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시 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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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시 90:1-17)
찰스 스펄전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자여, 결코 죽음을 두려워 말라. 신앙인에게 죽음은 가장 작은 문제일 뿐이다. 두려워 할 것은 오히려 삶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친 싸움이고, 혹독한 훈련이며, 험난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스펄전의 이 말은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란 것이다. 삶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고, 거친 것이며, 혹독한 훈련이고, 험난한 여정이기 때문에 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심각한 문제란 것이다.
여러분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필자는 20년에서 길게는 30년까지를 바라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20년 정도 했는데, 지금까지 해온 것만큼은 안 되겠지만, 앞으로 대략 20년 정도는 더 일할 생각이다. 작년 말에 퇴직을 했는데, 그 이유는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입이 좀 줄면 어떠냐? 무가치하고 소모적인 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좀 가난하게 살면 어떠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고, 아무리 해도 또 하고 싶고, 아무리 해도 즐거운 일, 그런 일을 하며 살자.”고 생각했다.
만일 오늘 여러분에게 담당의사가 말하기를, “앞으로 한 달밖에 살지 못하겠는데요.”라고 했다면, 또 그것이 운명이라면, 어떻게 그 남은 한 달을 계획하겠는가? 어떻게 그 한 달을 살아가겠는가? 어떻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겠는가? 이것이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물음이다. 죽음을 자주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죽는 것이 값질까, 어떻게 마무리 짓는 것이 아름다운 삶일까?”는 가끔씩 생각해 보는 것이 삶에 보약이 된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죽기를 각오하면 자기가 가진 것 이상의 능력을 발휘한다. 생쥐도 막다른 골목에서는 고양이를 공격한다고 하지 않는가?
6·25전후 세대가 대부분 비슷하지만, 힘든 청년의 때를 보냈다. 정말 어렵고 힘든 때는 종이를 꺼내놓고 내게 벌어질 일들을 최악의 경우까지를 적어보곤 했다. 아마 데일 카네기의 글에서 배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적어가다 보면, 항상 맨 마지막에 적게 되는 단어가 ‘죽음’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맞아봤자 죽는 것이고, 죽기를 무릅쓴다면 못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생각이 죽음에 이르게 되면, 없던 용기가 생기고, 그 용기를 가지고 상황에 부딪쳐 가다보면, 어느새 고민했던 일들이 대수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곤 했다.
톨스토이의 글 대자를 보면, 대자가 ‘생사(生死)’를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두려움을 떨쳐버렸을 때, 그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잔학무도한 살인강도의 마음을 꺾을 수 있었다. 죽기를 각오하니까, 삶이 달라졌다. 자기를 위협하던 강도의 살기등등한 기세도 꺾었다. 거기다가 그를 향한 사랑의 불이 뜨거워졌을 때 강도가 변해서 대자를 이어 수행자가 되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죽기를 각오하는 것을 마음을 깨끗케 하는 것이고, 신념을 굳세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열정이란 불이 활활 타오르면 태우지 못할 것이 없다.
심리학에서는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적 변화를 다섯 단계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알게 되면, 첫 단계로써 충격을 받고 그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며 강하게 부정한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내가 왜 죽어야하는지 억울하다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가족친지 친구 의사 등에 분노하다가 세 번째 단계에서는 죽고 싶지 않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래도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네 번째 단계에서는 우울해 하다가 다섯 번째에 가서는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고, 주변정리에 들어간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죽음을 수용하고, 후회 없는 삶을 계획한다. 이웃들에게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표하는가 하면, 재산과 장기를 기증하기도 한다.
‘후회 없는 삶’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당장 시작해야할 삶이다. ‘후회 없는 삶’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삶이다. 이 ‘후회 없는 삶’을 다룬 글이 케리와 크리스 슉 목사 부부가 쓴 내 생애 마지막 한 달!(One Month to Live)이란 책이다. 이들 부부는 현재 미국 텍사스 주 우드랜즈에서 16,000여명이 출석하는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후회 없는 삶’은 열정적으로 살고, 두려움 없이 사랑하며, 겸손히 배우고, 담대히 떠나라는 것이다.
