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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춘1-신앙의 측면에서(고후 4: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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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214 2010.02.0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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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춘1-신앙의 측면에서(고후 4:14-18)

입춘(立春)

어느덧 1월도 가고 2월에 접어들었다. 2월은 24절기 가운데 첫 번째인 ‘입춘(立春)’이 있는 달이다. 입춘이었던 지난 4일 새벽녘에 함박눈이 내렸다. “입춘에 웬 함박눈?” 그러나 입춘에서 ‘입’(立)자는 ‘서다’가 아니고 ‘곧’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입춘은 “곧 봄이다”란 뜻이 된다. 우리 눈은 땅위에 내린 함박눈에 꽂힐지 몰라도 땅 속은 이미 봄맞이를 하고 있다.

입춘일로부터 15일간을 입춘절이라고 하는데, 한 해의 무사태평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대문이나 기둥에 입춘첩을 붙인다. 대들보나 천장 위에 ‘세재○○만사형통’(歲在○○萬事亨通)이라 쓴 종이를 붙이는데 빈칸에는 새해의 간지가 들어갈 자리이다. 금년이 ‘경인년’이면, ‘세재경인만사형통’이라 쓴다. 또 대문 앞에는 여덟 팔(八)자의 형태로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建陽多慶)'과 같은 글귀를 붙인다. 입춘대길은 “곧 다가올 봄에 크고 좋은 일이 있으라”는 뜻이고, 건양다경은 “새해에는 경사가 풍성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한번 붙인 입춘첩은 떼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이듬해 입춘이 되면 전에 붙인 입춘첩 위에 덧붙이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이토록 우리 조상들은 입춘에 한 해의 행운과 건강과 만사형통을 기원하였다.

봄이 다시 오는 것을 ‘회춘’(回春)이라 부른다. 이 말은 또 중한 병에서 회복되어 건강을 되찾거나 이전보다 더 젊어진 경우를 일컫기도 한다. 이렇게 봄은 무언가 우리에게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한다. 게다가 예수님의 부활까지 봄철에 일어난 사건이어서 ‘회춘’이란 말은 일시적으로 되돌아오는 봄에서 끝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봄, 곧 영생에까지 연결된다. 사실 사람들은 자주 영원한 봄을 꿈꿔왔다.

중국인들은 복사꽃이 활짝 핀 무릉도원의 봄을 꿈꿨고, 유럽인들은 영원한 봄의 정원, ‘아르카디아’를 꿈꿨다. 유럽의 화가들은 다양한 해석들을 통해서 아르카디아의 이상을 화폭에다 그려내곤 하였다. 또 미륵종교인들은 용화세계를 꿈꿨다. 그러나 무릉도원과 아르카디아는 성경에 나오는 에덴과 낙원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또 에덴과 낙원보다 더 완벽한 영원한 봄의 세계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계시록이 말하는 ‘신천신지’ 곧 ‘새 하늘과 새 땅’이다. 무릉도원과 아르카디아는 인간의 머릿속에나 있는 상상세계일 뿐이고, 에덴은 영원히 닫힌 곳이며, 낙원은 영적세계에 불과하다. 또 미륵종교에서 말하는 용화세계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년세계와 유사한 곳으로써 미륵불교 자체가 기독교의 모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일찍이 존재했던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영원한 봄의 세계이다. 이 세계가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시작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 새롭고 완벽한 세계에서 영원한 봄을 맞는 것이 진정한 회춘(回春)이다. 봄을 되찾고, 젊음을 되찾고, 건강을 되찾고, 목숨을 되찾는 그야말로 진짜 회춘이다. 이 참복을 받아 누리려면, 먼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며,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고, 침례를 받으며, 성령님을 선물로 받아 육체부활을 약속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성령님을 선물로 주셔서 보증하시는 육체부활이 진짜 회춘이다. 지금 누리시는 성도들의 영적부활은 육체부활의 그림자요 예표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참 회춘에의 기대와 확신에 찬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참 회춘(回春)에의 기대와 확신

봄은 기대의 계절이다. 사람들은 봄에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대로 가득 차게 된다. 봄 하면 생각나는 영어단어가 ‘스프링’(spring)이다. 이 말에는 청춘, 성장, 튀어 오름, 도약, 비약, 용솟음치는 기운, 활력, 생기, 샘물, 원천과 같은 뜻이 있다.

