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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보다 뛰어난 예수(히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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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650 2007.11.3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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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보다 뛰어난 예수(히 1:1-14) 오늘부터 히브리서를 한 장씩 살펴보려고 합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일차적으로 그 대상은 고국을 떠나 외국에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고 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누군지를 명확하게 밝히기는 어렵지만, 구약성서, 특히 모세오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는 당대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롭고 산길(new and living way)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새롭고 산길이란 유대교가 제시하는 길도 아니고, 헬라인들이 제시하는 길도 아닌 제3의 길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에서 지적한대로 표적을 구하던 유대인들이 꺼려하고, 지혜를 찾던 헬라인들이 어리석게 생각했던 것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남녀노소빈부귀천 색갈이나 민족의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되는 새로운 길이고, 생명을 주는 길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민족마다, 종교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이상과 목표가 있고, 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 선포하고 가르치기를 힘씁니다. 문제는 그 힘쓰고 노력하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고, 사람들에게 유익한가라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나타나 하나님이 통치하는 신정국가를 세워 자신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렸고, 그가 세울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라고 밝히고 있고, 왜 그분이 메시아이신지, 왜 그분을 믿고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헬라인들은 그들이 유출되어 신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된 이유를 밝혀서 다시 그들을 신에게로 데려다 줄 참 지식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 지식이 그들을 그림자의 세계가 아닌, 모형의 세계가 아닌, 참 세계, 참 이데아의 세계에로 그들을 인도하여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참 진리요,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유일한 지식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땅에는 많은 종교와 철학이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결코 사람들을 참 진리에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인류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나 천사나 모세나 또는 아론의 제사장들보다 월등히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된 일세기 후반기를 살던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인이 되고나서도 유대교와 유대공동체와의 고리를 끊지 못한 자들이 많았고, 가족, 친족, 종족의 박해를 견디지 못해서 유대교에로 복귀하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런 우왕좌왕하는 자들에게 왜 그리스도께서 ‘제3의 길’인지, 바울의 표현처럼, 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인지, 왜 그리스도가 다른 어떤 것보다 우월한 존재인지, 그리고 왜 기독교가 유대교보다 우월한지를 명확하게 밝혀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자'(7:25)고 외쳤습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10:22)고 외쳤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2)고 외쳤습니다. 히브리서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인 만큼, 유대인들에게 익히 알려진 구약성서를 모형론으로 설명함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것을 변증합니다. 모형론이란 새것을 옛것에 비교하거나 천상의 것을 지상의 것에 비교하는 방법인데, 옛것이나 지상의 것은 새것과 천상의 것의 그림자이거나 모형일 뿐이고, 새것과 천상의 것이 참인 실체라는 설명입니다. 이 설명대로라면, 구약이나 모세나 율법이나 성막예배와 같은 옛것들은 신약이나 예수님이나 복음이나 기독교예배의 그림자나 모형에 불과한 것이고, 참인 실체가 나타났을 때에는 그림자나 모형의 사명은 끝나므로 말 그대로 옛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참이요 실체인 새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흠 있고 문제 많은 옛것을 버리지 못하고 새것을 거절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플라톤이 소개한 동굴의 비유에서도 나타나듯이, 입구 쪽의 빛을 본 사람이 빛에 의해서 만들어진 그림자를 더 이상 참으로 알지 않고, 동굴 밖에 펼쳐진 광활하고 태양빛 찬란한 세계를 본 사람이 동굴 속 세계를 더 이상 동경하지 않듯이, 참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빛의 세계에 거하는 사람이므로 더 이상 떠나온 세계인 유대교를 동경하여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신학자 최병헌(崔炳憲, 1858-1927) 목사님이 󰡔셩산유람긔󰡕(聖山遊覽記)에서 지적한 “여름 벌레는 겨울의 얼음을 말할 수 없고, 우물 안의 개구리는 하늘이 적다고 하듯이.... 거친 음식이나 풀죽과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이 다 음식이지만, 귀하고 천하며 아름답고 추한 차이가 있듯이,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이 없을 때에는 거친 음식과 풀죽을 먹지만,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보고도 의심하여 먹지 않는다면 이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ꡔ신학월보ꡕ 230쪽 이하)고 한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장차 올 세상의 권능을 경험한 사람들은, 타락하면, 그들을 다시 새롭게 해서 회개하게 할 수 없다.”(히 6:4-6)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금 십자가에 못 박고 욕되게 하는 것”(히 6:6)이어서, 마치 “땅이 자주 내리는 비를 빨아 들여서, 농사짓는 사람에게 유익한 농작물을 내주면, 그 땅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지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면 그 땅은 쓸모가 없어지고, 저주를 받아서, 마침내는 불에 타고 말 것”(히 6:7-8)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초보적 단계를 뛰어넘어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자라고 말합니다(히 6:1).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1장에서 천사들보다도 뛰어난 분이라 하였고, 2장에서는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시고, 마귀를 없이하시며, 백성을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하시며,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시며, 시험받는 자들을 도우시는 구세주라고 했습니다. 3-4장에서는 안식을 주시는 분, 5장에서는 아론보다 뛰어난 대제사장으로 소개하면서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고 외쳤습니다. 