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9-필생즉사 필사즉생(막 8:27-38)
본문
회춘9-필생즉사 필사즉생(막 8:27-38)
‘필생즉사 필사즉생’
마가복음 8장은 마가복음의 중심장일 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마가복음의 핵심장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그리스도인이 따라야할 삶의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마가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회춘하는 길이 무엇인지, 영원히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다. 그것이 ‘생즉사, 사즉생’의 역설적 원리이다.
오자병법(吳子兵法)에 “必死則生幸生則死”(필사즉생행생즉사), 죽기를 각오하면 살지만, 요행히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는데, 이 병법으로 적을 물리친 분이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명랑해전에서 판옥선 13척만으로 333척의 일본군과 맞서 싸워 그중 120척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는데, 전투에 임하는 이순신의 각오는 말 그대로 ‘필생즉사 필사즉생’이었다. 약관의 알렉산더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4만7천의 군사로 10만의 대군을 물리치고 페르시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도 ‘필생즉사 필사즉생’의 정신 때문이었다. 그들이 후대에 이르러서까지 영웅대접을 받는 것도 바로 이 정신 때문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35절)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위대함이 이 말씀 속에 담겨있다. 사람이 천하를 얻는다고 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언젠가는 죽게 될 텐데 그것이 무슨 유익이 되겠느냐? 사람이 무엇을 주고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36-37절). 피상에 머물지 않고 언제나 본질에 접근하셨던 예수님다운 발상이요 말씀이다. 진정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우리가 무엇을 주고 영생을 얻겠느냐? 따라서 예수님은 영생을 위해서 섬김을 받기보다는 남을 섬기고, 또 당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바치셨다(막 10:45). 그 결과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지극히 높은 이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고,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그분의 이름에 무릎을 꿇고 주님이라 부르는 영광을 입으셨으며,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지구상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찬양과 경배를 받고 계신다(빌 2:9-11).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또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1-34)고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이 말씀의 뜻은 땅만 보지 말고 하늘도 봐라. 가까운 것만 보지 말고, 멀리 있는 것도 보라. 이생에만 국한하여 살지 말고, 저 천국도 너의 삶 속에 포함시켜 살라. 육신의 일만 생각하지 말고, 복음의 일, 영혼의 일도 생각하라. 자기만 바라보지 말고, 이웃도 바라보라. 나의 어려움만 생각하지 말고, 이웃의 어려움도 돌아보라. 무엇보다 영원히 사는 방법을 모색하라는 뜻이다. 역설적이지만,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게 되어 있다.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의 나의 삶의 방법과 태도가 과연 옳은가, 과연 이대로 지속시켜도 좋을만한가?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하나님이 묵인하신다고, 하나님이 오래참고 기다리신다고 지금처럼 느슨한 삶을 살아도 좋은가? 이름뿐인 기독교인의 삶을 지속해가도 좋은가? 아니면 우리도 찬란한 영광중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처럼 우리의 인생을 멋지고 아름답게 가꿀 것인가? 자문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베드로 이승훈의 ‘생즉사’
이승훈은 1784년 2월 북경 북당 천주교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조선 천주교의 주춧돌이 되라는 의미로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이승훈은 많은 천주교 서적과 십자가와 성화, 과학서적들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세계 천주교 선교사상 선교사가 파견되기 전에 스스로 세례를 자청한 인물이 이승훈 말고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인 1785년 봄 중인 김범우의 집에서 집회를 갖던 중에 발각되어 체포당한 후 배교하였고, 그 후 다시 입교하였다가 5년 후, 북경교구가 내린 제사를 금하는 명령을 전해 듣고 다시 배교하였다가 재차 입교하였지만, 얼마 되지 못해 1791년 천주교 서적을 출판했다는 무고로 투옥되었을 때 세 번째로 배교하였다. 그 뒤 3년 후, 중국인 사제인 주문모가 밀입국하자, 다시 입교하여 신자로 활동하다가 유배되었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에 46살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조선인 최초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던 이승훈은 베드로처럼 세 번 예수님을 배신하였고, 베드로처럼 순교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1791년 의금부에 끌려갔을 때 진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을 고백함으로써 자신을 고발한 천주교를 반대하는 친구들을 격분시켰고, 이로써 친구들과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죽음에 빠지게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조 임금은 성리학이 바로 서면 천주교는 저절로 소멸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천주교를 굳이 억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의금부에 끌려간 조선 천주교의 가룟 유다 이기경이 이렇게 증언하였다. “저와 이승훈, 홍낙안은 함께 공부한 절친한 친구입니다. 이승훈과 함께 성균관에 있을 때 서양서적들을 보았는데, 만약 책을 본 것이 죄가 된다면 저와 승훈은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간혹 좋은 곳도 있었지만, 이치에 어긋나고 윤리를 해치는 곳도 많이 있었기에 힘을 다해 논척하고 승훈에게도 많이 경계시켰습니다.” 이때 이기경은 친구인 정약용의 이름을 일부러 거론하지 않았고, 이승훈만 본 것이 아니라, 자신도 함께 보았노라고 증언하였다. 여전히 이기경은 정약용과 이승훈에게 우정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정약용은 매형인 이승훈의 진실한 증언이 비주류 남인들의 장래는 물론이고, 천주교의 앞날에도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임금을 속이지 말고 사실대로 증언하라고 충고하였다. 그러나 이승훈은 이기경과 홍낙안의 밀고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이기경의 생각이 음험하고 말이 허황된 것은 홍낙안보다도 열배나 된다고 주장하여 자신은 석방되었지만, 친구인 이기경은 유배를 당하였다. 이후 이기경은 복수의 칼을 갈았다.
