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우상숭배에 대한 응보(겔 2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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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우상숭배에 대한 응보(겔 28:1-10)
지나친 사랑은 죽음을 불러온다.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한 사람은 자신 때문에 죽고,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살인이나 자살을 불러온다. 산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산에서 죽고, 술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술독에 빠져 죽고, 돈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돈 때문에 죽고, 자식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자식 때문에 망한다. 지나친 사랑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일(2009년 7월) 산악인 고미영씨가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해발 8126m) 정상에 오른 후 하산하다가 추락사하였다. 여성 산악인의 영웅적인 죽음을 모두가 애석해하였다. 그녀는 산을 “엄마의 품 속”같다고 했다. 결국 그녀는 산에서 죽었다. 그녀를 아끼는 사람들이 말했다. 높은 산을 등정하여 얻는 명예가 목숨보다 소중하지 못하며, 히말라야 등정이 생명의 가치보다 더 높지 못하다고.
지나친 사랑은 집중력을 잃게 하고 피로를 불러오며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고미영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독하게 이를 악문 '철녀(鐵女)'였다. 그녀는 올 한해에만 8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마칼루, 칸첸중가, 다울라기리를 각각 5월 1일, 5월 18일, 6월 8일에 정복하였다. 그리고 7월 10일 또 하나의 고봉인 낭가파르바트를 정복하였다. 전 세계 여성 산악인으로는 처음으로 8천 미터급 14개봉을 완등하는 기록을 세우는 것이 고미영씨의 꿈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을 진단해 볼 수 있다. 첫째, 그녀는 자신의 체력을 과신했다. 체력을 우상시한 것이다. 둘째, 여성 최고의 산악인이 되려는 욕심이 지나쳤다. 욕심이 그녀를 무리하게 한 해에 무려 4개의 8천 미터급 고봉을 오르게 만들었다. 셋째, 과신과 과욕은 쇳덩어리 같았던 그녀의 체력을 고갈시켰다. 체력의 고갈은 집중력의 상실을 가져온다. 집중력의 상실은 산에 대한 경건성을 잃게 만들었다. 추락사하기 전 고미영씨의 산행 시간은 무려 15시간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산소가 희박한 산행이었다. 산악인 허영호씨의 말에 의하면, 해발 8천 미터 정도에서 탈진이 오기 때문에 술 취한 것처럼 걷는 것은 고사하고 중심잡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실족의 위험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위험도 함께 높아지는 것이 철칙이다.
고미영씨의 불행은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한 것이고, 무엇을 사랑하든 간에,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든,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든,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든, 권력과 명예와 재물을 사랑하는 것이든, 산을 사랑하는 것이든, 무엇을 사랑하든 간에 지나친 사랑은 집중력을 잃게 하고 피로감을 불러오며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사고를 일으킨다. 허영호씨는 “등반의 목적은 집을 떠나서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라며 “산이 어디 도망가는 게 아니다. 등반은 산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체력도 보강한 다음에 여유 있게 해야 하는데 스포츠 경기처럼 경쟁적으로 하다보면 무리가 따르게 된다. 거기에 자연의 힘에 걸려들면 사람이 꼼짝을 못한다”고 말하였다. 허영호씨는 “(산악인들끼리) ‘그 친구들 너무 빨리 간다.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니냐?’고 염려했는데 결국 사고가 터져 매우 안타깝다”며 “욕심 때문에 8천 미터급 고봉 3-4개를 1년 사이에 달성하려고 하니까 결국 이런 사고가 났다”고 진단하였다.
오를 줄만 알고 내려올 줄을 모르는 것은 문제이다. 산악인 허영호씨는 그가 8400미터 로체샤르 정상을 300미터 남겨둔 시점에서 과감하게 발길을 돌렸던 때가 있었음을 소개한바가 있다. 그는 "몸 컨디션과 날씨를 보고 힘들다고 판단이 되면 정상이 눈앞에 있어도 과감하게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집을 떠날 때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온다고 가족들과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텐트에 돌아와서는 '죽더라도, 다치더라도 정상에 올랐어야 했는데…'라며 엉엉 울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런 현명한 결단이 그를 산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게 하는 힘이다.
과욕과 교만은 치명적인 독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 16:18)라고 했다. 고상돈씨는 79년 알래스카의 매킨리(6,194m) 봉에 오른 후 하산 길에서 추락사하였고, 여성 1세대 산악인이었던 지현옥씨는 94년 안나푸르나 봉을 오른 후 하산하다가 실종되었다. 95년에 박현재씨는 브로드(8,047m) 봉에 오른 후 하산 길에 추락사하였고, 안진섭씨와 박무택씨는 각각 93년과 2004년에 에베레스트에 오른 후 하산하던 길에서 추락사하였다.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단독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던 라인홀트 메스너는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에서 친동생을 잃는 등 수많은 동료들이 산에서 추락사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메스너는 죽은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서 㰡”죽음의 지대㰡•란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그는 “경건함을 잃는 순간 인간은 추락한다.”고 하였다.
