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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과 오빠이신 예수(히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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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591 2007.12.0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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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과 오빠이신 예수(히 2:1-18)

히브리서 2장 1-4절은 구원의 소중함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그간 우리가 들었던 많은 말씀들 곧 진리의 말씀들을 굳게 간직하여 잘못된 길로 빠져들지 말자라는 것입니다.
먼 옛날 이스라엘에는 수많은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펼쳤던 활동은 회개와 회복운동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릇된 길로 간 것을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아오면 언제든지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절대자와 어떤 특별한 관계 곧 언약을 맺고 있다는 의식은 보통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한 자의식입니다. ‘나는 절대자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다’라는 인식. ‘그분은 신랑이고, 나는 신부다’라는 인식, 마치 천년의 가약(佳約)을 맺은 부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 특별한 선민의식을 모른다면 예언자들의 외침을 백퍼센트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절대자 하나님은 신부를 한없이 사랑하는 신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언자들의 이 외침을 귀담아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듣지 않고 무시하다가 끝내 쓴맛을 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남편의 권유를 끝까지 외면한 채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난 부인처럼 말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보내서 돌아오라고 권유하셨고, 마지막에는 외아들까지 보내서 설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설명되었듯이,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외아들까지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최후에 대해서 성서는 천사들의 응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국건립이전시대 곧 예언자들의 활동이전시대에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경고메시지를 전달하였고, 더러는 죄인들에게 심판의 불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국시대에도 천사들이 사람을 죽여서 목숨을 취한 사례들이 있습니다(삼하 24:16, 대하 32:21). 같은 맥락에서 신약성서 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들이 천사들에 의해서 수행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팔을 쥔 일곱 천사들의 응징과 대접을 쥔 일곱 천사들의 응징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히브리서 2장 2절, “천사들을 시켜하신 말씀이 효력을 내어 모든 범죄와 불순종에 공정한 보응이 내렸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메신저들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대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자는 3절에서, 우리가 가장 귀하고 소중한 구원을 값없이 받고도 소홀히 한다면, 그 보응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그것을 들은 사람들, 곧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마지막 시대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 나아갈 새롭고 산길을 밝혀 주셨고, 또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하여 준 것이며, 신약성서에 기록으로 남겼다는 뜻입니다.
또 4절에서는 “하나님께서도 표적과 기이한 일과 여러 가지 기적을 보이시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의 선물을 나누어 주심으로써, 함께 증언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4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이한 일과 여러 가지 기적을 보이시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의 선물을 나누어 주신” 목적이 신약의 말씀들을 확증하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기적이란 말은, 첫째, '큰 능력 행함'과, 둘째, 큰 능력 행함을 보고 나타나는 '놀람'과, 셋째, 큰 능력 행함을 통해서 기적을 행한 자가 하나님의 종이란 사실과 그가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사실을 믿게 하는 표적을 포함한 말입니다. '표적'이란 말은 큰 능력 행함과 능력이 일어난 것을 보고 놀라며 기이하게 생각하는 데 쓰이지 아니하고, 항상 기적을 행한 자가 하나님이 보낸 종이란 사실과 그가 전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사실을 믿게 하는 데 쓰였습니다. 모세는 큰 권능을 행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종인 것과 이스라엘의 해방을 입증해 보였습니다. 엘리야는 큰 권능을 보임으로써 바알은 거짓 신이고, 야훼만이 참 신이심을 입증해 보였습니다(왕상 17:24). 예수님은 큰 권능을 행함으로써 자신이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해 보였습니다(행 2:22). 사도들은 방언을 말하고 큰 권능을 행함으로써 교회를 창립하고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나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은 대부분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통해서 입증된 것들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0절의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는 말씀과 고린도전서 12장 7절의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처럼 성령님의 은사는 공적이며, 증거적이고, 제한적이며, 도구적이고, 봉사를 위한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눠주시는 성령의 선물은 봉사자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5-18절까지는 맏아들이 되신 예수님, 형님, 오빠가 되신 예수님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9절을 보면, 예수님은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져 인간이 되셨지만, 죽음을 겪으셨기 때문에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낮아져 인간처럼 죽음을 맛보신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동생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5절 말씀의 ‘오는 세상’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오시기 400여 년 전부터 메시아가 오셔서 이루실 신정국가인 ‘올람 하바’(Olam Ha-Ba), 곧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 직에 취임하실 때, 침례로써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공적활동의 첫 마디로써,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하신 것은 이 ‘오는 세상’을 바라보시고 펼치신 회개운동입니다. 예수님은 이 ‘오는 세상’을 교회를 통해서,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해서 영적으로 이루셨습니다. 이 교회시대가, 영적으로 볼 때, 계시록에 언급된 ‘천년왕국시대’입니다.