만일 우리에게 봄에 거는 무슨 기대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무언가를 빼앗겼기 때문이 아닐까? 이상화 시인은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면서 봄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시인의 염원처럼 대한민국에 봄은 다시 찾아왔고, 그 봄을 맞이한 사람들은 팔목이 시리도록 이 땅의 흙을 매고 땀을 흘려 조국에 영광을 안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봄에 거는 기대를 품고 있다. 왜 그런가? 빼앗긴 것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건강을 빼앗긴 사람, 청춘을 빼앗긴 사람, 직업을 빼앗긴 사람, 재산을 빼앗긴 사람, 가정을 빼앗긴 사람, 휴식을 빼앗긴 사람, 여가를 빼앗긴 사람, 자기를 빼앗긴 사람, 영혼을 빼앗긴 사람, 등등, 이 땅에는 온통 남의 땅 빼앗긴 들에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우리 신앙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함박눈 내리는 여전한 추위 속에도 불구하고 땅속에서 꿈틀대는 봄의 기운을 느끼는 감각적 영성이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서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가는 신세일지라도, 머지않아 주님이 이뤄주실 젖과 꿀이 흐르는 영원한 나라에서 청춘을 되찾고, 용솟음치는 기운과 활력과 생기를 되찾으며, 튀어 올라 비상하는 그날이 있을 것을 확신하는 믿음이다. 고린도후서 4장은 바울이 이러한 확신과 믿음을 피력한 곳이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회춘에 대한 인식을 읽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대망하는 회춘(回春)은 “내 청춘을 돌려다오”가 아니라, 겉사람은 낡아지지만,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져 부활의 몸을 덧입는 것이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고후 5:4)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회춘이다. 그러므로 참 회춘에의 기대와 확신에 찬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참 회춘의 복

참 회춘의 복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주어진다. 참 회춘의 복을 경험했던 인물들 가운데는 아브라함이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입고 약속의 땅을 향해서 길을 떠난 것은 75세 때였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이 때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하였다. 여기서 “장래 기업을 받을 땅”은 구약에서는 중동지역에 있는 가나안 땅이고, 신약에서는 하늘나라에 있는 가나안 땅이다.

떠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직장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고, 조국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으며, 가족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고, 병사들처럼 전쟁터로 떠나는 것일 수도 있으며, 병로사(病老事)로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떠나는 이유가 무엇이든지, 또 떠나는 장소와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떠나는 사람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남는 사람의 믿음도 중요하다.

아브라함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향해서 출발한 곳은 말 그대로 ‘약속의 땅’이었고, 회춘의 의미를 갖는 땅이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았다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향해서 가고 있는 땅은 아브라함이 걸었던 땅과는 방향이 다른 하늘나라를 향한 것이다. 역시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향해야하는 땅이고, 회춘을 위한 땅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한 젊음을 유지할 것이다. 지상에도 봄은 오고 있지만, 그 봄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일시적인 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상의 봄에 만족하지 않고 영원한 봄을 향해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지시할 회춘의 땅을 향해 길을 떠난 나그네들이다.

길을 떠나는 자는 짐을 가볍게 꾸려야 한다. 불신과 고집과 아집 같은 것은 던져버려야 한다. 고정관념도 폐쇄적인 세계관도 세속적인 가치관도 버려야 한다. 악습도 놓고 가야되고, 세월의 아픔과 상처들도 놓고 가야 한다. 떠나는 곳은 흑암과 혼돈과 죽음의 땅이요, 향하는 곳은 빛과 질서와 생명의 땅이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와 속박의 땅 이집트를 등진 것과 같고, 가나안 땅을 향해서 사막에서의 장애물들을 헤쳐나간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떠나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하셨다. 그 내용이 창세기 12장 2-3절이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약속은 일곱 가지이다. 첫째, 네게 복을 주겠다. 둘째,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겠다. 셋째,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 넷째,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겠다. 다섯째,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겠다. 여섯째,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하겠다. 일곱째,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이 일곱 가지 복은 영원한 회춘의 나라를 향해서 길을 떠난 성도들을 위한 원형적인 축복이다. 성서는 이 축복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자들의 삶속에서, 그들이 겪은 숫한 시련과 역경의 삶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증거하는 책이다. 아브라함이 ‘존귀한 아버지’가 된 것은 믿음 때문이었다. 이 믿음은 또 그로 하여금 영원한 회춘을 맞게 하였다. 봄의 생기와 활력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성도들의 삶 속에 넘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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