에스겔 28장은 두로와 시돈의 멸망을 예언한 말씀이다. 두로와 시돈은 이스라엘과 이웃한 나라들이었고 지금의 레바논 지역을 말한다. 두로와 시돈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지적된 것이 교만이었다. 에스겔 28장 2절 이하를 보면,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하였으니....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로 바다 가운데서 살육을 당한 자의 죽음같이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지라.”고 하였다.
이 말씀의 핵심은 신이 아닌 자가 신을 참칭하였다는 것이고, 신을 참칭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가 신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을 심판으로써 깨우쳐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상을 만들지 말고,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것은 반드시 잡신 혹은 거짓 신들만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생명도 없고, 숨도 쉬지 않는 돌부처와 같은 우상들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이다(잠 16:5). 교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남을 무시하고, 남의 허물을 들춰내고, 용서할 줄 모르는 데 있다. 마치 자기가 완벽한 신이나 되는 것처럼, 남을 심판하는 자기숭배가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신이 아니라 죄 많고 허물 많은 죽을 운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우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드시 하나님이 심판을 해서가 아니라, 교만이 스스로에게 화를 불러들인다는 뜻이다. 자기우상 숭배자에게 응보가 따른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자기우상숭배이다.
오만은 사람을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갈 가공할 내면의 적이다. 토인비는 지구상에서 한 때 찬란한 꽃을 피웠지만, 시들고 멸망해 버린 21개의 문명들을 연구한 끝에 결론내리기를, 21개의 문명들 가운데 19개 문명이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 곧 내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멸망했다고 하였다. 이 ‘내부의 적’이 바로 ‘오만’이다. 토인비는 ‘오만’을 ‘자기우상’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인간의 문명이 쇠퇴되고 해체되는 것을 토인비는 ‘네메시스’ 곧 ‘응보’라고 불렀다.
진위여부를 떠나서 대천사장 루시퍼가 교만에 빠져서 마귀가 되었다는 설은 굉장한 의미를 그 속에 담고 있다. 교만에 빠지면 가장 아름다웠던 것이 가장 추악한 것이 될 수 있고, 교만에 빠지면 가장 선했던 것이 가장 악한 것이 될 수 있고, 교만에 빠지면 가장 건설적이었던 것이 가장 파괴적인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헤라클레스는 그에게 부과된 운명을 극복한 영웅들 중에 영웅이었지만, 신 앞에서 끝까지 겸손하였기 때문에 신들로부터 대대적인 영접을 받고 보상도 받지만, 벨레로폰이란 용사는 처음 신앙심 깊은 행동으로 큰 복을 받지만, 큰 복을 담을만한 그릇이 못되었던지, 오만이란 병이 도졌고, 신성을 참칭하려다가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벨레로폰은 인간을 괴롭히는 ‘키마이라’라는 괴물을 물리친 용사였다. 그가 이 괴물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신이 그에게 페가수스라는 하늘을 나는 천마(天馬)를 부릴 수 있는 황금고삐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황금고삐는 벨레로폰만이 가진 특별한 재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재능이 때로는 큰 업적을 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재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잘난 척의 문제점, 곧 오만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오만’(Hybris)이란 이름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조금씩은 앓고 있다. 문제는 그 병을 다스리지 못하는데 있다. 벨레로폰도 마음에 도진 이 고질병을 다스리지 못하였다.
오만이란 자기우상화는 업보가 따르게 되어 있다. 벨레로폰은 괴물을 물리치고 나서 페가수스를 타고 신들의 궁전을 향해서 오르고 또 올랐다. 제우스가 하늘궁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벨레로폰이 하는 짓이 우습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다. 그래서 벼락을 던져 태워버릴까 하다가 생각을 바꿔서 말의 몸에 강력한 등에 한 마리를 만들어 페가수스의 꼬리 밑에 붙어서 피를 빨게 하였다. 그러자 페가수스는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몸부림을 쳤고, 그 바람에 벨레로폰이 천마의 등에서 튕겨 나와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날개 달린 페가수스가 몸을 날려 벨레로폰을 받아 줄만도 했지만, 신의 노여움을 산 자에게 자비를 베풀 수가 없었다. 결국 벨레로폰은 ‘방황의 들’에 떨어졌다. 높이 오른 만큼 추락의 충격도 컸다. 다행히 갈대가 우거진 늪에 떨어졌기 때문에 목숨만은 건졌다. 하지만 그는 절름발이가 되었고, 갈대에 눈을 찔려 장님까지 되었다. 그 후로 그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길만 골라 세상을 방황하다가 쓸쓸하게 죽었다. 재능이란 날개가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요 축복일 수 있지만, 자기우상화에 빠진 자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자기우상숭배에 반드시 업보가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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