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들의 현주소3(계 3:1-13)
본문
초대교회들의 현주소3(계 3:1-13)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은 “깨어나라,” “굳건하게 하라,” “굳게 지키라,” “회개하라”로 요약될 수 있다.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는 말씀은 사데 교회 성도들의 건강상태와 형편에 대한 진단이고, “깨어나라,” “굳건하게 하라,” “굳게 지키라,” “회개하라”는 말씀은 처방이다.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 건강한 것 같지만, 건강하지 못한 상태, 말씀을 받고 들었지만, 기억하지 못한 상태, 그래서 잠자고 있고, 죽어가고 있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상태, 의식하지 못한 사이 어느덧 병이 깊어진 상태가 사데 교회의 현주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데에는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이 있었다. 그들을 일컬어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받을 보상은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거니는 것이고, 생명책에서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며, 주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목숨을 걸만큼 충성스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들을 형제나 친구처럼 아끼신다는 뜻이다. 성결의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만큼 주님과 가까운 관계란 뜻이다. 주님께서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실 만큼 친밀한 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기가 입은 야훼신앙의 옷, 자기가 입은 그리스도 예수신앙의 옷, 자기가 입은 그리스도인의 옷을 더럽히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친구이다.
주님이 가지신 일곱 영과 일곱 별은 성령님과 전령 천사들을 말한다. 주님은 이들이 전한 말씀을 헛되이 듣지 말고, 귀담아 들으라고 명령하셨다. 그 말씀이 바로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는 명령이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특징은 주님께 받은 책망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비록 힘이 적으나,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고, “인내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잘 지켰다. 그들은 작지만 순수한 신앙공동체였던 것 같다. 주님은 그들에게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켜 오히려 그들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주님이 오히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을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알게 하시며, 보호하겠다고 하셨다.
주님은 유대교 회당을 사단의 모임이라고 폄하하셨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시대경륜과 섭리가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우상과 교만에 빠져서 기독교를 이단시 하고, 핍박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서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고, “이기는 사람은 내가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 그는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또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 위에 써 두겠다.”고 하셨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으로 소개되었다. 다윗은 왕국, 곧 유대인들이 희망하는 다가올 세상, 장차올 세상을 상징한다. 따라서 ‘다윗의 열쇠’는 왕국의 열쇠를 말한다. ‘성전’과 성전의 ‘기둥,’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새 이름’ 등이 장차올 세상 곧 유대인들이 꿈에도 희망하는 ‘올람하바,’ 다윗 왕국의 회복 곧 영원한 이스라엘 나라와 연관된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유대왕국의 회복을 고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희망하는 왕국이 예수님의 손에 있다는 것, 그 나라가 기독교라는 것, 그 백성이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이름이 바로 그들 위에 써둔 ‘새 이름’이라는 것, 그래서 교회 공동체를 ‘Christian Church’라 부른다는 것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주님의 교훈이다.
계시록 2-3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절 가운데 하나가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는 명령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명확하게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마가복음 8장 14-21절을 보면, 제자들이 먹을 사람은 많은데, 빵이 한 개밖에 없는 것을 걱정하다가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경고를 잘못 알아듣고, 오해한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아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빵이 없는 것을 두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어 있느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 ....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의 이 탄식이 바로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과 다르지 않다. 마가복음 7장 32-35절에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신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에바다’란 아람어를 기록하고 있는 유명한 이적이다. 예수님께서 손가락을 그 사람의 양 귀에 꽂아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 곧 ‘열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사람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장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핵심 구절은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였다.”이다. ‘열리고,’ ‘풀리고,’ ‘말이 분명했다’이다.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고, 말이 분명해지는 것, 이것은 우리가 일생을 통해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문제점은 귀가 닫혀있었다는데 있다. 굳게 닫힌 그의 어두운 귀 때문에 통일 이스라엘 시대가 닫히게 되고 분열왕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르호보암은 세금을 낮추고 부역을 감하여 육체적 경제적 부담을 덜어달라는 백성의 청(촛불시위?)을 거절했다. 원로들이 선정을 베풀어 백성의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는 것이 백성들의 충성심을 높이고 다윗왕가를 든든히 세우는 초석이 된다는 충언을 거부하고, 백성들을 더욱 거칠게 밀어붙여 불평과 불만을 잠재워야 한다는 젊은 사람들의 간언을 따랐다. 그 결과가 유다와 베냐민 두 부족만 남고 나머지 10개 부족은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면서 갈라섰다. 다윗왕가에서 갈라선 10개 부족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여 사마리아 지역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웠다. 르호보암은 귀가 닫혀 있어서 백성들 사이에서 떠도는 루머와 신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루머와 신음소리는 민심이요, 민심은 천심이며, 천심은 하나님의 음성인 것을 알지 못했다. 그 결과가 통일 이스라엘 나라를 둘로 쪼개 놓은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탈출에 성공하여 가나안 땅에 그토록 소원했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대 구원사건이 한낱 목동에 지나지 않던 80세 노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바로는 하나님이 보낸 메신저의 메시지를 듣지 않았다. 모세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다.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바로 앞에 선 것과 반대로 바로는 귀를 닫았다. 그 결과가 이집트 전역에 미친 열 가지 재앙이었다. 당하지 않아도 좋았을 비극적 재앙을 열 가지나 당했고, 사람과 짐승에 관계없이 처음 난 것들이 모두 죽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했다.
