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명한대로(출 39: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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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명한대로(출 39:32-43)
하나님이 명한대로
출애굽기 39장의 핵심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는 이 구절이 1, 5, 7, 21, 26, 29, 31, 32, 42, 43절에 무려 10번이나 쓰였다. 32절부터는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마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고, 그들이 성막을 모세에게로 가져 왔으니 곧 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갈고리들과 그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붉은 물을 들인 숫양의 가죽 덮개와 해달의 가죽 덮개와 가리는 휘장과 증거궤와 그 채들과 속죄소와 상과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 순금 등잔대와 그 잔 곧 벌여놓는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와 등유와 금 제단과 관유와 향기로운 향과 장막 휘장 문과 놋 제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들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뜰의 포장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뜰 문의 휘장과 그 줄들과 그 말뚝들과 성막 곧 회막에서 사용할 모든 기구와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라.”고 했고, 42-4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치매,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고 하였다.
출애굽기 39장은 성막제작의 핵심사상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행한 것,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이뤄진 것,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이뤄지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장점은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신 6:5) 지키려한 것이다. 613개의 계명들을 지킬 뿐만 아니라, 그들 계명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수많은 울타리 법들까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지키려한 것이다.
그러나 단점은 하나님의 계명들의 근본취지와 뜻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내적인 것, 영적인 것보다는 외적인 것, 문자적인 형식과 외형에 치우쳤다. 이것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 신약성경 저자들이다. 그들이 새롭게 이해한 것은 보이는 지상성막이 보이지 않는 하늘성전의 그림자라는 것, 보이는 지상성막은 일시적이요, 보이지 않는 하늘성전이 영원하다는 것, 또 구약성경성막은 신약성경교회의 예표라는 것, 먼저 나타난 지상성막은 나중에 나타난 신약성경교회의 모형이요 그림자란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기독교는 유대교가 실패한 길을 걷고 있다. 공리주의적 성공주의에 빠져서 신약성경의 가르침대로 하지 않고, 신약성경 저자들이 구약성경을 이해했던 방식대로 이해하지 않고, 신약성경 저자들이 구약성경을 해석했던 방식대로 해석하지 않고, 유대교의 랍비들이 유대교에 했던 것처럼 기독교에 하고 있다. 그 결과 기독교는 구약적 기독교와 유대교적 기독교로 흘러가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유대교인들처럼 열정과 노력은 가상한데, 예수님의 지적처럼, 외식하는 자가 되어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마 23:23). 공리주의적 성공주의와 유대교적 권위주의에 빠져서 신약성경교회의 사도전통을 멋대로 왜곡시키고 있다. 출애굽기 25장 40절,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를 말씀을 충실히 따르되, 구약성경유대교적 방식이 아니라, 신약성경기독교적 방식을 따라야 한다.
교황청이 명한대로
가톨릭의 문제점은 성경보다는 교황청이 명한대로 하는데 있다. 가톨릭도 유대교처럼 하나님을 독점하려 한데서 몇 가지 폐단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사제들의 하나님독점이다. 유대교가 하나님을 유대인들의 하나님으로 독점하는 오류를 범했듯이, 가톨릭교회도 사제들이 하나님을 독점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보자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을 차단시켰고, 마리아와 성인들을 그 자리에 대신 앉혔다. 따라서 신자들은 성부 성자 하나님께 감히 기도하지 못하고, 마리아나 성인들께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하나님께 바치는 제대(제단)를 더욱 높은 곳에 세웠고, 신자석과의 거리를 더욱 멀게 하였으며, 사제복을 더욱 화려하고 위엄 있게 만들었다. 성부 성자 하나님을 신자들과 멀어지게 하고, 그 사이를 사제들이 꿰차고 앉았다.
둘째는 사제들의 사죄권 행사와 주의 만찬의 독점이다. 사제들이 하나님을 독점함으로써 신자들은 성부 성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신자들은 회개할 기회와 주의 만찬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하였다.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통해서 사제들에게 회개하였고, 사제들은 사죄권을 행사하였다. 고해성사의 기회가 평생에 몇 번으로 제한된 때가 있었는데, 이 때문에 신자들은 죽음에 임박하기 전까지 고해성사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 주의 만찬에도 참여하지 못하였다. 매일의 미사를 통해서 행하여지는 주의 만찬은 사제들만의 것이 되어버린 적이 오랫동안 있었다.
