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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해석(출 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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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942 2010.07.09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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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해석(출 20:1-17)

역사해석

인류역사상 하나님의 일반은혜를 가장 적게 누린 민족, 가장 불행했던 민족이 유대민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누린 하나님의 특별은혜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누린 하나님의 특별은혜의 성격을 살펴봐야 한다.

유대민족의 역사는 그들의 역사의식이 만들어낸 해석의 역사이다.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을 말하는데, 이 과거의 사건들을 해석해 내는 힘이 유대인들에게 있었다. 과거의 사건들을 해석해낼 뿐 아니라, 그것을 신앙과 예배의 내용으로, 명절과 축제의 내용으로, 민족의 정체성과 연대의 끈으로, 교육의 내용으로, 윤리와 도덕적 실천으로, 법과 질서의 내용으로까지 삶에 녹아내리게 하였다.

해석의 역사는 죽은 과거의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비극적인 죽음과 어둠과 혼돈의 역사에 생명과 빛과 질서를 불어넣고 노예와 떠돌이였던 민족에게 큰 기적을 만들게 한 원동력은 야훼 하나님을 그들과 그들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구원의 하나님으로, 그들 역사의 중심에 선 주인공으로 고백하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일반 역사가들이 “히브리 민족이<주어(主語)로써>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 쓸법한 내용을 유대인 역사가들은 “야훼 하나님이<주어(主語)로써>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고 독수리 날개에 업어 홍해를 건너게 하셨으며,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의 물로 사막을 통과케 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게 하셨다.”고 적는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의 역사, 비록 그것이 세상 모든 민족들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역사라 할지라도, 그것을 이끌어가는 주체를 자신들로 여기지 않고, 그들의 하나님 야훼라고 믿는다. 여기에 유대인들의 위대함이 있다. 강대국들이 볼 때는 하찮기 그지없는 아주 작은 사건조차도, 그것들이 그들에게 성공을 주었든지, 실패를 주었든지, 영광을 안겨주었든지, 수치를 안겨주었든지, 기쁨을 주었든지, 슬픔을 주었든지, 자유를 누리게 하였든지, 억압을 당하게 하였든지, 풍요를 안겨 주었든지, 배고픔을 안겨주었든지 상관치 않고, 이 모든 역사의 주체를 야훼 하나님께 돌리는 하나님 중심의 역사의식, 그리고 그 역사의식으로 민족의 종교와 문화와 생활습관을 만들어내는 위대함, 결과적으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물려받았거나 타고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가장 불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민족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올려놓은 원동력이 하나님 중심의 역사인식이다.

유대인들이 수천 년 숙원인 희망을 지속시킨 힘 그 힘이 하나님 중심의 역사해석과 삶의 해석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희망이 자기 대(代)에서 이뤄지지 않았다고, 또는 자기 조상들의 대에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후손들에게까지 자자손손 이어가고 있다. 하나님 주도의 역사해석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먼 미래세대까지를 전망하게 하게 하는 힘이다. 이런 역사의식이 과연 우리에게는 있는지, 하나님 중심의 역사해석, 하나님 중심의 삶의 해석이 과연 우리에게는 있는지 자문해 보았으면 한다. 실패했다고 주저 않는 것은 패배의식이요 엽전의식이다.

필연과 우연

라틴어로 쓰인 ‘프린키피아’(Principia)로 불린 세 권짜리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1687년 아이작 뉴턴에 의해서 출판되었다. 이 책은 서양의 과학혁명을 불러일으킨 책의 하나로 여겨진다. 그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이 기술된 책이다. 뉴턴은 우주가 기계처럼 일정한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수학적 계산과 예측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 책을 읽고 난 유럽의 지식인들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지만,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발견한 사람은 뉴턴이다.”고 칭송하였다.

그런데 만일 뉴턴이 자신이 발견한 그 위대한 수학적 원리를 적용하여 오늘날처럼 주식에 전 재산을 투자했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그는 돈을 벌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는 투자한 돈의 대부분을 잃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주식시장도 수학적으로 예측가능한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오였다.” 만일 우주원리와 주식시장의 원리가 같다면, 수학적 원리를 적용하여 주식투자에서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주원리는 필연법칙이 작용하고, 주식시장은 우발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수학적 원리에 밝은 뉴턴일지라도 큰돈을 벌 확률이 높지 않다.

