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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열린다는 것(막 7: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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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663 2007.09.0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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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열린다는 것(막 7:31-35)

열왕기상 12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4대 임금 르호보암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주전 930년경 솔로몬이 죽고, 41세라는 적지 아니한 나이에 통일 이스라엘의 국왕이 된 사람입니다. 르호보암은 솔로몬이 결혼동맹으로 맞이한 암몬 여인 나아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암몬 족속은 어린아이를 불태워 바치는 몰렉 혹은 밀곰이라는 가증한 우상을 섬겼는데, 나이 많아 판단력이 흐려진 솔로몬과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섬긴 종교였습니다.
솔로몬을 이어서 통일 이스라엘의 4대 임금이 된 르호보암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귀가 닫혀있었다는데 있습니다. 굳게 닫힌 그의 어두운 귀 때문에 통일 이스라엘 시대는 다윗과 솔로몬 대에서 끝나버리고 남북이 갈라지는 비극이 초래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정치적으로 뛰어난 지략가였을 뿐 아니라, 뛰어난 건축가였습니다. 그의 시대에 성전과 궁전이 지어지고 많은 토목공사들이 진행되었습니다. 따라서 백성은 무거운 세금과 부역에 시달렸고, 육체와 마음까지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이 때 백성들은 새롭게 국왕의 자리에 오른 르호보암을 찾아가 세금을 낮추고 부역을 감하여 육체적 경제적 부담을 덜어달라고 청원합니다. 이에 원로 정치인들은 당연히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고 선정을 베풀어 백성의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는 것이 백성들의 충성심을 높이고 다윗왕가를 든든히 세우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충언합니다. 그러나 젊은 정치인들은 백성들을 더욱 거칠게 밀어붙여 불평과 불만을 잠재워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러자 르호보암은 젊은 정치인들의 말을 좋게 여겨 솔로몬보다 더욱 혹독하게 백성들을 몰아붙였습니다. 그 결과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만 남고 나머지 10개 부족은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면서 갈라섰습니다. 다윗왕가에서 갈라선 10개 부족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여 사마리아 지역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르호보암은 귀가 닫혀 있어서 백성들 사이에서 떠도는 루머와 신음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루머와 신음소리는 민심이요, 민심은 곧 천심이요, 천심은 곧 하나님의 음성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통일 이스라엘 국가에 뼈아픈 남북분열이란 비극을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가 쪼개지니까 아무래도 그 힘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고, 외세의 침략에 북왕국이 먼저 무너지고 나중에 남왕국까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신약성서 복음서와 계시록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여러 차례 나옵니다. 듣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이며 재앙을 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란 점을 암시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믿음도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다고 했습니다(롬 10:17). 귀를 열어 듣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주전 1400여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의 수백 년간의 종살이에 종지부를 찍고 탈출에 성공하여 가나안 땅에 그토록 소원했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이스라엘의 대 구원사건이 한낱 목동에 지나지 않던 나이 많은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황제 바로는 하나님이 보낸 모세의 외침을 듣지 않았습니다.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닫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명을 받들어 바로 앞에 섰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바로의 귀는 닫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이집트 전역에 미친 열 차례에 걸친 재앙이었습니다. 당하지 않아도 좋았을 비극적 재앙을 열 차례나 당했고, 사람과 짐승에 관계없이 처음 난 것들이 사망하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들었습니다.
예언자 엘리야의 외침을 듣지 않았단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이세벨은 엘리사와 예후가 주도한 쿠데타로 인해서 권력이 무너지고 가문이 멸문당하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국가분열을 자초했던 솔로몬과 나아마처럼 선왕 오므리의 결혼동맹에 의해서 맺어진 부부였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오므리는 다윗 왕에 버금가는 국제정치 및 군사적으로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오므리 왕이 통치하던 시절 북왕국 이스라엘의 이름을 비로소 국제사회에 알린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그랬던 것처럼 뛰어나면 날수록 그만큼 그 보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에 눈과 귀를 막고 국가에 우상숭배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비극은 오므리가 자기 아들 아합을 옛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동맹을 맺게 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세벨은 미색을 갖췄을 뿐 아니라, 사특한 여인이었습니다. 솔로몬의 부인 암몬 사람 나아마가 어린아이를 불에 태워 바치는 가증한 밀곰이란 이방신을 들여와서 솔로몬으로 하여금 산당을 짓게 하고 그 예배에 참석케 한 것처럼 이세벨은 바알신을 들여와서 아합 왕 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강제로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합은 거짓 예언에 귀를 열어 듣고 전장에 나가 싸우다가 전사했고, 이세벨과 그의 자녀들은 엘리사와 예후가 주도한 쿠데타에 몰살되었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외침에 귀를 열었던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고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까? 이런 맥락에서 귀가 열린다는 것은 겸손히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귀를 기우려 듣고 마음에 깊이 새긴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귀가 열렸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나 예레미야의 경고를 듣지 않았던 유다 왕, 여호야김과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침략을 불러들어 나라를 망하게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국제정치 판도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앗수리아와 이집트의 쇠퇴를 읽고 있었습니다. 남왕국의 여호야김이 다스렸던 시기인 주전 609-598년에는 유다왕국의 멸망이 코앞에 닥쳤다는 징조들이 많았습니다.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에서 앗수리아와 이집트의 연합군을 전멸시켰고, 이로 인해서 이집트는 유다왕국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앗수리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야김은 바벨론에 의해서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의 멍에를 벗어버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 때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에게 바벨론에 저항하지 말고 이집트에 의지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예레미야는 민족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받아 죽음의 위기를 수차례 맞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다윗언약과 성전과 왕권이 유다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여호와의 성전’이 자기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민족주의자들과 정치지도자들에게 성전을 마술적으로 믿지 말고 즉시 회개하고 금식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들을 귀가 없었던 여호야김은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주전 598년에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고, 바벨론의 공격이 있기 직전에 사망했습니다. 