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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승리(계 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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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593 2008.09.0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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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승리(계 21:1-27)

2008년 4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사전편찬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4천776명을 발표하자 사회적인 파장이 일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정희, 신현확(국무총리), 김활란(이화여대총장), 안익태(애국가), 서정주(시인), 최남선, 이광수, 최린(이상 독립지사) 등 알 만한 사람들이 대거 실렸기 때문입니다. 이들 가운데 최남선, 이광수, 최린은 특별히 주목해볼 인물들입니다.
이광수는 1919년 동경 유학생의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참가하였고, 1937년 독립운동단체인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의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일제 말인 1939년부터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최린은 메이지대 졸업 후 신민회에 가입하였고,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1933년 말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를 내세우며 변절하였습니다.
최남선은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민족대표 33인중에 한 사람입니다. 체포되어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938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1939년 일본 관동군이 세운 건국대학 교수가 되었고, 1943년 재일조선인 유학생의 학병지원을 권장하기 위해서 동경에 건너갔습니다.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한 때 독립을 위해 투신했다가 일제말엽에 변절자가 된 것입니다. 이 무렵은 교회들조차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등 해방의 꿈이 산산 조각나던 때였습니다. 이 시기는 일제의 발악이 극에 도달한 때였지만, 다른 한편 일제의 멸망이 코앞에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만일 수년 내에 조국광복이 이뤄질 것을 알았다면, 어느 누구도 변절이란 수치스런 일을 감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 세 천재들은 물론이고 하나님만 바라봐야할 교회지도자들조차도 암담한 현실의 무덤에 갇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습니다. 계시록뿐 아니라 성서의 상당부분이 이런 정황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특히 계시록은 이런 상황에 처한 신앙인들에게 가까운 장래에 이뤄질 해방(구원)의 기쁨을 환상으로 보여주고, 변절에 대한 엄격한 심판을 경고하면서 신실한 믿음과 인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서 최린은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내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뿐이었다. 첫째는 망명하는 길이요, 둘째는 자살하는 길이며, 셋째는 일본 군문(軍門)에 항복하는 길이었다. 첫째와 둘째 길을 택하지 못한 것은 늙은 부모에게 불효할 수 없어서였다.“ 그러나 성서는 최린이 택하지 못한 첫째와 둘째의 길을 택할 것을 성도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길, 곧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계시록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승리, 그리스도의 승리, 우리 모든 성도들의 최후승리이다.
계시록 1-3장은 왜 그리스도가 이길 수밖에 없는가를 '인자의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인자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흰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교회의 목회자를 상징하는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로마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은 찬란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교회와 성도들을 무섭게 위협하는 박해의 폭풍을 향해서 언
제라도 "잔잔해라. 고요해라."고 말씀의 검을 들어 명령하시면,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할 수밖에 없는 능력이 많은 분이기 때문이다.
또 계시록 4-6장은 왜 하나님이 이길 수밖에 없는가를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보석과 무지개로 둘러싸인 보좌방의 주인이시며,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모든 피조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시며,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세계는 그 분의 큰 뜻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고,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발 앞에 꿇어 엎드러질 수밖에 없다. 그분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으시며, 뒤집어진 세상을 바로 세우실 분이시다.
하나님이 사단으로 하여금 3쿼터까지 잠시잠깐동안 악한 일을 하게 내버려둘지라도, 그는 결단코 하나님의 계획을 꺾을 수 없고, 하나님의 편에 선 교회와 성도를 꺾을 수 없다. 그의 최후는 불 못 신세이다.
계시록에서 배워야 중요한 교훈은 사단과 천사와 인간은 모두가 피조물이라는 점이다. 피조물은 운명적으로 마이너스 1의 존재이다. 자신이 아무리 잘났다고 뛰어봤자 벼룩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결단코 하나님이 될 수 없고, 하나님 없이 살아 갈 수도 없다. 피조물이 사는 길은 오직 플러스 1의 존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만드신 완전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과 하나님과의 전투는 실제로 있을 수도 없고, 사단이 하나님의 적수가 될 수도 없다. 계시록이 비록 전투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전쟁이 없다. 하나님의 어린양 J장군 예수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군사들은 갑옷이나 군복대신 혼인예복을 입고 있다. 어린양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총칼에 의해서 멸절되는 것이 아니라, J장군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위엄 있는 말씀의 검으로 멸절되기 때문이다. 일찍이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셨고, 말씀으로 풍랑과 바람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은 말씀으로 악의 세력을 물리치실 것이다. 처음부터 사단은 게임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사단은 단 한 명의 천사에 의해서 단 하나의 쇠사슬에 묶이고 마는 힘없는 존재이다. 그는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모방하고 표절하고 가장한다. 그러나 그는 운명적으로 유황으로 타는 불 못에 들어갈 마이너스 1의 존재에 불과하다.
계시록 7-19장은 왜 교회와 성도들이 이길 수밖에 없는가를 나팔재앙, 대접재앙, 성도들의 삼년 반 기간의 시련, 음녀와 바벨론 멸망의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한 때 큰 환란을 겪었으나 하늘의 영광을 차지한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한 때 돈과 세상 권력을 쥐고 성도들을 핍박하며 하나님을 멸시했던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재앙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모습과 영원히 타는 유황불 못에 던져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계시록 20-22장은 믿음의 끈을 인내로 붙들고 끝까지 놓지 않는 성도들에게 어떤 축복이 주어질지를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황소머리를 하고 사람을 먹이로 삼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기 위해서 한번 들어가면 영영 빠져나올 수 없는 복잡한 미궁 속에 들어간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타래의 실 끝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괴물도 물리치고 미궁도 빠져나오는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믿음의 끈을 놓지 말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계시록 21장은, 미궁처럼 복잡한 삶 속에서 시시각각 우리를 넘어뜨리려들고 삼키려드는 미노타우로스, 곧 시련과 역경과 박해의 괴물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아니한 테세우스와 같은 신앙의 영웅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 어떤 침략에도 견딜 수 있는, 성곽 두께가 무려 65미터나 되고, 길이와 폭과 높이가 각각 2,200킬로미터나 되는 크고 견고한 성에서, 또 지극히 값진 각색 보석으로 꾸며진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복락을 누릴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실 것을 환상으로 보여주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사실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는 눈물이 없고, 죽음이 없으며, 애통이나 아픈 것이 없는 곳이라고 하였다. 이 좋은 곳에 들어가 살 자격자들에 대해서 7절은 ‘이기는 자들’이 상속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고, 22절은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8절에서 강한 어조로 말씀하였다.
계시록은 우리에게 그 좋은 날이 그리 멀지 않다고  말한다. 믿음으로 참고 인내한다면, 비록 시련과 역경과 고난이 운명처럼 우리를 옥좨는 쇠사슬이 되고, 우리를 삼키려드는 괴물이라 할지라도, 실타래를 놓지 않고 싸운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처럼, 믿음의 용사가 된다면, 비록 일생을 고난과 싸울 운명을 타고났을 지라도, 아테나 여신의 지혜를 의지해서 자기에게 부과된 모든 고난을 극복한 헤라클레스처럼, 성령충만하고 기도에 힘쓰는 믿음의 용사가 된다면, 비록 무거운 침묵처럼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의심되고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느껴질지라도, 굳세게 신랑에 대한 정절을 지켜낸 성춘향이처럼, 신실한 신앙인이 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이런 수고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실 것이다. 그날이 멀지 아니함으로, 히브리서의 권면처럼, 그 날이 가까이 다가옴을 볼수록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야할 줄로 압니다(10: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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