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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본받는 자(엡 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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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866 2007.11.08 19:15

본문

하나님을 본받는 자(엡 5:1-21)

에베소서 5장은 바람직한 기독교인상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 진노의 자식에서 명품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답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야할 성도들의 바람직한 인물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1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엇을 본받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인격성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셨고 또 그렇게 대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인간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만은 다른 동물들이 갖지 못한 이성과 인성을 주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본래 하나님만의 특권이었는데, 그것들을 기꺼이 인간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특권을 스스로 제한하시고 포기하시면서 그것들을 인간과 공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성과 인성을 가진 인간들이 끊임없이 배신하고 도전하고 모독할 것을 아시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나눔의 정신, 희생의 정신, 하나님의 고품격의 인격성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인간들에게 빚어진 일들은 비극적이었습니다. 마치 나이어린 초보운전자가 혼자서 갓 뺀 아버지의 새 차를 몰고 나가 크게 사고를 내어 차도 망가뜨리고, 사람도 다치게 한 것처럼 만신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운전자의 부모가 자기 일처럼 나서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고를 수습하고 다친 사람들을 치료받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망쳐놓은 일들, 온갖 죄악을 저지르며 좌충우돌하여 망가진 우리 자녀들을 끌어안으십니다. 책임을 져주십니다. 인간의 비극을 당신의 비극으로 끌어안으십니다. 인간의 불행을 당신의 불행으로 끌어안으십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친히 하나님께서 치르십니다. 그 대신 우리 자녀들에게는 병든 곳을 고치시고, 죄와 허물을 용서하십니다. 이런 큰 사랑을 입은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아 사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둘째,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2절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무엇을 우리가 본받아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과 헌신과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래 하나님의 신분이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한 권리를 포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이 되신 후에는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고, 병자들을 고치셨으며, 약자들의 편을 드셨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셨고, 가시관을 쓰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옆구리에 창을 찔리셨으며,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대속하시려고 우리를 대신해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우리를 위해 외아들의 신분을 포기하고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 1장 12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외아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특별한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의 삶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자녀에 합당한 일을 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3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에 합당한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 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아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거짓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참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화를 내더라도 죄는 짓지 않는 것입니다. 악마에게 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많이 벌어서 궁핍한 자들을 돕는 것입니다.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않고, 덕을 세우며, 은혜를 끼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슬프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과 모든 악의를 버리는 것입니다. 친절하며,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행과 모든 더러운 행위와 탐욕을 그 이름조차 입에 담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에 합당한 일들입니다. 이런 일들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넷째, 감사에 찬 말을 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4절에서 감사가 넘치는 말들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더러운 말이나 어리석은 말, 또는 상스러운 농담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마치 펌프에 붓는 한 바가지의 물과 같다는 말들을 합니다. 소싯적에는 마을에 공동우물이 있었고, 두레박을 이용해서 물을 길러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생긴 것이 펌프였습니다. 펌프의 경우, 자주 사용하다보면, 펌프의 고무파킹이 쉽게 닳아져 펌프에 물이 고여 있지 못하고 밑으로 빠져버리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그래서 다음 펌프질을 위해서 큰 플라스틱 물통을 펌프 곁에 놓아두고 물을 담아둡니다. 물 빠진 펌프에 부어줄 한 바가지의 물이 없다면 샘에 아무리 많은 물이 고여 있다할지라도 물을 길러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바가지의 물만 있다면, 그 물로 인해서 찰찰 넘치는 물을 품어 올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감사의 찬 한마디 말은 넘쳐나는 복들을 길러 올릴 수 있는 바로 그 한 바가지의 물과 같은 힘을 지닙니다. 감사에 찬 말은 황금알을 낳는 투자금과 같습니다. 석상에 불과했던 갈라테이아가 피그말리온의 경건한 믿음과 감사에 찬 말 덕분에 아름다운 여성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감사에 찬 말이 갖는 능력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향하신 거룩한 뜻입니다. 