결국 유다왕국은 다음 해인 597년에 바벨론 군에 능욕을 당했고, 왕위에 오른 지 3달밖에 되지 못한 18살의 여호야긴과 지도자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습니다. 주전 605년에 이어 두 번째 유배였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숙부이자 요시야의 아들이었던 시드기야를 잡혀간 여호야긴을 대신해서 왕으로 임명했습니다. 시드기야 역시 친 이집트 파와 하나냐와 스마야와 같은 거짓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나냐는 포로가 된 사람들이 신속하게 돌아오고, 성전 보물들도 곧 되찾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의 예언을 부정하고 유다가 회복되려면 적어도 70여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바벨론에 반기를 들지 말고, 복종하도록 권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애국애족주의자들에게 혹심한 핍박을 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닫힌 눈과 막힌 귀로 보고 듣게 되었을 때, 예레미야는 분명 매국노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토굴과 구덩이에 던져졌으며, 시위대 뜰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충고를 거부하고 신하들의 말을 듣고 이집트의 편에 서서 주전 589년에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바벨론은 시드기야의 반역 소식을 듣고 즉시 군대를 예루살렘에 파견했고,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바벨론 군사들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했고,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소경을 만든 다음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로써 제3차에 걸쳐 바벨론의 침략과 유배가 완결되고 유다왕국은 철저하게 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끝내 살아남게 됩니다.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읽는 것은 국가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일입니다. 한 사람이 귀를 열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면, 한 사람 개인이 사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국가를  살리게 됩니다.
마가복음 7장 31-35절에서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귀가 열린다는 것의 의미는 말이 분명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이 분명하게 된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해서 희미하게 듣고 말하던 것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듣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이 분명하게 될 때, 8장 29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듯이, 또 15장 39절에서 백부장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는 예수님을 향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제자가 되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일과 복음을 위해 헌신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 테레사 수녀나 이해인 수녀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하나님이 진정으로 계신가라는 의심을 품고 고통스러워했다는 고백들을 매스컴이 소개하였습니다. 이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까지 나서서 ‘하나님의 침묵’은 모든 성도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테레사 수녀 10주기를 계기로 공개된 테레사의 편지 가운데는 “저에게는 침묵과 공허함이 너무 커, (예수님을)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고 동료 신부에게 고백한 글이 있다고 합니다. 시인 이해인 수녀도 이와 관련해 한 방송에서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품었던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내 한계를 느끼거나 하나님 혹은 동료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낄 때 ‘정말 그분이 계실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의 고백은 구도자의 삶을 산다는 것, 믿음의 길을 간다는 것,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 신념을 실천하고 산다는 것이 길고 긴 자신과의 싸움이란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들입니다. 이런 갈등과 고민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구약성서가 쓰인 수천 년 전에도 신앙인들이 경험했던 것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7장의 귀먹고 어눌한 자의 삶의 고통이 바로 그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눈이 열리고, 영의 귀가 열리고, 영의 혀가 풀리면 상황은 반전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인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게 되고, 말하게 되고,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귀가 열린다는 것은 우리의 일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눈에서 눈물이 날 때, 귀가 차고 막힐 때, 마음이 답답하고 쓰릴 때, 목이 메고, 마음이 울적할 때, 그 때가 바로 귀를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모세는 젊어서 이집트 궁전에서 호의호식했던 사람이지만, 나이 들어 모래바람 몰아치는 광야에서 쓸쓸하게 양을 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탈바꿈하여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희망의 등대가 되고, 큰 구원의 빛을 가져다 준 것은 그가 양을 치던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유다왕국이 세 차례나 바벨론제국의 침략을 받아 재산을 몰수당하고, 성전이 약탈되며, 사람들이 유배되는 비극을 맞게 된 것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막고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매국노로 찍혀 감당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었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고 민족의 살길과 나아갈 길에 대해서 선포하였습니다. 갇히고 매 맞고 매국노로 찍힌 고독하고 고통스런 생애였지만, 하나님을 향해서 귀를 기우렸고, 민족을 향해서 입을 열었던 예언자였습니다.
소설 󰡔빙점󰡕(氷点)의 저자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는 반평생 넘게 온갖 병에 시달렸던 신앙인입니다. 폐결핵, 척추 이상, 띠 모양 습진, 파킨슨병, 직장암 등으로 질고 속에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소설과 수필 등 2백50여점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썼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에 대해서 미우라 아야코는 이런 시구로써 대신 설명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믿지 못할 기적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聖所)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뵙지 못할 성안(聖顔)이 있다.
아, 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조차 없다.
미우라 아야코는 자신의 병을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라는 영혼의 음성을 듣고 있었고, “병으로 잃은 것은 건강뿐이고, 그 대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모세와 예레미야처럼 혹은 큰 시련 후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던 욥과 엘리야처럼 평상시에 들을 수 없던 말씀을 오히려 아픔을 통해서 듣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귀먹고 어눌했던 자가 예수님을 만나 후에 말이 분명하게 된 것처럼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귀가 열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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