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인들의 내용(계 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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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인들의 내용(계 6:1-17)
계시록은 천상과 지상의 내용을 교대로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점차 그 강도를 높여가는 게 특징이다. 6장에 나오는 일곱 인재앙보다 8-9장에 나오는 일곱 나팔재앙의 강도가 더 강하고, 일곱 나팔재앙보다 15-16장에 나오는 일곱 대접재앙의 강도가 더 강하다. 일곱 나팔재앙은 전체의 삼분의 일이 피해를 입는 재앙이다.
계시록은 희망과 절망의 내용을 교대로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점차 그 강도를 높여가는 게 특징이다. 1장에서 인류의 희망이신 천상의 그리스도를 인자의 환상으로 보여준 후에 2-3장에서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는 교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말씀하신 것처럼, 4-5장에서는 세상을 만드시고 통치하시는 ‘보좌에 앉으신 이’와 세상을 이기신 ‘어린양’의 존귀와 영광과 권세를 보여준 후에 6장에서 고통당하는 세상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7장에서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세상을 이긴 것처럼, 그를 따르는 성도들이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있다’(계 7:10)는 것을 신실하게 믿으면서 세상이 주는 환란을 이기고 나서 낙원에서 누릴 참 안식을 보여준 후에 8-9장에서 하나님과 그 어린양을 배척하고 반역한 자들이 받게 될 천벌을 보여준다. 그리고 14장에서 또 다시 천상에서의 축복을 강도 높게 보여준 후에 15-16장에서 더욱 강도 높은 지옥에서의 천벌을 보여준다. 그런 후에 마지막으로 19장 이후에서는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과 인류의 궁극적인 희망인 지복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계시록은 성도들에게 희망의 책이다. 그러나 불신자들과 배신자들에게는 저주의 책이 된다.
계시록 6장은 성도들뿐 아니라 온 인류가 다 함께 세상에서 겪는 절망에 관한 글이다. 특히 일곱 인들은 지상에서 펼쳐지는 '죽음의 향연' 또는 역사의 악순환에 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문제를 지적한 것일 뿐이지, 그 끝을 말한 것은 아니다. 계시록의 끝은 인류에게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계시록은 인류에게 절망을 보여 주려한 게 아니라, 희망으로 활짝 열린 미래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여 주는 데서 출발하여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가 세우실 영원한 참 안식의 세계,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을 보여줌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계시록은 많은 부분에서 구약성서와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계시록 6장은 제5장에서 언급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있었던 두루마리 책의 내용이 공개되는 곳이다. 구약성서에도 이와 비슷한 두루마리 책과 공개된 네 마리 말들에 대한 글이 있다. 에스겔 2장 9-10절에 보면,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 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고 하였고, 스가랴 6장 1-8절에는 백마, 홍마, 흑마 그리고 얼룩 점박이 말들이 나온다. 에스겔 2장의 두루마리 책은 계시록 5장의 두루마리 책과 어떤 분명한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만, 스가랴 6장의 네 종류의 말들은 계시록 6장의 네 마리 말들과 분명한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계시록 6장에서 첫째 인은 백마와 그 말을 탄자의 거듭된 승리를 말하고 있다(1-2절). 백마를 탄자는 활을 가졌고 승리를 상징하는 관을 쓰고 있다. 이 장면은 프랑스의 조각가 부르델(1861-1929)이 1910년에 조각한 ‘활 쏘는 헤라클레스,’ 주전 333년에 터키 이소스(Issus)에서 치러진 알렉산더와 다리우스 3세의 전투장면을 묘사한 모자이크 그림, 또 이 전투를 리얼하게 재구성한 영화 ‘알렉산더’는 영웅들의 폭발적인 힘과 정열을 최대치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계시록 6장 2절에서 백마 탄자는 그가 활을 가졌고, 승리의 관을 썼다는 점에서 헤라클레스와 알렉산더 대왕을 연상시켜준다.
그리고 계시록 19장 11절과 14절에서는 최후의 승자인 그리스도와 그 뒤를 좇는 성도들이 백마를 타고 있다. 만약 이 백마 탄자가 그리스도시라면, 유대교적 관점에서는 유대인들이 고대하는 군주적 메시아를 상징하는 것이 되고,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복음의 궁극적인 승리를 말해주는 것이 된다. 그러나 만약 이 백마 탄자가 역사적인 영웅호걸들의 상징이라면, 크고 작은 국제분쟁들을 상징하게 된다.
어떤 해석자는 백마와 그 탄자가 2천 년 전 상황에서 볼 때, 로마제국이 제일 두려워했던 파르티아 군대를 암시한 것이고, 파르티아 군사들은 활쏘기의 명수로서 주후 62년 로마에 대항해서 대승을 거둔바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기독교인들의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군주적 메시아가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셨다는 점이고, 그 점이 기독교와 유대교를 다르게 만드는 주된 이유들 가운데 한 가지란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은 복음서와 서신들에서 언급된 구세주로서의 메시아를 말하기보다는 심판주와 재림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군주적 메시아 상을 보여주고 있다.
계시록 6장에서 둘째 인은 홍마와 그 탄자가 땅에서 평화를 걷어 버리고,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게 하는 큰 칼의 권세를 갖고 있음을 말한다(3-4절). 여기서 붉은 말은 내란과 동란과 같은 동족간의 전쟁을 말한다. 이런 전쟁들은 모든 나라들에서 끊임없이 발생되는 역사의 악순환이다.
