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

예수님의 천국복음(마 4:23)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13,240 2007.10.05 16:15

본문

예수님의 천국복음(마 4:23)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던 시기는 기독교 시대가 아직 이르기 이전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열흘 후인 오순절 날에 출범했고, 사도 바울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아직 기독교의 틀을 갖추지도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유대인들은 어떻게 받아드렸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전혀 생소한 내용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간절히 기대하고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었을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여러 차례 위로부터 내리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이 요구했던 표적이 다름 아닌 그들이 기대했던 천국을 가져다 줄 메시아적 능력이었던 것을 보아 알 수 있고, 또 유대인 독자를 위해 쓰인 마태복음이 천국복음을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유대인식 표현입니다. 유대인들은 제3계명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그들의 입에 올리지 않았고, 기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하쉠’이나 ‘하마콤’ 또는 ‘아도나이’라 불렀고,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미완성 형태로 기록하였습니다. ‘하쉠’이란 ‘그 이름’이란 뜻이고, ‘하마콤’은 ‘그 장소’란 뜻이며, ‘아도나이’는 ‘주님’이란 뜻입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마태는 ‘하나님’이란 이름 대신에 ‘하늘’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나라’ 곧 ‘천국’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란 말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우회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은 내세를 뜻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메시아가 오시면 세워질 이스라엘 왕국을 뜻합니다. 그래서 메시가 오시면 세워질 이스라엘 왕국이 ‘왜 하나님의 나라인가’ 라는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전 432년경까지의 일을 기록한 역대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에 담긴 사상 때문입니다. 이 사상을 ‘역대기 사관’이라고 부르는데, 역대기 사관의 대표적인 이념이 다윗 왕가의 복원과 예루살렘 성전예배 중심의 신정정치였습니다. 유다왕국을 성전중심의 공동체로 결속시키기 위해서 성전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바벨론에서 돌아온 스룹바벨이 재건한 성전공동체에 모든 희망을 걸었고,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통치를 가장 이상적인 세계로 꿈꾸었습니다.
이때부터 생겨난 것이 다가올 세계를 뜻하는 ‘올람 하바’(Olam Ha-Ba),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메시아가 통치하는 회복된 이스라엘 왕국을 말합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재림직후에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는 ‘천년왕국’과 거의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올람 하바’에서는 평화공존이 이뤄지고(사 2:4). 미움과 살인과 전쟁 등의 죄가 사라지며(습 3:13), 먹이사슬이나 약육강식과 같은 자연법칙이 사라집니다. 따라서 자연은 풍성한 소출을 낼 것이라고 유대인들은 믿습니다(사 11:6-11:9). 또 이때가 되면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 올 것이고(사 11:11-12, 렘 23:8, 30:3, 호 3:4-5), 전 세계는 유대인의 하나님을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으로 믿게 되며, 유대종교를 유일하고 참된 종교로 인정하게 될 것이고(사 2:3; 11:10; 미가 4:2-3; 슥 14:9), 성전예배가 복원되어 감사예물이 드려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태복음 4장 23절의 말씀,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고대했던 메시아였다는 사실을 강하게 웅변하는 것이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이해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받아 드린 유대인들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요? 초창기 열광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반전이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처음 유대인들이 천국복음을 들었을 때는 그들이 기대했던 하나님의 나라, 곧 메시아를 통해서 하나님이 친히 다스릴 문자적 의미의 이스라엘 왕국으로 이해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님이 선포한 천국의 의미가 문자적 의미의 이스라엘 왕국이 아니라, 성령님이 예수님을 믿는 자 개개인에게 임하신 후에 이뤄질 영적 의미의 이스라엘 나라, 곧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공평하게 값없이 열려있는 교회시대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만, 당대의 유대인들로서는 그 같은 개념의 영적인 나라를 받아드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사건과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고나서부터는 적지 아니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전파한 이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받아드렸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가입하였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여전히 미래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유대교에는 현재의 삶 속에서 이뤄지는 영적구원이란 것이 없고, 오로지 미래세계에서 이뤄질 육적구원만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출애굽사건을 이스라엘 민족의 대(大)구원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메시아가 오시면 제2출애굽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인데, 그때가 되면 그토록 기다리던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제2출애굽사건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려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라고까지 말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통해서 이미 우리 가운데서 이뤄진 현재구원과 예수님 재림 때에 성취될 미래의 축복들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지금 여기서 미리 맛보고 누리는 영적축복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이미' 이뤄진 현재구원이 없고, 오직 ‘아직’ 이뤄지지 않은 미래구원을 기대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서 이뤄진 현세적인 나라일 뿐 아니라, 또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완성될 미래적인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미'란 것은 메시아가 가져오실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삶속에서 이미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아직'이라는 말은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소망 가운데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현세적이면서 내세적이고, 현재적이면서 또한 미래적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앞으로 주실 축복들을 미리 맛보고 누리는 것입니다. 