엘리야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던 아합과 이세벨은 가문이 멸문당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던 유다 왕, 여호야김과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예레미야는 국제정치 판도를 꿰뚫고 있었다. 예레미야는 앗수리아와 이집트의 쇠퇴를 읽고 있었다. 여호야김 때인 주전 609-598년에는 유다왕국의 멸망이 코앞에 닥쳤다는 징조들이 많았다.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에서 앗수리아와 이집트의 연합군을 전멸시켰고, 이로 인해서 이집트는 유다왕국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앗수리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여호야김은 바벨론이 임명한 왕이었지만, 바벨론의 멍에를 벗으려고 애를 썼다. 이 때 하나님의 종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에게 바벨론에 저항하지 말고 이집트에 의지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로 인해서 예레미야는 민족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받아 죽음의 위기를 수차례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다윗언약과 성전과 왕권이 유다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여호와의 성전’이 자기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민족주의자들과 정치지도자들에게 성전을 마술적으로 믿지 말고 즉시 회개하고 금식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들을 귀가 없었던 여호야김은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고, 주전 598년에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가 바벨론의 공격 직전에 사망했다. 결국 유다왕국은 다음 해인 597년에 바벨론 군에 능욕을 당했고, 왕위에 오른 지 3달밖에 되지 못한 18살의 여호야긴과 지도자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다. 주전 605년에 이어 두 번째 유배였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숙부이자 요시야(주전 609년 므깃도에서 전사)의 아들인 시드기야를 잡혀간 여호야긴을 대신해서 왕으로 임명했다. 시드기야 역시 친 이집트 파와 하나냐와 스마야와 같은 거짓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하나냐는 포로가 된 사람들이 신속하게 돌아오고, 성전 보물들도 곧 되찾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의 예언을 부정했고, 유다가 회복되려면 적어도 70여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바벨론에 반기를 들지 말고 복종하도록 권했다. 예레미야가 민족주의자들에게 혹심한 핍박을 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들의 닫힌 눈과 막힌 귀로 보고 들을 때, 예레미야는 분명 매국노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토굴과 구덩이에 던져졌으며, 시위대 뜰에 갇히기도 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충고를 거부하고 신하들의 말을 듣고 이집트의 편에 서서 주전 589년에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 바벨론은 시드기야의 반역 소식을 듣고 즉시 군대를 예루살렘에 파견했고,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었다. 바벨론 군사들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했고,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소경을 만든 다음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이로써 제3차에 걸쳐 바벨론의 침략과 유배가 완결되고 유다왕국은 철저하게 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예레미야만큼은 끝내 살아남았다.
