸른색으로써 봄과 동쪽의 수호신이고, 봉황(주작)은 빨강색으로써 여름과 남쪽의 수호신이며, 현무는 검정색으로써 겨울과 북쪽의 수호신이다. 실재하는 동물인 백호는 흰색으로써 가을과 서쪽을 담당한 수호신이다. 호랑이는 한자로 인(寅)이라 쓰고,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와 음력 1월을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백호는 엄동설한의 칼바람과 싸우며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수확의 계절을 맞기까지 분투하는 평범하고 순결한 영웅들의 상징이다. 2010년 한 해 백호정신을 가지고 용맹하고, 민첩하며, 신중하고, 순결하며, 칼바람 시련과 맞싸우며, 새벽을 깨우되, 신앙인의 품위를 지키는 해로 만들자.
역사에서의 백호들
역사적으로 백호의 한 사람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아들을 위한 기도’를 보면, 자신의 아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할지를 놓고 기도하고 있다. 첫째는 약할 때를 아는 강함, 둘째는 두려울 때 자신과 맞설 수 있는 용기, 셋째는 정직한 패배에 자부심과 굽히지 않는 신념, 넷째는 승리에 겸손한 너그러운 아들로 세워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또 아들의 소망이 행위를 대신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초석이란 것을 아는 아들로 세워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또 원하기는, 아들을 안일하고 평안한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난관과 도전 속에서 긴장과 박차에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폭풍 속에서 일어서는 것을 배우게 하시고, 실패자들을 위한 동정심을 배우게 하시라고 기도하고 있다.
마음이 깨끗하고, 목표가 높으며, 남을 지배하려고 하기에 앞서서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아들로 세워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미래에 도달해야할 아들이지만, 결코 과거를 잊어버리지 않는 아들로 세워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충분한 유모감각을 덧붙여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항상 진지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너무 엄숙하게 만들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아들에게 겸손함을 주셔서 그가 참 위대함의 단순성, 참 지혜의 열린 마음 그리고 참 강함의 온유함을 언제나 기억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나’, 그의 아버지는 “내가 헛되게 살지 않았구나.”라고 감히 안도의 숨을 쉬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맥아더 장군의 기도 속에는 백호의 용맹과 민첩과 신중과 순결과 칼바람 시련과 싸우며 새벽을 깨우는 불굴의 믿음과 품위유지가 들어 있다. 이런 기도가 그대로 우리 안에서 이뤄지기를 축원한다.
맥아더 장군이 기대한 인물처럼 훌륭한 인물들이 역사에 많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백제 멸망 때에도 있었다. 그들은 충신이었던 성충과 흥수와 계백이다. 그러나 반대로 백제의 멸망에 원인을 제공한 인물들도 있었다. 그들이 의자왕과 군대부인과 상영이었다. 계백이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보여준 결의정신과 적군인 관창에게 보여준 인의와 관용정신은 모두 백호의 용맹과 맥아더 장군의 기도내용에 부합된 행동들이었다. 계백 장군은 백호처럼 용맹했고, 민첩했으며, 신중하였고, 순결하였으며, 나당연합군의 침입과 백제멸망이라는 칼바람 시련과 싸우되 장군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백제멸망이 주는 교훈은 역시 때를 읽는 역사의식의 중요성이다. 백제가 멸망한 것은 고구려와 손을 잡고 신라를 압박한 때문이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신라는 당과 손을 잡았고, 이는 당의 정책과도 맞아떨어졌다. 백제가 고구려와 손을 잡은 것은 국제정세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었다. 성충과 흥수는 나당연합군의 침입을 예견하였기 때문에 친고구려 정책에 반대하였고, 대책을 마련하였지만, 성충은 옥사를 당하였고, 흥수는 유배를 당하였다. 성충과 흥수도 초기에는 의자왕의 친고구려 정책이 옳았다고 보았지만, 당이 백제를 침공할 수 있다는 현실을 인식한 후에는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당이 제시한 질서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권력을 장악한 군대부인과 상영과 같은 반대파들은 이런 국제정세의 흐름을 무시하였다.
성경에서의 백호들
성경에도 수많은 백호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 유다왕국의 멸망을 예견한 인물들로서 예레미야와 우리야가 있다.
예레미야는 국제정세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여호야김이 다스렸던 주전 609-598년에는 유다왕국의 멸망이 코앞에 닥쳤다는 징조들이 많았다.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에서 앗수리아와 이집트의 연합군을 전멸시켰고, 이로 인해서 이집트는 유다왕국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앗수리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에 의해서 왕이 된 여호야김은 바벨론의 멍에를 벗으려고 애를 썼다. 이 때 예레미야는 왕에게 바벨론에 저항하지 말고 이집트를 의지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이로 인해서 예레미야는 핍박을 받아 죽음의 위기를 수차례 맞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다윗언약과 성전과 왕권이 유다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할 것이고, ‘여호와의 성전’이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민족주의자들과 정치지도자들에게 성전을 마술적으로 믿지 말고 즉시 회개하고 금식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들을 귀가 없었던 여호야김은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하였고 주전 598년에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고, 바벨론의 총공격이 있기 몇 달 전에 사망하였다. 결국 유다왕국은 다음 해인 597년에 바벨론 군대에 능욕을 당하였고, 왕위에 오른 지 세 달밖에 되지 못한 18살의 여호야긴과 지도자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다. 주전 605년에 이어 두 번째 유배였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숙부이자 요시야의 아들이었던 시드기야를 새 왕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시드기야 역시 친이집트파였던 하나냐와 스마야 같은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하나냐는 포로가 된 사람들이 신속하게 돌아오고, 성전 보물들도 곧 되찾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의 예언을 부정하고 유다가 회복되려면 적어도 70여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바벨론에 반기를 들지 말고 복종하도록 권하다가 토굴과 웅덩이에 갇혔고, 시위대의 뜰에 갇히기도 하였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충고를 거부하고 신하들의 말을 듣고 이집트의 편에 서서 주전 589년에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 바벨론은 시드기야의 반역 소식을 듣고 즉시 군대를 예루살렘에 파견하여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었다. 바벨론 군사들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하였고,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소경으로 만든 다음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이로써 제3차에 걸친 바벨론의 침략과 유배가 완결되고 유다왕국은 철저하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친바벨론파들 가운데 예레미야는 살아남았지만, 우리야는 처형을 당하였다(렘 26:20-24). 우리야는 이집트로 망명을 하였지만, 이집트와 유다왕국은 종주권계약이 체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범죄자인도협정 같은 국제법에 의해서 조국으로 끌러와 처형되었다.
2010년 경인년을 시작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자기가 누군지,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자기 때가 어느 때인지를 아는 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때를 읽고 백호처럼 2010년 한 해를 용맹하고 민첩하지만, 신중하고 순결하게 또 칼바람 같은 시련과 맞서 싸우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기를 축복한다. 성실하게 살다 보면 좋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새해에도 변함없고 실패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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