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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비추인 하나님의 빛(고후 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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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838 2010.01.2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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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비추인 하나님의 빛(고후 4:1-18)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행한 것의 차이=0

대중 앞에 서서 뭔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의 경우, ‘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설교만 해도 설교집으로 13권 분량인 676개가 넘고, 지금까지 19권의 책을 쓰거나 엮고, 4권의 책을 번역하였으며, 많은 글들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22년을 넘게 15개 정도의 과목들을 강의했지만, 설교만큼은 여전히 자신이 없고 힘들며 긴장되고 어렵게 느껴진다. 개중에는 별다른 설교준비 없이도 척척 잘해내는 목회자들이 있지만, 필자로서는 설교준비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매주 초만 되면 엎드려 하나님께 간구하게 된다.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야 되기 때문이다. 영감으로 주시든지,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주시든지, 출판된 책들과 대중매체들을 통해서 주시든지, 여하튼 다음 주일예배에 필요한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설교준비에 착수할 수 있다. 설교와 예배준비이외에 강의와 총회임원회, 지방회, 선교국, 기아대책후원이사회,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의 심사위원회 등의 활동이 있고, 나머지 시간을 선용해서 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 일을 한다. 이 모든 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일은 설교를 준비하고 예배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유대교인들이 안식일 하루를 위해서 온 일주일을 준비하는 것과 다름없다. 목사뿐만 아니라, 신자들도 이와 같이 주일예배를 위해서 온 일주일을 준비하고, 그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었으면 좋겠다. 그 일은 다른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목사를 위한 것도 아니고, 교회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 일은 오직 자신을 위한 것이다. 확신하건데,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런 신자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우리 성도들이 분명하게 숙지해야할 것은 그 어떤 관계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1950년대 초 깨지고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한없이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한 소년의 삶에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었다. 그의 가족과 친척들은 자신들이 기피하는 일, 즉 교회 출석하는 일을, 그들 생각에도 불행한 이 소년에게만큼은 등을 떠밀어 권하였다. 그렇게 이 소년은 유년시절부터 교회와 연관을 맺었다. 그 후로 이 소년은 숫한 역경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아주 행복하게 고등학교까지 마쳤고, 그 후로 외국유학까지 마치는 등의 행운들을 셀 수 없이 만났지만, 특이한 점은 이 소년이 스스로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고, 설사 도움을 청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해도 돌아온 답변은 대부분 ‘No'였다. 따라서 그가 행한 일들은 기도로써 하나님께 사정을 아뢰고 그분의 정당한 응답을 믿고 참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응답을 얻기 위해서 금식기도도 거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먹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할 뿐이었다. 그가 일생을 통해서 정말 잘한 것 한 가지는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성실하려 했던 것이다. 크든 작든 그가 만일 성공했다라고 한다면, 성공방식은 이런 것이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행하려 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또 다른 이들의 눈에 들어 은혜를 입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할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 행한 것이 사람에게 행한 것이 되고, 사람에게 행한 것이 하나님께 행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성경의 도덕 기준=성공방식

2010년 1월 20일자 신문기사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사용하는 조준경에 ‘요 8:12,’ ‘고후 4:6’과 같은 영문자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는 ABC방송의 18일자 보도가 소개되었다.

