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 길 인생(계 14:1-20)
본문
두 갈래 길 인생(계 14:1-20)
계시록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순결한 신부가 되라는 선포의 글이다.
계시록 14장 1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 곳은 지상이 아니고, 천상의 시온 산으로써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성이 자리 잡고 있는 옛 모리아 산의 원형이다. ‘그들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는 것’은 그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 그리스도에게 속한 구원받은 백성이란 점을 표현한 것이다. ‘어린양’은 지상의 예루살렘에서 인류의 속죄를 위해서 희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십사만 사천’은 7장에 나온 구원받은 성도를 말한다. 그들은 입은 옷을 더럽히지 않고, 믿음의 정절을 지킨 자들이며, 큰 환란에서 건짐을 받은 자들이다. 그들의 이마에서 빛나는 이름은 십중팔구 ‘크리스천’일 것이다. ‘크리스천’이란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등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말로는 ‘기독교인’ 혹은 ‘그리스도인’이 된다.
2절, 하늘에서 나는 물소리 같고, 우렛소리 같은 거문고 타는 소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시온 산에 도열한 구원 받은 십사만 사천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이다. 계시록에서 거문고가 등장하는 경우는 하나님께 찬양을 돌릴 때이다(계 5:8, 15:2).
3절,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부른 새 노래,’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배울 자가 없는 이 노래’는 15장 2-3절에서 언급된 모세의 노래, 승리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 구원의 노래이다. 가사의 내용은 7장과 15장에 소개되고 있다. 7장 9절,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15장 3-4절,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4절,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는 뜻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다.” 이들은 흰 옷을 입은 자들이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다. 여기서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다”는 우상숭배를 말한다. 고대 종교들에서 특히 여신들을 섬기는 신전예배에서 있었던 실제 음행과도 연관이 있고, 엘리야 시대에 바알과 아세라 목신숭배를 강요했던 이세벨과도 관련된다. 계시록에서 이세벨은 음녀의 상징이다. 계시록 2장 20절은 이세벨을 하나님의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거짓선지자로 지적하였다.
고대 근동과 유럽에서 섬겼던 아프로디테, 아세라, 아스다롯과 같은 여신 전(殿)에서는 예배행위에 성창들과의 성적 접촉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만 의존했던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비로써 상징되는 하늘의 남신과 밭으로 상징되는 땅의 여신 사이의 만남으로 풍요와 다산이 이뤄진다고 보았다. 이런 정황에서 볼 때,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좇는 영적인 음행일 뿐 아니라, 실제로 이뤄졌던 음행이다. 그래서 성서는 배교를 음행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계시록은 짧은 수고, 긴 안식, 짧은 쾌락, 긴 고통에 대한 경고의 글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며 경배하라는 전도의 글이다.
계시록 14장 5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란 말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킨 자들이란 뜻이다. 여기서 ‘신실’은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이고, 성도가 행한 약속은 일차적으로 침례 때에 행한 신앙고백을 의미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
계시록 14장 6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는 계시록의 기록목적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들이다. 여기서는 여러 천사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사라지면서 왜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믿음의 끈을 놓지 말아야하는지, 그 보상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대적한 무리들이 어떤 보응을 받게 될 것인지를 경고하고 있다.
6-7절에 등장한 첫 번째 천사는 사람들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고 선포하고 있다.
8절의 또 다른 두 번째 천사는 배교와 박해를 시행하는 제국 또는 악하고 음란한 세상의 멸망을 선포하고 있다. 여기서 ‘큰 성 바벨론’은 일차적으로 로마제국을 의미한다.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다”는 모든 속주국민들에게 우상숭배 곧 황제숭배를 강요한 것은 영적으로 음행을 주선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뿐만 아니라 함께 한 자들까지도 진노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진노의 포도주’는 피를 상징하는 징계를 말한다. 이 천사는 제국의 멸망을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탄식한다.
9-11절에 등장한 또 다른 천사 곧 셋째는 우상 곧 황제를 숭배하고 그 증표를 받으면, 바꿔 말하면, 적그리스도의 편에 서면, 불과 유황과 연기로 타는 불 못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을 경고한다. 여기서 불과 유황과 연기는 지옥의 불을,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는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의 반대개념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버리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경고한다.
계시록은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의 글이다. 그것은 마치 노아가 홍수심판을 앞두고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한 것과 같고, 천사들이 유황불 심판을 앞두고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한 것과 같다.
