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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계 2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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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435 2008.10.2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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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계 22:1-21)

사람들 가운데는 육체를 통해서 마음을 지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마음을 통해서 육체를 지배하는 사람도 있다.
육체를 통해서 마음을 지배하는 사람은 정신세계와 영적세계를 부정하거나 정신적이거나 영적인 것보다 육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더 가치를 둔다. 물질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의 심층세계를 부정하고 육체의 쾌락만을 낙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이런 물량적이고 피상적인 삶의 추구는 삶의 의미나 목적과 같은 깊이의 차원을 잃게 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더 공허하게 만들고 수렁에로 빠져들게 한다. 자살자나 묻지마식 살인자들이 많아지는 이유가 그들을 고독과 허무, 좌절과 절망, 상실과 아픔, 공허와 회의에서 벗어나 삶을 더 깊은 차원에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정신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육체를 통해서 마음을 지배하는 사람은 내세나 영원한 세계를 부정하거나 대부분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현세에 더 집착한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이상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은 혁명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려한다. 그들은 내세에 대한 믿음이 허황된 것이라 믿기 때문에 현세에서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 꿈을 이루는 수단이 혁명이고, 파괴이고, 폭력이고, 살상이다. 그들이 신봉하는 것은 폭동과 같은 집단행동이기 때문에 틈만 나면 선동을 일삼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에게 정신세계나 영적세계가 없고, 내세가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또 언제든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그들은 실용성과 공리성을 최선으로 보기 때문에 실용성이나 공리성이 떨어지는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폐기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약자나 소수를 위한다는 그들의 슬로건은 허구에 불과하다.
마음을 통해서 육체를 지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영혼이 육체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정신이 육체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은 물질세계보다는 정신세계에, 현세보다는 내세에 더 가치를 두고 산다. 대개는 신앙인들이 여기에 속한다.
마음을 통해서 육체를 통제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아예 속세를 등지고 살거나 속세의 일에 무관심한 사람도 있다. 금욕주의자로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내세를 강력하게 기대하면서도 현세에 더 적극적인 사람이다. 내세의 축복을 현세에서 누리는 사람이다. 따라서 세상을 등지는 말세신앙이나 시한부종말론은 바른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성서는 세 가지 세상을 말한다. 현세와 중간상태인 음부의 세계와 내세가 있다. 현세는 죄로 부패한 육체를 갖고 악하고 음란한 세상을 살기 때문에 고난이 끊이지 않는 고통의 바다이다. 낙원은 죽은 성도들이 재림 전 부활 때까지 영혼의 상태로 거주하는 천국이고, 내세는 재림 때 부활한 성도들이 영화롭게 된 몸을 가지고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물론 낙원도 내세이긴 하지만, 정확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중간상태 또는 음부의 세계라고 말한다. 현세는 죄로 물든 세상이지만, 내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만물이 새롭게 거듭난 세상이다. 반대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죽어서 영의 상태로 탈타로스라는 지옥, 곧 중간상태에서 고통을 겪게 되며, 예수님 재림 때에 부활하여 유황과 연기로 타는 불 못에 들어가게 된다.
또 성서는 세 가지 천국을 말한다. 지상천국, 낙원천국, 내세천국이 있다. 지상천국은 내세의 축복을 현세에 앞당겨 맛보고 경험하는 삶을 말한다. 비록 악하고 음란한 현세에 살지만,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천국을 맛보는 삶을 말한다. 종말에 주어질 내세의 축복을 성령님의 인도로 앞당겨 우리의 삶 속에서 누리는 평강의 축복을 말한다. 이 내세에 대한 믿음이 현실의 어둠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에로 바꾸게 한다. 또 내세는 성도들의 궁극적인 희망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올바른 삶을 지탱시키는 능력이 된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낙원천국은 성도가 죽어서 영의 상태로 머무는 천국을 말하고, 내세천국은 낙원천국에 머물던 구원받은 영혼들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고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그러나 내세는 아직 없다. 주님의 재림 때 이 우주만물이 새롭게 거듭나야 존재하게 되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 내세는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환란과 역경의 미궁을 빠져나온 승리자들이 선물로 받게 될 영원한 나라이다.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곳인가? 계시록 7장, 21장, 22장과 이사야 65장에 잘 설명되어 있다.
첫째,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사는 곳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기 전에도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성도들과 함께 하셨지만, 인간들이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지존하신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 살 모든 인간은 거룩한 몸으로 변형된 완전한 모습을 갖춘 깨끗한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이 성도들의 집과 함께 있게 되며, 하나님은 성도들과 함께 살게 된다(계 21:3-4).
둘째,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친히 빛을 비추는 곳이다.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밤이 없고, 해와 전기가 필요 없는 곳이다(계 22:5).
셋째,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계 22:1), 생명나무의 열매가 열리는 곳이다(계 22:2). 새 하늘과 새 땅은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으며,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않는 곳이다(계 7:16). 정리해고나 부도 따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넷째, 새 하늘과 새 땅은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사 65:18). 새 하늘과 새 땅은 눈물이 없고, 슬픔이 없는 곳이다(계 21:4).
다섯째, 새 하늘과 새 땅은 정의롭고 평화로운 곳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해함이 없고 상함이 없고(계 22:3; 사 65:25), 질병이 없고, 죽음이 없는 곳이다(계 21:4).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놀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는 곳이다(사 65:25).
여섯째, 새 하늘과 새 땅은 깨끗하고 건전한 생각만 하는 곳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전의 실수나 잘못이 마음에 생각나지 않는 곳이다(사 65:17; 계 21:4).
일곱째, 새 하늘과 새 땅은 모든 성도들이 세세 무궁토록 왕 노릇 하는 곳이다(계 22:5). 새 하늘과 새 땅은 남에게 지배를 받거나 고용 당하지 않는 곳이다.
이밖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은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튼튼하고,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고, 보석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으로 임한 새 예루살렘성에서 보호받으며 안식하게 된다. 이곳에 들어갈 특권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어린양의 피로 자기 의복을 빨아야 한다(계 21:9-22:15).
새 하늘과 새 땅은 좋은 곳이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아무나 막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돈 많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머리 좋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잘났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 들어가 땅을 차지할 사람은 돈 많은 사람도 아니고, 머리 좋은 사람도 아니고, 인물 잘난 사람도 아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는가?
첫째,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시련을 극복하고 이긴 사람들이다. 이긴 사람들만이 이곳을 차지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시록에서 이렇게 권면하셨다. "처음행위를 가지라"(2:5). "죽도록 충성하라"(2:10). "회개하라"(2:16). "굳게 잡으라"(2:25).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3:3). "네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3:11). "네가 열심을 내라"(3:19). 그리고 끝까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2:7).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2:1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주겠다"(2:17). "새벽별을 주리라"(2:28). "이기는 자는 . . .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3:5).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3:1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3:21).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21:7)고 말씀하셨다.
둘째,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이다. 계시록 21장 27절은,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고 했다.
셋째,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들이다(계 7:14). 계시록 22장 14절의 말씀은,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고 했다.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한다'는 뜻은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얻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한 사람들은 모두 다 이 놀라운 축복에 참예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라도 성도들에게는 보장된 미래가 있기에 실패자가 아니라, 승리자이다.
그러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과(20:15)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21:8) 저희를 미혹하던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와 함께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할 것(20:10)이라고 했다. 이들은 잠시 세상에서는 이기는 것 같았지만, 그들의 미래는 절망적이고 비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공한 자들 같으나 실패자들이다. 그들의 운명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편에 서서 끝까지 믿음의 끈을 붙들고 있어야 최후 승리를 얻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참 안식을 얻을 수가 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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