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예수(히 8:1-13, 출 24:1-11)
본문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예수(히 8:1-13, 출 24:1-11)
히브리서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에 집중하면서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7장과 8장은 그 소개의 절정에 근접한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7장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저자는 7장 한 장에서만 예수님을 무려 12가지로 레위 제사장들보다 훨씬 우월한 제사장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레위 제사장들보다 훨씬 우월한 멜기세덱과 동일한 별다른 제사장이시다.
둘째, 예수님은 육신에 속한 법, 곧 연약하고 무익하고 폐지된 율법을 따르지 않고,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된 대제사장이시다.
셋째, 예수님은 영원히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제사장이시다.
넷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맹세로 된 제사장이시다.
다섯째, 예수님은 영원히 그 직분이 보장된 제사장이시다.
여섯째,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a better covenant)의 보증(guarantee)이 되시는 제사장이시다.
일곱째, 예수님은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제사장이시다.
여덟째, 예수님은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제사장이시다.
아홉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합당하신, 곧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제사장이시다.
열째, 예수님은 하늘보다 높이 되신 제사장이시다.
열한 번째, 예수님은 레위 대제사장들처럼 자기 죄를 위해서 제사를 바쳐야할 필요가 없는 제사장, 곧 백성의 죄만을 위해서 단번에 자기 몸을 드려 제사를 바친 유일무이한 대제사장이시다.
열두 번째, 약점을 가진 율법으로 세워진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맹세의 말씀으로 된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하나님의 아들 제사장이시다.
히브리서 7장에서 이렇게 12가지로 예수님을 소개해놓고 8장 1절에서 외친 말이 “우리에게 이러한 대제사장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섯 가지 특성을 더 소개합니다.
첫째, 1절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분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대제사장이시다.
둘째, 2절에 예수님은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대제사장이시다.
셋째, 6절에 예수님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신 대제사장이시다.
넷째, 6절에 예수님은 더 좋은 약속으로 세워진 대제사장이시다.
다섯째, 6절에서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가 강조하는 외침은 “우리에게 이런 대제사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의 근거요, 능력이요,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런 분을 두고 어데서 더 좋은 분을 찾으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제 마음에 드는 신랑감을 찾아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고 다니는 딸아이에게 부모가 애가타서 하는 말 같지 않습니까? “이런 신랑감을 두고, 이런 신랑감을 언제 또 어디서 만날 수 있다고, 이 철없는 것아, 정신 좀 차려라.”
계시와 지혜의 영을 받고, 마음의 눈이 열린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고, 그분이 주시는 영광스런 풍성한 축복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분이 강력한 힘으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고, 그분을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알고, 그분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히브리서 저자가 8장에서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런 대제사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전에 춘향전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만, 만일에 춘향이가, 오늘날 상당수의 사람들이 좇는 방식대로, 돈을 좇고, 권력을 좇고, 명예를 좇고, 일신의 안일을 좇고, 허영을 좇고, 거짓과 술수와 무법이 판을 치는 진흙탕 속에 제 몸을 던졌다면, 그리고 소식이 끊겠다는 핑계로 이몽룡을 배신했다면, 춘향이가 신부의 화관을 쓸 수 있었겠습니까? 기생의 딸 춘향이가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되어 나타난 이 멋진 청년의 부인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이몽룡과 같은 예수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이몽룡이 자기가 사랑하는 춘향이와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으로 출세하여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 놓인 춘향이 곁으로 돌아와 그녀를 죽음의 위기에서 살려내는 것처럼,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 곁으로 찾아오시며,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있는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고 계시며,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위대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이 예수님에게 춘향이처럼 신실한 신부들이 되도록 합시다. 그렇게만 한다면, 2008년은 우리에게 이전과는 양상이 다른 축복의 해가 되고,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해가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8장은 설교제목에서도 보듯이 ‘언약’이란 말이 핵심단어입니다. 7장에서 예수님을 영원한 멜기세덱의 계열을 좇는 그 어떤 레위 제사장들보다 우월한 큰 대제사장으로 소개한 후에, 8장에서는 그분이 하늘에 있는 성막을 섬기는 대제사장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여 짓게 한 히브리인의 성막은 하늘에 있는 성막의 모형과 그림자이고, 레위 제사장들이 땅에 있는 모형과 그림자인 성막을 섬기는 유한하고, 흠 있는 자들이었다면, 예수님은 하늘에 있는 실체와 원형인 성막을 섬기는 무한하고, 무흠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약’은 10절의 말씀처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세워진 계약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언약’은 선민계약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7절에 ‘첫 언약’이란 말이 나오고, 7-8절에 ‘둘째 것’과 ‘새 언약’이란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선민계약에 ‘첫 언약’ 곧 ‘옛 언약’ 또는 ‘구약’이 있고, ‘둘째 언약’ 곧 ‘새 언약’과 ‘신약’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은 무흠하고 더 좋은 신약의 모형이고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은 13절의 말씀대로 낡아지고 쇠하고 없어져 가는 것이고, 신약은 6절의 말씀대로 더 좋은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이쯤해서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 대해서 좀 더 분명하게 살펴볼 필요를 느낍니다. 유대민족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하나님인식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나눠 부르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성경은 전체가 하나님의 언약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구약성서의 언약은 유대민족의 흥망성쇠의 원인을 판가름하는 잣대였습니다. 왜 우리 민족이 이 엄청난 시련을 겪는가에 대한 해답을 예언자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얼마큼 성실하게 지켰는가에서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유대민족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유대민족을 선민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이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구약 39권을 구성하는 핵심내용이자, 예수님을 구세주 메시아가 되게 하고, 기독교를 탄생시킨 밑거름입니다.