계시록의 특징은 죽으면 그만이다가 아니라, 죽은 후에도 그 고난이 세세토록 이어진다는 데 있다. 그리스 신화에 묘사된 탈타로스처럼, 지옥에서는 영원토록 쉼을 얻지 못하고 고통스런 일들을 끝없이 반복하게 된다.
10절의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는 물을 섞지 아니한 독주를 말한다. 고대 지중해 연안 사람들은 포도주에 물을 희석해서 마셨다. 포도주에 물을 섞는 비율은 20대 1에서부터 1대 1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고대의 문학가들은 3대 1로 혼합한 포도주를 가장 적절하게 보았고, 1대 1로 희석한 포도주를 "독한 술"(strong wine)로 언급했다.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는 표현은 심판의 강도나 고통의 강도가 심히 독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12절, 그러므로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다.”는 짧은 쾌락이 길고 끝없는 고통을 준다는 점, 그러나 짧은 믿음의 수고와 인내가 길고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준다는 점을 알라는 말씀이다.
계시록은 두 갈래 길 인생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다 동일한 길을 걷는 것 같고, 동일한 물과 동일한 포도주를 마시는 것 같아보여도 그 끝이 첨예하게 다르다. 그 끝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 것이 계시록 14장의 내용이다.
계시록 14장 1-7절은 좁고 험하지만, 생명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던 사람들이다. 고문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사람들이다. 거짓말하지 않고, 흠이 없는 신앙생활로 예수님의 인도하심대로 순종하며 따랐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 불이 섞인 유리바다 해변에 서서 새 노래, 승리의 노래,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계 15:2-3). 이들은 다시는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더위에 쓰러지지 않고, 햇빛에 화상을 입지 않고, 생명수 샘물을 마시게 되고, 모든 눈물을 씻기고, 구원의 흰옷을 입으며, 승리의 월계관을 쓰게 될 자들이다(계 7:16-17). 무엇보다도 이들은 영원한 안식과 행복한 여생이 예정된 자들이다.
또 8-11절은 넓고 편하지만, 멸망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자기들도 우상숭배를 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우상숭배를 강요했던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자들이며, 유황이 타는 불 못에서 고통을 당하고, 그 고난의 연기로 인하여 밤낮 쉼을 얻지 못할 자들이다. 이런 자들처럼 되지 않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성도들이 인내로써 믿음의 끈을 놓지 말아야한다는 것이 계시록의 메시지이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제일 먼저 ‘카론’이란 뱃사공이 태워주는 바닥없는 소가죽 배를 타고 비통의 강을 건너게 된다. 비통의 강을 건너게 되면 그 갈래인 시름의 강이 나오고, 이 시름의 강을 건너게 되면 불의 강이 나오고, 이 불의 강을 건너게 되면, 망각의 강이 나온다. 이 망각의 강을 건너게 되면 너른 벌판이 나오게 되는데, 오른쪽 들판에는 낙원인 엘뤼시온(Elusion)이 있고, 왼쪽 들판에는 지옥인 탈타로스(Tartaros)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상징하는 강을 건너게 되지만, 그 강의 끝은 첨예하게 다른 두 갈래 길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낙원 엘뤼시온에서는 지복을 누리지만, 지옥 탈타로스에서는 형용키 어려운 형벌을 받는다. 탄탈로스는 물속에 몸을 잠그고 있는데도 영원한 갈증에 시달린다. 탄탈로스가 물을 마시려고 입을 대면 물이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익시온은 영원히 도는 불 수례에 매달려 비명을 지른다. 티튀오스는 독수리의 부리에 살을 파 먹히면서 영원히 소리 지르고, 다나오스의 딸들은 밑 빠진 독에다 영원히 물을 길어다 붓는다. 시쉬포스는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지만, 바위는 산꼭대기에 도달하기 무섭게 다시 굴러 떨어진다. 천국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겪게 될 고통의 종류들을 설명해 준 것이다. 한마디로 지옥에는 쉼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13-20절은 각각 다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을 향한 대심판을 추수장면으로 보여준 것이다. 먼저 13-16절은 ‘구름 위에 앉은 이’의 알곡추수 장면이고, 17-20절은 심판천사의 포도추수 장면이다. 알곡추수는 영원한 안식의 땅에 들어갈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우는 것이고, 포도추수는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와 함께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가 밤낮 쉼이 없는 고통 속에 들어갈 불신자들을 모우는 것이다.
계시록의 교훈은 때가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임박했다는 것이다.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한없이 사단의 발아래 짓밟히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다만 때를 기다리실 뿐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외롭고, 고달프고, 고통스런 시간이지만, 환희와 기쁨의 시간이기도 하다. 성도의 기다림이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이고, 진리는 마침내 이기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계시록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순결한 신부가 되라는 선포의 글이다.