막연한 희망 속에서 ‘언젠가, 어느 날엔가, 형편 될 때, 가능하면’이란 말을 즐겨 쓰던 사람조차도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지금, 여기서, 당장에’란 말로 바뀌게 된다고 한다.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의 답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가장 하고 싶던 일, 반드시 해야 할 그 일을 막연히 ‘언젠가, 어느 날엔가, 형편 될 때, 가능하면’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지우고, ‘지금, 여기서, 당장에’ 시작하겠다는 생각으로 바꾸는 것, 이것이 우리가 바꿔야할 삶의 태도이다. 생각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당장에’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운명을 바꿀 가장 위대한 생각인 것이다.
한 청년이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페트라셰프스키의 사건에 연좌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순간을 맞게 되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5분뿐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지난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좀더 성실하게 살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면서 가족 친척 친구들에게 마음으로 작별을 고한 다음 최후의 순간을 맞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짧은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나에게 한 번 더 살 기회를 주신다면, 인생을 결코 허비하지 않겠습니다.” 기도가 응답된 것이었을까? 마지막 남은 찰나의 순간에 기적이 일어났다. 저격수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황제의 특사가 전달되었고, 그는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 되었다. 그가 바로 훗날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쓴 도스토예프스키였다. 죽음이 그의 삶을 180도로 바꿔놓았던 것이다. 죽기를 각오한다면, 살날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 자신의 삶은 지금보다는 확연히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열정적인 삶의 태도로 변해야 한다. 후회 없는 삶은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정적으로 사는 것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목이 뒤로 적혀질 만큼 속도감 있고, 목에 찰만큼 숨이 가쁘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매달려야할 만큼 아슬아슬하고, 죽을 만큼 무서울지라도 앞으로 한 달밖에 살지 못한다면, 한번 도전해볼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죽음을 각오하는 순간, 두려움보다는 의외로 열정이 솟게 된다. 평소 하지 않던 일,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했던 일도 뛰어들게 된다.
열정으로 사는 것은 시간을 아껴 쓰는 것이다. 금년은 윤초(閏秒)가 적용되는 해라서 1초를 더 얻고 출발하는 해다. 윤초(閏秒)란 지구가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늦어지는 현상을 보정(補正)하기 위해 3년마다 1월 1일에 1초를 더하는 것을 말한다. 1초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아졌다는 뜻이면서, 비록 그것이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상황에 따라서는 천년이 하루 같을 수가 있고, 하루가 천년 같을 수도 있다. 시편 90편 4절에서 모세는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라고 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에서 베드로도,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했다. 기차역에서 벽시계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기차를 기다릴 때의 1시간과 상대를 제대로 만나 바둑 삼매경에 빠졌을 때의 1시간의 길이는 같지 않다. 아인슈타인도 상대성원리를 설명하면서 "미녀와 함께 있는 1시간은 1분 같고, 뜨거운 난로 위에 서 있는 1분은 1시간 같다"고 했다. 열정을 품고 바쁘게 사는 사람에게 시간은 한없이 짧게 느껴지지만, 할 일없이 시간을 죽이며 사는 사람에게 시간은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법이다. 열정을 품고 산 사람에게 한 달은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산 한 달은 다른 사람이 산 한 달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 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머뭇거릴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모르긴 해도 시간을 분과 초단위로까지 쪼개서 우선해야할 일의 목록을 뽑게 될 것이다. 운명의 시간을 늘릴 수 없다면, 그 다음에는 남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길 뿐이다. 리처드 코크(Richard Koch)는 80/20법칙(The 80/20 Principle)이란 경영서적에서 말하기를, 대부분의 기업들은 20퍼센트의 활동으로 80퍼센트의 결과를 내고, 다시 그 활동의 20퍼센트로 80퍼센트의 이윤을 낸다고 했다. 사람도 살면서 하고 있는 일의 20퍼센트로 80퍼센트의 결과를 내고, 다시 그 활동의 20퍼센트로 80퍼센트의 행복을 결정한다고 한다. 당신이 아는 20퍼센트의 사람이 당신과의 관계에서 80퍼센트의 영향을 끼친다.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20퍼센트만이 긍정적인 결과를 빚어내고, 나머지 80퍼센트의 일은 낭비인 것이다.
