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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명의 길을 여신 예수(히 1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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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206 2008.03.13 09:52

본문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여신 예수(히 10:1-39)

히브리서 10장은 율법의 결점을 지적하는 말로써 시작됩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실체가 아니므로 해마다 반복되는 제사로는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1절). 율법의 결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제사를 통해서 죄를 사함 받고도 죄를 다시 깨닫게 하고, 기억나게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2-3절). 짐승의 피 흘림이 사람의 죄를 능히 대신할 수 없고, 영구히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4절).
그래서 하나님은 이 구약의 율법을 장차 더 좋은 것에 대한 그림자와 예표로 잠정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주셨고, 장차 이뤄질 더 좋은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일군을 뽑아 이스라엘 민족을 섬기게 하셨고, 이스라엘 민족을 봉사자로 세워 열방선교의 그릇으로 쓰시려 하였지만,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여 하나님을 그들 자신의 하나님만으로, 그들 조상의 하나님만으로, 그들 민족의 하나님만으로 독점해버렸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오해하여 안식일법과 정결법과 같은 터무니없이 많은 울타리법들을 만들어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였으며, 선교의 대상인 이방인들과는 접촉이나 식탁교제를 차단시켜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려한 노력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오류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셨고,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킨다.”고 하셨으며,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열방세계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직접 보내셨던 것이고, 9절의 말씀처럼, 첫 번째 것을 폐하시고, 두 번째 것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첫 번째 방법인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로써는 사람의 죄를 능히 없앨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두 번째 방법으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리게 함으로써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공평하게 차별 없이 그분의 피 뿌림을 받아 거룩함을 얻도록 하셨습니다(10절). 제사장들은 매일의 제사를 반복해서 드렸지만, 이들 제사들이 사람의 죄를 없애지는 못했습니다(11절).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죄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는 단 한 번의 완벽한 제사로써 이전의 제사들을 단번에 완성시켜 버리셨고, 부활승천하신 후에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최후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12-13절). 이 예수님께서 그를 믿는 자들을 단 한 번의 제사로써 영원하고 온전하게 만드신 것입니다(14절).
2600여 년 전 유다왕국이 바벨론제국에 망했을 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회복의 말씀은 하나님의 계명을 그들의 마음에 심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다가 새겨 줄 것이며,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16-17절, 렘 31:33-34).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서 이루실 온 인류를 위한 큰 구원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이 예언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자기 민족을 위한 약속의 말씀이라고 믿으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서 이제는 죄와 불법이 용서되고 있기 때문에 죄를 사하는 제사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이 히브리서 10장 18절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의 속죄소 또는 시은소가 있는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19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성소휘장을 찢고 열어 놓으신 새로운 생명의 길(new and living way)이요, 그 휘장은 십자가가에 못 박혀 찢기신 예수님의 몸의 모형입니다(20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혈혈단신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을 헐기 위해서 당신의 온몸이 찢기고 모든 피와 물이 다 쏟아질 때까지 싸우셨고, 결국에는 인류가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는 통로를 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마음에 예수님의 피 뿌림을 받고, 죄를 씻고, 세례의 물로 몸을 씻은 사람들입니다(22절). 또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굳게 믿고, 절대로 흔들리지 말며,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23절). 그리고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고(24절), 모임을 싫어하거나 폐하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주의 재림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여야 한다는 것입니다(25절). 이것이 히브리서 10장 2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22절부터 25절까지의 말씀에서 “하자”라는 격려를 다섯 차례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22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자’(23절), ‘서로 돌아보자’(24절), ‘함께 모이기를 폐하지 말자’(25절), ‘서로 권하자’(25절)라고 말합니다. 우리들도 히브리서 저자의 권면대로 교우들을 향해서 서로의 격려와 위로의 말을 아끼지 말도록 합시다.
성서는 믿음과 인내에 관한 글입니다. 성도들에게 신실한 믿음과 인내로 이미 얻은 구원을 끝까지 지켜내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이기는 자들에게 주실 축복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한 대표적인 글이 히브리서와 계시록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6-39절의 말씀은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첫째, 진리의 지식을 얻은 뒤에 일부러 죄를 지으면, 그 때에는 속죄 제사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26절).
둘째, 신실한 믿음과 인내를 보이지 못하고 배신했을 때, 남은 것은 무서운 심판과 그들을 삼킬 맹렬한 불뿐이라고 말합니다(26절).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은혜의 성령을 모욕한 사람이 얼마나 더 무서운 벌을 받게 될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29절).
셋째, 하나님을 처음 믿고, 구원의 빛을 받은 뒤에 그 숫한 고난의 싸움을 견디고 이긴 첫 사랑의 때를 회고해 보라는 것입니다(32절). 그 시절에 모욕과 환난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되고, 동일한 처지에 놓인 교우들의 동반자가 되며,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재산몰수를 당하고도 그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일을 기쁨으로 당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33-34절). 고생 실컷 하고, 머지않아 수고의 대가를 받아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텐데, 왜 이제 와서 쪽박을 차려고 하는가, 그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 줄 아는가라는 것입니다.
넷째,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에 떠는 것은 믿음이 없는 행동입니다. 믿음이 있는 행동은 한번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참고 인내하며 용기 있게 전진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큰 상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나서, 약속하신 상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35-36절).
