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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예법과 성막(1)(히 9:1-10, 출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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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7,715 2008.02.0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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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예법과 성막(1)(히 9:1-10, 출 25장)

히브리서 9장 1-10절은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40년간 사막에서 떠돌던 시대에 만들었던 이동식 성막과 그곳에서 이뤄진 예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상세히 알기 위해서는 출애굽기 25장부터 30장까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곳에 구약의 예법과 성막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전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예법과 성막에 관한 내용들을 잘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몇 번에 걸쳐서 구약의 예법과 성막에 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관계를 특별하게 맺어준 것에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율법이고, 다른 하나는 성막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토라’ 즉 ‘계명’으로 인식합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시내산에서 체결한 언약의 내용입니다. 이 언약의 내용, 곧 하나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의 특권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막을 ‘미쉬칸’이라 부릅니다. 미쉬칸은 조립과 분리와 운반이 용이한 이동식 하나님의 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회중이 주둔하는 중앙지역에 설치되었습니다.
출애굽기 25장을 보면, 성막제조에 필요한 재료들과 지성소에 안치될 언약궤와 속죄소, 또 성소에 안치될 떡(진설병)상과 등대(메노라) 제조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한 말씀이 나옵니다. 히브리서 8장 5절의 말씀,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다”는 말씀은 출애굽기 25장 40절,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하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성막은 하늘보좌방의 모형으로써 하나님의 임재와 만남과 치유를 상징하는 곳이었습니다. 입구는 동쪽에 있었고, 휘장을 사이에 두고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서쪽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계명이 담긴 증거궤로 불리는 언약궤가 있었고, 언약의 하나님을 상징하였습니다. 언약궤의 뚜껑은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였는데 속죄소 또는 시은소로 불렸습니다. 이 속죄소 양 끝에는 각각의 그룹천사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마주보게 하여 속죄소를 향하게”(출 25:20절)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듯이 속죄소 곧 언약궤의 뚜껑은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 차례 초막절 축일 5일전인 대속죄일(Yom Kippur) 때, 우리나라 추석명절 5일전에, 이 속죄소에 들어가서 백성의 속죄를 상징하는 염소의 피를 뿌렸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19-20절을 보면,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휘장을 꿰뚫어서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담대하게 지성소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씀은 히브리서 4장 16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지성소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로 나가는 길이 휘장으로 막혀있어서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단 한 차례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예수님이 그 휘장을 걷어냄으로써 이제는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에로, 은혜의 보좌인 시은소에로, 죄사함의 보좌인 속죄소에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 생명의 길, 빛의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휘장은 십자가상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의 예표이자, 모형이며, 그림자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였습니다. 가나안 주거시대에는 솔로몬이 최초로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하였고, 바벨론에 망한 후에는 스룹바벨이 재건하였으며,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왕이 성전증축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주후 70년 예루살렘멸망과 함께 성전도 영구히 사라지게 되었고, 성전을 대신하게 된 것이 회당입니다. 회당은 바벨론 유배이후 줄곧 지금까지 기도회를 위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성전이 예루살렘에 단 하나만 허용된 반면에 회당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행 1:12), 곧 1KM미만의 거리마다에 성인 가장 열 명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든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 회당제도에서 나온 것이 기독교 예배당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예배당이 유대교 회당과 아주 같은 것은 아닙니다. 유대교 회당은 물론이고,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와 같은 전통교회들이 성막의 성소와 지성소를 상징적인 형태로 유지하고 있지만, 개신교 예배당은 신성한 성막개념보다는 평범한 집회소개념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계신 곳을 건물에 두지 아니하고, 구원 받은 성도에 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 개개인의 마음속에 혹은 성도들의 모임 속에 임하여 계시기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가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느 곳이든지 간에 하나님이 임하신 신성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에서 단 한 곳에만 허용되었던 성전이 회당개념에서는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행 1:12), 곧 1KM미만의 거리마다에 성인 가장 열 명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든지 회당을 세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성막시대에는 하나님이 성막에 계신다는 표시로써 ‘쉐키나,’ 곧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성막 위에 머물러있었습니다. 쉐키나가 떠오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일상을 중지하고 짐을 꾸린 후 쉐키나를 따라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려고 길을 떠나시기 때문입니다.
쉐키나가 길을 떠나면 언약궤가 쉐키나의 뒤를 따랐고, 그 뒤를 백성이 따랐습니다. 쉐키나는 항상 사흘 길을 앞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쉐키나가 어느 한곳에 자리를 잡으면 그곳에 성막을 세우고, 성막 주변 동서남북에 각 지파 별로 진을 쳤습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 있는 군대와 같이 성막을 호위하며 그곳에서 쉐키나가 길을 떠날 때가지 진을 치고 거주하였습니다.
성막을 ‘회막’(meeting tent)라고 불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만나시는 장소란 뜻입니다. 따라서 성막은 하나님과 교제가 이뤄지는 곳이요, 만남의 광장이었으며, 예물을 바치는 곳이었습니다.
성막은 속죄와 치유가 이뤄지는 장소였습니다. 죄의 삯은 죽음입니다. 죗값을 대신할 제물을 바치게 함으로써 백성의 죽음을 대신하게 했던 곳입니다. 따라서 성막은 백성의 속죄와 치유를 위한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죄와 제물을 함께 가져와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제물에 죄를 전가시켜 죽게 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고 삶을 치유 받게 했던 곳이었습니다.