이토록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시간을 가치 있게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가? 답은 삶에 열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우리에게 남은 삶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좀 더 늘리지 않겠는가? 창 너머로 뜨는 해를 바라보면서 커피 한 잔의 진한 향기를 맡을 시간, 운동 경기에 나간 아이를 응원하는 시간, 의미 있는 책과 시와 성경을 읽는 시간, 숲속 오솔길을 걸으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좀 더 늘리지 않겠는가?
우리가 열정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에게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기계를 돌릴 강한 전력을 얻으려면 전력이 흐르는 코드에 기계의 플러그를 꽂아야 하듯이 열정이 담긴 삶을 얻으려면 기도로써 능력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연결되어야 한다. 마치 용지 밑에 숨겨진 자석이 용지위의 쇳가루를 조정하듯이 강력한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열정을 품고, 모험을 감행하고, 시간을 선용하는 후회 없는 삶을 지금 당장, 여기서 시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변해야할 삶의 태도이다. 죽음을 무릅쓰면 열정을 품을 수 있고, 모험을 감행할 수 있고, 시간을 아껴 쓸 수 있다. 또 우리가 반드시 변해야할 삶의 태도는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살려던 태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으로는 실패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그런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예배와 성경읽기와 기도에 힘써야 한다. 예배와 성경읽기와 기도는 힘의 원천인 하나님과 영적으로 소통하는 전화선이요, 강력한 힘을 얻는 전력선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 생애 마지막 한 달을 사는 심정으로 열정을 품고, 하고 싶던 일,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지금 당장 여기서 시작하자.
찰스 스펄전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자여, 결코 죽음을 두려워 말라. 신앙인에게 죽음은 가장 작은 문제일 뿐이다. 두려워 할 것은 오히려 삶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친 싸움이고, 혹독한 훈련이며, 험난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스펄전의 이 말은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란 것이다. 삶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고, 거친 것이며, 혹독한 훈련이고, 험난한 여정이기 때문에 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심각한 문제란 것이다.
여러분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필자는 20년에서 길게는 30년까지를 바라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20년 정도 했는데, 지금까지 해온 것만큼은 안 되겠지만, 앞으로 대략 20년 정도는 더 일할 생각이다. 작년 말에 퇴직을 했는데, 그 이유는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입이 좀 줄면 어떠냐? 무가치하고 소모적인 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좀 가난하게 살면 어떠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고, 아무리 해도 또 하고 싶고, 아무리 해도 즐거운 일, 그런 일을 하며 살자.”고 생각했다.
만일 오늘 여러분에게 담당의사가 말하기를, “앞으로 한 달밖에 살지 못하겠는데요.”라고 했다면, 또 그것이 운명이라면, 어떻게 그 남은 한 달을 계획하겠는가? 어떻게 그 한 달을 살아가겠는가? 어떻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겠는가? 이것이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물음이다. 죽음을 자주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죽는 것이 값질까, 어떻게 마무리 짓는 것이 아름다운 삶일까?”는 가끔씩 생각해 보는 것이 삶에 보약이 된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죽기를 각오하면 자기가 가진 것 이상의 능력을 발휘한다. 생쥐도 막다른 골목에서는 고양이를 공격한다고 하지 않는가?
