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에 합당한 행위(엡 4:1-32)
본문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엡 4:1-32)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 값없이 선물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고, 구원에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권면하셨습니다.
첫째, 우리 성도들이 마땅히 행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는 하나 되기를 힘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방법까지 일러주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2-3절이 그 방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모든 일을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연합이 깨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하나 됨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용납과 같은 덕목들은 우리 성도들이 일생을 통해 노력하고 힘써야 할 것들입니다. 그것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할까라는 물음에 바울은 에베소서 4장 4-6절에서 답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 됨이 성삼위 하나님의 속성이고,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자녀로 부름 받고, 그분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된 성도들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가 하나요, 성도들 가운데 계신 성령님이 한분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것은 한 소망 안에서 된 것이며, 주님도 한분이요, 믿음도 하나이며, 침례도 하나이고, 하나님도 한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할 이유는 우리가 믿고 바라고 행하는 모든 것, 곧 하나님, 성령님, 그리스도님, 교회, 믿음, 소망, 침례 등 모든 것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은 세 분의 인격체로 존재하지만, 한 하나님으로 계시듯이, 가정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들로 구성되지만, 한 가정으로 존재하듯이, 교회도 하나입니다. 깨져서는 안 될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몸이란 공동체를 말합니다. 공동체 속에는 많은 지체들이 있습니다. 한 채의 집이 많은 벽돌로 연결되듯이 교회는 하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지체들이 있습니다. 연합이 깨지는 것은 지체들의 연합이 깨지는 것입니다. 지체들의 연합이 깨지는 것은 마치 한 채의 집이 갈라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한 채의 집을 갈라놓을 수 없듯이 교회는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깨뜨려서는 안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가정도 깨져서는 안 됩니다. 최근 연예인들의 이혼이 봇물 터지듯이 보도되고 있어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가정이든 교회든 신성한 곳입니다.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용납으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모든 일을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라는 바울의 권면을 마음 속 깊이 새기도록 합시다.
바울신학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 가운데 한 가지가 성육신사상입니다. 성육신사상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실 때 하나님은 모든 특권과 권리를 포기하시고 오셨습니다.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용납으로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신 고마운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사람과 이방사람을 갈라놓는 담을 친히 당신의 몸을 깨뜨려 허무셨고, 원수된 것을 없애시고, 수많은 율법조항들을 폐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사람들끼리 원수된 것을 멸하시고, 갈라진 것을 한 몸으로 통합시키려 한 때문이며, 궁극적으로는 인류를 하나님과 화해시키려는 목적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에베소서 4장 7-10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다가 다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 목적은 만물을 충만케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만물을 충만케 하는 것일까요? 마치 승리자가 그를 따르던 무리에게 전리품을 나눠 주듯이, 마치 모세가 대탈출의 영광을 얻은 후에 하나님의 선민계약의 말씀인 계명을 자기 민족에게 전달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승천 후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만들기 위해서 연합의 영이신 성령, 통합의 영이신 성령,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님을 주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셔서 인류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통합하게 하시고, 사람들끼리도 연합시키는 일, 이것이 만물을 충만케 하는 일입니다.
이 일, 곧 만물을 충만케 하는 하나 되게 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군들을 세우셨는데, 에베소서 4장 11-12절에 보면,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장로(목사)와 교사로 세우셨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일군을 세우신 좀 더 구체적인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굳게 세워 하나 되게 하려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일입니다. 그 이유는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기 때문이요, 성도들 가운데 계신 성령님이 한분이기 때문이며, 우리 모두가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도 한분이요, 믿음도 하나이며, 침례도 하나이며, 하나님도 한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일군을 세우신 목적은 성도들을 교육하여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굳게 세워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할까요? 그 목적에 대해서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는 것일까요? 그리스도는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용납으로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는 일에 힘쓰셨습니다. 인류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통합하게 하시고, 사람들끼리도 연합시켜서 만물을 충만케 하셨습니다. 이 높은 경지의 성숙함, 이 깊은 차원의 정신이 바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4-15절에서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 아이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우리 성도들이 마땅히 행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는 이방인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7-32절에서 이방인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이방인의 삶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가 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요? 첫째, 이방인들은 허망한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둘째, 무지와 완고함으로 살았습니다. 셋째, 지각이 어둡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넷째, 수치의 감각을 잃었습니다. 다섯째, 스스로를 방탕에 내맡겨서 탐욕을 부리면서 모든 더러운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게서 듣고, 또 예수님 안에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거짓을 버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이웃에게 참된 말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화를 내더라도 죄는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넷째,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섯째, 도둑질하지 말고, 수고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많이 벌어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섯째,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일곱째,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덟째,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아홉째, 서로에게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성도들을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며, 또 이방인처럼 살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모든 일을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여 연합에 힘쓰고, 그리스도인다운 고품격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이 변하여 하나님의 명품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답게 높은 품격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 값없이 선물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고, 구원에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권면하셨습니다.