복음서와 계시록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여러 차례 나온다. 듣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이며 재앙을 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란 점을 암시한 말씀들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다고 했다(롬 10:17). 귀를 열어 듣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이다.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읽는 것은 개인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일이다. 사람이 귀를 열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면, 그 사람 개인이 사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국가를 살리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귀를 갖고 못 갖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생사가 걸린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은 “깨어나라,” “굳건하게 하라,” “굳게 지키라,” “회개하라”로 요약될 수 있다.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는 말씀은 사데 교회 성도들의 건강상태와 형편에 대한 진단이고, “깨어나라,” “굳건하게 하라,” “굳게 지키라,” “회개하라”는 말씀은 처방이다.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 건강한 것 같지만, 건강하지 못한 상태, 말씀을 받고 들었지만, 기억하지 못한 상태, 그래서 잠자고 있고, 죽어가고 있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상태, 의식하지 못한 사이 어느덧 병이 깊어진 상태가 사데 교회의 현주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데에는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이 있었다. 그들을 일컬어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받을 보상은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거니는 것이고, 생명책에서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며, 주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목숨을 걸만큼 충성스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들을 형제나 친구처럼 아끼신다는 뜻이다. 성결의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만큼 주님과 가까운 관계란 뜻이다. 주님께서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실 만큼 친밀한 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기가 입은 야훼신앙의 옷, 자기가 입은 그리스도 예수신앙의 옷, 자기가 입은 그리스도인의 옷을 더럽히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친구이다.
주님이 가지신 일곱 영과 일곱 별은 성령님과 전령 천사들을 말한다. 주님은 이들이 전한 말씀을 헛되이 듣지 말고, 귀담아 들으라고 명령하셨다. 그 말씀이 바로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는 명령이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특징은 주님께 받은 책망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비록 힘이 적으나,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고, “인내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잘 지켰다. 그들은 작지만 순수한 신앙공동체였던 것 같다. 주님은 그들에게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켜 오히려 그들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주님이 오히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을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알게 하시며, 보호하겠다고 하셨다.
주님은 유대교 회당을 사단의 모임이라고 폄하하셨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시대경륜과 섭리가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우상과 교만에 빠져서 기독교를 이단시 하고, 핍박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서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고, “이기는 사람은 내가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 그는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또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 위에 써 두겠다.”고 하셨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으로 소개되었다. 다윗은 왕국, 곧 유대인들이 희망하는 다가올 세상, 장차올 세상을 상징한다. 따라서 ‘다윗의 열쇠’는 왕국의 열쇠를 말한다. ‘성전’과 성전의 ‘기둥,’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새 이름’ 등이 장차올 세상 곧 유대인들이 꿈에도 희망하는 ‘올람하바,’ 다윗 왕국의 회복 곧 영원한 이스라엘 나라와 연관된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유대왕국의 회복을 고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희망하는 왕국이 예수님의 손에 있다는 것, 그 나라가 기독교라는 것, 그 백성이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이름이 바로 그들 위에 써둔 ‘새 이름’이라는 것, 그래서 교회 공동체를 ‘Christian Church’라 부른다는 것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주님의 교훈이다.
계시록 2-3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절 가운데 하나가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는 명령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명확하게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마가복음 8장 14-21절을 보면, 제자들이 먹을 사람은 많은데, 빵이 한 개밖에 없는 것을 걱정하다가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경고를 잘못 알아듣고, 오해한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아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빵이 없는 것을 두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어 있느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 ....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의 이 탄식이 바로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과 다르지 않다. 마가복음 7장 32-35절에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신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에바다’란 아람어를 기록하고 있는 유명한 이적이다. 예수님께서 손가락을 그 사람의 양 귀에 꽂아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 곧 ‘열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사람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장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핵심 구절은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였다.”이다. ‘열리고,’ ‘풀리고,’ ‘말이 분명했다’이다.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고, 말이 분명해지는 것, 이것은 우리가 일생을 통해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문제점은 귀가 닫혀있었다는데 있다. 굳게 닫힌 그의 어두운 귀 때문에 통일 이스라엘 시대가 닫히게 되고 분열왕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르호보암은 세금을 낮추고 부역을 감하여 육체적 경제적 부담을 덜어달라는 백성의 청(촛불시위?)을 거절했다. 원로들이 선정을 베풀어 백성의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는 것이 백성들의 충성심을 높이고 다윗왕가를 든든히 세우는 초석이 된다는 충언을 거부하고, 백성들을 더욱 거칠게 밀어붙여 불평과 불만을 잠재워야 한다는 젊은 사람들의 간언을 따랐다. 그 결과가 유다와 베냐민 두 부족만 남고 나머지 10개 부족은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면서 갈라섰다. 다윗왕가에서 갈라선 10개 부족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여 사마리아 지역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웠다. 르호보암은 귀가 닫혀 있어서 백성들 사이에서 떠도는 루머와 신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루머와 신음소리는 민심이요, 민심은 천심이며, 천심은 하나님의 음성인 것을 알지 못했다. 그 결과가 통일 이스라엘 나라를 둘로 쪼개 놓은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탈출에 성공하여 가나안 땅에 그토록 소원했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대 구원사건이 한낱 목동에 지나지 않던 80세 노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바로는 하나님이 보낸 메신저의 메시지를 듣지 않았다. 모세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다.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바로 앞에 선 것과 반대로 바로는 귀를 닫았다. 그 결과가 이집트 전역에 미친 열 가지 재앙이었다. 당하지 않아도 좋았을 비극적 재앙을 열 가지나 당했고, 사람과 짐승에 관계없이 처음 난 것들이 모두 죽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했다.
