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엡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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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엡 5:1-2)
장관직이나 성공보다 더 큰 가족의 가치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경제정책인수팀을 이끌었고 새 행정부의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하여 신 경제를 주도하던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Robert B. Reich)가 어느 날 갑자기 장관직을 사임하고 가정으로 돌아갔다. 이후 그는 왜 그가 그토록 열정을 다 바쳐 해오던 일을 버리고 가정을 택했는지를 자신의 저서 <<부유한 노예>>(The Future of Success)와 <<미래를 위한 약속>>(I'll Be Short)에서 밝혔다.
라이시 박사는 바쁜 일과 때문에 막내아들이 아침잠에서 채 깨기도 전에 출근하고, 저녁잠이 든 후에 집에 들어오곤 했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는 아버지에게 막내아들이 부탁을 한다. 밤에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셨는지를 확인하고 싶으니 집에 도착하시면 꼭 자기를 잠에서 깨워달라고.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로버트 라이시는 이후 장관직을 사임하고 <<부유한 노예>>와 <<미래를 위한 약속>>을 저술하였는데, 이 두권의 책에서 그는 자신이 주도했던 신경제가 가져온 각종 문제점의 지적과 공존과 상생의 미래 공동체 사회 건설을 주장하면서, 침몰해가는 가족과 개인의 가치, 진정한 가정의 가치 등을 피력하였다.
막내아들의 소박한 부탁을 통해서 라이시 박사는 하루 15시간씩 일에 매달려 부유한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후 그는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에로 자신을 작게 만들겠다(I'll be short)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 점에 대해서 <<아침 키스>>를 쓴 두상달 칠성산업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을 팔아야만 하는 신경제 체제에서는 자신의 상품가치를 끝없이 재고하지 않으면 낙오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중요한 자리에 올라갈수록,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일해야만 한다. 결코 일 바구니가 비는 일은 없다. 세상은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고 가족과의 관계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엔진만 있고 브레이크는 없는 삶이다. 돈이 많아도 결코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부유한 노예, 성공한 노예가 되는 것이다.”
어떤 아버지가 인터넷에 자신을 세상말로 성공한 사람, 좋은 직업,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집, 그야말로 부러울 것이 없던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런데도 공허감이 항상 자기 곁을 맴돌더라고 했다. 출세와 돈이 행복의 조건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것이 가족에게는 불행의 조건이었다고 했다. 돈으로 화려한 보석과 좋은 차와 좋은 집은 살 수 있어도 가족의 사랑을 살 수는 없더라고 했다. 사랑을 잃는 순간 그 비싸고 화려했던 것들이 골동품이 되어버리고, 빛바랜 것이 되고 말더라는 말도 했다.
가톨릭의 정진석 추기경은 2008년 사목교서에서 ‘가정은 생명의 터전’이란 말로 가족의 가치를 피력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웃들에게 참된 가정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특별히 가정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자 축복임을 재천명하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이 가정 안에 뿌리내려 우리 사회에 생명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고 하였다.
천국이나 다름없는 가정의 가치
가정은 아름답다. 가정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답고 선하신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셨고, 하와를 만드셨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로부터 자녀들을 낳게 하셨다. 아담은 하나님에게 나왔고,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으며, 자녀들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나왔다.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와 자녀들은 뗄 수 없는 깊고 완벽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은 구성원들이 행복을 얻는데 존재이유가 있지 않고, 행복을 주는 데 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가정은 행복을 주는 자들의 작은 공동체이다. 우찌무라 간조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을 얻기 위해 이루어진 가정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서로 행복을 주기 위해 이루어진 가정은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가정이 아름다운 것은 가정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가정은 인격이 아름답게 형성되고, 인격이 아름답게 변화 되고, 인격이 아름답게 성장하는 곳이다. 가정이 아름다운 이유는 삭막한 세상에 한복판에 서있는 가족의 오아시스이기 때문이고, 가족을 보호하는 성채(城砦)이기 때문이다. 가정이 천국이 될 때 비로소 가정이 안식처와 피난처가 될 수 있다. ‘가화만사성’이나 칠성산업의 두상달 사장이 말하는 “아침키스가 연봉을 높인다”와 같은 말은 가정이 하나님을 모신 천국이 될 때 만사가 형통한다는 뜻이다. 가정천국을 이루어 성공한 이들 가운데 헨리 포드가 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의 팔순잔치가 디트로이트에서 있었다.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포드의 삶과 성공에 대해서 여러 가지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포드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이었다. 