비주류 남인 시파를 천주교인으로 몰아 제거하려했던 주류지배세력인 서인 노론 벽파의 끄나풀이 되어 출세를 노렸던 이기경, 홍낙안, 목만중은 모두 남인들로써 정약용 집안의 친구들이었으나 질투심과 출세에 대한 욕망과 열등감이 컸던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훈이 진실을 고백했더라면, 그리고 친구의 우정을 변치 않았더라면, 정조 임금과 좌의정 채제공의 배려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조선역사는 달리 쓰였을 수도 있었다. 한편 이승훈과는 반대로 정약용의 막내형인 정약종은 의금부에 자발적으로 체포되어 끝가지 믿음을 지켜냄으로써 오히려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들을 살려냈다. 이것이 ‘필생즉사 필사즉생’의 역사적 증거였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사즉생’
남유다왕국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왕국의 미래를 놓고 목숨을 걸고 임금과 주류세력들에 맞섰다. 결국 예레미야는 살아남고 임금과 주류세력들은 살해되거나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예레미야는 국제정세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여호야김이 다스렸던 주전 609-598년에는 유다왕국의 멸망이 코앞에 닥쳤다는 징조들이 많았다.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에서 앗수리아와 이집트의 연합군을 전멸시켰고, 이로 인해서 이집트는 유다왕국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앗수리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에 의해서 왕이 된 여호야김은 바벨론의 멍에를 벗으려고 애를 썼다. 이 때 예레미야는 왕에게 바벨론에 저항하지 말고 이집트를 의지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이로 인해서 예레미야는 핍박을 받아 죽음의 위기를 수차례 맞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다윗언약과 성전과 왕권이 유다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할 것이고, ‘여호와의 성전’이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민족주의자들과 정치지도자들에게 성전을 마술적으로 믿지 말고 즉시 회개하고 금식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들을 귀가 없었던 여호야김은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하였고 주전 598년에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고, 바벨론의 총공격이 있기 몇 달 전에 사망하였다. 결국 유다왕국은 다음 해인 597년에 바벨론 군대에 능욕을 당하였고, 왕위에 오른 지 세 달밖에 되지 못한 18살의 여호야긴과 지도자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다. 주전 605년에 이어 두 번째 유배였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숙부이자 요시야의 아들이었던 시드기야를 새 왕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시드기야 역시 친이집트파였던 하나냐와 스마야 같은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하나냐는 포로가 된 사람들이 신속하게 돌아오고, 성전 보물들도 곧 되찾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의 예언을 부정하고 유다가 회복되려면 적어도 70여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바벨론에 반기를 들지 말고 복종하도록 권하다가 토굴과 웅덩이에 갇혔고, 시위대의 뜰에 갇히기도 하였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충고를 거부하고 신하들의 말을 듣고 이집트의 편에 서서 주전 589년에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 바벨론은 시드기야의 반역 소식을 듣고 즉시 군대를 예루살렘에 파견하여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었다. 바벨론 군사들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하였고,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소경으로 만든 다음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이로써 제3차에 걸친 바벨론의 침략과 유배가 완결되고 유다왕국은 철저하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살고자한 임금과 주류지배세력들은 죽고, 죽고자한 비주류 예레미야는 살아남았다.
마가복음 8장 32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죽지 말라고 항변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 때문이라고 예수님께서 33절에서 말씀하셨다. 살아남아 권세와 명예와 재물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복음의 일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 것이 영원히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필생즉사 필사즉생’의 교훈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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