셋째는 사제들의 성경과 예배의 독점이다. 가톨릭은 과거 1,400여 년 동안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 성경만 허용하였다. 미사언어도 라틴어만 허용하였다. 값싸고 질 좋은 종이와 인쇄술이 없던 시절에는 성경이 고가여서 소유하기가 어려웠던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몰라서 읽지 못하였다. 조선에 가톨릭이 전래된 역사가 2백 년이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라틴어를 몰라서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고, 라틴어를 몰라서 예배진행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가톨릭교회에 자국어 성경과 자국어 미사가 허용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1960년대 이전에는 신자들이 기껏해야 세례문답과 간단한 교리를 배우는 정도에 그쳤다. 성경을 읽지 못한 사람들은 사제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신봉하였고, 또 사제들은 미개한 신자들이 그들이 이전에 빠져있던 이방종교와 문화를 기독교 신앙과 혼합시키는 것을 부분적으로 눈감아 주었다.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자국어 성경을 읽고, 자국어 미사를 갖게 된 것은 불과 4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교황청이 1,400여년 만에 미사 중에 설교와 대중 찬양을 복원하였지만, 아직까지도 평신도 기도는 복원되지 못하고 있으며, 모든 미사와 설교문과 기도문을 극도로 통제하고 있어서 사제들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넷째는 사제들의 성사의 독점이다. 가톨릭에서는 미사 말고도 일곱 가지 성사가 있는데, 사제만이 집도할 수 있다. 침수세례를 약식세례로 변질시킨 것은 십자군을 모병하던 12세기경에 이방인 병사들을 집단으로 개종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런 가톨릭의 폐단들을 고치고 성경에로 돌아가자고 한 것이 16세기에 단행된 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이 이뤄진지 500여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폐단들이 과연 기독교에서 모두 사라졌는가라고 질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이 명한대로
유대교의 폐단을 고치려했던 것이 기독교였고, 가톨릭의 폐단을 고치려했던 것이 개신교였다. 그러나 개신교의 폐단은 누가 고칠 것인가, 무엇으로 고칠 것인가? 이 물음에 답을 줄 곳은 과연 있는가? 다행히도 200여 년 전, 정확하게는 ‘알렉산더 캠벨’이 27살의 젊은 나이에 화려한 목회경력을 자랑하는 레드스톤 침례회의 목사들 앞에서 1816년 9월 1일 행한 ‘율법에 관한 설교’를 시발로 1823-30년까지 7년간 발간된 ??크리스천 침례자??(Christian Baptist)와 1830-70년까지 40년간 발간된 ??새천년 전령??(Millennial Harbinger)에 발표된 “옛 질서의 회복”(to restore the ancient order of things)의 글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의 개신교회는 개혁주의니, 복음주의니 하는 말들이 무색할 정도로 각종 폐단과 분열이 심각하고 상호비방이 난무한 현실이다. 자기가 속한 교단에만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도 하고, 이름이 다르고 조금만 다르게 실천해도 이단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침례가 이단이 되고, 매주 행하는 주의 만찬이 이단이 되고, 신성한 ‘그리스도의 교회’란 이름조차 이단이 되는 게 현실이다. 유대교나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개신교회들에조차 하나님을 독점하려는 폐단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고쳐야 할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신교의 가장 큰 장점은 성경에로 돌아가 진리를 회복하자는데 있다. 그런데 이 좋은 취지와 뜻이 심각한 분열과 유대교적 기독교란 왜곡된 결과로 드러나고 말았다. 더 심각한 것은 개신교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데 있다. 원인을 지적하고 해결방도를 제시하면 의심부터 하고 그 알량한 지식을 꺾으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약성경교회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이 구약성경을 이해한 방식으로 구약성경을 이해하고, 신약성경이 말한 것을 말하고, 행한 것을 실천하고, 침묵한 것을 자유로 하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야 한다. 신약성경이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불렀으면 그렇게 부르고, ‘그리스도인’이라 불렀으면 그렇게 부르고, 침례를 행하였으면 그렇게 행하고, 매주일 주의 만찬을 행하였으면 그렇게 시행하여야 한다.
둘째는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핵심사상은 만인사제론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민족의 차별, 남녀노소의 차별, 빈부귀천의 차별, 계급과 신분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주님의 형제요 자매요, 일군들이다. 하나님의 집의 한 가족이다. 그리고 그들의 신성한 이름이 그리스도인이다.
셋째는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실천아래서 지상의 모든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를 빙자한 분열은 죄악이다. 분열의 가장 큰 원인은 구약성경을 유대인들의 해석방법인 문자적 해석이 아닌, 하나님이 만세전부터 계획하신 대로 해석한 신약성경저자들의 모형적 해석과 단순 원리를 적용하지 못한데 있다. 여기서 단순 원리는 신약성경이 말한 것을 말하고, 신약성경이 침묵한 것을 자유롭게 하며,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신약성경이 말한 것은 본질이다. 본질에는 일치해야 한다. 신약성경이 침묵한 것은 비본질이다. 비본질은 자유롭게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으로 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명한대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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