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교회(롬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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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교회(롬 6:22)
2002년 6월 23일 처음 예배를 드린 해로부터 금년까지의 표어들을 정리해 보았다. ‘작지만 순수한 교회,’ ‘분수처럼 시원하고, 백합처럼 순결한 교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된 교회가 ‘빛과 생명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빛 되시고,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가 주인인 교회, 빛과 생명의 복음을 깨닫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교회, 신약성서의 가르침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교회,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목표로 시작된 교회가 ‘빛과 생명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그래서 첫해인 2002년도에는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A Christian Church Delivering the Gospel of the Light and Life)를 표어로 정했다. 여기서 ‘빛과 생명’은 그리스도를 말한다. 빛을 주시는 그리스도,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말한다. 예수님 믿고 생명을 얻게 하는 것,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 이것이 이 교회의 사명이며,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2003년도에는 ‘반석위에 세운 교회’(A Christian Church Founded on the Solid Rock)로 정했다. 여기서 ‘반석’은 그리스도를 말한다. 지축을 흔드는 지진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퉁이돌이 되신 그리스도를 말한다. 교회는 이 반석위에 세워져야 한다. 인생의 집도 이 든든한 반석위에 세워야 한다.
2004년도에는 ‘마음을 같이 하는 교회’(A Christian Church Meeting with One Accord)로 정했다. 2003년 말에 아쉽게도 교회를 떠난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표어를 이렇게 정했다. 이때 우리 부부는 온전치 못하고 초라한 우리 자신의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주님께 드릴 것은 사모하는 마음뿐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땐 정말 똑바로 보고 싶었고, 똑바로 걷고 싶었다. 그 이후 최원순의 복음성가, ‘똑바로 보고 싶어요’는 우리 부부의 신앙고백송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온전한 눈짓, 온전한 몸짓으로 살지 못하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들을 보고 있다.
2005년도에는 ‘하나님께 날마다 한걸음씩 다가서는 교회’(A Christian Church Coming Near One-step to God Daily)로 정했다. 복음성가, ‘보혈을 지나’에 나오는 내용대로, 한걸음씩 주님께 나아가기를 원했다. 한걸음씩 나아간다는 표현은 발전이 더디다는 아픔이 담긴 말일 수도 있고, 우직한 소걸음이 천리를 간다는 속 깊은 뜻이 담긴 고백일 수도 있다.
2006년도에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교회’(A Christian Church Being Strengthened in Peace)로 정했다. 아픔을 통해서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의견차로 인한 고통도 사라진 만큼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2007년도에는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가는 교회’(A Christian Church Being Encouraged by the Holy Spirit)로 정했다. 수적인 발전이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갔기 때문에 주님을 경외함과 성령님의 위로로 계속해서 진행되어 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2008년도에는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교회’(A Christian Church Being Rooted and Established)로 정했다. 시기적으로 볼 때, 우리 교회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질 때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9년도에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교회’(A Christian Church Reaping the Benefit That Leads to Holiness)로 정했다. 이제는 열매를 맺혀야할 때라 믿는다. 더욱이 2009년은 기축년(己丑年), 소띠 해이다. 소띠는 번영을 상징한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부의 상징이며, 근면과 끈기의 상징이다. 또 소띠는 가정의 안정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2009년도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번영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란다. 육체적인 삶에는 물질의 번영의 열매가, 영적인 삶에는 거룩함에 이르는 경건의 열매가 풍성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우리가 열매를 생각할 때이다. 주님은 열매 없는 나무를 책망하셨다. 누가복음 13장 6-9절을 보면, 무화과나무가 존재하는 목적은 열매를 맺는 것이고, 그 나무를 가꾸는 과원지기의 사명도 나무가 열매를 맺도록 두루 파고 거름을 주는 것임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다. 그래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나무는 쓸모가 없어져 뽑히게 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후에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한다고 그의 서신들에서 밝히고 있다. 열매를 나무와 연관해서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죽은 나무에는 봄이 찾아오지 않는다. 겨울이 되면 나무마다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어 모든 나무가 죽은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겨울 동안에는 죽은 나무와 산 나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봄이 되면 산 나무와 죽은 나무가 확연히 구별된다. 살아있는 나무는 봄에 싹을 내고 꽃을 피운다. 여름에는 풍성한 가지와 잎으로 열매를 만든다. 가을에는 싱싱하고 풍성한 열매를 제공한다. 그러나 죽은 나무는 계절에 관계없이 싹을 내지 않고 열매를 만들지 않는다. 이처럼 나무의 상태를 보면 그 나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죄로 인하여 죽은 사람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죄로 인하여 죽었기 때문에 선행의 싹이 없고 꽃이 없고 열매가 없다. 그러나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은 살아 있기 때문에 선행의 싹이 있고 꽃이 있고 열매가 있다. 이와 같이 신앙상태를 보고 그 사람이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지 죽은 그리스도인인지를 판가름한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행함이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그리스도인이다. 활동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잠자는 사람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26).
