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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힘(마 9: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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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848 2009.03.06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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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힘(마 9:18-26)

믿음은 변화의 힘이다. 하나님은 변화를 일으키는 근원이시고, 예수님은 그 변화를 우리의 삶속에 가져오는 통로이다. 예수님께 채널을 맞추면 하나님과 연결된다. 북두칠성에 눈을 맞추면 북극성을 찾을 수 있고, 북극성을 찾으면 동서남북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연결된다. 하나님께 연결되면 긍정의 변화, 곧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믿음은 변화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힘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11:6)고 피력하였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과 진리를 찾을 수 있고,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예수님을 찾아 가는 것,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 기적들은 대부분 ‘병 고침’과 ‘음식 나눔’에 집중되어 있다.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해방시켜준 구원사건들이다. 폭풍진압도 죽음문제를 해결한 사건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기적들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빛을 주고 생명을 준 사건들이었다. 바꿔 말하면, 그것들은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났다. 기적이 필요했고, 기적을 원했고, 기적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일어났다. 예수님을 믿고 찾아간 사람들에게만 일어났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주신 말씀은 기껏해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 9:22),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는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들은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8장 1-4절에서 나병환자가 찾아와서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고, 5-13절에서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와서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하셨으며, 9장 1-8절에서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또 18-26절에서 열두 해 동안 혈루 병을 앓던 여자가 마음에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고침을 받게 될 것이라 믿고 예수님의 뒤로 가서 겉옷 가를 만졌을 때, 예수님은 그녀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고, 27-31절에서 눈뜨기를 소원하는 두 맹인에게 하신 말씀도 “너희 믿음대로 되라.”는 것뿐이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한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또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1-22).
복음서에 실린 예수님의 이야기들을 보면, 거기에는 군중도 있고, 구경꾼도 있고, 조연도 있고, 주연도 있다. 군중과 구경꾼은 소위 베이컨이 말하는 우상에 빠진 사람들이고, 주연과 조연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 변화를 얻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간 사람들이 복음서 이야기의 핵심인물들이다. 그들은 병을 고쳤거나 참 진리를 터득했거나 참 평안과 안식을 얻었던 사람들이다. 자신의 삶과 인생에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던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찾아간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왜 변해야 하는지,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누구를 찾아가야 고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대개는 꾀 오랜 기간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이고, 반드시 고침을 받겠다는 의지를 품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번에 그 기회를 잡으려했던 사람들이다. 나병환자가 그랬고, 백부장이 그랬고, 중풍병자가 그랬고, 혈루 병을 앓았던 여인이 그랬고, 맹인들이 그랬다. 그들은 제 발로 예수님을 찾아갔던 사람들이고, 입으로 믿음을 시인했던 사람들이고, 고쳐달라고 매달렸던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면 변하고 변하지 못하는 문제가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뜻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변화의 능력은 변할 수 있다는 확신과 변화의 근원과 통로 되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 있다.
인생을 군중이나 구경꾼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나병환자가 고침을 받을 때, 백부장의 하인이 고침을 받을 때,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을 때, 혈루 병을 앓았던 여인이 고침을 받을 때, 맹인들이 고침을 받을 때, 그곳에는 반드시 군중이 있었고, 구경꾼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군중이었고, 구경꾼에 불과했기 때문에 변화를 겪지 못했다. 예수님과 일대일의 대면을 갖지 못했다. 근본적인 치유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1813-1855)는 인간이 참된 실존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선 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단순히 믿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매 순간 새롭게 확인하는 절망적인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전에 서야 한다고 하였다.
‘구경꾼들’은 피상적인 인생을 살면서 환경에 따라 이리 저리 방황하며, 이런 저런 삶의 경험들을 맛보지만, 근본적인 결단을 유보하는 사람들이다.
‘군중들’은 더 이상 자기 인생을 형성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군중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책임과 참된 인간성을 회피한다. 그러므로 군중은 비인간화된 자기 상실의 표본이다. 군중 속에서 개인은 많은 사람 가운데 파묻힌 한 개의 모래알과 같이 무명인이다.
철학자 베이컨은 자기 편견에 맞는 사례에 마음이 동요되는 종족우상, 동굴에 갇혀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편협한 편견인 동굴우상,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보면서 허구에 미혹되듯이 잘못된 논증이나 학설에 미혹되는 편견인 극장우상, 시장에서 조심성 없이 주고받는 여론에서 생기는 편견인 시장우상을 버려야 비로소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실존의 문제이다. 내 실존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모든 가식과 허울을 벗고 냉정하게 하나님 앞에 홀로 대면해야 한다.
복음서에 소개된 예수님의 기적들에는 두 가지 상반된 면이 있다. 한 가지는 예수님이 행한 많은 기적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구세주로 입증하는 표적이라는 점과 그분에게 병을 고치고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과 구세주란 사실을 입증할만한 표적을 보여 달라는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마 12:39,16:4)고한 것이다. 이 상반된 의견은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병 고침과 같은 기적을 체험할 수 있고 죄 사함을 받게 되지만,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처럼 의심하고 시험하는 자들에게는 절대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메시지는 구원하는 힘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란 점을 밝혀준다. 예수님을 통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울 김용옥은 󰡔기독교성서의 이해󰡕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예수가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난 후에 사람들이 믿음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로 기적은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다. 기적은 구경이나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용한 마술을 본들, 마술은 마술일 뿐이다. 그것이 마술이 아니라 진짜 기적이라 해도, 그러한 마술 같은 기적들은 그냥 기적으로써 아무 의미 없이 우리의 의식세계를 지나간다. 그것은 단지 ‘희한한 구경거리’였을 뿐이다.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없다면 기적은 그냥 ‘놀라운 사건’(astonishing events)일 뿐이다. 기적의 광경은 반드시 믿음과 함께 일어나야 한다.”
도올의 이 말은 기적을 보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보고 기적이 일어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기적을 보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갖게 되면 기적을 볼 수 있다. 
도올은 이런 말도 했다.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꼬나보는 자들은 결코 기적을 볼 수 없다. 오히려 나의 한계를 절망하는 자들에게만, 하나님께서 직접 나에게 자유롭게 말씀하실 수 있도록 나의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을 때만이 기적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기적에 대한 믿음은 결국 나의 주체적 삶의 신앙의 표현이다. 자연적 인과는 하나님을 나의 일상성으로부터 멀리 숨겨버린다. 그러나 기적은 하나님을 나의 실존에 가깝게 다가오게 만든다. 그것은 나의 일상성을 지배하는 자연적 인과에 대한 신념의 포기마저도 야기할 수 있는 ‘가까움’이다. 신앙은 궁극적으로 나의 모든 아집의 포기를 의미하며, 그것은 자연의 법칙성으로부터의 해방까지도 포괄하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만 믿는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자연법칙을 벗어난 기적을 경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기적은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삶 속 여기에 현재적으로 임하게 만든다. 따라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은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을 과시한 사건이기보다는 예수님이 행하신 ‘고침’과 ‘나눔’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당신의 나라를 임하게 한 복음적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믿음을 통해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심령천국, 가정천국, 교회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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