그러므로 헛된 말을 하지도 말고, 헛된 말에 속지도 말고, 또 그런 사람들과 사귀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빛의 자녀답게 사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8-9절에서 빛의 자녀답게 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가 전에는 어둠의 권세에 눌려 살았지만, 지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빛 가운데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빛의 열매들을 맺으라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가 해야 할 일은 빛의 일입니다. 살림의 일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신 일도 빛의 일이었고 살림의 일이었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었습니다. 화초를 키워보면, 남향과 양지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남향과 양지가 식물의 성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양지로 끄집어내는 일, 그것이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출하는 일입니다. 어둠에서 빠져나온 우리 빛의 자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그들을 옥죄는 족쇄를 풀어주고,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끄집어내주는 일이 빛의 자녀들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출하는 일입니다.
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10-14절에서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오히려 그것들을 폭로하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입니다.
또 지혜롭게 살아가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15-17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조심하여 지혜롭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하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처럼 살라고 말씀합니다. 때가 악하기 때문에 시간을 잘 선용하는 자가 되고, 주님의 뜻을 깨닫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여섯째, 성령님으로 충만한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18절에서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19-20절에서 성령님에 충만하여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또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에 충만하여 무시로 찬양하고 기도하라는 명령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은 명령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성령님에 의해서 가득 채워져라'는 뜻입니다. 꽃꽂이용 스펀지가 물에 충분히 젖어 있어 꽃의 수명을 연장하듯이, 충전용 배터리가 전력이 충만하여 힘차게 기계를 돌리듯이 성령님의 생수의 능력으로 충만 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 충만의 경험은 반복적입니다. 출생은 한번뿐이지만, 생일은 반복되듯이, 성령님은 구원의 때에 값없이 은혜의 선물로 받지만, 성령 충만의 체험은 반복됩니다. 거듭남의 체험은 단 한 번뿐이지만, 그 기쁨은 반복해서 경험될 수 있듯이 성령 충만의 경험은 반복됩니다. 성령 충만은 마치 온돌방에 불을 넣듯이, 관상용 화분에 물을 주듯이, 배터리를 충전하듯이 성령 충만의 경험은 반복됩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다시 받을 필요는 없지만 성령 충만은 반복해서 받아야 합니다. 말라비틀어진 스펀지처럼 메마른 영혼이 되면 안 됩니다. 전력이 소모된 축전지처럼 능력 없는 영혼이 되면 안 됩니다. 시들어 가는 초목처럼 목마른 영혼이 되면 안 됩니다. 냉랭한 온돌방처럼 차가운 영혼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불을 반복해서 지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생수가 반복해서 넘쳐흐르게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이 반복해서 힘껏 발휘되게 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 번째 조건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의 말씀대로 성령님을 소멸치 않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소멸하는 것은 방문을 열어 놓아 온기를 빼는 것과 같습니다. 물 꼭지를 열어 놓아 식수를 흘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동차의 미등을 켜놓아 배터리를 방전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가슴에 냉기가 돌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가슴을 메마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이 방전된 배터리처럼 힘없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의 불을 지펴 식어진 가슴을 데워야 합니다. 메마른 가슴에 성령님의 생수를 채워 시원하게 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충전하여 힘차게 살아가야 합니다. 방문을 닫고 방을 지피듯이, 물 꼭지를 닫고 물을 통에 채우듯이, 배터리를 충전시키듯이, 메마른 화분에 물을 주듯이 끊임없이 기도와 찬양으로 보충해야 합니다.
두 번째 조건은 에베소서 4장 30절의 말씀처럼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구원을 보증하시는 보증금이며 인감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인도를 거역하지 말아야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롬 8:26),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며(롬 8:27), 우리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좋은 결말을 지어 주십니다(롬 8:28). 우리가 성령님의 이와 같은 일들을 거절할 때, 구원은 점차 멀어지게 되고, 이로 인해서 성령님은 근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세 번째 조건은 갈라디아서 5장 16절의 말씀처럼 성령님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23절은 우리가 성령님을 좇아 행하면, 성령님을 거슬리는 육체의 욕심을 극복할 수 있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님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탱크에 기름이 채워져 있어야 기계를 돌릴 수 있듯이 성령님이 충만해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살려고 하면 실패하고 맙니다.
하나님을 본받아 살림의 일, 빛의 일을 하는 것,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것,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에 합당한 일을 행하는 것, 감사가 넘치는 말들을 하는 것, 빛의 자녀답게 사는 것,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분별하는 것, 지혜로운 사람으로 사는 것, 주님의 뜻을 깨닫는 것 등의 모든 것이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기를 힘쓰는 신앙인, 부지런히 기도하고 찬미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합시다. 성령 충만하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모든 일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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