둘째, 봄이 나무에게 필요한 모든 계절은 아니다. 봄은 나무에게 필요한 출발점이고, 여름은 가을을 준비하는 성숙기이며, 가을은 열매를 맺는 결실기이다. 따라서 나무에게 필요한 것은 봄의 생동과 여름의 풍성함과 가을의 열매이다. 열매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닐지라도 봄과 여름은 가을에 맺히는 열매를 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4장 28절에서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고 말씀하셨다.
봄에 피는 목련과 개나리, 진달래와 벚꽃, 매화와 라일락 등의 꽃은 아름답다. 그리스도인의 중생체험에도 두껍고 딱딱한 외피를 헤집고 나온 새싹의 감동과 눈부시게 피는 꽃의 감동과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봄 한철에 불과하다.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면서 봄의 감동은 식어져 버리고 잊혀 버린다. 봄에 느꼈던 감동이 여름에 찾아오는 신록의 풍성함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록의 풍성함도 여름 한철에 불과하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여름의 감동은 식어져 버리고 잊혀 버린다. 한 나무의 진가는 찬바람이 불면서부터 나타난다. 나무마다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서 몸의 수분을 빼게 되고 그 풍성했던 잎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잎이 떨어질수록 열매가 많은 나무는 사랑을 받게 되고 열매가 없는 나무는 초라한 모습으로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셋째, 나무는 결국 그 열매를 보고 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장 16-20절에서 말씀하기를, "너희는 그 열매로 그들을 알아야 한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따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열매로 그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갈라디아서 5장 16-25절에서 바울은 나쁜 열매와 성령님의 열매에 대해서 말한다. 나쁜 열매는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이기심과 분열과 분파와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거리는 연회와 또 이와 비슷한 것들"이며,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 한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 . .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8-10절의 말씀에서도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목적은 그리스도인다운 아름다운 삶을 위한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신앙인다운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은 말하기를, 불신자들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그리스도인들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롬 6:16)고 했다. 이뿐 아니라,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충고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의에게 종' 또는 '하나님께 종'이란 말로써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와 성결의 생활을 강조하였다. 우리가 우리 자신들의 노력과 선행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주시고 있고,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고 계신다. 구원과 함께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는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2009년에는 거룩함에 이르는 의의 열매가 풍성하도록 좀더 노력하자.
2002년 6월 23일 처음 예배를 드린 해로부터 금년까지의 표어들을 정리해 보았다. ‘작지만 순수한 교회,’ ‘분수처럼 시원하고, 백합처럼 순결한 교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된 교회가 ‘빛과 생명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빛 되시고,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가 주인인 교회, 빛과 생명의 복음을 깨닫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교회, 신약성서의 가르침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교회,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목표로 시작된 교회가 ‘빛과 생명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그래서 첫해인 2002년도에는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A Christian Church Delivering the Gospel of the Light and Life)를 표어로 정했다. 여기서 ‘빛과 생명’은 그리스도를 말한다. 빛을 주시는 그리스도,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말한다. 예수님 믿고 생명을 얻게 하는 것,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 이것이 이 교회의 사명이며,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2003년도에는 ‘반석위에 세운 교회’(A Christian Church Founded on the Solid Rock)로 정했다. 여기서 ‘반석’은 그리스도를 말한다. 지축을 흔드는 지진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퉁이돌이 되신 그리스도를 말한다. 교회는 이 반석위에 세워져야 한다. 인생의 집도 이 든든한 반석위에 세워야 한다.
2004년도에는 ‘마음을 같이 하는 교회’(A Christian Church Meeting with One Accord)로 정했다. 2003년 말에 아쉽게도 교회를 떠난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표어를 이렇게 정했다. 이때 우리 부부는 온전치 못하고 초라한 우리 자신의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주님께 드릴 것은 사모하는 마음뿐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땐 정말 똑바로 보고 싶었고, 똑바로 걷고 싶었다. 그 이후 최원순의 복음성가, ‘똑바로 보고 싶어요’는 우리 부부의 신앙고백송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온전한 눈짓, 온전한 몸짓으로 살지 못하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들을 보고 있다.
2005년도에는 ‘하나님께 날마다 한걸음씩 다가서는 교회’(A Christian Church Coming Near One-step to God Daily)로 정했다. 복음성가, ‘보혈을 지나’에 나오는 내용대로, 한걸음씩 주님께 나아가기를 원했다. 한걸음씩 나아간다는 표현은 발전이 더디다는 아픔이 담긴 말일 수도 있고, 우직한 소걸음이 천리를 간다는 속 깊은 뜻이 담긴 고백일 수도 있다.