6장에서는 초보적 단계를 뛰어넘어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자라고 말하면서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장차 올 세상의 권능을 경험한 사람들은, 타락하면, 그들을 다시 새롭게 해서 회개케 할 수 없다.”(4-6절)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오래 참고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약속을 받아 이루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7장에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우리에게 있는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8-10장에서는 예수님을 옛 언약보다 뛰어난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옛 언약시대의 성막보다 더 뛰어난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성막”과 더 나은 제사의 큰 제사장으로 소개하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을 만나는 “새롭고 산길”이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외쳤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서, 끝까지 견디자, 믿음으로 하자, 사랑으로 하자, 소망 중에 인내로 하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11장에서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축복의 반열에 든 신앙선배들을 일일이 열거하여 증거로 제시하였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저자가 강조한 또 다른 내용은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3장 1절에서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였고, 12장 2절에서는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였습니다. 10장 29절에서는 배교자의 받을 형벌이 얼마나 중하겠는지를 생각하라고 하였으며, 10장 32절에서는 이전에 큰 고난을 당하고도 잘 참고이긴 것을 생각하라고 하였고, 또 13장 3절에서는 고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장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1-4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당신의 뜻을 전달하실 때에는 주의 종들의 입술을 통해서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서 그 때 그 때마다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뜻이 달빛처럼 희미하게 전달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시켜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그로 말미암아 온 세상을 지으셨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하나님의 본바탕의 본보기이시요, 자기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예수님은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던 분이시며, 천사들보다 훨씬 더 위대하게 되셨으며, 천사들보다 더 뛰어난 이름을 물려받으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태양빛처럼 밝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전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달빛처럼 희미한 율법에 우리가 목숨을 내맡겨야겠습니까? 아니면, 태양빛처럼 명확하고 분명한 복음에 목숨을 내맡겨야겠습니까? 예언자들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중에 누가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전달했겠는가라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언급하신 내용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분이란 것입니다. 당대의 유대인들은 천사들을 위대하게 여겼거나 숭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는 예수님께 하신 것처럼,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하고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는 말씀을 천사들에게는 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실 때 천사들에게 모두 그분에게 경배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을 시중드는 바람과 불꽃이라면, 예수님은 모든 것 위에 높임을 받으신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또 태초에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고, 영존하신 분이시란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천사들 중 그 누구에게도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네 원수를 네 앞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천사들은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 결국은 구원의 유산을 받을 사람들을 섬기라고 파견된 일꾼들이란 것입니다. 천사들이 오히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도록 파견된 일꾼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예수님이 그 누구와도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뛰어난 분이시오,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지 않고 다시 옛날의 모습에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일생일대의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불어 닥친다할지라도 믿음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신화를 보면, 지중해의 섬나라 크레타에 미노스란 왕이 손재주 좋은 아테나이 출신 다이달로스에게 미궁(labyrinth)을 만들도록 했는데, 자기의 친 자식인 미노타우로스를 이 미궁에 가둬두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미노타우로스는 황소머리를 한 사람으로서 사람을 먹이로 삼는 괴물이었습니다. 미노스는 약소국이었던 아테나이 왕을 협박해서 해마다 12명의 젊은 남녀를 바치게 하여 미궁에 갇혀 사는 미노타우로스에게 먹이로 주었습니다. 한편 아테나이에 테세우스란 왕자가 있었는데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자국의 젊은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12명의 제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끼어 크레타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미궁 속에 들어가 그 괴물을 죽일 셈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 크레타에는 아리아드네란 공주가 있었는데, 영웅 테세우스를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한 나머지, 그를 살리기 위해서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건네줍니다. 테세우스는 실 끝을 미궁의 문설주에 묶은 뒤 그 실을 슬슬 풀면서 미궁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에 그 복잡한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덕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환난과 시련에도 믿음의 끈을 놓지 말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장애물과 미궁 같은 혼란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미궁에서 우리를 구원해내는 지혜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절망에서 우리를 구원해내는 능력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에 직면한다할지라도,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한 해결의 실마리는 반드시 주어집니다. 12월 마지막 한 달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보내도록 합시다. 2007년의 마지막 한 달을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지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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