6·25전후 세대가 대부분 비슷하지만, 힘든 청년의 때를 보냈다. 정말 어렵고 힘든 때는 종이를 꺼내놓고 내게 벌어질 일들을 최악의 경우까지를 적어보곤 했다. 아마 데일 카네기의 글에서 배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적어가다 보면, 항상 맨 마지막에 적게 되는 단어가 ‘죽음’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맞아봤자 죽는 것이고, 죽기를 무릅쓴다면 못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생각이 죽음에 이르게 되면, 없던 용기가 생기고, 그 용기를 가지고 상황에 부딪쳐 가다보면, 어느새 고민했던 일들이 대수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곤 했다.
톨스토이의 글 대자를 보면, 대자가 ‘생사(生死)’를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두려움을 떨쳐버렸을 때, 그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잔학무도한 살인강도의 마음을 꺾을 수 있었다. 죽기를 각오하니까, 삶이 달라졌다. 자기를 위협하던 강도의 살기등등한 기세도 꺾었다. 거기다가 그를 향한 사랑의 불이 뜨거워졌을 때 강도가 변해서 대자를 이어 수행자가 되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죽기를 각오하는 것을 마음을 깨끗케 하는 것이고, 신념을 굳세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열정이란 불이 활활 타오르면 태우지 못할 것이 없다.
심리학에서는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적 변화를 다섯 단계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알게 되면, 첫 단계로써 충격을 받고 그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며 강하게 부정한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내가 왜 죽어야하는지 억울하다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가족친지 친구 의사 등에 분노하다가 세 번째 단계에서는 죽고 싶지 않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래도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네 번째 단계에서는 우울해 하다가 다섯 번째에 가서는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고, 주변정리에 들어간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죽음을 수용하고, 후회 없는 삶을 계획한다. 이웃들에게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표하는가 하면, 재산과 장기를 기증하기도 한다.
‘후회 없는 삶’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당장 시작해야할 삶이다. ‘후회 없는 삶’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삶이다. 이 ‘후회 없는 삶’을 다룬 글이 케리와 크리스 슉 목사 부부가 쓴 내 생애 마지막 한 달!(One Month to Live)이란 책이다. 이들 부부는 현재 미국 텍사스 주 우드랜즈에서 16,000여명이 출석하는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후회 없는 삶’은 열정적으로 살고, 두려움 없이 사랑하며, 겸손히 배우고, 담대히 떠나라는 것이다.
막연한 희망 속에서 ‘언젠가, 어느 날엔가, 형편 될 때, 가능하면’이란 말을 즐겨 쓰던 사람조차도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지금, 여기서, 당장에’란 말로 바뀌게 된다고 한다.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의 답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가장 하고 싶던 일, 반드시 해야 할 그 일을 막연히 ‘언젠가, 어느 날엔가, 형편 될 때, 가능하면’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지우고, ‘지금, 여기서, 당장에’ 시작하겠다는 생각으로 바꾸는 것, 이것이 우리가 바꿔야할 삶의 태도이다. 생각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당장에’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운명을 바꿀 가장 위대한 생각인 것이다.
한 청년이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페트라셰프스키의 사건에 연좌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순간을 맞게 되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5분뿐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지난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좀더 성실하게 살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면서 가족 친척 친구들에게 마음으로 작별을 고한 다음 최후의 순간을 맞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짧은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나에게 한 번 더 살 기회를 주신다면, 인생을 결코 허비하지 않겠습니다.” 기도가 응답된 것이었을까? 마지막 남은 찰나의 순간에 기적이 일어났다. 저격수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황제의 특사가 전달되었고, 그는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 되었다. 그가 바로 훗날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쓴 도스토예프스키였다. 죽음이 그의 삶을 180도로 바꿔놓았던 것이다. 죽기를 각오한다면, 살날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 자신의 삶은 지금보다는 확연히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열정적인 삶의 태도로 변해야 한다. 후회 없는 삶은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정적으로 사는 것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목이 뒤로 적혀질 만큼 속도감 있고, 목에 찰만큼 숨이 가쁘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매달려야할 만큼 아슬아슬하고, 죽을 만큼 무서울지라도 앞으로 한 달밖에 살지 못한다면, 한번 도전해볼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죽음을 각오하는 순간, 두려움보다는 의외로 열정이 솟게 된다. 평소 하지 않던 일,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했던 일도 뛰어들게 된다.