계시록 14장 1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 곳은 지상이 아니고, 천상의 시온 산으로써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성이 자리 잡고 있는 옛 모리아 산의 원형이다. ‘그들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는 것’은 그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 그리스도에게 속한 구원받은 백성이란 점을 표현한 것이다. ‘어린양’은 지상의 예루살렘에서 인류의 속죄를 위해서 희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십사만 사천’은 7장에 나온 구원받은 성도를 말한다. 그들은 입은 옷을 더럽히지 않고, 믿음의 정절을 지킨 자들이며, 큰 환란에서 건짐을 받은 자들이다. 그들의 이마에서 빛나는 이름은 십중팔구 ‘크리스천’일 것이다. ‘크리스천’이란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등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말로는 ‘기독교인’ 혹은 ‘그리스도인’이 된다.
2절, 하늘에서 나는 물소리 같고, 우렛소리 같은 거문고 타는 소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시온 산에 도열한 구원 받은 십사만 사천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이다. 계시록에서 거문고가 등장하는 경우는 하나님께 찬양을 돌릴 때이다(계 5:8, 15:2).
3절,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부른 새 노래,’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배울 자가 없는 이 노래’는 15장 2-3절에서 언급된 모세의 노래, 승리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 구원의 노래이다. 가사의 내용은 7장과 15장에 소개되고 있다. 7장 9절,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15장 3-4절,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4절,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는 뜻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다.” 이들은 흰 옷을 입은 자들이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다. 여기서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다”는 우상숭배를 말한다. 고대 종교들에서 특히 여신들을 섬기는 신전예배에서 있었던 실제 음행과도 연관이 있고, 엘리야 시대에 바알과 아세라 목신숭배를 강요했던 이세벨과도 관련된다. 계시록에서 이세벨은 음녀의 상징이다. 계시록 2장 20절은 이세벨을 하나님의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거짓선지자로 지적하였다.
고대 근동과 유럽에서 섬겼던 아프로디테, 아세라, 아스다롯과 같은 여신 전(殿)에서는 예배행위에 성창들과의 성적 접촉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만 의존했던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비로써 상징되는 하늘의 남신과 밭으로 상징되는 땅의 여신 사이의 만남으로 풍요와 다산이 이뤄진다고 보았다. 이런 정황에서 볼 때,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좇는 영적인 음행일 뿐 아니라, 실제로 이뤄졌던 음행이다. 그래서 성서는 배교를 음행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계시록은 짧은 수고, 긴 안식, 짧은 쾌락, 긴 고통에 대한 경고의 글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며 경배하라는 전도의 글이다.
계시록 14장 5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란 말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킨 자들이란 뜻이다. 여기서 ‘신실’은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이고, 성도가 행한 약속은 일차적으로 침례 때에 행한 신앙고백을 의미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
계시록 14장 6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는 계시록의 기록목적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들이다. 여기서는 여러 천사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사라지면서 왜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믿음의 끈을 놓지 말아야하는지, 그 보상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대적한 무리들이 어떤 보응을 받게 될 것인지를 경고하고 있다.
6-7절에 등장한 첫 번째 천사는 사람들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고 선포하고 있다.
8절의 또 다른 두 번째 천사는 배교와 박해를 시행하는 제국 또는 악하고 음란한 세상의 멸망을 선포하고 있다. 여기서 ‘큰 성 바벨론’은 일차적으로 로마제국을 의미한다.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다”는 모든 속주국민들에게 우상숭배 곧 황제숭배를 강요한 것은 영적으로 음행을 주선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뿐만 아니라 함께 한 자들까지도 진노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진노의 포도주’는 피를 상징하는 징계를 말한다. 이 천사는 제국의 멸망을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탄식한다.
9-11절에 등장한 또 다른 천사 곧 셋째는 우상 곧 황제를 숭배하고 그 증표를 받으면, 바꿔 말하면, 적그리스도의 편에 서면, 불과 유황과 연기로 타는 불 못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을 경고한다. 여기서 불과 유황과 연기는 지옥의 불을,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는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의 반대개념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버리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경고한다.
계시록은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의 글이다. 그것은 마치 노아가 홍수심판을 앞두고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한 것과 같고, 천사들이 유황불 심판을 앞두고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한 것과 같다.
계시록의 특징은 죽으면 그만이다가 아니라, 죽은 후에도 그 고난이 세세토록 이어진다는 데 있다. 그리스 신화에 묘사된 탈타로스처럼, 지옥에서는 영원토록 쉼을 얻지 못하고 고통스런 일들을 끝없이 반복하게 된다.