출애굽기 24장 1-11절에 언약이 체결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1-3절은 예비단계로써 하나님이 이런 저런 내용으로 언약을 맺고자 하시는데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고 묻는 장면이고, 4-8절은 본 단계로써 언약식이 엄숙하게 진행되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기록한 후, 언약식 당일 이른 아침에 단을 쌓고, 열두 기둥을 세우고, 청년들로 하여금 번제와 소들을 잡아 화목제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모두 태워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고, 화목제는 제물의 일부만 상징적으로 태우고, 살코기는 예배자의 몫으로 되돌려주어 언약체결식사에 사용되었습니다.
언약식의 주요단계 가운데 하나는 제물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는 것입니다. 모세가 소들의 피를 받아 반은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린 다음 언약서, 곧 십계명과 율법을 회중에게 읽어주었고, 회중은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응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피를 백성에게 뿌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출애굽기 24장 9-11절에는 언약체결식사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9절은 이스라엘의 대표들이 하나님께 나아간 장면이고, 10절은 하나님의 임재를, 11절은 하나님께 나아간 자들이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다는 설명입니다.
이 장면이 비슷하게 연출된 곳이 마가의 이층 방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밤에 제자들과 함께 나눴던 유월절 식사를 말합니다. 이 식사장면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사람들이 네 사람인데, 마태와 마가는 로마교회가 행한 주의 만찬 전통을 전했다고 보고, 고린도전서를 쓴 바울과 누가복음을 쓴 누가는 안디옥교회가 행한 주의 만찬 전통을 전했다고 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 아주 중요한 것들 가운데 한 가지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란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24장 1-11절의 말씀을 살펴보았듯이, ‘옛 언약’의 가장 큰 특징은 소의 피를 계약 당사자인 회중에게 뿌림으로써 언약이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새 언약’의 특징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써, 그의 피의 적용으로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이 ‘새 언약’을 일컬어 “더 좋은 언약”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마지막 유월절 밤에 연출했던 언약식과 유대인의 시간개념에서 동일한 날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신, 그래서 그 십자가의 보혈의 적용을 받고, 죄 사함을 얻어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선민이 된 교회가 연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주의 만찬’입니다.
새 언약 공동체 또는 새 언약에 따른 선민이란 확신 속에서 신약교회의 성도들은 시내산 언약을 ‘옛 언약,’ 한자로 ‘구약’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언약에 의해서 이스라엘 회중은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의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선민계약’이라고 부릅니다.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는 조건이 바로 이 시내산 언약이고, 이 언약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언약의 내용인 십계명과 율법을 잘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유대인들은 이 언약을 잘 지키겠다고 열심을 다해 지켰지만, 하나님의 뜻과 언약의 정신은 버리고 형식과 의식에만 치우쳤습니다. 그래서 9절의 말씀처럼,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는 하나님의 정죄를 받게 된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히브리서 8장 7-1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유대인들과 맺은 옛 언약을 파기하고, “더 좋은 언약의 보증”(히 7:22) 또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히 8:6)이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새 언약을 체결하시게 된 것입니다.
옛 언약은 짐승의 피를 뿌림으로 되었지만, 새 언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적용받아 이뤄집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침례나 세례의 때에 신앙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께 서약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새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으며, 주의 만찬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주의 만찬은 언약체결의 식사입니다.
