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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설쇠기(창 2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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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499 2010.02.11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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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설쇠기(창 22:1-19)

유대인들의 집착

“오늘은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성도들께 설 인사를 올립니다. 경인년 새해에 대길(大吉)하시고 다경(多慶)하십시오.” 아브라함 이후 지금까지 4천년 가까이 야훼를 민족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유대인들은 설날에 무슨 인사를 할까? 김종철의 ??이스라엘에는 예수가 없다??(리수, 2010)를 보면,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Happy New Year!”라든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지 않는다. “당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고 인봉되기를 기원합니다.”라든가, “당신의 이름이 하나님이 펼치신 생명책에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기록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한다. 이 유대인들의 새해인사가 우리의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는 현세적인 복을 비는데 반해서 유대인들은 내세적인 복을 빌고 있는 점이다.

유대인들만큼 철저히 세속적인 민족이 없을 것이다. 특히 땅과 돈에 대한 집착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자녀교육에 대한 욕심과 하나님을 독차지하려는 욕심도 타민족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대인들은 과거 4천년동안 거의 떠돌이로 살았고, 노예였던 때가 많았다. 이 떠돌이와 노예의 삶이 그들로 하여금 땅과 돈과 교육과 신앙에 집착하게 하는 이유이다.

어떤 유대인 가정에서 천수를 누린 할아버지가 임종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가정은 대대로 양복점을 하는 집안이었다. 마침내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온 가족이 할아버지의 침상 곁으로 모였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주변을 둘러보며 모기소리로 물었다. “얘야, 큰아들은 어디에 있느냐?” 그러자 곁에 있던 큰아들이 대답했다. “네 아버님,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물었다. “그럼 작은아들은 어디에 있느냐?” 그러자 둘째 아들이 대답했다. “네, 아버지, 둘째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또다시 물었다. “그럼 손자들은 어디에 있느냐?” “네, 아버님, 손자들도 여기에 다 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아, 그럼 양복점은 대체 누가 지킨단 말이냐?” 할아버지는 가족들이 가게를 비우면서까지 자신의 임종을 지키고 있는 것에 화가 났던 것이다.

이 우스갯소리는 유대인들이 거의 2천년 만에 나라를 되찾고, 고토회복을 위해서 지금까지 아랍국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며,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만큼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오랜 세월 남의 땅에서 서럽게 살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장사뿐이었고, 교육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막고 오늘의 영광이 있도록 만들어준 것은 야훼 하나님을 철두철미하게 섬기는 믿음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설날에 비는 축복은 현세적이지 않고, 내세적이다. 현세적인 것은 사라지는 것이고,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만큼 현세적인 민족도 없지만, 또 유대인만큼 내세적인 민족도 없다. 그들은 한치 앞만 보지 않고, 먼 미래, 심지어 수천 년 후까지 바라본다. 유대인들의 가장 강한 특징은 땅과 돈과 교육에 집착하는 정도가 아무리 클지라도, 모두다 하나님 아래에 있다는 점이다. 야훼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땅보다, 돈보다, 교육보다 우위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하나님께 바친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기부자들이 가장 많고 또 기부가 많은 국가이다.

회개와 화해를 위한 유대인들의 설날 축제

유대인들은 설날을 ‘로쉬 하샤나’라 부른다. 이 날은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날이자,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산채로 바치려 했던 날이다. 이 날은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시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시고 복을 내리신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날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날이 시작되면 당도가 높은 과일과 꿀로 만든 단 음식들을 많이 먹는데, 새해가 꿀처럼 달게 펼쳐지기를 소원하기 때문이다.