첫째, 우리 성도들이 마땅히 행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는 하나 되기를 힘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방법까지 일러주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2-3절이 그 방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모든 일을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연합이 깨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하나 됨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용납과 같은 덕목들은 우리 성도들이 일생을 통해 노력하고 힘써야 할 것들입니다. 그것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할까라는 물음에 바울은 에베소서 4장 4-6절에서 답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 됨이 성삼위 하나님의 속성이고,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자녀로 부름 받고, 그분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된 성도들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가 하나요, 성도들 가운데 계신 성령님이 한분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것은 한 소망 안에서 된 것이며, 주님도 한분이요, 믿음도 하나이며, 침례도 하나이고, 하나님도 한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할 이유는 우리가 믿고 바라고 행하는 모든 것, 곧 하나님, 성령님, 그리스도님, 교회, 믿음, 소망, 침례 등 모든 것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은 세 분의 인격체로 존재하지만, 한 하나님으로 계시듯이, 가정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들로 구성되지만, 한 가정으로 존재하듯이, 교회도 하나입니다. 깨져서는 안 될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몸이란 공동체를 말합니다. 공동체 속에는 많은 지체들이 있습니다. 한 채의 집이 많은 벽돌로 연결되듯이 교회는 하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지체들이 있습니다. 연합이 깨지는 것은 지체들의 연합이 깨지는 것입니다. 지체들의 연합이 깨지는 것은 마치 한 채의 집이 갈라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한 채의 집을 갈라놓을 수 없듯이 교회는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깨뜨려서는 안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가정도 깨져서는 안 됩니다. 최근 연예인들의 이혼이 봇물 터지듯이 보도되고 있어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가정이든 교회든 신성한 곳입니다.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용납으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모든 일을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라는 바울의 권면을 마음 속 깊이 새기도록 합시다.
바울신학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 가운데 한 가지가 성육신사상입니다. 성육신사상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실 때 하나님은 모든 특권과 권리를 포기하시고 오셨습니다.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용납으로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신 고마운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사람과 이방사람을 갈라놓는 담을 친히 당신의 몸을 깨뜨려 허무셨고, 원수된 것을 없애시고, 수많은 율법조항들을 폐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사람들끼리 원수된 것을 멸하시고, 갈라진 것을 한 몸으로 통합시키려 한 때문이며, 궁극적으로는 인류를 하나님과 화해시키려는 목적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에베소서 4장 7-10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다가 다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 목적은 만물을 충만케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만물을 충만케 하는 것일까요? 마치 승리자가 그를 따르던 무리에게 전리품을 나눠 주듯이, 마치 모세가 대탈출의 영광을 얻은 후에 하나님의 선민계약의 말씀인 계명을 자기 민족에게 전달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승천 후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만들기 위해서 연합의 영이신 성령, 통합의 영이신 성령,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님을 주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셔서 인류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통합하게 하시고, 사람들끼리도 연합시키는 일, 이것이 만물을 충만케 하는 일입니다.
이 일, 곧 만물을 충만케 하는 하나 되게 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군들을 세우셨는데, 에베소서 4장 11-12절에 보면,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장로(목사)와 교사로 세우셨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일군을 세우신 좀 더 구체적인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굳게 세워 하나 되게 하려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일입니다. 그 이유는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기 때문이요, 성도들 가운데 계신 성령님이 한분이기 때문이며, 우리 모두가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도 한분이요, 믿음도 하나이며, 침례도 하나이며, 하나님도 한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일군을 세우신 목적은 성도들을 교육하여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굳게 세워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할까요? 그 목적에 대해서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는 것일까요? 그리스도는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용납으로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는 일에 힘쓰셨습니다. 인류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통합하게 하시고, 사람들끼리도 연합시켜서 만물을 충만케 하셨습니다. 이 높은 경지의 성숙함, 이 깊은 차원의 정신이 바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4-15절에서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 아이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우리 성도들이 마땅히 행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는 이방인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7-32절에서 이방인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이방인의 삶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가 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요? 첫째, 이방인들은 허망한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둘째, 무지와 완고함으로 살았습니다. 셋째, 지각이 어둡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넷째, 수치의 감각을 잃었습니다. 다섯째, 스스로를 방탕에 내맡겨서 탐욕을 부리면서 모든 더러운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게서 듣고, 또 예수님 안에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거짓을 버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이웃에게 참된 말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화를 내더라도 죄는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넷째,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섯째, 도둑질하지 말고, 수고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많이 벌어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섯째,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일곱째,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덟째,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아홉째, 서로에게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성도들을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며, 또 이방인처럼 살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모든 일을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여 연합에 힘쓰고, 그리스도인다운 고품격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이 변하여 하나님의 명품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답게 높은 품격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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