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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변해야 하는가(마 7:3-5, 롬 3: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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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852 2009.02.05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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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변해야 하는가(마 7:3-5, 롬 3:23-26)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왜 그럴까? 죽음을 앞두면, 살았다는 이름만 갖고 있었지, 실상은 죽어 있어서 볼 수 없었던 진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너그러워지게 되고, 미움을 버리게 되고, 두려움 없이 사랑하게 된다.
아동문학가 이현이 쓴 책 가운데 󰡔장수 만세󰡕란 것이 있다. 죽은 후에 자기 가정의 실상을 보게 된 초등학교 6학년짜리 혜수가 오빠의 자살을 막고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 펼치는 모험담이다.
혜수네 가정은 한마디로 평범한 가정이다. 주류회사 영업부 ‘만년 과장’인 아버지는 업무상 술을 자주 마시지만, 가족부양의 책임을 묵묵히 다하는 성실한 가장이다. 엄마는 ‘내 인생은 아이들의 것’이라며 자식의 학교 성적에 목매달고, 대출금 갚기 위해 억척스럽게 사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아줌마’이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아들 장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 1등을 놓쳐본 적 없는 재원이라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특별한 재능이 없는 혜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 ‘뺑뺑이’를 돌고, 학습지와 숙제를 하느라 밤늦도록 책상 앞에서 씨름하는 엄마의 꼭두각시였다.
그런 혜수가 필리핀영어연수를 앞두고 자신의 집 17층 베란다에서 늦은 밤에 정체불명의 시커먼 물체를 유심히 살핀다고 창밖으로 상채를 내밀었다가 떨어져 죽었다. 그런데 혜수가 죽은 것은 저승사자들의 실수였다. 죽을 사람은 혜수가 아니라 오빠인 장수였던 것이다. 혜수는 자신이 염라국 입국심사과장의 착오로 죽게 된 것과 오빠가 자살을 하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혜수는 염라국 입국심사과장에게 “오빠의 죽음을 일주일 뒤로 미뤄주지 않으면, 염라대왕에게 이 중대한 실수를 일러바치겠다.”고 협박을 한다. 결국 혼령으로 이승에 살아 돌아온 혜수는 비로소 자기 가족의 실상을 보게 된다.
혜수네 집은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는 처지를 비관하고, 이를 만회해보려고 주식에 손을 댔다가 어렵게 마련한 집마저 날릴 처지였고,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아이들에게 바친 대가로 ‘고맙다’는 말은커녕 ‘아이들을 닦달하는 지긋지긋한 엄마’로 취급받았다. 오빠 장수는 최악이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공부하다가 난독증에 걸려 글자를 읽을 수 없게 되었고, 모의고사에서 전국 최하위의 성적을 받게 되자,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혜수네 집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옭죄고,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싫어!’(No!)라고 외치지 못하고,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바람에 모두의 ‘지옥’이 되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현실을 직시한 혜수가 오빠를 살리기 위해서 기발하고 발랄한 모험을 펼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진실로 죽기를 각오할 때, 살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사람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문제의 실상이 눈에 보이게 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문제해결의 의지를 갖고 있다 해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쉽게 문제를 해결한다. 왜 그럴까?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남에게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미움을 버리게 되고, 두려움 없이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그렇게 못하는 것은 죽기보다는 사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탓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5절에서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하셨다. 또 예수님은 누가복음 23장 28절에서,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는 길을 뒤따르며 우는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우리가 위해서 울어야할 상대가 누구인가? 우리가 바로 보는 것을 가로막는 들보와 티를 없애야할 사람이 누구인가? 톨스토이는 󰡔대자󰡕에서 이 점을 잘 밝혀주고 있다.