엘리야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던 아합과 이세벨은 가문이 멸문당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던 유다 왕, 여호야김과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예레미야는 국제정치 판도를 꿰뚫고 있었다. 예레미야는 앗수리아와 이집트의 쇠퇴를 읽고 있었다. 여호야김 때인 주전 609-598년에는 유다왕국의 멸망이 코앞에 닥쳤다는 징조들이 많았다.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에서 앗수리아와 이집트의 연합군을 전멸시켰고, 이로 인해서 이집트는 유다왕국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앗수리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여호야김은 바벨론이 임명한 왕이었지만, 바벨론의 멍에를 벗으려고 애를 썼다. 이 때 하나님의 종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에게 바벨론에 저항하지 말고 이집트에 의지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로 인해서 예레미야는 민족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받아 죽음의 위기를 수차례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다윗언약과 성전과 왕권이 유다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여호와의 성전’이 자기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민족주의자들과 정치지도자들에게 성전을 마술적으로 믿지 말고 즉시 회개하고 금식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들을 귀가 없었던 여호야김은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고, 주전 598년에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가 바벨론의 공격 직전에 사망했다. 결국 유다왕국은 다음 해인 597년에 바벨론 군에 능욕을 당했고, 왕위에 오른 지 3달밖에 되지 못한 18살의 여호야긴과 지도자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다. 주전 605년에 이어 두 번째 유배였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숙부이자 요시야(주전 609년 므깃도에서 전사)의 아들인 시드기야를 잡혀간 여호야긴을 대신해서 왕으로 임명했다. 시드기야 역시 친 이집트 파와 하나냐와 스마야와 같은 거짓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하나냐는 포로가 된 사람들이 신속하게 돌아오고, 성전 보물들도 곧 되찾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의 예언을 부정했고, 유다가 회복되려면 적어도 70여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바벨론에 반기를 들지 말고 복종하도록 권했다. 예레미야가 민족주의자들에게 혹심한 핍박을 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들의 닫힌 눈과 막힌 귀로 보고 들을 때, 예레미야는 분명 매국노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토굴과 구덩이에 던져졌으며, 시위대 뜰에 갇히기도 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충고를 거부하고 신하들의 말을 듣고 이집트의 편에 서서 주전 589년에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 바벨론은 시드기야의 반역 소식을 듣고 즉시 군대를 예루살렘에 파견했고,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었다. 바벨론 군사들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했고,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소경을 만든 다음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이로써 제3차에 걸쳐 바벨론의 침략과 유배가 완결되고 유다왕국은 철저하게 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예레미야만큼은 끝내 살아남았다.
복음서와 계시록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여러 차례 나온다. 듣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이며 재앙을 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란 점을 암시한 말씀들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다고 했다(롬 10:17). 귀를 열어 듣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이다.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읽는 것은 개인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일이다. 사람이 귀를 열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면, 그 사람 개인이 사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국가를 살리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귀를 갖고 못 갖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생사가 걸린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 이전글 초대교회들의 현주소4(계 3:14-22) 08.06.28
- 다음글 초대교회들의 현주소2(계 2:18-29) 08.06.1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