이런 복된 삶이 이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하여 침례 가운데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고, 이 사실을 성령님이 보증하시고 직인을 찍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자들입니다. 그러나 아직 시민권만 소유했지, 실제로 그 나라에 들어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영영 들어가 살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나라와 땅에 들어가 사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듯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은 반드시 그 나라와 땅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고, 그 사실을 보증하고 직인 찍게 하셨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님께서는 그 나라에서의 축복들을 미리 맛보고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미리 맛보고 누리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에게는 주지 아니한 기독교인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권리입니다.
이 특권을 누릴 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받은 사람이 그것을 장롱 깊은 곳에 숨긴다면, 그것은 한 달란트를 받아 땅속에 묻은 사람처럼 어리석고 무익한 행동입니다. 그에게는 불평과 불만이 가득할 뿐,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강과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받은 시민권을 삶 속에서 잘 활용한다면, 그 사람은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처럼 지혜롭고 충성스런 사람이 됩니다. 그의 삶에 기쁨과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이 큰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사장시키는 것일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선물로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사람들은 삶의 활력을 잃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첫째, 성령님의 도움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을 느낄 수 없는 현실을 느낄 수 있는 현실로 바꿔주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죽은 것 같은 현실을 살아계신 현실로 바꿔주십니다. 흑암의 현실을 빛의 현실로 바꿔주시고, 혼돈의 현실을 질서의 현실로 바꿔주시며, 죽음의 현실을 생명의 현실로 바꿔주시고, 슬픔이 위로가 되게 하시며, 고통이 기쁨이 되게 하시고, 불평이 감사가 되게 하시며, 병듦이 건강이 되게 하시고, 갇힘이 놓임이 되게 하시며, 가난이 부요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성령님은 산소와 같은 분이십니다. 산소 없이 살아갈 수 없듯이,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의사처럼 마음의 병을 고쳐 주시고, 변호사처럼 변호해주시며, 상담자처럼 조언해주시고, 교사처럼 가르쳐주십니다. 이 성령님을 통해서 중생의 기쁨을 얻게 되며, 눈앞에 펼쳐진 시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맛보고 경험하며, 궁극적으로는 구원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셔야 합니다.
도움을 받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일국의 대통령도 참모들의 도움을 받고 있고, 대기업의 회장이나 최고연예인들도 답답하면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갑니다. 신문방송들은 유명 인사나 인기 연예인들의 기행들을 연일 경쟁적으로 보도합니다. 그만큼 유명인들의 삶이 공허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물며 평범한 우리들이야 얼마나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겠습니까? 문제는 누구의 도움을 받느냐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둘째,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무시로 기도하셔야 됩니다. 누가는 예수님조차도 기도의 힘으로 일생을 버티셨다는 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셨는데, 늘 성령님으로 충만하셨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도움은 마치 전력과 같습니다. 전기가 없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전기가 없다고 해서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 겪어야할 불편함은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장에 TV도 볼 수 없고, 어둠을 밝힐 수도 없고, 세탁기를 돌릴 수 없고, 헤어드라이어도 쓸 수 없고, 밥솥도 꽂을 수 없고,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전기가 있어서 그것을 잘 활용한다면, 그 가능성과 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답답함이 얼마나 크며, 그 갈증이 얼마나 심하며, 그들이 겪는 불행이 또한 얼마나 대단합니까? 전력에 의존하여 살아가듯이 성령님에 의존하셔야 합니다.
전기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늘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잘 활용한다면 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을 얻을 수 있고, 기계를 움직일 동력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기와 같아서 늘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성령님의 능력에 접근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전력을 얻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전기스위치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전력을 얻으려면 전기스위치를 켜주기만 하면 됩니다.
기도는 마치 전기스위치와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령님에게 접근하여 필요한 능력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방법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성령님의 능력을 얻는 방법입니다. 우리 주변에 전력이 아무리 많이 흐른다 해도 스위치를 누르지 아니하면 필요한 전력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의 기운이 항상 우리 주변을 덮고 있다할지라도,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를 엄습해 오는 어둠을 물리칠 수 없고, 생활의 답답증을 해결할 수 없으며, 인생의 혹독함을 막을 수 없고, 엔진 돌리듯 우리의 삶을 힘차게 돌릴 수가 없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인정함으로써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하는 것이고,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며, 생사화복의 모든 원인을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에서 찾고,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벌거벗는 것이며, 진실해지고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욕심과 욕망을 버리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성령님을 통해서 내 안에서 내 대신 일하실 수 있도록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내 결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결정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기도응답의 체험들을 많이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을 장악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