열정으로 사는 것은 시간을 아껴 쓰는 것이다. 금년은 윤초(閏秒)가 적용되는 해라서 1초를 더 얻고 출발하는 해다. 윤초(閏秒)란 지구가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늦어지는 현상을 보정(補正)하기 위해 3년마다 1월 1일에 1초를 더하는 것을 말한다. 1초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아졌다는 뜻이면서, 비록 그것이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상황에 따라서는 천년이 하루 같을 수가 있고, 하루가 천년 같을 수도 있다. 시편 90편 4절에서 모세는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라고 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에서 베드로도,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했다. 기차역에서 벽시계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기차를 기다릴 때의 1시간과 상대를 제대로 만나 바둑 삼매경에 빠졌을 때의 1시간의 길이는 같지 않다. 아인슈타인도 상대성원리를 설명하면서 "미녀와 함께 있는 1시간은 1분 같고, 뜨거운 난로 위에 서 있는 1분은 1시간 같다"고 했다. 열정을 품고 바쁘게 사는 사람에게 시간은 한없이 짧게 느껴지지만, 할 일없이 시간을 죽이며 사는 사람에게 시간은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법이다. 열정을 품고 산 사람에게 한 달은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산 한 달은 다른 사람이 산 한 달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 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머뭇거릴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모르긴 해도 시간을 분과 초단위로까지 쪼개서 우선해야할 일의 목록을 뽑게 될 것이다. 운명의 시간을 늘릴 수 없다면, 그 다음에는 남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길 뿐이다. 리처드 코크(Richard Koch)는 80/20법칙(The 80/20 Principle)이란 경영서적에서 말하기를, 대부분의 기업들은 20퍼센트의 활동으로 80퍼센트의 결과를 내고, 다시 그 활동의 20퍼센트로 80퍼센트의 이윤을 낸다고 했다. 사람도 살면서 하고 있는 일의 20퍼센트로 80퍼센트의 결과를 내고, 다시 그 활동의 20퍼센트로 80퍼센트의 행복을 결정한다고 한다. 당신이 아는 20퍼센트의 사람이 당신과의 관계에서 80퍼센트의 영향을 끼친다.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20퍼센트만이 긍정적인 결과를 빚어내고, 나머지 80퍼센트의 일은 낭비인 것이다.
이토록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시간을 가치 있게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가? 답은 삶에 열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우리에게 남은 삶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좀 더 늘리지 않겠는가? 창 너머로 뜨는 해를 바라보면서 커피 한 잔의 진한 향기를 맡을 시간, 운동 경기에 나간 아이를 응원하는 시간, 의미 있는 책과 시와 성경을 읽는 시간, 숲속 오솔길을 걸으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좀 더 늘리지 않겠는가?
우리가 열정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에게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기계를 돌릴 강한 전력을 얻으려면 전력이 흐르는 코드에 기계의 플러그를 꽂아야 하듯이 열정이 담긴 삶을 얻으려면 기도로써 능력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연결되어야 한다. 마치 용지 밑에 숨겨진 자석이 용지위의 쇳가루를 조정하듯이 강력한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열정을 품고, 모험을 감행하고, 시간을 선용하는 후회 없는 삶을 지금 당장, 여기서 시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변해야할 삶의 태도이다. 죽음을 무릅쓰면 열정을 품을 수 있고, 모험을 감행할 수 있고, 시간을 아껴 쓸 수 있다. 또 우리가 반드시 변해야할 삶의 태도는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살려던 태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으로는 실패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그런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예배와 성경읽기와 기도에 힘써야 한다. 예배와 성경읽기와 기도는 힘의 원천인 하나님과 영적으로 소통하는 전화선이요, 강력한 힘을 얻는 전력선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 생애 마지막 한 달을 사는 심정으로 열정을 품고, 하고 싶던 일,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지금 당장 여기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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