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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처자경중장부(愛妻子敬重丈夫)(엡 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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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360 2007.11.1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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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처자경중장부(愛妻子敬重丈夫)(엡 5:22-33)

결혼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는 식이고, “결혼은 새장과 같은데도 밖에 있는 새들은 쓸데없이 그 안에 들어가려 하고, 안에 있는 새들은 밖으로 나가려고 애쓴다”라든가 아예 ‘인생의 무덤’이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결혼식 때 신랑 신부는 경건하게 서약을 합니다. 서로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지켜지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요? 사랑은 고사하고 툭하면 싸우기가 일수입니다. 그러나 부부싸움도 잘만 한다면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됩니다. 따라서 부부싸움은 지혜로운 싸움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모두 이기는 싸움이여야 합니다. 상대방이 녹다운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지루하고 더티한 싸움은 피해야 합니다.
부부싸움에도 여러 형이 있지만, 입을 다물어 버리고 속으로 끙끙 앓는 방식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이런 방식은 자기 의견을 내놓지 못하거나 아예 자기를 포기해 버리는 것일 수 있고, 상대방만 있고, 자기는 없는 일방적인 게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또 소리소리 지르는 노발대발형도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자존심에 목숨을 걸면 걸수록 관계는 더욱 나빠지게 되고 깨어지고 맙니다.
진지한 관계유지에 무관심한 양보형도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은 갈등을 키우는 나쁜 방법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싸움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으면서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존중과 사랑과 대화로 시비를 가리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갈등의 원인을 찾고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무시나 자존심을 건드는 언행은 삼가야 합니다. 싸움에 이기고 상대방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 싸움은 결국 진 싸움입니다. 그러나 싸움에 지고도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다면, 그 싸움은 이긴 싸움입니다. 싸움에도 이기고 상대방의 마음도 얻는다면, 일석이조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싸움에는 지고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이 유익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때로는 침묵도 필요하고, 때로는 양보도 필요합니다. 싸움에도 지고, 마음도 얻지 못한다면, 결국 다 놓친 것이 되고 맙니다.
생산적인 싸움법은 발단이 된 문제 하나만 놓고 싸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난 일을 들춰내거나 다른 문제를 끌어들이면 안 됩니다.
부부싸움에도 ‘공소시효’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한판 한판의 싸움에도 룰이 필요하고 제한시간이 필요합니다. 며칠씩 말도 하지 않고 원수처럼 지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부부가 싸울 때는 두 사람만의 싸움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패거리 싸움으로 발전시켜서는 안 됩니다. 3자를 개입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관중으로 둬서도 안 됩니다. 부모가 다툴 때 아이들은 불안감과 공포감 등으로 최고조의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두 사람이 싸울 때는 2인칭인 ‘당신’으로 시작하지 말고, 1인칭인 ‘나’로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당신, 왜 늦게 들어왔어?”라고 말하기보다 “당신이 늦게 들어오니까 내가 화가 좀 나네.”라는 식으로 말하면, 상대방이 공격당하는 기분을 덜 느낀다고 합니다.
막가파식의 싸움은 가장 나쁜 방법입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도를 넘거나 선을 넘어서는 안 됩니다. 싸움도 분위기를 식혀가며 하라는 것입니다. 감정이 격해지면 ‘타임아웃’을 불러도 좋습니다. ‘울컥’하는 순간만 넘기면 차분해 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티한 싸움은 절대 금물입니다. 폭력은 죄악입니다. 물리적인 폭력이든 언어폭력이든 폭력은 그 자체가 앙금과 상처자국을 남깁니다. 욕을 하거나 외모를 비하하거나 열등감과 수치심을 자극하는 비방, 시댁이나 처가를 헐뜯는 말, 학력이나 나이를 들먹이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원칙 있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할 말이 있습니다. 막가자는 식으로 싸우게 되면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당신 그렇게도 무능해?’라는 말, ‘우리 이혼해’라는 말, ‘아무래도 우린 결혼 잘못 한 것 같아!’라는 말, ‘집에서 놀면서 그것도 못해?’라는 말 등은 상대방의 자존심을 짓밟고, 좌절감과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폭언이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말입니다. 한번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화해했더라도 오래도록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말은 장난이나 농담으로 해서도 안 됩니다.
2007년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43%에 이른다고 합니다. 결혼하는 5쌍 가운데 1쌍이 재혼이며, 황혼이혼도 날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이혼을 아무 생각 없이 입 밖에 내뱉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사는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말들은 다 죽임의 말이고, 어둠의 말이고, 혼돈케 하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살림의 말, 빛의 말, 질서의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정하는 말을 들을 때 사랑을 느끼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친밀한 시간을 함께 보낼 때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부부가 만일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를 갖고 있다면, 필경은 그 부부사이에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아내가 쓰는 사랑의 언어를 남편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내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것이고, 남편이 쓰는 사랑의 언어를 아내가 사용하지 않는다면, 남편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그 누구든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사랑의 언어를 발견하는 것이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말은 살림의 말입니다. 살림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자주 쓰셨던 말입니다. 성경은 긍정의 말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늘 긍정의 말씀, 인정하는 말씀, 권면과 위로의 말씀으로 살림의 일, 빛의 일, 질서를 세우는 일을 하셨습니다.