산에 올라 수행하던 대자에게 부족한 것은 없었다. 사람들도 자주 찾아왔고, 사람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충분히 가져왔다. 그러나 그에게 치를 떨게 하는 두려운 존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시세말로 ‘사이코패스’라 할 수 있는 한 잔인한 살인강도였다. 그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서 대자를 괴롭혔다. 대자가 진정으로 두려웠던 것은 이 살인강도로 인해서 사람들이 그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가지고 찾아오지 않게 될 것이라는 거였다. 그러던 그가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먹고사는 문제, 죽음의 문제를 몽땅 하나님 앞에 내려놓게 되고, 더 이상 강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에게 깨끗하고 굳센 신념이 생겼던 것이다.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지자, 이번에는 이 살인강도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뜨거운 사랑이 불타올랐다. 두려움이 없는 이 뜨거운 사랑에 강도의 무쇠처럼 단단한 마음이 녹아지고 뱀처럼 차가운 마음이 뜨거워졌다. 톨스토이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살인강도에서 찾기보다는 수행자인 대자에게서 찾았다. 대자의 마음이 깨끗해지고, 신념이 강해지며, 두려움 없는 사랑이 뜨겁게 불타오를 때, 비로소 더러워진 강도의 마음이 깨끗하게 닦이고, 무쇠처럼 단단한 강도의 마음이 꺾이며, 무디고 녹순 강도의 마음이 녹아질 수 있었다고 했다.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에서 케리와 크리스 슉은 후회 없는 삶은 두려움 없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려움 없는 사랑은 내가 변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의 변화는 나의 잘못을 발견하고 회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변화는 우리의 희생을 먹고 자란다. 시간의 희생, 금전의 희생, 자존심의 희생, 승리주의의 희생, 이런 많은 희생들을 밑거름삼아 성장한다. 그래서 후회 없는 삶은 가까운 사람과 함께 보낼 시간을 만들고,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고, 정정당당하게 싸우되, 화끈하게 화해하고, 감사를 표시하고, 먼저 말을 걸어 소통의 길을 트는 것이다.
하나님은 관계의 소통과 화평이 ‘자기희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솔선수범하여 보이셨다.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회복과 유지는 하나님의 희생에서 비롯되었다. 이 점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성구가 로마서 3장 23-26절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본래 잘못이 없지만, 인간들이 저지른 모든 잘못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예수님을 통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죽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주 동안의 행적을 보면, 이미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까지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죽기를 각오했을 때 인류를 품을 수 있었고, 그들을 위해 화목제물이 되실 수 있었다. 죽기를 무릅썼을 때,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용서하실 수 있었고, 함께 못 박힌 강도를 위해서 축복하실 수 있었다.
모든 천국은, 그것이 마음이든, 가정이든, 교회든, 직장이든, 혹은  어떠한 공동체든 간에, 회개와 죽음을 각오한 자기희생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를 ‘회개하라’는 설교로 시작하셨다.
변화가 없는 곳에 천국은 없다. 회개가 없는 곳에 천국도 없다. 누가 변해야 하는가? ‘그건 바로 나.’ 나부터 변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회개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내가 달라져야 하고, 내가 180도 변해야 한다.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변해야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변하지 않으면 쇠퇴되고 해체된다. 우리 교회도 변해야 한다. 나부터 변해야 한다.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밖에서 찾으면 안 되고,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누구를 탓해서도 안 되고, 나팔 불어서도 안 된다. 소리 없이 변해야 한다.
모든 관계의 소통과 화평은 진실에서 비롯된다. 요셉을 괴롭히고 미워하여 이집트에 팔아버린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과 뜨겁게 포옹하며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은 유다의 진실한 회개에서 비롯되었다. 베냐민을 노예로 삼지 말고, 자신을 노예로 삼아 달라고 간청하는 유다의 자기희생적 탄원이 요셉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실이다.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승리를 얻는 길이고, 진실에 근거할 때, 말에 진정한 힘이 실릴 수 있으며, 그럴 때만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진실은 하나님과 모든 인간관계의 근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회개이다. 유다의 진실한 회개가 요셉으로 하여금 형들을 용서하고 형제우애를 회복하게 한 힘이었다. 진실한 회개가 사람의 마음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인다. 우리가 죽기를 각오하면, 하지 못할 것이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소리 없이 찾아오는 봄의 변화처럼, 가슴속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소리 없이 변화를 주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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