성막을 대신하는 곳이 예배당입니다. 개신교 정신은 장소보다는 성도들의 모임에 가치를 둡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있고, 하나님의 언약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면, 아무리 비좁고 누추한 곳일지라도, 그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요, 하나님과의 만남과 속죄와 치유가 이뤄지는 성소입니다. 예배당이 하나님의 집이 되고 못되는 것, 하나님의 쉐키나의 인도하심이 있고 없고는 예배당의 크고 작음이나 장엄하고 누추한 것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모이는 구성원들의 태도와 예배의 내용과 신실함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임이 하나님이 임하시는 곳, 하나님이 만나 주시는 곳, 하나님의 속죄와 치유가 이뤄지는 곳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25장은 성막과 성막의 기물에 관한 개요를 적고 있습니다. 성막은 번제단과 물두멍이 놓인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나뉜 두 개의 방이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 방이 성소인데, 그곳 휘장 앞 중앙에 분향단이 놓이고, 동쪽 입구에서 바라본 오른쪽에 진설병이라 불리는 떡상이 놓이고, 왼쪽에 34킬로그램의 순금을 두들겨서 만든 등대가 놓입니다. 그리고 휘장 안쪽에 있는 두 번째 방을 지성소라 부르는데, 그곳에 법궤가 놓입니다. 이들 성막의 구성요소들, 특히 성소와 지성소에 놓인 기물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상징합니다.
법궤(25:10-22)는 가로 114CM, 세로와 높이 각각 68.4CM의 금으로 씌운 직사각형 나무상자입니다. 이 궤를 율법이 들어 있다고 해서 ‘법궤,’ 언약의 계명이 들어 있다고 해서 ‘언약궤,’ 언약의 증거가 들어 있다고 해서 ‘증거궤’라 불렀습니다.
떡상(25:23-30)은 가로 91.2CM, 세로 45.6CM, 높이 68.4CM의 상입니다. 상 위에는 임재의 빵 열두 개가 매번 안식일마다 유향과 함께 두 줄로 진열되었습니다. 떡상위에는 대접, 수저, 병, 잔 같은 부속 기구도 갖춰놓았습니다.
등대(25:1-40)는 ‘메노라’라 불리는데, 22송이의 살구꽃이 핀 살구나무 형상으로 좌우로 세 개의 가지들이 뻗은 일곱 개의 등잔을 올려놓을 수 있는 등대를 말합니다. 등대는 34킬로그램의 순금을 두들겨서 만들었습니다. 십계명 때문에 우상을 만들 수 없었던 유대인은 등대를 유대교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기독교에 십자가가 있다면 유대교에는 등대가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성막 혹은 성전은 하나님이 사람이 지은 건물에 갇힌 느낌을 줍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현존하신 곳을 성소 또는 지성소라는 특정 장소에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성소와 지성소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성소는 당번을 맡은 제사장이 매일,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차례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돌로 지은 성전시대에는 성소를 둘러싼 뜰과 담이 접근을 겹겹으로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성소가 들어선 뜰을 ‘제사장의 뜰’이라 하여 제사장들만 출입할 수 있었고, 그 바깥뜰을 ‘이스라엘의 뜰’이라 하여 ‘바르미츠바’(Bar Mitzvah) 즉 ‘계명의 아들’인 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에게만 허용되었으며, 그 바깥뜰을 ‘여성의 뜰’이라 하여 유대인 여성들까지만 허용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여성의 뜰 바깥에 있는 넓은 ‘이방인의 뜰’만 허용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성소로부터 가장 가까운 영역에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제사장들이고, 그리고 대제사장에게만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지성소에 있는 시은소에 일 년에 한 차례 접근이 허용되었으니까,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교황의 권위가 다름 아닌 유대교의 대제사장의 권위에 근거를 두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전의 뜰은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는 일종의 차단막, 곧 휘장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차단막을 없애버린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 차단막이 없어야 할 곳이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안에는 목사와 성도 사이를 가로막는 휘장이 남아있고, 빈부귀천 남녀노소, 인종과 민족 사이를 가로막는 휘장들이 남아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못 박혀 죽으신 것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접근을 가로막는 휘장 곧 모든 차단막을 제거해버린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성소에만 계실까요? 고대 세계에서 성소는 신들이 머무는 거처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나라가 붕괴되고 성전이 훼파되며,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면서부터 하나님의 현존장소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이나 성전 안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머무신다고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막, 성전, 성소, 예배당 등은 하나님이 그 속에 계신다기보다는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백성과 함께 거하신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 되었습니다. 특히 성막은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동적인 개념입니다. 성막은 거주의 개념이 아니라 이동하고 만나고 함께 걷는 동행의 개념입니다. 성막은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이 만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입니다. 외경 마카비서에는 하나님께서 성소를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서 성소를 택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마카비2서 5: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을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믿었고, 성전에 있을 때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주셨습니다. 장소에 상관없이, 그곳이 예루살렘이든, 그리심산이든 상관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인 성전은 이제 예수님의 몸으로 대신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의 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바로 참된 성전이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성전이 참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모여 예배하는 그곳이 성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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