또 유대인들은 설날이 시작되는 일몰시간이 되면 일제히 양각나팔을 분다. 뿔 나팔 소리로 잠자든 영혼을 깨워서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한 것인데, 사람들은 저마다 100번씩 분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설날을 들뜬 분위기 속에서 보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날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는 두려움의 날이라고 믿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일로 보내게 된다. 우선 설날이 시작되는 날 오전에 유대인들은 온 가족이 목욕을 한다. 일 년 동안 몸에 묻었던 세상의 온갖 더러움을 씻어 내는 일종의 종교의식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고 세상을 여신 날을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한 종교적 행사이다. 이때 하는 목욕은 때를 밀거나 비누를 사용하지 않는다. 작은 욕조에 들어가서 마치 세례를 받듯이 가볍게 손으로 몸을 닦아내는 것으로 끝낸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신년에 죄를 심판하실 때, 인간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눈다고 믿고 있다. 첫 번째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악한 일을 행한 자, 두 번째는 하나님도 인정할 만큼 율법과 계명을 잘 따르고 거룩하게 살아온 자, 그리고 나머지 세 번째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어정쩡하게 살아온 자이다. 그리고 신년 첫날에는 악한 자와 거룩하게 살아온 자를 확실하게 심판하시고, 중간 부류의 어정쩡한 사람들의 심판은 잠시 보류시켜 열흘 뒤인 대 속죄일 때 하신다고 믿는다. 그런데 제아무리 율법대로 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첫 번째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 거룩하게 살아온 자로 인정받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자기 자신을 악한 자와 거룩한 자 사이에서 어정쩡한 삶을 살아온 자들로 생각한다. 그래서 설날부터 대 속죄일 사이의 9일 동안 열심히 가족과 주변 사람, 친구들을 찾아다니면서 그간의 껄끄러웠던 관계를 청산하고, 그리고 대 속죄일 때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논쟁이 있었다면 마무리 짓고, 얼굴을 붉힐 만큼 불편했던 일들도 모두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하면, 모두 용서해주면서 꼬였던 감정의 실타래를 푼다. 따라서 신년부터 대 속죄일 사이 9일간에는 사람들의 고백과 용서가 봇물 터지듯이 터진다고 한다. 탈무드에 동족인 다른 인간에게 용서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께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이 유대인들은 9일간 회개와 용서 그리고 화해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 수천 년 동안 반복되는 회개와 용서 그리고 화해로 시작되는 신년을 전통으로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의 설날과 대 속죄일의 풍습과 문화는 작은 일에 쉽게 분노하고 용서하지 못하며 자신의 허물과 죄를 인정하지 않는 오늘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유대인 설날의 절정인 대 속죄일 축제

유대인의 설날인 ‘로쉬 하샤나’는 10일 후에 닿는 대 속죄일인 ‘욤 키푸르’에서 절정을 이룬다. 대 속죄일은, 탈무드에 의하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두 번째 십계명을 받는 날이라고 한다. 모세가 첫 번째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산에서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중죄를 범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날, 곧 두 번째 십계명을 받은 날을 속죄일 중에 속죄일, 안식일 중에 안식일로 지켜왔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던 시절에는 대제사장이 성전에서 자신의 죄, 제사장들의 죄, 온 이스라엘 회중의 죄를 차례로 고백하는 정교한 속죄의식을 거행하였다. 대제사장은 흰 아마 옷을 입고, 일 년에 단 하루 바로 이 날에만 들어 갈 수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 제물의 피를 뿌리고 분향하였다. 그러고 나서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짊어진 숫염소 즉 속죄염소를 광야로 몰아내 죽게 만들었다. 어린양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짊어지고 성문 밖 골고다에서 죽으실 것의 예표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양이나 염소대신에 닭을 가지고 속죄행위를 한다. 남자는 수탉을, 여자는 암탉의 두 다리를 묶고는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의 머리 위에서 열 바퀴를 돌린다. 이때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나를 대신해서 이 닭을 제물로 바칩니다. 이 닭이 나를 대신해 죽을 것이니 건강하고, 오래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신년에 회개와 새로운 다짐으로 근신하며 9일간을 보낸 유대인들은 10일째 날인 대 속죄일이 시작되는 일몰시간에도 양각나팔을 불어서 24시간 금식을 선포하고 금식이 끝나는 다음날 해질 때에도 나팔을 불어서 선포한다. 이 날은 생명책이 일 년간 인봉되는 날이자 그들의 일 년간의 행불행이 좌우되는 대 속죄일이요 심판의 날이기 때문에 연중 가장 엄숙한 날이다. 따라서 먹는 것, 마시는 것, 목욕하는 것, 화장하는 것, 가죽옷을 입는 것, 가죽신을 신는 것, 부부행위 등을 일체 금한다. 도시에는 인적이 끊이고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대 속죄일이 시작되는 저녁과 해가 뜬 낮 동안을 기도와 명상으로 보낸다. 저녁기도회 때 ‘콜 니드레’(Kol Nidre)를 낭송하게 되는데, 가락이 아름다운 기도로써 한 해 동안 자신에게 행한 모든 서약을 없었던 걸로 만드는 일종의 맹세무효선언기도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서약은 그대로 유효하다. 아침기도회 때에는 ‘셀리코트’(selichot)라 불리는 용서의 탄원과 청원의 기도문을 낭송한다.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자격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우리로 하여금 생명책에 들어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탈무드에 “대 속죄일은 하나님을 거슬린 죄는 사하지만, 피해자의 용서가 보장되지 않는 한 동료 인간을 거슬린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Talmud Yoma viii. 9)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웃과의 불편했던 모든 관계를 대 속죄일 기도회가 시작되기 전에 해결하는 관례가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이 날에 흰옷을 입는다. 적어도 일 년에 한 차례씩 하나님과 이웃과의 불화를 화목으로 바꾸고, 원수관계를 화목관계로 바꾸는 유대교의 이 대 속죄일 전통은 설날을 맞아 먹고 마시며 떠들고 노는 우리들에게 한해를 어떻게 시작해야할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경인년이 복된 해가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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