상대방과 친밀한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살림의 일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자주 쓰셨던 살림의 일이 바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친밀한 시간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한 야고보서 4장 8절의 말씀은 이런 맥락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도 중요한 사랑의 언어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모든 신령한 복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주지 않고 받기만을 바란다면 결코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가장 귀한 선물은 사랑입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마음과 정성이 담긴 사랑을 전달해 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사랑으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섬기는 일 또한 귀중한 사랑의 언어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하나님의 섬김을 대신 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1절에서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체접촉도 중요한 사랑의 언어입니다. 성적인 오해나 추행의 가능성만 없다면, 사실 자주 접촉하고 잡아주고 만져주는 것이 친밀감을 높입니다. 가족 간에는 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신체접촉을 통한 사랑의 언어를 자주 나눠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아이들을 많이 만져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아동추행이나 성추행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남의 아이들이나 상대방을 만지려들면 오해를 받게 됩니다.
남편은 자기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고, 아내는 자기 남편을 존중하라는 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차별을 인정하지 않았던 바울입니다. ‘애처자경중장부’(愛妻子敬重丈夫) 곧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존중하라는 말씀은 남녀동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21절에서 먼저 남편이나 아내나 다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그리스도 아래 있는 동등한 자들이란 점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남편이 그리스도의 위치에 서도 안 되고, 아내가 그 자리를 대신해도 안 됩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다 그리스도 아래 있는 자들이고, 그리스도를 두려워해야할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윗자리는 그리스도의 자리이지, 우리 자신들의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서로 순종해야할 위치에 있는 자들입니다. 다만 가정질서를 위해서 남편들을 아내들의 머리로 두었으므로 22-23절에서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셨고, 24절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들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내들이 순종해야할 남편들에게는 더 엄격한 말씀으로 아내들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25절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것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내들에게는 목숨까지 바쳐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편들에게는 자기 몸을 내어줄 만큼 아내들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가정에 이런 질서를 세우신 목적은 26-27절에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며, 흠 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질서가 서야 교회가 세상 사람들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하게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 앞에서 건강한 가정의 본을 보이지 못한다면, 교회는 손가락질을 받고, 욕을 먹게 되며, 전도의 문이 닫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고, 아내들은 자기 남편들을 존중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28-33절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감사해야 할 대상의 폭을 조금만 넓혀 보시기 바랍니다. 최우선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늦가을이 찾아오면 늘 묵상하게 되는 것이 ‘내 인생의 가을에 무엇을 거두게 될까? 혹시 쭉정이만 거두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넘쳐나는 것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은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잘났든 못났든, 결국 오늘의 내가 있음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 각자가 일생에 걸쳐 만들어낸 작품을 출품해서 경진대회를 연다고 했을 때, ‘이것이요.’라고 남 앞에 내놓을 만한 자랑거리 하나 없으면서도, 백번 천 번을 생각해봐도 어느 것 하나 내 힘과 능력으로 된 것이 없고, 모두가 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음을 깨닫게 되니, 어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로 우리는 가족들에게, 친인척과 교우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부모님 없이, 남편이나 아내 없이, 귀엽고 사랑스런 자녀들 없이, 나와 함께 어깨를 비비며 살아가는 친인척 교우들 없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께 감사하십시다. 남편은 아내에게, 또 아내는 남편에게 감사표시를 하십시다. 고마웠던 이웃친지들에게도 감사의 정을 표시하시기를 바랍니다.
한신대에서 공부를 할 때,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정태기 교수님께 40대 위기론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결혼초의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정과 의무로 살아가는 40대 부부들은 권태기에 들어서 있기 십상입니다. 옛 성인은 40대를 ‘불혹’이라 불렀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위기’의 나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40대 가장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습니다. 40대 가장들의 경우 가정에서는 부부관계, 자녀관계에서 어려움들을 겪고 있고, 소외감을 느끼기 십상이며, 직장에서는 조기퇴직의 압력을 받고 있고, 건강은 날로 악화일로를 겪습니다.
40대 아내들도 마찬가집니다. 신혼의 꿈은 온데간데없고, 냉혹한 현실세계에 묻혀 삽니다. 내 안에 ‘나’란 존재는 사라지고, 그 대신에 어머니, 아내, 며느리, 딸 혹은 주부로 채워져 있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선명함을 잊고 지냅니다. 가족에게는 늘 열려 있지만 자신에게는 닫혀 있는 것이 아내입니다. 가족을 위해서는 강한 어머니이고 아내지만 자신에게는 초라하고 힘없는 여성입니다. 더욱이 여자에게 있어서 사십대는 갱년기의 문턱에 다다른 때이고, 우울증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때입니다. 이런 위기의 때를 부부가 서로 돕고 사랑하며 순종하고 존중하면서 슬기롭게 헤쳐가야 합니다.
20-30대 부부는 육체와 영혼이 하나일 수 있지만, 40대가 되면 남편은 일과 출세에 올인 하고, 아내는 자식에 올인 한다고 합니다. 50대 이후에 남편은 육체와 영혼이 함께 가정으로 돌아오지만 여자는 육체와 영혼이 함께 가정을 떠난다고 합니다. 50대의 남자는 건강, 아내, 재물, 일의 순서로 챙기고, 50대의 여자는 재물, 친구, 건강, 애완견, 남편의 순서로 챙긴다고 합니다. 50대 남자에게 있어서 아내는 꼭 필요한 2순위이지만, 여자에게 있어서 남편은 애완견 다음인 5순위로 밀려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은 이미 성장해서 제 길들을 걷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생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다릅니다. 이런 점을 인정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고 하면, 성서말씀대로 ‘애처자경중장부’(愛妻子敬重丈夫) 곧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남편을 존중하는 것은 기본이고, 문화적인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합니다. 특히 남편들이 부인들의 문화생활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태도를 보여줘야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외로움을 타는 것은 남편들입니다. 부인을 좋은 친구와 간호사로 얻기 위해서는 마땅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내들 또한 좋은 남편을 곁에 두고 살기 위해서는 남편을 존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피차 고맙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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