10절의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는 물을 섞지 아니한 독주를 말한다. 고대 지중해 연안 사람들은 포도주에 물을 희석해서 마셨다. 포도주에 물을 섞는 비율은 20대 1에서부터 1대 1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고대의 문학가들은 3대 1로 혼합한 포도주를 가장 적절하게 보았고, 1대 1로 희석한 포도주를 "독한 술"(strong wine)로 언급했다.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는 표현은 심판의 강도나 고통의 강도가 심히 독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12절, 그러므로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다.”는 짧은 쾌락이 길고 끝없는 고통을 준다는 점, 그러나 짧은 믿음의 수고와 인내가 길고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준다는 점을 알라는 말씀이다.
계시록은 두 갈래 길 인생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다 동일한 길을 걷는 것 같고, 동일한 물과 동일한 포도주를 마시는 것 같아보여도 그 끝이 첨예하게 다르다. 그 끝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 것이 계시록 14장의 내용이다.
계시록 14장 1-7절은 좁고 험하지만, 생명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던 사람들이다. 고문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사람들이다. 거짓말하지 않고, 흠이 없는 신앙생활로 예수님의 인도하심대로 순종하며 따랐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 불이 섞인 유리바다 해변에 서서 새 노래, 승리의 노래,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계 15:2-3). 이들은 다시는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더위에 쓰러지지 않고, 햇빛에 화상을 입지 않고, 생명수 샘물을 마시게 되고, 모든 눈물을 씻기고, 구원의 흰옷을 입으며, 승리의 월계관을 쓰게 될 자들이다(계 7:16-17). 무엇보다도 이들은 영원한 안식과 행복한 여생이 예정된 자들이다.
또 8-11절은 넓고 편하지만, 멸망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자기들도 우상숭배를 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우상숭배를 강요했던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자들이며, 유황이 타는 불 못에서 고통을 당하고, 그 고난의 연기로 인하여 밤낮 쉼을 얻지 못할 자들이다. 이런 자들처럼 되지 않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성도들이 인내로써 믿음의 끈을 놓지 말아야한다는 것이 계시록의 메시지이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제일 먼저 ‘카론’이란 뱃사공이 태워주는 바닥없는 소가죽 배를 타고 비통의 강을 건너게 된다. 비통의 강을 건너게 되면 그 갈래인 시름의 강이 나오고, 이 시름의 강을 건너게 되면 불의 강이 나오고, 이 불의 강을 건너게 되면, 망각의 강이 나온다. 이 망각의 강을 건너게 되면 너른 벌판이 나오게 되는데, 오른쪽 들판에는 낙원인 엘뤼시온(Elusion)이 있고, 왼쪽 들판에는 지옥인 탈타로스(Tartaros)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상징하는 강을 건너게 되지만, 그 강의 끝은 첨예하게 다른 두 갈래 길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낙원 엘뤼시온에서는 지복을 누리지만, 지옥 탈타로스에서는 형용키 어려운 형벌을 받는다. 탄탈로스는 물속에 몸을 잠그고 있는데도 영원한 갈증에 시달린다. 탄탈로스가 물을 마시려고 입을 대면 물이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익시온은 영원히 도는 불 수례에 매달려 비명을 지른다. 티튀오스는 독수리의 부리에 살을 파 먹히면서 영원히 소리 지르고, 다나오스의 딸들은 밑 빠진 독에다 영원히 물을 길어다 붓는다. 시쉬포스는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지만, 바위는 산꼭대기에 도달하기 무섭게 다시 굴러 떨어진다. 천국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겪게 될 고통의 종류들을 설명해 준 것이다. 한마디로 지옥에는 쉼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13-20절은 각각 다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을 향한 대심판을 추수장면으로 보여준 것이다. 먼저 13-16절은 ‘구름 위에 앉은 이’의 알곡추수 장면이고, 17-20절은 심판천사의 포도추수 장면이다. 알곡추수는 영원한 안식의 땅에 들어갈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우는 것이고, 포도추수는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와 함께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가 밤낮 쉼이 없는 고통 속에 들어갈 불신자들을 모우는 것이다.
계시록의 교훈은 때가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임박했다는 것이다.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한없이 사단의 발아래 짓밟히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다만 때를 기다리실 뿐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외롭고, 고달프고, 고통스런 시간이지만, 환희와 기쁨의 시간이기도 하다. 성도의 기다림이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이고, 진리는 마침내 이기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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