요한복음 8장 12절은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이고, 고린도후서 4장 6절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는 내용이다. 이 밖에도 요한계시록과 마태복음 등의 구절을 나타내는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조준경에 이들 성구문자를 새긴 업체는 미군에 납품하는 미시간의 ‘트리지콘’(Trijicon)이란 회사이다. 트리지콘사에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회사 설립자 글린 빈돈(Glyn Bindon, 1937-2003)의 의지로 이 같은 암호를 새겨왔다”고 시인하였다. 이 회사의 웹사이트를 방문하여 회사의 비전과 사명과 가치에 관한 글을 읽고서, “어머나 세상에, 이런 회사도 다 있네!”란 생각을 했다. 회사의 비전과 사명을 지도하는 것은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들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가치의 핵심이 높은 도덕성과 정직성임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먼저 도덕성에 관해서 이 회사는 “국민이 선할 때, 미국이 위대하다”고 했고, “그 선함은 성경의 도덕 기준에 있다”고 했으며, “회사는 그 도덕들을 힘써 따를 것이다”고 했다. 또 정직성에 관해서는 “직원들, 소비자들, 공급자들 서로를 향해서 정직하고, 신빙성이 있으며, 신뢰할 수 있고, 공정할 것이다”고 했다. 그 밖의 가치로써는 팀워크와 오래 지속되는 고객관계와 품질을 논하였다. 높은 도덕성과 정직성에 가치를 둔 이런 회사가 번창하는 것이 이상한 일일까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정신을 가진 국민과 회사들이 많아져야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성경의 도덕 기준’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유대교인들의 경우 구약 모세오경에 실린 613개의 계명들과 랍비들이 만든 수많은 전통법들을 동일한 도덕 기준으로 간주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교인들의 이 많은 법들을 단 두 마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란 말로 줄었다(마 22:37-40). 최선을 다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 ‘성경의 도덕 기준’이란 점을 밝히신 것이다. 랍비들이 하나님의 계명들을 세분화시켜 그 숫자를 많이 늘렸다면 예수님은 그것들을 단순화시켜서 두 마디로 줄여버렸다. 예수님의 이 단순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란 가치, 이것이 조준경 회사를 세운 글린 빈돈이 정조준 하려 했던 목표물이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행한 것이 사람에게 행한 것이 되고, 사람에게 행한 것이 하나님께 행한 것이 된다는 성공방식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사랑이 이웃사랑을 거스르거나 또 이웃사랑이 하나님사랑을 거스른다면,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사랑을 빙자한 이웃갈취 또는 이웃사랑을 빙자한 하나님기만일 것이다. 성서의 도덕 기준은 공리주의적 가치기준에서 볼 때 어리석은 것일지 모르지만, 세상이 생각하는 바로 그 어리석음이 하나님이 보장하는 성공방식이란 점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마음속에 비추인 하나님의 빛

성경의 도덕 기준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빛이 비추인다. 또 성경의 도덕 기준을 설정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생명의 빛이 비추인다(요 8:12). 글린 빈돈이 조준경에 새긴 고린도후서 4장 6절의 뜻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음미할 수 있다.

첫째, 성경의 도덕 기준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예수님의 생명의 빛이 마음에 비추게 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이렇게 외치셨다. “빛이 있으라.” 여기서 땅은 현실이며,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삶의 자리, 내 현실, 내 처지, 내 상황이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칠흑 같은 상황, 이것이 내 삶의 정황이고 자리이다. 그 상황이 경제든, 건강이든, 인간관계든, 그 어떤 경우이든지, 성경의 도덕 기준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빛이, 예수님의 생명의 빛이 비추인다.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란 높은 도덕적 가치위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생명의 빛, 영광의 빛, 은총의 빛이 그에게 비취게 된다.

2010년 1월 22일자 국민일보에 아이티 대지진 참사에 써달라고 익명의 기부자가 1억 원을 내놓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매우 어렵게 전화통화가 이뤄진 후 기자가 물었다. “익명으로 기부금을 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성경구절로 답을 대신하였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 6:3-4). 우리는 이 익명의 기부자의 형편에 대해서 전혀 아는바가 없다. 다만 그는 요즘 중소기업이 매우 어렵다는 말을 남겼기 때문에 경제난을 겪고 있는 중소 기업인이 아닐까 추측해 볼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사람의 마음속에 비추인 하나님의 영광의 빛과 예수님의 생명의 빛만큼은 눈이 부시다는 것이다.

둘째, 성경의 도덕 기준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계시로 알게 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지식의 빛이 마음에 비추게 된다. 흑암에 빛을, 혼돈에 질서를, 죽음에 생명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은 빛과 부활과 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빛이다.

셋째, 성경의 도덕 기준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실천의 빛이 마음에 비추게 된다. 이 빛이 있는 사람은, 2절의 말씀처럼, 비밀과 부끄러운 방법들을 버리고, 속임수를 쓰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를 밝혀낸다. 또 바울처럼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사람의 양심에 자신을 천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넷째, 성경의 도덕 기준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들을 누리는 승리의 빛이 마음에 비추게 된다. 하나님의 빛을 받은 사람은, 8-9절의 말씀처럼,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또 17-18절의 말씀처럼,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룰 줄을 알고,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올바르게 살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생명의 빛이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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