다섯째, 수고를 마치고 인내의 결실을 맺을 때가 멀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오실 날이 멀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결코 지체치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뒤로 물러서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인내와 신실한 믿음을 보이고 영생을 얻을 사람들입니다(37-39절).
믿음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했을 때, 그 믿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마음에 믿는 것을 말합니다(롬 10:9). 이 믿음을 통해서 은혜로 값없이 선물로 구원의 꽃을 피우지만, 이 꽃에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신실한 믿음과 인내입니다. 한번 하나님과 약속한 언약을 끝까지 지키는 신실한 믿음과 인내의 믿음이 화려하게 핀 구원의 꽃을 풍성한 열매로 결실을 맺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의인의 믿음이 구원에 대한 확증과 약속을 믿고 가나안 복지 천성을 향해서 한걸음씩 순례자의 길을 걷는 우리 성도들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믿음인 것입니다.
악한 세상의 상징인 이집트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곧바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막에서 40년간 단련을 받은 것은 우리 성도들이 악한 세상에서 구원을 받고 곧바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채 여전히 사막 같은 세상에서 믿음의 연단을 받는 것의 모형이자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믿음 때문에 당하는 환난이나 역경은 재앙이나 저주하고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재앙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장차 겪게 될 무서운 심판과 저주이지만, 환난과 역경은 구원받은 자들이 장차 누리게 될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서정주 시인의 노래처럼, 봄의 소쩍새 울음과 여름의 천둥과 늦가을의 서리가 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연단의 과정인 것처럼, 신앙인의 시련과 역경은 보다 큰 축복을 얻기 위한 연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신실한 믿음과 인내인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성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우리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신실한 믿음과 인내의 모범자로서 각각 예수님과 바울을 설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거웠던 길, 골고다의 거친 언덕길이 예수님께서 믿음과 인내로써 걸었던 순례자의 길이었고, 바울이 걸었던 길이었으며, 수많은 주의 백성들이 걸었던 길이었고, 또한 우리가 걷게 되기를 그토록 원하셨던 길입니다. 그러나 이 힘들고 고달픈 길이 생명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요, 영광의 길이지, 결코 저주와 죽음의 길이 아니란 점입니다.
재앙과 환난의 차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구원받은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글이 히브리서와 계시록입니다. 계시록 14장 1-7절을 보면, 힘들고 고달픈 길이지만, 생명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던 사람들입니다. 고문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사람들입니다. 거짓말하지 않고, 흠이 없는 신앙생활로 예수님의 인도하심대로 순종하며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계시록 15장 2-3절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 앞 불이 섞인 유리바다 해변에 서서 새 노래, 승리의 노래, 모세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계시록 7장 16-17절을 보면, 다시는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더위에 쓰러지지 않고, 햇빛에 화상을 입지 않고, 생명수 샘물을 마시게 되고, 모든 눈물을 씻기고, 구원의 흰옷을 입으며, 승리의 월계관을 쓰게 될 자들입니다.
반대로 계시록 14장 8-11절을 보면, 넓고 편하지만, 멸망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자기들도 우상숭배 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우상숭배를 강요했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자들이며, 유황이 타는 불 못에서 고통을 당하고, 그 고난의 연기로 인하여 밤낮 쉼을 얻지 못할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시록 14장 12절은 히브리서 10장 36절과 동일하게 우리 성도들이 인내로써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계시록 또한 히브리서 10장 37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 지체지 않고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란 점을 강한 어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춘향전을 보면, 꼭 다시 오겠다고 굳게 약속하고 이도령이 떠난 그 긴 세월, 춘향이는 영영 돌아올 것 같지 않았던 이도령과의 약속과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변사도와 그 휘하로부터 온갖 시련과 고난을 겪습니다. 감옥에 갇혀 목에 칼을 쓰고 처형될 날만 기다리던 춘향이에게 암행어사가 된 이도령이 나타나고, 춘향이를 죽음에서 건져낼 뿐 아니라, 춘향이를 아내로 맞이하는 결혼잔치를 벌리는 장면은 계시록의 내용을 조선시대상황에 맞게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도령처럼 우리 주님께서도 반드시 주의 신부들인 우리 신앙인들을 천국에 맞이하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슴을 쥐어뜯지 말아야합니다. 비록 지금은 지고 있고, 밀리고 있고, 얻어맞고 있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마음의 눈을 뜨고 장차 전개될 역전의 상황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계시록 19장 20-21절은 사단과 악한 무리들이 사로잡혀 산 채로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타는 불 못에 던짐을 받게 되고 모든 영적인 싸움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승리로 끝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도령이 암행어사 출두를 외치며 불현듯 나타나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성도들의 수고와 눈물을 보상하기 위해서 불현듯이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10장 35-37절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계시록 2-3장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글들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실 큰 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며, 감추었던 만나를 줘서 먹게 하고, 또 흰 돌과 새벽별을 주며, 흰옷을 입히고,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우지 않으며, 그 이름을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고,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며,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로마서 8장 18절에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믿으면서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붙들고 놓지 아니한 그 희망과 믿음의 끈이 종국에는 우리를 죽음의 미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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