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대접재앙(계 15-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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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대접재앙(계 15-16장)
바다는 음부 곧 죽음의 세계를 상징한다. 따라서 ‘불이 섞인 유리 바다’는 나팔과 대접의 재앙들이 펼쳐지는 지옥이다.
계시록 15장 1절은 일곱 대접재앙의 시작을 알리는 말씀이다.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는 계시록의 재앙들에 어떤 시간차가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하는 구절이다. 대접재앙은 시간차를 두고 나팔재앙에 뒤따라오기 때문이고, 재앙의 강도도 나팔재앙보다 더 높고, ‘마지막 재앙’이란 언급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은 한 사건에서 다른 사건에로 시간차를 두고 이어지는 시대구분론적인 예언들을 기록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계시록은 천상과 지상의 분리와 사건의 반복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回復)과 반전(反轉), 신실한 믿음과 인내의 절대적 필요성, 다가올 대심판의 긴박성을 알리고,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선포이다.
2-4절은 16장에 소개된 일곱 대접재앙에 연결해서 이해될 수 있는 장면이다. 또 2-4절과 16장의 일곱 대접재앙은 출애굽기 15장과 연결해서 이해될 수 있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엄청난 노도에도 불구하고 홍해를 건넌 후에 홍해해변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른 것처럼(출 15장),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성도들이 불이 섞인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출애굽기 15장에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변에서 부른 노래와 근본적으로 내용이 같다.
3-4절,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그 반대의 장면도 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성이 불과 유황과 연기 속에서(창 19장), 노아시대의 불경한 자들이 범람하는 홍수 속에서(창 6-8장), 삼손을 희롱하던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 신전아래서 큰 재앙을 당하듯이, 이스라엘 민족을 추격하던 이집트의 마병대가 홍해의 거친 파도 속에서(출 15장) 재앙을 당하는 장면이 계시록 16장에 소개된 대접재앙들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일곱 대접재앙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다’ 속에서 벌어지는 장면의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해변에 서서 붉은 바다 속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높이 찬양한 것과 같이, 천상에서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기 때문에 ‘불이 섞인 유리 바다’ 속은 지옥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5-8절은 일곱 대접재앙을 예비하는 장면이다.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은 지상 성막의 원형이기 때문에,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띤’ 일곱 천사들은 일곱 제사장들, 곧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들은 여리고 성 전투 때 일곱 나팔을 가졌던 일곱 제사장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들이 나팔 대신에 그 보다 강도가 더 높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케루빔으로부터 받고 있다. 그리고 금 대접에 담긴 것은 재앙의 불로 볼 수 있다. 민수기 16장에 소개된 불행한 사건, 즉 불이 담긴 향로에서 불과 불티가 나와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것과 계시록 8장 5절에서 천사가 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았던 것에서 엿 볼 수 있다.
계시록 16장은 일곱 대접재앙에 관한 말씀이다. 여기서 재앙은 회개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쉽사리 회개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계시록에서의 나팔과 대접재앙들은 출애굽사건 당시 모세가 이집트에 내리게 했던 열 가지 재앙들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이들 열 가지 재앙들 중에 빠진 세 가지에 대한 암시는 13절에 있는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에 있다. 이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은 각각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 이것들은 이미 앞에서 그 하나를 ‘개구리’로 지적했기 때문에 나머지는 ‘파리’와 ‘이’이다. 신약시대, 특히 계시록에서는 숫자 ‘일곱’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열 가지 가운데 세 가지를 용인 사단과 짐승인 제왕과 사제인 거짓 선지자의 더러운 영에 비유하였다. 요한은 복음서에서도 이 세 가지 재앙을 뺀 나머지 일곱 개의 재앙들에 상반되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살림의 기적 일곱 개를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 대접(2절)에서는 지상에 악하고 독한 종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에게 난다. 출애굽기 9장 8절에 나오는 ‘독종’재앙에 비교된다.
두 번째 대접(3절)에서는 바다가 피가 되고, 모든 생물이 죽는다. 출애굽기 11-12장에 나오는 ‘죽음’재앙에 비교된다.
세 번째 대접(4절)에서는 강과 물의 근원이 피가 된다. 출애굽기 7장 14절에 나오는 ‘피’재앙에 비교된다. 이 세 대접들을 땅에 쏟고 난 다음에 ‘물을 차지한 천사’와 제단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을 찬양하고 있다. 심판이 정당하고 의롭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네 번째 대접(8-9절)에서는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을 태운다. 출애굽기 9장 13절에 나오는 ‘불’재앙에 비교된다. 모세를 통해 행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도 오히려 마음을 더욱 강퍅케 하였던 바로처럼 불경한 자들은 오히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비방하며 회개는커녕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
다섯째 대접(10-11절)에서는 짐승의 왕좌에 어둠과 종기의 고통이 온다. 출애굽기 10장 21절에 나오는 ‘흑암’재앙에 비교된다. 짐승으로 상징된 제왕 역시도 오히려 이로 인해서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치 않았다. 불경한 자들은 끝장을 볼 때까지 회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불 못만이 그들을 기다린다.