히브리서 8장 1절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 또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한번 맺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에게 개선행진에로 인도하십니다. 이 하나님이 성도님들의 삶을 지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좋은 언약의 보증” 또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 곁으로 찾아오시며,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있는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고 계시며,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위대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이 예수님에게 춘향이처럼 신실한 신부들이 되도록 합시다. 그렇게만 한다면, 2008년은 우리에게 이전과는 양상이 다른 축복의 해가 되고,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해가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에 집중하면서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7장과 8장은 그 소개의 절정에 근접한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7장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저자는 7장 한 장에서만 예수님을 무려 12가지로 레위 제사장들보다 훨씬 우월한 제사장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레위 제사장들보다 훨씬 우월한 멜기세덱과 동일한 별다른 제사장이시다.
둘째, 예수님은 육신에 속한 법, 곧 연약하고 무익하고 폐지된 율법을 따르지 않고,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된 대제사장이시다.
셋째, 예수님은 영원히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제사장이시다.
넷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맹세로 된 제사장이시다.
다섯째, 예수님은 영원히 그 직분이 보장된 제사장이시다.
여섯째,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a better covenant)의 보증(guarantee)이 되시는 제사장이시다.
일곱째, 예수님은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제사장이시다.
여덟째, 예수님은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제사장이시다.
아홉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합당하신, 곧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제사장이시다.
열째, 예수님은 하늘보다 높이 되신 제사장이시다.
열한 번째, 예수님은 레위 대제사장들처럼 자기 죄를 위해서 제사를 바쳐야할 필요가 없는 제사장, 곧 백성의 죄만을 위해서 단번에 자기 몸을 드려 제사를 바친 유일무이한 대제사장이시다.
열두 번째, 약점을 가진 율법으로 세워진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맹세의 말씀으로 된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하나님의 아들 제사장이시다.
히브리서 7장에서 이렇게 12가지로 예수님을 소개해놓고 8장 1절에서 외친 말이 “우리에게 이러한 대제사장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섯 가지 특성을 더 소개합니다.
첫째, 1절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분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대제사장이시다.
둘째, 2절에 예수님은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대제사장이시다.
셋째, 6절에 예수님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신 대제사장이시다.
넷째, 6절에 예수님은 더 좋은 약속으로 세워진 대제사장이시다.
다섯째, 6절에서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가 강조하는 외침은 “우리에게 이런 대제사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의 근거요, 능력이요,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런 분을 두고 어데서 더 좋은 분을 찾으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제 마음에 드는 신랑감을 찾아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고 다니는 딸아이에게 부모가 애가타서 하는 말 같지 않습니까? “이런 신랑감을 두고, 이런 신랑감을 언제 또 어디서 만날 수 있다고, 이 철없는 것아, 정신 좀 차려라.”
계시와 지혜의 영을 받고, 마음의 눈이 열린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고, 그분이 주시는 영광스런 풍성한 축복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분이 강력한 힘으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고, 그분을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알고, 그분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히브리서 저자가 8장에서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런 대제사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전에 춘향전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만, 만일에 춘향이가, 오늘날 상당수의 사람들이 좇는 방식대로, 돈을 좇고, 권력을 좇고, 명예를 좇고, 일신의 안일을 좇고, 허영을 좇고, 거짓과 술수와 무법이 판을 치는 진흙탕 속에 제 몸을 던졌다면, 그리고 소식이 끊겠다는 핑계로 이몽룡을 배신했다면, 춘향이가 신부의 화관을 쓸 수 있었겠습니까? 기생의 딸 춘향이가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되어 나타난 이 멋진 청년의 부인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이몽룡과 같은 예수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이몽룡이 자기가 사랑하는 춘향이와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으로 출세하여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 놓인 춘향이 곁으로 돌아와 그녀를 죽음의 위기에서 살려내는 것처럼,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 곁으로 찾아오시며,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있는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고 계시며,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위대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이 예수님에게 춘향이처럼 신실한 신부들이 되도록 합시다. 그렇게만 한다면, 2008년은 우리에게 이전과는 양상이 다른 축복의 해가 되고,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해가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8장은 설교제목에서도 보듯이 ‘언약’이란 말이 핵심단어입니다. 7장에서 예수님을 영원한 멜기세덱의 계열을 좇는 그 어떤 레위 제사장들보다 우월한 큰 대제사장으로 소개한 후에, 8장에서는 그분이 하늘에 있는 성막을 섬기는 대제사장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여 짓게 한 히브리인의 성막은 하늘에 있는 성막의 모형과 그림자이고, 레위 제사장들이 땅에 있는 모형과 그림자인 성막을 섬기는 유한하고, 흠 있는 자들이었다면, 예수님은 하늘에 있는 실체와 원형인 성막을 섬기는 무한하고, 무흠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약’은 10절의 말씀처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세워진 계약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언약’은 선민계약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7절에 ‘첫 언약’이란 말이 나오고, 7-8절에 ‘둘째 것’과 ‘새 언약’이란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선민계약에 ‘첫 언약’ 곧 ‘옛 언약’ 또는 ‘구약’이 있고, ‘둘째 언약’ 곧 ‘새 언약’과 ‘신약’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은 무흠하고 더 좋은 신약의 모형이고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은 13절의 말씀대로 낡아지고 쇠하고 없어져 가는 것이고, 신약은 6절의 말씀대로 더 좋은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이쯤해서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 대해서 좀 더 분명하게 살펴볼 필요를 느낍니다. 유대민족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하나님인식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나눠 부르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성경은 전체가 하나님의 언약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구약성서의 언약은 유대민족의 흥망성쇠의 원인을 판가름하는 잣대였습니다. 왜 우리 민족이 이 엄청난 시련을 겪는가에 대한 해답을 예언자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얼마큼 성실하게 지켰는가에서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유대민족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유대민족을 선민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이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구약 39권을 구성하는 핵심내용이자, 예수님을 구세주 메시아가 되게 하고, 기독교를 탄생시킨 밑거름입니다.
