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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문을 닫고 뒷문을 여시는 하나님(고전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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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781 2007.12.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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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문을 닫고 뒷문을 여시는 하나님(고전 10:13)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오늘은 2007년을 보내는 마지막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살아온 한 해를 아쉽지만 떠나보내고, 힘겨운 싸움질을 하면서 살아가야할 또 다른 한 해를 맞아드릴 채비를 갖추는 세밑입니다.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이 땅을 스쳐 갔지만, 헤라클레스만큼 무거운 운명의 짐을 짊어지고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성실하게 수행해낸 인물도 많지 않습니다. 헤라클레스의 영웅담이 실화는 아니지만, 그 속에 담긴 교훈이 깊기 때문에 소개해 드리는 것입니다.
일찍이 광기로 인해 아내와 자식을 살해한 헤라클레스는 그 벌로써 아르고스의 지배자(에우뤼스테우스)로부터, 일찍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12가지 과업을 지시받고 한 가지씩 척척 해결해 나갑니다. 그 첫 번째 과업이 네메아의 사자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네메아의 사자는 창이나 칼이나 활로써는 죽지 않고, 꼭 30일 동안 목을 조르고 있어야 죽는 괴물입니다. 그 괴물을 죽이려면 천하장사인 헤라클레스일지라도 그는 먼저 30일 동안 한순간도 눈을 붙이지 말아야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머리가 아홉 개나 되는 죽음의 씨앗이라 불리는 물뱀 휘드라, 청동발굽을 가진 뿔 달린 암사슴, 에뤼만토스 산의 멧돼지, 스튐팔로스의 요사스러운 새, 크레타의 황소, 디오메데스의 암말, 게뤼오네스의 소떼를 사로잡거나 죽이는 일들을 차례로 수행합니다. 열거한 이들 짐승들은 괴물들 중에서도 괴수들이기 때문에 쉽게 죽이거나 사로잡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라클레스는 그런 일들을 잘 수행해냅니다. 그밖에도 소똥을 치우거나 여인국 아마존 여왕의 허리띠와 헤라의 황금사과를 손에 넣는 등, 일찍이 그 누구도 해낼 수 없었던 과업들을 해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의 세계인 음부에까지 내려가 음부의 신 하데스의 궁전을 지키는 머리가 세 개 달린 케르베로스를 사로잡고, 망각의 의자에 앉아 벌을 받고 있던 테세우스를 구해서 이생으로 데려오는 일까지 합니다. 이로써 헤라클레스는 음부의 권세자인 죽음조차도 이긴 불세출의 영웅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만에 빠지거나 신들을 모독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습니다. 그 대가에 대해서 독일의 시인 쉴러는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비겁자의 종으로 전락해 있으면서도 (여기서 비겁자란 헤라클레스에게 12번이나 불가사의한 과업을 지시한 아르고스의 지배자 에우뤼스테우스를 말합니다.) 용감한 헤라클레스는 끝없이 싸우며 괴로운 가시밭길을 걸었다. 휘드라를 죽이고, 사자의 힘을 빼고, 친구를 이승으로 데려오기 위해 죽음의 강에 조각배를 띄웠다. 헤라의 증오는 지상의 모든 고뇌를, 지상의 모든 수고를 그에게 지웠으나, 운명의 생일로부터 저 장렬한 최후의 날까지 그는 이 수고를 훌륭하게 참아내었다.
이윽고 지상의 옷을 벗어던진 신의 모습이, 불길에 탄 인간의 모습에서 떨어져 나와 하늘의 가득한 정기를 마셨다. 일찍 맛보지 못하던 몸의 가벼움에 기뻐하면서 지상에서 어둡고 무거운 고통을 죽음에다 버리고, 천상의 빛을 향하여 비상했다. 올륌포스 신들은 그를 맞으러 사랑하는 아버지의 대전으로 모이니, 빛나는 청춘의 여신은 뺨을 장밋빛으로 물들이고, 지아비 된 그에게 신들이 마시는 술을 따랐다.
이 시의 전반부는 헤라클레스가 이생에서 당한 극심한 고통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 과업을 훌륭하게 수행해낸 점을 노래한 것이고, 후반부는 죽은 후 무거운 육신의 짐을 훌훌 벗고 신들이 사는 천상에 올라 신들로부터 보상받는 장면을 노래한 것입니다. 헤라클레스가 받은 보상 중에는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헤라가 직접 자신의 딸이자 신들에게 술을 따라주는 청춘의 여신 헤베를 짝으로 맺어준 것입니다. 