역사적 사건들도 주식시장의 원리처럼 항상 예측이 가능한 방법으로 작용되지 않는다. 수학에서처럼 역사에서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건들은 필연일까 우연일까? 만약 필연이라면 예측이 가능하지만, 우연이라면 예측은 무모한 일이 된다. 물론 간혹 예측이 적중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역사적 사건들을 다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예측이 가능하지 않다고 해서 역사적인 사건들을 모두 우연 또는 우발적인 사건들로 치부해버려서 좋을 것인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대답은 분명하다. 역사적 사건들은 예측이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던 간에 모두 다 자연법칙 즉 인과법칙(필연법칙) 아래서 발생한다.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듯이 모든 사건들에는 다 원인이 있다. 다만 우리는 그 원인이 하나님의 직접개입이었느냐 또는 단순히 자연법칙에 의한 것이었느냐를 따져볼 수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자연법칙조차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생사화복의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역사적 사건들을 단순히 우연으로만 보지 않는다. 설사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고 관여한 사건들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하나님의 허용과 허락에 따른 일반은혜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특별은혜와 개입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해석의 능력이다. 생사화복과 성공과 실패의 역사적 사건이 하나님의 일반은혜 속에서 발생하였든지, 또는 특별은혜 속에서 발생하였든지 간에, 사소한 사건에서부터 큰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 사건이 주는 하나님의 뜻과 교훈을 풀어내는 능력이 영성의 필수조건이다. 일반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유대왕국의 멸망은 단순히 힘의 논리에 의한 즉 약소국이 강대국에 먹힌 사건이었을지 몰라도, 예언자들의 관점에서는 자기 민족이 하나님과 맺은 십계명 1-2계명을 어긴 때문이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회개하면 미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회복시켜주실 것이라 믿었다. 이런 역사해석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성경적인 역사해석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김영재 교수는 성경적인 역사해석이란 주제로 세 가지를 설명했다.

첫째는 사랑이란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라는 것이다. 성경은 흑백논리를 초월한 사랑논리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저주를 퍼부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저주대로 역사를 이끌지 않으시고, 긍휼과 사랑으로 이끄신다. 따라서 역사는 하나님이 사랑으로 쓴 사건들의 기록이다. 비록 인간들이 죄를 범할지라도, 회개를 전제로,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 이를 위해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인류의 대속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둘째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고백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나의 나 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사소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린다. 나의 능력과 힘이나 혹은 우발적으로 역사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와 경륜 속에서 이뤄진다고 믿는다.

셋째는 역사는 숙명적으로 윤회하거나 맹목적으로 반복되지 않고, 하나님의 개입과 관여와 계획아래서 창조되어 종말로 향하고 있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관은 직선적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창조가 있었으면, 종말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직선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의 사건들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종말을 단순히 세상의 멸망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종말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완성 되는 또 다른 역사의 시점으로 본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은 자기 민족사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항상 시내산에서 조상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들에 잣대를 두고 해석하였다. 이 언약이 613개의 계명들이 담긴 모세오경이다. 그리고 이들 계명들, 특히 십계명의 1-2계명을 잣대삼아 펼친 운동이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이었다.

회개운동이란 자기 민족에게 불어 닥친 불행이 하나님이 죽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자기 민족을 버려서도 아니라,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고 순결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하나님은 미쁘시고 한번 약속하신 것을 저버리거나 오류나 실수가 없으시므로 자기 민족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 믿었다. 조상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 한분만을 참신으로 섬기고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에 절하지 않기로 약속하였는데, 이를 어기고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을 배신하였기 때문에 잠시 하나님이 회초리를 드셨다고 믿었으며, 언제든지 회개하고 돌아오면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것이라 믿었다.

회복운동이란 회개한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이전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복원시켜주실 것에 대한 미래운동이다. 욥이 시련 후에 배전의 축복을 받았던 것처럼,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더 크고 완벽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의 내용에 ‘메시아의 출현’과 ‘다가 올 세상’(올람 하바)이 들어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고히 믿고, 그분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그분이 역사 속에서 이루시는 일들을 살피고, 성경적으로 역사를 풀어낼 때, 우리들의 삶은 풍성해지고, 우리 대(代)에서 뿐 아니라, 먼 미래세대에까지 우리의 희망(하티크바)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해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눈과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하고 만물을 밝히 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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