출애굽기 24장 1-11절에 언약이 체결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1-3절은 예비단계로써 하나님이 이런 저런 내용으로 언약을 맺고자 하시는데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고 묻는 장면이고, 4-8절은 본 단계로써 언약식이 엄숙하게 진행되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기록한 후, 언약식 당일 이른 아침에 단을 쌓고, 열두 기둥을 세우고, 청년들로 하여금 번제와 소들을 잡아 화목제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모두 태워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고, 화목제는 제물의 일부만 상징적으로 태우고, 살코기는 예배자의 몫으로 되돌려주어 언약체결식사에 사용되었습니다.
언약식의 주요단계 가운데 하나는 제물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는 것입니다. 모세가 소들의 피를 받아 반은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린 다음 언약서, 곧 십계명과 율법을 회중에게 읽어주었고, 회중은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응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피를 백성에게 뿌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출애굽기 24장 9-11절에는 언약체결식사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9절은 이스라엘의 대표들이 하나님께 나아간 장면이고, 10절은 하나님의 임재를, 11절은 하나님께 나아간 자들이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다는 설명입니다.
이 장면이 비슷하게 연출된 곳이 마가의 이층 방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밤에 제자들과 함께 나눴던 유월절 식사를 말합니다. 이 식사장면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사람들이 네 사람인데, 마태와 마가는 로마교회가 행한 주의 만찬 전통을 전했다고 보고, 고린도전서를 쓴 바울과 누가복음을 쓴 누가는 안디옥교회가 행한 주의 만찬 전통을 전했다고 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 아주 중요한 것들 가운데 한 가지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란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24장 1-11절의 말씀을 살펴보았듯이, ‘옛 언약’의 가장 큰 특징은 소의 피를 계약 당사자인 회중에게 뿌림으로써 언약이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새 언약’의 특징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써, 그의 피의 적용으로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이 ‘새 언약’을 일컬어 “더 좋은 언약”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마지막 유월절 밤에 연출했던 언약식과 유대인의 시간개념에서 동일한 날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신, 그래서 그 십자가의 보혈의 적용을 받고, 죄 사함을 얻어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선민이 된 교회가 연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주의 만찬’입니다.
새 언약 공동체 또는 새 언약에 따른 선민이란 확신 속에서 신약교회의 성도들은 시내산 언약을 ‘옛 언약,’ 한자로 ‘구약’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언약에 의해서 이스라엘 회중은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의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선민계약’이라고 부릅니다.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는 조건이 바로 이 시내산 언약이고, 이 언약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언약의 내용인 십계명과 율법을 잘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유대인들은 이 언약을 잘 지키겠다고 열심을 다해 지켰지만, 하나님의 뜻과 언약의 정신은 버리고 형식과 의식에만 치우쳤습니다. 그래서 9절의 말씀처럼,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는 하나님의 정죄를 받게 된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히브리서 8장 7-1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유대인들과 맺은 옛 언약을 파기하고, “더 좋은 언약의 보증”(히 7:22) 또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히 8:6)이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새 언약을 체결하시게 된 것입니다.
옛 언약은 짐승의 피를 뿌림으로 되었지만, 새 언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적용받아 이뤄집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침례나 세례의 때에 신앙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께 서약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새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으며, 주의 만찬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주의 만찬은 언약체결의 식사입니다.
히브리서 8장 1절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 또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한번 맺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에게 개선행진에로 인도하십니다. 이 하나님이 성도님들의 삶을 지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좋은 언약의 보증” 또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 곁으로 찾아오시며,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있는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고 계시며,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위대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이 예수님에게 춘향이처럼 신실한 신부들이 되도록 합시다. 그렇게만 한다면, 2008년은 우리에게 이전과는 양상이 다른 축복의 해가 되고,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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