비슷한 케이스로써 19세기 미국인들은 신대륙의 개척과 맞물려 ‘자유’를 화두로 한 천년왕국시대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이 전통에 매어 있었다면, 신대륙에는 모든 분야에서 자유가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동시대에 스톤-캠벨(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을 펼쳤던 선각자들은 기독교 본래의 순수성과 능력을 회복함으로써 천년왕국시대를 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서 이 운동을 전령으로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확신 속에서 천년왕국시대의 전령(Millennial Harbinger)을 자임하면서 개혁운동, 곧 신약성서교회회복운동 또는 사도전통회복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거룩한 운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오는 세상’을 천사의 지배아래 둔 것이 아니라, 8절을 보면, 예수님의 발아래 복종케 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복종케 하셨다’는 말씀은 ‘오는 세상’이 교회를 통해서,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해서 영적으로 이미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기로는, 아직도 만물이 다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는 말씀은 ‘오는 세상’이 실제로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이뤄질 ‘새 하늘과 새 땅,’ 곧 영원한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는 세상’이 교회라고 볼 때에는 이 ‘오는 세상’이 영적으로 이미 이뤄진 것이고, ‘오는 세상’이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이뤄질 ‘새 하늘과 새 땅,’ 곧 영원한 세계라고 볼 때에는 아직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는 만물이 다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만물이 확실하게 그에게 복종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오는 세상’이고, 반드시 도래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현세의 교회는 ‘오는 세상’을 앞당겨서 미리 맛보고 경험하는 공동체이자, 참되고 온전한 축복을 기다리는 집단입니다.
9절 이하 18절까지는 이 교회공동체가 복된 이유들과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낮아져 인간처럼 죽음을 맛보신 목적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9절을 보면, 예수님은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져 인간이 되셨지만, 죽음을 겪으셨기 때문에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분이시고,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낮아져 인간처럼 죽음을 맛보신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동생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10절을 보면,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낮아져 인간처럼 죽음을 맛보신 목적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많은 남녀 동생들을 영광에 이끌어 들이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그 때문에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단련시켜 온전케 하신 것이 당연한 일이란 것입니다.
셋째, 11-13절을 보면,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 모두 한 가족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들을 자기의 남녀동생들로 주신 하나님을 찬미하며, 신뢰할 뿐 아니라, 그의 동생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넷째, 14-15절을 보면,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낮아져 인간처럼 죽음을 맛보신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들, 곧 예수님의 동생들이 피와 살을 가진 육신들이기 때문에 예수님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진 육신이 되실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맛보신 또 다른 이유는 죽음을 경험하심으로써 죽음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멸하여 평생 죽음의 공포에 눌려 종노릇 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다섯째, 16-18절을 보면,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낮아져 인간처럼 죽음을 맛보신 목적은 천사들을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예수님의 형제자매들을 도와주시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은 그분의 동생들과 같아져야했고,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자신의 동생들의 죄를 대속시키려 했다고 말합니다. 또 예수님은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시험을 당하는 동생들을 넉넉히 도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상이 히브리서 2장의 내용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절대자와 어떤 특별한 관계 곧 언약을 맺고 있다는 자의식, ‘나는 절대자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다’라는 인식. ‘그분은 신랑이고, 나는 신부다’라는 인식, 마치 천년의 가약(佳約)을 맺은 부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특별한 의식, 또는 ‘하나님은 어버이이시고, 예수님은 형님과 오빠이시다’는 이 특별한 자의식을 갖고 사는 것이 엄청나게 소중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낮아져 인간처럼 죽음을 맛보시고, 진노의 대상이었던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자기의 동생들이 되게 한 것, 단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아니한 동생들을 영광에 이끌어 들이기 위해서 죽음으로 단련을 받으신 것, 우리와 같은 자들을 가족으로 여겨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지 않으신 것, 피와 살을 가진 동생들을 위해서 피와 살을 가진 육신이 되신 것, 죽음을 겪음으로써 죽음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멸하여 평생 죽음의 공포에 눌려 종노릇 하는 동생들을 해방시키려한 것, 동생들을 돕기 위해서 동생들과 같아질 뿐 아니라, 실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동생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정말 백배 천배 만 배 더 위대하고 소중한 행위입니다. 태산보다 큰 사랑의 행위입니다. 이보다 더 큰 희생이 없을 것입니다. 이 큰 사랑과 희생정신을 가진 분이 바로 여러분과 나의 형님이시고 오빠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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