어떤 사람은 포드가 유리 공장을 사들여 성공했다고 말했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삼림과 페인트 공장을 인수하여 지금의 사업체를 이루었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포드가 석탄광, 직조 공장, 기선회사 등을 인수하여 산업계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가운데 한 사람이 포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포드 회장님,” 회장님께서 일생동안 이뤄놓은 일들 중에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포드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침착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바로 나의 가정입니다.”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을 거둔 산업계 거목의 확고한 이 대답은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하더라도 한 가정의 가족일원으로써 책임을 다하고, 가족들에게 행복을 주지 못했다면, 그는 진정으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가정이 화목하지 못했다면, 그 자신도 그의 사업도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을 소홀히 한다. 2003년 5월 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한국인 한 사람이 휴일에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시간이 평균 16분, 배우자를 도와주는 시간은 주중에 2분, 주말에 1분이라고 했다. 반면 주중의 TV 시청시간은 남자가 2시간 6분, 여자는 2시간 4분이었고, 주말에는 3시간을 넘었다고 했다. 보고서는 한국인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하루 평균 1시간 18분이지만 실상 이 중 40분은 가족과의 식사시간이라고 말하였다. 천국이나 다름없는 가정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아름다운 가치관
그리스도인들은 가치관이 분명해야 한다. 세속적 가치와 아름다운 가치, 세속적 가치관과 아름다움 가치관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성숙한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세속적 가치관이란 효용성의 원리를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실용주의, 공리주의, 결과주의, 성공주의를 말한다. 이런 것들은 그 사상적 배경이 무신론적이고 반기독교적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실용성과 공리성에 상관없이 또 결과와 성공여부에 상관없이 존재 그 자체를 소중하게 여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만든 것이고, 크고 작은 것, 능력이 있고 없는 것, 잘나고 못난 것에도 그 나름의 특별한 목적과 가치를 부여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살고 못사는 것, 잘나고 못난 것, 능력이 있고 없는 것, 돈을 잘 벌고 못 버는 것, 장애가 있고 없는 것 등으로 가치를 매긴다면, 그것이 바로 세속적이고 반기독교적이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섭리와 경륜을 의심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돈, 재물, 성공, 재능, 명예, 권세, 큰 것, 잘난 것, 일류, 이런 것보다는 행복, 감사, 사랑, 섬김, 소박함, 단순함, 느림, 여유, 한가로움, 가정, 가족, 교회, 신앙 등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기독교인들은 아름다운 가치실현을 위해서 투쟁하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기독교인 장애자와 또 그 장애인을 바라보는 기독교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여수한려초등학교 5학년인 박현지 양은 장애인이다. 작가가 꿈이고 실제로 글도 잘 쓴다. 박현지 양은 홀트오람증후군이란 희귀병 때문에 가슴에 심장 박동기를 달고 있으며, 왼팔은 오른팔보다 많이 짧고, 손가락은 여덟 개뿐이다. 왼쪽 귀는 여러 번의 수술로 들리지 않으며, 계속해서 일 년에 2차례 정도의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런 큰 육체고통에도 불구하고, 박현지 양은 자신의 장애를 하나님이 주신 또 하나의 큰 축복이라고 믿고, 매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박현지 양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이렇게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를 이렇게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장애인이기에 더 많은걸 느낄 수 있고, 항상 누구보다도 더 잘하는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을 노래한 ‘나’라는 시를 쓴 송명희 시인은 다 잘 알다시피 선천성 뇌성마비 환자이다. 시인의 형편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들과 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그녀는 오랜 기간 지하방에서만 지내왔고, 육체의 아픔은 그에게 너무나 큰 가시이자 무거운 십자가였으며, 가진 것도 없는 무일푼이었기에 ‘나’란 시를 쓸 때에 “공평하신 하나님”이란 시상(詩想)에 너무 기가 막혔고, “남이 없는 것을 갖게 하셨다”는 말에 울음을 쏟아내며 하나님께 항의했지만, 하나님은 억지로 끝까지 그 시를 적게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송명희 시인의 육체장애가 건강한 사람과 비교해서 공평하다면, 또 박현지 양이 앓고 있는 희귀병이 하나님이 주신 또 하나의 축복이라면, 지금의 우리의 형편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공평하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장애는 장애로써의 소중한 가치가 있고, 가난은 가난으로써의 아름다운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기독교인의 가치관이다. 하물며 우리가 어떻게 가족 구성원들의 능력과 건강과 처지를 불평하며 원망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1-2). 하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죽어야할 만큼 가치가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나의 가치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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