2006년도에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교회’(A Christian Church Being Strengthened in Peace)로 정했다. 아픔을 통해서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의견차로 인한 고통도 사라진 만큼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2007년도에는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가는 교회’(A Christian Church Being Encouraged by the Holy Spirit)로 정했다. 수적인 발전이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갔기 때문에 주님을 경외함과 성령님의 위로로 계속해서 진행되어 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2008년도에는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교회’(A Christian Church Being Rooted and Established)로 정했다. 시기적으로 볼 때, 우리 교회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질 때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9년도에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교회’(A Christian Church Reaping the Benefit That Leads to Holiness)로 정했다. 이제는 열매를 맺혀야할 때라 믿는다. 더욱이 2009년은 기축년(己丑年), 소띠 해이다. 소띠는 번영을 상징한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부의 상징이며, 근면과 끈기의 상징이다. 또 소띠는 가정의 안정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2009년도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번영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란다. 육체적인 삶에는 물질의 번영의 열매가, 영적인 삶에는 거룩함에 이르는 경건의 열매가 풍성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우리가 열매를 생각할 때이다. 주님은 열매 없는 나무를 책망하셨다. 누가복음 13장 6-9절을 보면, 무화과나무가 존재하는 목적은 열매를 맺는 것이고, 그 나무를 가꾸는 과원지기의 사명도 나무가 열매를 맺도록 두루 파고 거름을 주는 것임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다. 그래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나무는 쓸모가 없어져 뽑히게 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후에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한다고 그의 서신들에서 밝히고 있다. 열매를 나무와 연관해서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죽은 나무에는 봄이 찾아오지 않는다. 겨울이 되면 나무마다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어 모든 나무가 죽은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겨울 동안에는 죽은 나무와 산 나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봄이 되면 산 나무와 죽은 나무가 확연히 구별된다. 살아있는 나무는 봄에 싹을 내고 꽃을 피운다. 여름에는 풍성한 가지와 잎으로 열매를 만든다. 가을에는 싱싱하고 풍성한 열매를 제공한다. 그러나 죽은 나무는 계절에 관계없이 싹을 내지 않고 열매를 만들지 않는다. 이처럼 나무의 상태를 보면 그 나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죄로 인하여 죽은 사람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죄로 인하여 죽었기 때문에 선행의 싹이 없고 꽃이 없고 열매가 없다. 그러나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은 살아 있기 때문에 선행의 싹이 있고 꽃이 있고 열매가 있다. 이와 같이 신앙상태를 보고 그 사람이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지 죽은 그리스도인인지를 판가름한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행함이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그리스도인이다. 활동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잠자는 사람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26).
둘째, 봄이 나무에게 필요한 모든 계절은 아니다. 봄은 나무에게 필요한 출발점이고, 여름은 가을을 준비하는 성숙기이며, 가을은 열매를 맺는 결실기이다. 따라서 나무에게 필요한 것은 봄의 생동과 여름의 풍성함과 가을의 열매이다. 열매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닐지라도 봄과 여름은 가을에 맺히는 열매를 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4장 28절에서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고 말씀하셨다.
봄에 피는 목련과 개나리, 진달래와 벚꽃, 매화와 라일락 등의 꽃은 아름답다. 그리스도인의 중생체험에도 두껍고 딱딱한 외피를 헤집고 나온 새싹의 감동과 눈부시게 피는 꽃의 감동과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봄 한철에 불과하다.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면서 봄의 감동은 식어져 버리고 잊혀 버린다. 봄에 느꼈던 감동이 여름에 찾아오는 신록의 풍성함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록의 풍성함도 여름 한철에 불과하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여름의 감동은 식어져 버리고 잊혀 버린다. 한 나무의 진가는 찬바람이 불면서부터 나타난다. 나무마다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서 몸의 수분을 빼게 되고 그 풍성했던 잎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잎이 떨어질수록 열매가 많은 나무는 사랑을 받게 되고 열매가 없는 나무는 초라한 모습으로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셋째, 나무는 결국 그 열매를 보고 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장 16-20절에서 말씀하기를, "너희는 그 열매로 그들을 알아야 한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따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열매로 그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갈라디아서 5장 16-25절에서 바울은 나쁜 열매와 성령님의 열매에 대해서 말한다. 나쁜 열매는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이기심과 분열과 분파와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거리는 연회와 또 이와 비슷한 것들"이며,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 한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 . .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8-10절의 말씀에서도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목적은 그리스도인다운 아름다운 삶을 위한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신앙인다운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은 말하기를, 불신자들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그리스도인들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롬 6:16)고 했다. 이뿐 아니라,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충고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의에게 종' 또는 '하나님께 종'이란 말로써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와 성결의 생활을 강조하였다. 우리가 우리 자신들의 노력과 선행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주시고 있고,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고 계신다. 구원과 함께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는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2009년에는 거룩함에 이르는 의의 열매가 풍성하도록 좀더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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