계시록 6장에서 셋째 인은 흑마와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들고 있음을 말한다(5-6절). 여기서 검은 말과 저울은 기근을 상징한다(렘 14:2). 기근과 연관된 저울질에 관한 내용은 구약성서 여기저기에 많다(겔 4:9-16, 레 26:26). 저울질은 배급을 위한 것으로써 주린 배를 채울 수 없는 적은 양과 관련된다. 6절에서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치 말라.”는 말씀은 기근으로 인해서 평상시보다 열배 정도 곡물가격이 치솟은 것을 말한다. 노동자가 하루 벌어 살 수 있는 밀의 양이 한 사람이 먹을 양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 식구 정도의 가족이 먹기 위해서는 밀보다 맛과 영양이 떨어지는 보리를 사야한다. "올리브유와 포도주를 해치지 말라"는 말은 기근이 뿌리 깊은 나무들이 말라죽을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올리브유는 성령님의 임재를, 포도주는 부활을 상징한다. 성령님으로 충만하고, 부활의 믿음으로 뿌리를 깊게 내린 성도라면, 엘리야처럼 극심한 기근를 당해도 타격이 심하지 않을 것이다.
계시록 6장에서 넷째 인은 청황색말과 그 탄자의 이름이 ‘사망’이고, 음부가 뒤따르고 있음을 말한다(7-8절). 청황색은 시체의 색깔로서 전쟁과 기근을 제외한 각종 질병과 사고들로 인한 죽음을 상징한다.
이상의 네 종류의 말들과 그 탄자들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칼과 기근과 죽음과 들짐승들로써 사람들을 죽인다. 그러니까 인류의 사분의 일이 국내외 전쟁과 기근과 질병과 각종 사고와 맹수의 공격을 받아 죽게 된다는 것이다(8절).
계시록 6장에서 다섯째 인은 순교자들과 그들의 탄원을 말한다(9-11절). 그들의 탄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8-9장에서 펼쳐질 일곱 나팔재앙이다.
계시록 6장에서 여섯째 인은 천체의 파멸과 최후심판을 말한다(:12-17절). 일곱 인들 가운데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는 지상에서 펼쳐지는 역사의 악순환을 그린 것이고, 여섯 번째 인은 처참한 천체와 지구의 파멸을 말한다. 큰 지진이 나고, 해와 달과 별이 죽고, 하늘과 산과 섬들이 사라진다. 17절은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견딜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은 8장 1절에 나오는데, 반시간 정도의 침묵을 말한다. 앞선 여섯 개의 인들에서 언급된 ‘죽음의 향연’ 또는 역사의 악순환을 배경으로 천상과 지상 모두에 적용되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이 점은 일곱 번째 나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반시간 정도의 침묵은 제7장에 언급된 대로 큰 환란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키고 구원 받은 성도들이 죽은 후 낙원에서 누리는 참 안식을 말한 것일 수 있고, 또 폭풍전야의 고요처럼 세상을 심판하는 일곱 나팔재앙이 내리기 직전의 무거운 침묵을 말한다. 따라서 일곱 번째가 의미하는 것은 ‘안식’과 ‘죽음’이다. 중요한 것은 일곱 나팔재앙이나 일곱 대접재앙과 같은 하나님의 심판이 구원 받은 성도들의 탄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란 점이다. 그것은 마치 고센 땅에서 고통당하던 히브리인들의 탄원을 들으시고, 그들을 해방시켜 안식의 상징인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완고한 이집트인들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과 같다.
일곱 번째 인을 떼신 이후의 일을 보면(8:1),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들이 나팔을 받고(8:2), 나팔 불기를 예비하는 장면(8:6)과 다른 한 천사가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아 담는데, 이 향들은 성도의 기도들과 함께 보좌 앞 금단에 드려질 것들이다(8:3). 그리고 향의 연기와 성도들의 기도들이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8:4). 계시록 5장 8절을 보면, 보좌 앞에 선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갖고 있는데, 금대접에 담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하였다. 5장 8절과 8장 3절을 종합해 볼 때, 금향로에 담긴 향은 예배의 향, 곧 향기로운 예배 그자체이거나 성도의 기도들이거나, 또는 금향로 속에 예배의 향과 성도의 기도들이 함께 담긴 것을 말한 것일 수 있다. 이것은, 광야시대 때, 성막 뜰 제단에서 피어나는 제물의 향기와 성막 지성소 앞 금향로에서 피어나는 향의 연기가 합하여 지성소 서편 끝 법궤 뚜껑 위 시은소, 곧 하나님의 보좌에로 피어들었던 것의 원형과 실체로써 천상성막 지성소의 보좌를 옹위한 네 생물과 24장로들과 천사의 손에 들려진 금향로에서 피어나는 향은 다름 아닌 성도들의 예배와 기도가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상달되어지는 것임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 한 예로써 소개된 기도가 주님께서 다섯 번째 인을 떼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의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제단 아래 영혼들이 하나님께 탄원한 것이다(6:9). 이 탄원은 6장 10절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이다. 이 탄원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구원의 상징인 흰옷을 주시며 11절에서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료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바로 나타난 하나님의 응답이 세상을 심판하는 일곱 나팔재앙이다.
계시록 4-6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은 온 우주만물로부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둘째, 인류역사는 국내외 전쟁과 기근과 질병과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이다. 그 끝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파멸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안식을 구하는 자들은 세상과 함께 멸망당할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신다. 이 사실을 믿는 자가 눈이 열린 자이고, 귀가 열린 자이며, 깨닫는 자이다. 눈을 떠서 우주의 주관자이신 보좌에 앉으신 이와 세상을 이기신 어린양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신앙인들은 세상이 아무리 뒤집어지고, 잘못되어져가도 하나님이 정해 놓은 시간, 곧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을 구원하실 때(카이로스)를 믿음과 인내로써 기다리게 된다. 계시록은 끝내 이긴 자들이 받을 축복과 잠시 동안의 환난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이 받을 무서운 응보(네메시스)에 대해서 상세하고 드라마틱하게 환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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