헤라클레스는 힘, 인내, 가치, 정의의 상징이자, 숫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자기 일들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영웅성을 상징합니다. 헤라클레스가 델포이 신전을 찾아갔을 때, 아폴론 신의 뜻이 이렇게 전달됩니다. “아르고스의 지배자를 찾아가 12년 동안 종살이를 해야 한다. 종살이를 잘 끝내면 큰 영광이 있을 것이다. 그때부터 산 자는 그대의 목숨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 헤라클레스여!”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사래가 사라가 되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고, 사울이 바울이 되듯이, 본명이 알케이데스인 헤라클레스가 이때 헤라클레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됩니다.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영광’이란 뜻입니다. 헤라가 누굽니까? 헤라클레스에게 모진 고초를 겪게 한 제우스의 부인입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그녀가 짐을 지운 무거운 고초를 극복함으로써 ‘영광’을 얻게 됩니다. 헤라 여신이 없었다면, 헤라클레스는 고초를 겪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신들로부터 영광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헤라가 왜 헤라클레스를 탄압했는지 아십니까? 제우스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과 내가 바로 헤라클레스처럼 인간의 몸에서 태어난 위대한 신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시험을 허락하시되 감당할 시험밖에는 허락지 아니하시고, 또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열어 주십니다(고전 10:13).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때가 바로 영광을 얻을 때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고난의 때, 죽음의 때를 일컬어 영광 받으실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헤라클레스가 제 힘만으로 영웅의 반열에 올랐습니까? 아닙니다. 아테나 여신이 그에게 늘 붙어 다니며 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성령님이 바짝 붙어서 돕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헤라클레스가 나중에 지옥에서 살려낸 아테나이의 영웅 테세우스가 고초를 겪는 헤라클레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신들은 앞문을 닫을 때는 반드시 뒷문을 연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날 테이레시아스라는 청년이 아테나이의 신의 숲을 걷다가 숲 속에서 목욕을 하는 한 여성을 잠깐 훔쳐보았는데, 그녀가 다름 아닌 아테나 여신이었던 것입니다. 현장에서 잡힌 그를 아테나 여신은 눈을 어루만져 시력을 빼앗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신은 봉변을 당한 거나 다름없는 테이레시아스가 측은했던지, 그에게 육신의 눈을 잃는 대신에 마음의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러자 테이레시아스가 아테나 여신을 이렇게 찬양하였습니다.
영원한 성처녀시여, 한 손으로는 치시되, 한 손으로는 거두시니 감사합니다. 겉 보는 것을 거두어가시고, 속 헤아리는 권능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육신의 눈동자보다 더 큰 눈동자, 육신의 눈동자보다 더 깊은 눈동자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처녀 예지자시여, 잃고도 얻는 것이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것이 신은 한 창을 닫으시면, 또 다른 창을 열어주신다는 뜻일 것입니다 .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이 해가 닫히면 또 다른 새해가 열릴 것입니다. 이미 닫혔거나 닫히게 될 것에 연연하지 말고, 이미 열렸거나 열리게 될 것에 매진합시다. 가치 있는 고통에는 반드시 영광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신(神)이 예정한 운명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헤라클레스처럼, 영웅의 길을 힘차게 걷도록 합시다.
2008년 무자년(戊子年) 쥐의 해가 내일 모레면 밝습니다. 쥐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영화 가운데 디즈니사가 만든 'An American Tale' 즉 '하나의 미국 이야기'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생쥐 가족이 배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과정에서 어린 쥐 휘벨(Fievel)이 겪는 여러 가지 가상적인 이야기를 만화영화로 만든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 즉 '성공의 꿈'을 가지고 이민해온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인지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디즈니사가 만든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도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하나의 미국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펼쳐집니다. 일곱 살 난 휘벨이란 이름의 쥐가 러시아에 살고 있었습니다. 휘벨의 가족은 비록 가난하기는 했지만 가족이 함께 사는 한 언제나 행복하였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 갱단이 마을을 습격했습니다. 마을을 불태우고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목숨만을 겨우 건진 쥐들은 모두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휘벨의 가족도 정든 고향을 등지고 살기 좋다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미국으로 가는 배는 매우 혼잡했습니다. 많은 쥐들이 고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대서양을 건너던 배가 폭풍을 만났습니다. 엄청난 폭풍이었습니다. 배가 흔들리고 거대한 파도가 갑판을 때렸습니다. 마침 갑판에 서있었던 휘벨이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짠 바닷물도 먹고 파도에 시달렸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물위에 떠 있던 빈 병을 만났습니다. 휘벨은 빈 병에 매달렸습니다. 파도에 밀려 어느 외딴 섬에 도착했습니다. 이 섬에서 휘벨은 비둘기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착한 비둘기는 휘벨을 이민국으로 실어다 주었습니다. 이민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국심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휘벨의 가족은 이미 이민국을 통과해서 번잡하기로 소문난 뉴욕으로 떠난 뒤였습니다. 휘벨은 가족을 찾아 거리를 헤맸습니다. 그러나 쉽게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배고픔에 떨던 어느 날 악덕 기업주에게 끌려가 감옥 같은 가봉공장에서 고되게 일을 했습니다. 공장은 도망갈 수 없도록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휘벨은 공장에서 사용하는 옷감으로 밧줄을 만들어 감옥 같은 그곳을 탈출하는데 성공합니다. 번잡한 뉴욕의 거리로 나온 휘벨은 가족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추위에 떨면서 러시아 쥐들이 사는 곳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가족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말을 맞아 거리는 온 통 크리스마스 추리로 밝혀 놓았지만 휘벨이 편히 쉴 곳은 아무 곳에도 없었습니다. 어느 골목길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움츠리고 않아있던 어느 날 휘벨은 은은하게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아버지가 켜는 바이올린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쥐는 휘벨을 그리워하며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휘벨은 꿈에도 그리던 가족을 찾게 됩니다. 새 해를 맞는 휘벨의 가족에게는 정말 멋진 선물이었습니다. 새 희망의 태양이 휘벨의 가족에게 훤하게 비추었습니다.
'한 미국의 이야기'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세계 도처에서 몰려온 많은 이민자들의 슬픔과 기쁨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친 인척이 거의 없는 낮선 미국에 이민 와서 행복을 찾기까지의 역경의 삶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깐 동안의 고생 끝에 자립하여 집도 사고 차도 사고 헤어졌던 가족들과 합치기도 합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자손들에게 들려 줄 수 있는 '한 한국의 이야기' 즉 'An Korean Tale'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꿈과 포부를 갖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새 해에는 꼭 이루어지기를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그러나 꿈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수고와 인내를 바탕으로 그 꿈이 이루어집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하는 여러분에게 커다란 꿈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꿈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을 믿고 밭을 갈고 거름을 하고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아 주고 물을 주어 가꾸는 노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한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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