여섯째 대접(12-16절)에서는 유프라테스 강물이 말라버린다. 세 더러운 영(개구리, 이, 파리)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와 전쟁을 예비한다. 출애굽기 8장 1절 이하에 나오는 내용에 비교된다. 사단의 영을 가진 바로는 거짓선지자들인 박수들과 함께 재앙을 당하면 당할수록 이스라엘 민족을 더욱 압박하는 정책을 썼고, 이스라엘 백성이 탈출한 후에는 마병대로 하여금 추격케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과 전쟁을 예비했던 것이다.
일곱째 대접(17-21절)에서는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음성이 나서 “다 이루었다.”(It is done!)고 하셨고, 또 큰 지진이 나서 만국의 성들은 물론이고, 큰 성 바벨론, 곧 로마제국도 무너지고, 섬과 산악이 사라졌으며, 34킬로그램 무게의 우박이 쏟아지는 엄청난 재앙이 내렸지만, 불경한 자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비방하고 회개치 않았다. 출애굽기 9장 13-21절에 나오는 ‘우박’재앙에 비교된다.
계시록 16장 12-16절에 ‘아마겟돈,’ ‘유프라테스 강’과 ‘동방에서 오는 왕들’에 관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아마겟돈’은 우리말로 ‘므깃도 산(하르)’ 혹은 ‘므깃도 언덕(텔)’이란 뜻이다. 므깃도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요새이자 길목이다. 역사적으로 크고 작은 전쟁들이 이곳에서 치러졌다. 갈멜산 북쪽 이스르엘 평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을 점령한 사람이 곡창지역을 차지할 수 있었다. 또 므깃도는 이집트,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잇는 지중해 해변로인 ‘비아 마리스’(Via Maris)를 차단할 수 있는 길목이어서 크고 작은 전투가 치러졌던 곳이다. 드보라가 시스라를 격멸한 곳이고(삿 5:19-21), 예후가 아하시야를 죽이고 쿠데타에 성공한 곳이며(왕하 9:27), 요시아가 이집트의 느고 2세를 가로막다가 전사한 곳이다(왕하 23:29-30, 609 B.C.). 팔레스타인 땅을 넘보던 이집트, 앗시리아 등의 대국들이 이곳에서의 혈투를 피해가지 못했다. 솔로몬은 이곳에 450여 마리의 말과 150여대의 전차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시설(Stables)을 갖춰놓고 전차부대를 주둔시켰다. 따라서 므깃도는 영적인 전쟁터의 상징이다. 아마겟돈은 용으로 상징된 사단과 짐승으로 상징된 칼의 권세자인 박해자(666)와 그의 앞잡이인 거짓선지자와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로 뭉친 악한 영들이 집결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항하는 영적 전쟁터로써 사단이 최후까지 발악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15절에서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섯 번째 대접재앙은 여섯 번째 나팔재앙에서처럼 유프라테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여섯 번째 나팔재앙에서는 큰 강 유프라테스에 결박된 네 천사를 놓아주자 사람 삼분의 일이 불과 연기와 유황을 품어내는 말과 2억의 마병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여섯 번째 대접재앙에서는 유프라테스 강물이 말라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통로가 열리고, 세 더러운 영들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제왕들을 므깃도에 집결시킨다. 유프라테스 강이 마르면 동방의 왕들을 위한 길이 열린다는 뜻은 메소포타미아 쪽에서 시리아 쪽으로의 이동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므깃도는 시리아 남쪽 사마리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프라테스 강은 로마제국의 동쪽 시리아 국경지대의 강으로써 동서양을 구분하는 지리적 분기점이다. 그 강 동편, 곧 유프라테스에서 인더스 강에 이르는 전역에 활쏘기의 명수인 파르티아 인들이 있었다. 따라서 유프라테스 강물이 마른다는 뜻은 로마제국의 방위선이 붕괴된다는 뜻이고, '동방에서 오는 왕들'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로마인들은 파르티아 왕들을 두려워했고, 그들과 싸운 62년 전투에서는 패배를 맛보았다.
그렇다면 ‘동방에서 오는 왕들’은 누구인가? 해석자들의 대부분은 이들을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들’ 곧 귀신의 영들이 이적을 행하여 아마겟돈에 집결시킨 왕들로 보는 견해가 있고, 드물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천군천사들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동방에서 오는 왕들’이 여섯 번째 대접재앙, 곧 심판과 저주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악한 영들을 정벌하기 위한 연합군으로 봐야 한다. 또 ‘동방에서 오는 왕들’이 로마인들이 두려워한 파르티아의 왕들이라면, 17절 이하의 말씀처럼, 철저하게 붕괴될 ‘큰 성 바벨론’ 곧 박해세력 로마제국을 정벌하기 위한 연합군으로 봐야 한다. 물론 이와 같은 것은 다 영적 전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의 전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과 믿음의 사람들이 최후 승리를 대미로 장식하게 될 것을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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